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쇼크 - 기아와 비만을 만들어낸 자본주의의 속살
로버트 앨브리턴 지음, 김원옥 옮김 / 시드페이퍼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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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떤 지역은 비싼 식량 가격 때문에 굶주림과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가격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식량을 파괴하는 이 체제를

우리는 진정 두고 볼 수 있는가?"(14)

 

 

이 책을 읽을 즈음 이런 기사를 보았다. "의료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비만은 이상적인 질병이다. 평생 시달리면서도 금방 죽지는 않으니 환자가 줄어들 염려가 없다. 게다가 환자들의 치료 욕구가 무척이나 크다. 시장규모가 날로 커가는 사업 아이템인 셈이다"(동아일보, 12. 4. 28). 한쪽에서는 정크 푸드를 생산하는 기업이 떼돈을 벌고, 한쪽에서는 그 나쁜 음식을 먹고 비만해진 사람들을 이용해 다시 떼돈을 번다(비만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저소득층에서 많이 나타나는 비만은 정크 푸드가 요인으로 지목된다). 그런데 우리가 빨리 알아차려야 할 모순은 이것만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음식 쓰레기가 넘쳐나는데, 한쪽에서는 뒤질 음식 쓰레기조차 없어 굶어죽는 기아 인구가 있으며, 곧 '대학살'이라고 불릴 기아 문제의 쓰나미가 지구를 덮칠 것이라고 예고한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먹을 것이 너무 많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충격적인 상황에서 살고 있다. (...) 그러나 더욱 비극적인 것은 치솟는 식품 가격으로 훨씬 더 대대적인 기아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27). <푸드쇼크>는 "우리의 미래를 대변하는 15세에서 24세까지의 전 세계 젊은이들 10억 명 가운데 절반은 빈곤 상태로 빈약한 식생활을 할 가능성이 많다"(167)는 충격적인 보고를 내놓았다.

 

<푸드쇼크>는 전 지구적 재앙으로 닥쳐올 '식량 문제'를 경고하지만, 그보다 더 큰 목적은 자본주의의 해체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식량체제를 고발하며,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식량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해체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푸드쇼크>는 자본주의에 의해서 파괴되는 민주주의 참패가 초래하는 가장 위험한 결과가 바로 '식량 문제'라고 지적한다. 식량 문제는 바로 우리의 생명줄과 연결되고, 그것은 또 에너지 고갈과 환경 파괴로 연결된다. 한마디로 인간이 딛고 서 있는 생존의 터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 바로 삶과 건강의 근간인 식량 방면이다. 그리고 식량체제는 자연환경에 매우 밀접하게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석유화학적 근간은 환경을 위험한 수준으로까지 오염시켰고, 지구 온난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석유는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는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에 미래 세대에 지고 있는 빚은 훨씬 심각하다"(189).

 

<푸드쇼크>가 밝히는 주요한 쟁점 중 하나는 "현 자본주의 식량체제는 용인할 수 없는 사회 비용을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5). 한마디로 식량 문제는 단순히 굶주림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식량체제에 따른 생산 및 소비의 증가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과도하게 성장한 농업은 세계 식량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을 가져오고, 시장의 변덕 아래 전 세계 농부들은 죽어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공식품에 중독되고, 유전자 조작과 영양 불균형 등으로 인류의 건강은 위협받고 있다. 토지 남용으로 땅은 황폐화되고, 과도한 육식으로 환경이 파괴되며, 미래 세대의 식량 공급처인 바다의 훼손, 그리고 기후 이상까지 이 모든 것이 현 자본주의 식량체제가 만들어내는 사회 비용에 포함된다. "가장 심각한 사회 비용은 지구 온난화지만, 점점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과 사회 부정의, 토양의 사막화, 담수와 석유의 고갈, 공해, 고조되는 지구촌의 식량 위기, 비만과 관련된 만성 질환 문제 등 관련된 기타 비용도 엄청나다"(126).

 

<푸드쇼크>는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의 존립 자체가 달린 역사 시기에 진입했다"(126)는 경종을 울린다. 바로 지금이,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10년'이 이 모든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현재 진행 중인 그 어떤 위기에 직면하더라도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본주의는 없다는 사실이다"(9). 최근 자본주의와의 전쟁에서 참패한 듯(?) 보였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다시 링으로 올라올 조짐을 보인다. 사회주의는 인간의 욕망과 죄성을 간과한 '이상'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내가 죽은 뒤 지구가 멸망하건 말건" 상관 없다는 식의 극에 달한 자본주의의 이기심이 욕망에 무릎 꿇고 있는 인간의 '이상'을 다시 흔들어 깨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푸드쇼크>에서 밝히고 있듯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자본주의를 지원"하고 있는 국가를 상대로, 가진 자를 상대로, 자본주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그런데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던진 툭하고 던진 한마디가 마음에 희망으로 와닿는다. "(우리에게 희망은) 큰 성과가 요원할 때 먼저 작은 성과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그것을 발판으로 삼는 진보 정신에 있다"(9). 그러니 "사소한 변화들이라도 쟁취할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310)!

 

이 책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상대적 약자로 살아가게 하는 우리는 절망케 하지만, 그 절망의 힘으로 분노하고, 그 분노의 힘으로 일어나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라는 외침으로 들린다. 다른 사람은 정크 푸드를 먹어도 나만 웰빙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다른 아이들은 굶주려도 내 자녀만 배부르게 먹으면 그만이다, 라는 안일한 생각이 파고들도록 방심할 틈이 없다. 전 지구적 재앙 앞에 '나만'은 의미가 없다. <푸드쇼크>를 읽으며 지식인들의 사회적 책임에 많은 기대를 걸게 되며, 자본에 맞설 연대와 행동(참여)의 중요성을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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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홍승찬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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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시기가 바로 1750년대 이후의 150년입니다. 이 150년 사이에 고전주의 시대와 낭만주의 시대가 이어지면서 지금 우리가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의 명곡 대부분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 1750년은 바흐가 세상을 떠난 해입니다. 한 시대의 종말과 한 시대의 시작을 한 작곡가가 자신의 생애 동안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음악의 역사는 늘 위대한 작곡가의 전기로 채워진 모양입니다"(247).

 

 

클래식이라고 하면 '배부른' 이미지가 먼저 그려집니다. 귀족적인 배경도 그렇고, 고개와 허리를 곧추세우고 등장하는 음악가들의 모습도 그렇고, 정장을 입고 고상하게 앉아 박수를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어떤 수준도 그렇고, 어릴 적 부잣집에만 있었던 턴테이블과 LP 판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알고 보면 클래식 음악은 굉장히 가까이에 있는데도,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음악입니다.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선택받은 사람들의 것이라는 이질감같은 것입니다. 클래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그림은 '고급한' 이미지입니다. 'B급 문화'와 정반대에 자리한 그런 '고급한' 그림입니다. 클래식은 태생부터 고급한 냄새가 납니다. "클래식의 어원은 고대 로마 시대의 계급을 말하는 라틴어로 '잘 정돈된, 품위 있는, 영구적이며 모범적인'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247).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을 읽으며 '고급한'이라는 형용사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 이야기가 있습니다(89-93). 돌아가신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신 바이올린 소리가 영정에 올려지고, 잔잔한 선율로 채워지는 영안실 풍경. 할머니를 보내드릴 때, 처음으로 장례식장에서 3일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비쌌고, 상주이셨던 아버지는 또 무엇이든 비싼 것을 고르셨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싶으셨던 아버지의 마음이 그렇게 표현된 것입니다. 장례식장의 열린 작은 음악회, 그것은 극한의 슬픔을 서로 위로하며 어떤 생에 대한 경의를 이보다 더 숭고하게 표현할 수없는 '고급한' 감동이었습니다.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은 우리가 선입견으로 쌓아올린 클래식을 향한 '담'을 허무는 책입니다. 드마라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음악 이야기, 그것이 드라마가 아니어서 더 안타까운 위대한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 사실적인 이야기들이 어찌나 드라마 같은지 소설보다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집단생활을 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꿀벌 중에도 제멋대로인 날라리 벌"처럼 평생 떠돌아다니며 날마다 상상하고 꿈을 꾸었던 엉뚱하고 무모한 천재, 베를리오즈(76-83)를 만났습니다. "일부러 감상하는 사람을 잠들게 하려는 의도에서 만든"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건반악기 음악사에서 가장 뛰어난 명곡으로 손꼽히는, 수면제 대용으로 작곡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탄생 비화를 들었습니다(98-102). "저격병의 수많은 총구가 일제히 그를 향"하는 전쟁터 한가운데서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22명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22일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사건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연주한 첼리스트도 만났습니다(111-116).

 

이밖에도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은 천 명이 등장한다고 해서 '천인 교향곡'이라는 이름이 붙은 말러의 고향곡을 소개하고, CD 한 장에 수록되는 음악의 전체 분량이 왜 70분으로 결정되게 되었는지를 알려줍니다. CD가 발명되면서 "완벽한 소리의 재현과 영구 보존, 그리고 저장 시간의 무한정 확장이라는 세 가지 숙제"까 한꺼번에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CD 한 장에 어느 정도의 분량을 담아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대지휘자 카라얀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카라얀은 대뜸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분량이면 좋겠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것을 두고 "늘 다른 교향곡보다 길이가 긴 마지막 9번을 한 장의 음반에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던 모양"이라고 해석합니다. CD 한 장에 수록되는 음악의 전체 분량은 "바로 카라얀이 말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의 연주 시간과 일치"한다고 하네요(233-236).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을 읽으며 제일 먼처 찾아들은 음악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었습니다. 저자가 슈베르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밝히 말하지는 않지만 저는 그것을 읽은 듯합니다.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은 수필처럼 편안하게 읽으면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고급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씨의 대학생활 일화도 엿들 수 있습니다. 고급하고 품격있는 책이지만 친숙하고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읽는 동안 정말이지 끌려들어가듯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고, 클래식의 감성에 마음이 젖어들었습니다. 소설이나 수필 등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색다른 맛의 이런 책은 어떠냐고 권해보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클래식에 대해서, 그리고 음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고, 값싸게 소비하는 음악이 아니라 고급한 음악으로 내 삶을 채우고 싶은 열정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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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있는 영어성경 묵상 1
장인식 지음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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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세상에 완벽한 번역이란 없다."

(프롤로그 中에서)

  

<색깔 있는 영어성경 묵상>은 한마디로 다양한 영어 역본을 '비교'하는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묵상법이다. 저자인 장인식 교수님은 8권의 주석서를 포함해 모두 44권의 영어성경 역본을 연구에 사용했다고 밝히는데, 일단 영어성경 역본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면,) 역본들마다 성경 구절의 의미가 적게는 5가지에서 많게는 8가지 이상 해석(의미)의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또 한 번 놀랐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는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색깔 있는 영어성경 묵상>의 연구 결과를 보면 '미묘함'의 수준을 넘어선다. 

 

주관적인 '묵상'이든, 객관적인 '성경연구'이든 관찰의 단계를 지나 적용의 단계로 나아가기까지 우리는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해석의 단계에서 1차적으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 의미에서 <색깔 있는 영어성경 묵상>은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바를 '깊이' 있게 전달해준다고 하겠다. 다양한 영어성경 역본을 비교하니 새로운 각도의 '관찰'이 가능하고, '번역'의 과정에서 저절로 이루어진 '해석'의 풍성함을 발견할 수 있으며, 같은 맥락 안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의미는 그 자체로 '적용'으로 연결된다. 다시 말해, 관찰, 해석, 적용이 역본을 비교하는 작업 안에서 한방에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번역 과정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만, "원문 자체의 의미가 복잡할 경우에 번역자는 그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취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나머지 의미들은 독자의 시야에서 사라진다"는 저자의 지적은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성경은 본래 11,280개의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 단어를 사용"하는데, "영어성경은 평균 약 6,000개의 단어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니, "원문이 암시하는 뉘앙스나 의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러나 <색깔 있는 영어성경 묵상>을 보며 얻은 결론은, 번역의 한계는 동시에 본문을 다양한 각도에서 묵상해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라는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사야 34장 16절 개혁개정판 말씀이다. 이 말씀을 근거로 성경 말씀 안에서 서로 "짝"이 되는 구절이 있다고 해석되어져 왔다. 그러나 이 본문을 'NIV'로라도 한 번 읽어본 사람들은 이러한 해석은 '오역'이라고 지적한다. 이 본문에서 말하는 '짝'은 말씀의 짝이 아니라, 짐승의 짝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이 본문은 '오역'의 문제가 제기된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색깔 있는 영어성경 묵상>을 보니 무조건 '오역'이라고 하는 주장도 지나치게 '단순한' 결론이라고 말하고 싶다.

 

NIRV 역본은 1차적으로 말씀의 짝이 아니라, 짐승의 짝을 이야기하며, 이 말씀 안에 담긴 메시지는 "하나님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하게 이루어지는가"이다(118-119). AMP 역본은 성경의 '짝'을 '말씀의 성취'로 번역한다. "예언된 말씀 세부 사항 하나에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는데, "구체적으로 예언된 내용과 실제로 나타난 현실이 각기 하나씩 대응되어 짝을 이룬다는 의미다"(119-121). <색깔 있는 영어성경 묵상>은 NIV를 비롯해 6개의 역본을 비교해주는데, 어떤 역본은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라는 표현 자체가 없는 것도 있다.

 

여러 역본을 비교 연구한 후, 이 책은 본문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본문은 에돔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에 대한 심판 예언의 성취를 보여주며, 나아가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의 성취를 예고한다"(120-131). 다시 말해,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에서 '짝'은 "짐승의 짝 또는 예언의 성취를 말한다." 이처럼 <색깔 있는 영어성경 묵상>은 본문의 말씀을 단순히 '짐승의 짝'이라고 번역하는 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표현 안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는 '깊이' 있는 연구와 묵상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영어성경을 통해 '영어 실력'을 향상시켜보려는 욕심이 더 컸는데, 책을 읽다보니 오히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깊이'에 온 마음을 빼앗겼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역본이 원문의 다양한 의미를 반영한다는 관점에서 영어성경에 접근함으로써, 원문의 의미와 각 역본이 지니는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한다."

(프롤로그 中에서)

 

 

<색깔 있는 영어성경 묵상>은 "신앙인들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의미가 쉽게 파악되지 않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 21개를 뽑아, 다양한 영어성경 역본을 통해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다양한 영어성경 역본을 비교하며 성경 본문을 연구하는 작업은 재미도 있지만, 본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에도 꼭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된다. 성경을 연구하는 많은 방법이 있지만, 영어성경 역본을 비교하는 작업은 많은 주석서를 읽는 것보다 본문에 더 '깊이' 있는 접근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새삼 배웠다. 맥락을 벗어나지는 않지만, 우리말 성경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메시지가 숨어 있고,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시는 바의 '깊이'를 깊이 느낄 수 있다. 또 어떤 구절들은 의미를 오해하여 해석과 적용을 잘못할 위험성도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영어성경 역본을 비교하며 성경을 연구하는 작업은, 솔직히 말해 매우 '수고스럽게' 느껴진다. (게으르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하는 말이지만)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색깔 있는 영어성경 묵상>이 계속 시리즈로 나와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반드시' 역본의 비교가 필요한 본문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또 장인식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본문의 풍성하고 깊이 있는 해석에 보다 손쉽고 안전하게(!) 다가갈 수 있으니 말이다. <색깔 있는 영어성경 묵상>은 성경을 연구하는 하나의 '방법론'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자체의 결과물도 대단한 성과라 할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재미있다! 그리고 유익하다! 말씀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보다 깊이 있게 묵상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그 자체로 은혜의 말씀이지만, 고기뿐만 아니라 고기를 낚을 수 있는 방법론까지 더불어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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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길 레시피 - 건강이 가득한 이탈리안 홈 카페
박인규 지음 / 지식인하우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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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행복합니다. 요리를 잘 하는 사람도 아니고,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고, 할 기회가 많은 사람도 아니지만, 맛있는 요리, 먹기에도 아까운 예쁜 요리를 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해집니다. 방전 되었던 마음이 충전이 되고, 우중충한 일상에 예쁜 컬러를 입혀주고, 아픈 기억도 치유 되는 힘이 음식에 있다는 것을 새삼 인정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요리는 나와 먼 나라의 이야기인데도 이렇게 레시피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사진 속 요리에 눈을 떼지 못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한 번 만들어볼까 하는 '무한도전'의 정신이 불쑥 튀어오르기도 합니다.

 

이탈리안 음식은 괜히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음식이라는 선입견이 제게 있습니다. 신혼살림 집들이를 하는 친구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친구의 남편이 직접 요리를 해서 차려놓은 파스타였습니다. 상 다리가 흐드러지게 차려낸 것도 아닌데 오히려 그 간단한 식탁이 얼마나 세련되어 보이던지요. 멋이란 이런 것이구나 마음으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가로수길 레시피>는 제목부터 서정적인 '이탈리안 요리' 레시피입니다. 봉골레, 알리오 올리오, 이런 단어를 친숙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파스타>의 요리 자문을 맛았던 세프의 레시피입니다. '정통' 이탈리안 요리를 자주 접할 기회가 없는데, 간편한 레시피로 이탈리아 가정식을 즐길 수 있다는 말에 '혹' 했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 음식이다 보니 향이나 간을 하는 재료는 많이 낯섭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오일, 만들어 파는 것 없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 각종 소스와 드레싱, 이런 것은 어디서 사야 하나 싶은 경성치즈, 연성치즈, 블루치즈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가로수길 레시피>를 보니 메인 재료는 우리의 것과 별만 다를 것 없다는 것,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쉐프 박인규 선생님은 이탈리아 요리는 복잡하다는 편견은 금물이라고 단언합니다. "제대로 된 방법만 알면 오히려 라면을 끓이는 것보다 쉽"다고 자신합니다(5).

 

그런데 정말 "어, 이렇게 간단해?"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일품 요리들이 많습니다. 제가 찍어둔 레시피 중 하나는 "고구마 등심 브루스케타'입니다. 보기에도 감각적일 뿐 아니라, 재료도 간단하고, 차려 놓으면 품격을 더 해 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가로수길 레시피>는 계절별 식재료를 사용하는 '건강식'을 지향합니다. "건가안 먹을거리와 이탈리아 요리는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합니다. 봄, 여름, 환절기, 가을, 겨울에 만들어 먹으면 좋은 음식, 그리고 계절에 상관 없이 사계절 모두 가능한 음식, "감미롭고 순수한 건강 디저트", 특별함을 가득 담은 스페셜 메뉴까지 담았습니다. 특별히 전문가의 레시피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맛'과 '멋'이 빠질 수 없겠지만, 이 책은 재료의 효능과 건강까지 챙겨주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대하 & 마늘 버터구이'입니다. 대하는 양질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는 고단백질 식품인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간 기능을 강화해 주고, 콜레스토롤 수치를 억제하는 타우린도 풍부하다고 합니다. 대하 구이를 하나 먹어도 이렇게 멋스럽게, 맛스럽게, 그리고 몸을 생각하며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무식했는지, <가로수길 레시피>가 내게 준 가장 큰 충격은 '이탈리안 음식'의 다양성이었습니다. '정통' 이탈리안 음식이라고 해서 이름도 생소한 수십 가지의 파스타를 배울 수 있겠구나 짐작했는데, '시금치 모차렐라 토스트', '고등어 오렌지 샐러드', '가지 드레싱 야채스틱'과 같이 재료나 모양에서부터 선입견을 깨는 레시피가 있고, 각종 샐러드, 전복구이, 케이크처럼 낯익은 레시피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간식과 후식까지 마스터가 가능합니다!

 

요리는 창의력이라는 말이 실감이 됩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삶의 품격을 높여주고, 기분을 업- 시켜주는 솜씨가 삶에 의욕을 불어넣어줍니다. 아직 레시피를 활용하여 직접 만들어본 요리는 없지만, '메이플 시럽 과일꼬치'를 따라 몇 가지 과일을 주사위 모양으로 잘라 꼬치에 끼워 먹으니 색다르고 재밌습니다. 이런 음식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다면, 삶에서 향기가 날 듯합니다! 요리책을 눈으로 즐긴다고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그냥 이렇게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걸 어찌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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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톨의 밀알 - 개정판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5
응구기 와 시옹오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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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이고, 노벨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이며, "형식이나 내용 등 모든 면에서" 이 작가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소설이라는 설명을 미리 듣지 않았다면, 아마도 관심 갖지 않았을 듯하다. 제국주의의 무게에 억눌리고 강탈당하는 식민지 국민의 울분과 잔혹한 삶의 이야기는 이미 우리에게는 '낡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한 톨의 밀알>은 백인 정권 아래 억눌리며 살아야 했던 세 차원의 흑인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밭과 곡식을 돌보며 살아가는 무고는 가진 것이 없었지만 미래가 있었다. 케냐의 독립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믿었던 키히카는 '단결'을 호소하며 백인 정권에 피의 저항을 감행한다. 여기에 그녀의 여동생 뭄비와 기코뇨의 사랑, 그리고 뭄비를 사랑했던 또 한 남자 카란자가 이야기의 큰 틀을 이룬다. 운명으로 얽혀진 이들의 이야기가 전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기까지, 초반부는 다소 지루하다. 이야기가 갑자기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곳에 도달하기 전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사전 정보'가 다소 필요할 듯하다. 무고를 읽을 때는 그의 내면에 숨겨진 '죄의식'의 정체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기코뇨와 뭄비를 읽을 때는, 오직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조직까지 배반하고 수용소에서 돌아온 기코뇨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내 뭄비를 왜 그처럼 차갑게 대하는지, 그리고 그들은 결국 어떻게 화해에 이르게 되는지를 지켜보며 그 '과정'을 탐구하듯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카란자를 읽을 때는, 키하카의 친구였던 그가 어떻게 백인 정권에 기생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그에게 실연의 상처는 조국을 잃은 식민의 상처만큼이나 치명적인 좌절이었다는 것을 감지하면 좋을 듯하다. 이들의 운명의 실타래는 그들의 독립기념일 축제에서 비로소 풀어지기 시작하는데, 작가가 그려내는 서정적 결말이 압권이다.

 

역사 이래 힘 있는 자는 천하 통일의 꿈을 꾸었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밟아며 권력의 짜릿함을 만끽하며, 바닥이 없는 그들의 탐욕을 채웠다. 그들에게도 고상한 명분이 있었겠지만 영국은 그렇게 케냐를 짓이겼고, '국가'나 '애국심'이라는 단어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케냐'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운명의 수레바퀴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들은 우리를 도로나 채석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말입니다. 우리를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훔쳤거나 누군가를 죽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조상대대로 우리 것이었던 것들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했을 뿐이었습니다"(115).

 

<한 톨의 밀알>이 보여주는 젊은이들의 삶이 더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피로 목욕을 하면서까지 지켜내고 얻어내려 했던 것이 '일상성'이라는 데 있다. "우리가 갖고 있던 명분이 좋아 그때 살아남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사랑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다면 누가 죽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집을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자들이 웃고, 아이들이 싸우고 우는 것을 볼 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116). 노예로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는 '삶'이란 게 없었다. 그들은 그저 자유롭게 춤추고 싶었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기타를 쳐주며, 그들의 땅에서 땅을 일구고, 가정을 일구며 살고 싶었을 뿐이다. 대단하고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니라, 그 평범한 일상을 얻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은 깨닫는다. 힘 없는 사람들이 힘 있는 사람들을 대항하기 위해서는 '단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는 강력한 조직이 필요하오. 백인들은 이것을 알고 두려워하고 있소. (...) 그들은 우리의 유일한 힘인 민중들로부터 우리를 차단시키고 싶어하오"(337).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삶을 얻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케냐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는 죽음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진정한 희생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십자가를 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죽고, 당신은 나를 위해 죽을 수 있어야 서로가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169-170).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땅에 떨어져 썩어져야 할 그 한 톨의 밀알이 필요했다. "그러나 소수가 죽으면 다수가 사는 것이오. 바로 그것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의 의미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백인을 위해 영원히 물이나 긷고 장작이나 패는 저주받은 노예가 되어야 마땅하오."(337)

 

그들의 유일한 힘은 '단결'이었던 까닭에, 그들은 '배반'과 '죄의식'이라는 새로운 굴레를 짊어져야 했다. '단결'은 강요되었고, 무자비한 칼 앞에 '자신의 삶'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은 배신의 쓴 잔을 받아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칼이 들어와도 도망가지 않을 사람"(158)이 필요했고, 그들의 가슴이 식어지지 않도록 불을 질러줄 영웅이 필요했다. 그러나 민중은 영웅을 노래하고, 한 사람은 영웅으로 부름을 받지만, 그 영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약한 자아와 두려움 가운데 씨름하고 있다. 민중은 캄캄한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는 영웅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그를 떠받들고 있지만, 사실 '영웅'으로 기대를 모았던 많은 인물들이 얼마나 많이 자신의 연약함과 두려움과 개인적인 욕망과 싸워야 했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떤 영웅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한 톨의 밀알"이 되도록 강요받고, 그 벼랑 끝으로 내몰리기도 했으리라.

 

<한 톨의 밀알>이 가진 힘은 케냐의 이야기이지만, 특정한 시대적 배경 속에 담긴 이 이야기가 어느 삶의 자리에서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라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그들의 이야기이지만, 또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짓밟는 권력과 피의 저항이 충돌하는 속에서도 그들이 빚어내는 열정과 고뇌와 사랑이 그래서 더 아름답다. 기코뇨가 뭄비와 화해하며 결혼선물로 조각할 걸상에 "임신을 해서 배가 불룩해진 여인을 새겨야겠어"라고 말하는 마지막 한 마디가 오래도록 시리게 가슴에 남아 있다.

 

"나도 따뜻한 나롯불 맛을 알고, 난로 옆에서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 좋다는 것도 알고 있는 사람이오"(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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