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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4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
버나드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평점 :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공중에 걸쳐 있는 돌’이라는 의미의 ’스톤헨지(stonehenge)’는 선사 시대의 거석기념물로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의 유적이라고 한다. 수천 년 세월에 더러는 금 가고, 닳고, 쓰러지고, 떠러는 사라지기도 했으나 불완전하게 남아 있는 모습만으로 경외감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고(두산산백과사전 제공). 세계 최대의 환상열석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어쩌자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이런 유적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까. 여행 서적을 통해서라도 한 번쯤은 접해봤을 법도 한데, 아마도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 변명 아닌 변명이라도 하고 싶다.
<스톤헨지>는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의 유적"이라는 스톤헨지의 비밀을 순전히 작가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대서사시이다. 500페이지를 넘는 방대한 분량도 분량이지만, ’오늘날 가장 위대한 이야기꾼’이라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극적이고 감동적인 스펙타클한 이야기를 선사한다. 대서사시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모든 것은 ’이방인이 온 해’에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대폭풍이 있던 그날 한 이방인이 라사린의 땅에 들어왔고, 옛 신전에서 ’슬라올의 금’을 남긴 채 렌가의 손에 죽었다. 라사린 부족들은 태양의 신 슬라올이 금을 자신들에게 보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복 형 렌가가 이방인을 죽이고 그 금을 차지하려고 했던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반은 훗날, 이렇게 회고한다. "아버지가 마이, 아린, 슬라올, 라하나를 숭배하던 시절, 신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던 시절, 삶은 얼마나 소박했던가. 그러다 금이 찾아왔고, 금과 함께 세상을 바꾸겠다는 카마반의 야심도 태어났다"(559). 그렇다. 이 모든 것은 어쩌면 그 금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언제나 희생을 요구하는 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라사린의 족장 헨갈은 전쟁을 싫어했다. "삶이란 곡식을 심는 것이지 칼로 찌르는 것이 아니다"(38)라고 입버릇 처럼 말하곤 했다. 더구나 같은 언어로 말하고 같은 신을 섬기는 사촌지간인 이웃 부족들과 싸우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라사린의 평화는 언제나 위협 받았다. 서로 약탈을 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헨갈은 영웅심을 경계하라고 했지만, 라사린에는 영웅이 필요했다. "영웅이 없으면 부족민들에게는 고난만이 있을 테니까"(86).
’스톤헨지’라는 거대한 역사 유물은 이러한 바탕 위에 건설된다. 신이 지배하고, 영웅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소박한 삶이지만 평화롭게 살아가던 라사린 부족에 슬라올이 금이 찾아온 뒤로 모든 것이 변했다. 평화는 깨지고, 살인과 약탈과 배신과 음모와 모욕과 복수가 가득한 세상이 된다. 헨갈의 아들 렌가는 전쟁으로 이웃 부족들을 점령하여 위대한 라사린을 세우길 원하는 전쟁 지도자였다. 그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동생 사반을 노예로 만들고 족장 자리에 오른다. 그의 동생 카마반은 불구로 태어난 ’비틀린 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버려졌지만, 곧 강력한 마법사가 된다. 카마반은 위대한 신전을 건설하여 세상을 바로세우려는 꿈을 꾼다. 전사를 꿈꾸었던 막내 사반은 형제들 중 가장 야망이 작았다. 그러나 사반은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고, 카마반의 이상에 감화되어 ’파괴하는 자 대신 건설하는 자’가 되었다. <스톤헨지>의 역자는 "렌가는 양육강식의 원시적 권력을, 카마반은 종교의 힘을, 사반은 합리적인 사고와 과학을 대표한다"(582)고 해석한다.
렌가가 꿈꾸었던 세상, 카마반이 꿈꾸었던 세상, 사반이 꿈꾸었던 세상은 모두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신전을 원했다. ’이 땅의 어떤 신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신전, 신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신전, 죽은 자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신전. 죽은 자들을 슬라올에게 되돌릴 수 있는 신전.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신전’을 꿈꾸었다. 그러나 모두가 신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결국 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위한 일이었다. 살해와 약탈과 전쟁으로 세상 정복을 꿈꾸었던 렌가는 신전을 이용하려 했고, 겨울과 질병을 없애고 우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꿈꾸었던 카마반은 광적으로 위대한 신전에 집착했다. 그 스스로 신으로 생각했던 카마반 역시 결국 신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신전을 짓고자 했던 것이다.
"아무도 렌가의 전투는 기억하지 않겠지만, 카살로의 패배조차 잊겠지만, 사람들은 내 신전을 언제나 바라보게 될 거야"(565).
전적으로 신과 관계된 일이었지만, 전적으로 전혀 신과 관계가 없었던 신전, 스톤헨지! 드디어 스톤헨지가 완성되었지만 삶의 고난은 사라지지 않았다. 겨울도 질병도 우는 아이도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낮은 바깥쪽 제방 옆에 서서 장대하고, 깨끗하고, 평온하고, 수수께끼로 가득 찬 신전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사반을 칭송했다"(566). 그러나 사반은 "지구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신전을 건설했고, 자신이 위대한 신전을 건설했다는 것을 알고,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인간이 그곳에서 신을 섬기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돌아보지 않았다"(579). 라사린의 새로운 족장으로서 물고기 덫을 수리해야 하고, 땅을 갈아엎어야 하고, 씨앗을 뿌려야 하고, 분쟁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반의 예언대로, 모두 잊혀지고 ’스톤헨지’만 남았다. 오늘 우리에게 남아 있는 스톤헨지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톤헨지는 우리에게 수수께끼로 남았고, 우리는 여전히 땅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리며, 분쟁을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다. 장구한 역사(문화)는 위대한 신전, 강력한 영웅을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잠시 이 땅에 머물다 가는 우리 삶에는 "삶이란 곡식을 심는 것이지 칼로 찌르는 것이 아니다"(38)라고 믿는 평화를 사랑하는 지도자 한 사람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나약해보일지라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