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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평점 :
혼탁했던 역사의 흙탕물이, 우리 사회의 흙탕물이 제법 가라앉은 느낌이다. 이제야 겨우 그 속이 들여다 보이니 말이다. 휘저으려 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써주시는 문인 덕분에 감았던 눈을 다시 뜬다.
황석영의 <강남몽>은 '강남 형성사'이다. 총5장으로 구성된 <강남몽>은 다섯 인물들의 물고 물리는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통해 남한의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구축되어 왔는지 압축하여 보여준다. 화류계 출신의 '강남 사모님' 박선녀, 박선녀를 둘째 부인으로 둔 기업가 김진, 부동산 투기로 큰돈을 벌며 잠시 박선녀와 만났던 심남수, 박선녀가 운영하는 나이트클럽의 동업자였던 조직폭력배 홍양태, 대성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박선녀 옆에 매몰되어 있던 백화점 직원 임정아.
뛰어난 미모와 사업수완으로 부유한 상류층 사회에 진출한 박선녀, 일제시대 정탐꾼 노릇을 시작으로 권력에 빌붙어 영악한 처세로 성공의 기회를 잡아왔던 김진, 사기에 가까운 부동산 투기로 한몫 챙긴 뒤 고국을 떠나 대학교수가 되어 돌아온 심남수, 가진 것은 주먹뿐이어서 가진 자의 '개'가 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으나 결국 죽은 개처럼 버림받은 홍양태, 그리고 강남의 밑바닥을 떠바치고 있는 노동자 임정아. 진짜 강남 사람은 박선녀, 김진, 심남수이고, 홍양태와 임정아는 강남을 맴도는 주변인인 셈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들의 <강남夢> 또한 내 것처럼 살려는 발버둥, 그것에 다름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밟고 올라섰다는 것이고, 다른 사람은 밟혔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남夢>을 읽으며, 감겼던 눈이 가장 크게 떠졌던 부분은 '제2장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라는 제목의 김진의 생애사였다. 사실 소설이 아니라 역사 해설자의 설명 같은 서술이 다소 지루했지만, 이렇게 선명한 근대사를 어디서도 읽은 기억이 없을 만큼 충격적이기도 했다. 과거 청산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무기력해진 마음이지만, 최소한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이제라도 제대로 말해져야 하리라.
<강남夢>은 무너져내린 강남의 백화점을 통해 무너진 '강남夢'을 형상화 한다. 이것은 과거의 되새김이 아니라, 무너져내린 백화점을 목격하고도 여전한 꿈속에서 헤매는 오늘 우리에 대한 심판 예고처럼 들린다. 부러움의 대상일지는 모르지만, '희망'이 되지는 못하는 강남. 그들을 손가락질 하는 우리조차도 은근히 강남(게으른 부자)을 꿈꾸고 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때 한참 좋아했던 노래가 하나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제목의 노래였는데, <강남夢>을 읽으니 그 노래의 몇 소절이 떠오른다. "나의 사랑아 이제 네 눈을 떠봐요. 삶의 참된 의미를 찾아 보아요. 네가 올라있는 그들은 너의 사랑. 이제 내려와 모두 함께 노래불러. 네가 추구하던 세상에 허황된 것, 허공에 쌓아진 시기와 질투의 탑을 뿐." 남한의 자본주의 형성사, 강남 형성사을 직접 목도하며, 뜨거운 삶을 살아낸 이 시대의 거장 황석영 작가가, <강남夢>을 통해 함께 부르고 싶었던 노래가 바로 이 노래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