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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쇼크 - 기아와 비만을 만들어낸 자본주의의 속살
로버트 앨브리턴 지음, 김원옥 옮김 / 시드페이퍼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어떤 지역은 비싼 식량 가격 때문에 굶주림과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가격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식량을 파괴하는 이 체제를
우리는 진정 두고 볼 수 있는가?"(14)
이 책을 읽을 즈음 이런 기사를 보았다. "의료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비만은 이상적인 질병이다. 평생 시달리면서도 금방 죽지는 않으니 환자가 줄어들 염려가 없다. 게다가 환자들의 치료 욕구가 무척이나 크다. 시장규모가 날로 커가는 사업 아이템인 셈이다"(동아일보, 12. 4. 28). 한쪽에서는 정크 푸드를 생산하는 기업이 떼돈을 벌고, 한쪽에서는 그 나쁜 음식을 먹고 비만해진 사람들을 이용해 다시 떼돈을 번다(비만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저소득층에서 많이 나타나는 비만은 정크 푸드가 요인으로 지목된다). 그런데 우리가 빨리 알아차려야 할 모순은 이것만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음식 쓰레기가 넘쳐나는데, 한쪽에서는 뒤질 음식 쓰레기조차 없어 굶어죽는 기아 인구가 있으며, 곧 '대학살'이라고 불릴 기아 문제의 쓰나미가 지구를 덮칠 것이라고 예고한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먹을 것이 너무 많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충격적인 상황에서 살고 있다. (...) 그러나 더욱 비극적인 것은 치솟는 식품 가격으로 훨씬 더 대대적인 기아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27). <푸드쇼크>는 "우리의 미래를 대변하는 15세에서 24세까지의 전 세계 젊은이들 10억 명 가운데 절반은 빈곤 상태로 빈약한 식생활을 할 가능성이 많다"(167)는 충격적인 보고를 내놓았다.
<푸드쇼크>는 전 지구적 재앙으로 닥쳐올 '식량 문제'를 경고하지만, 그보다 더 큰 목적은 자본주의의 해체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식량체제를 고발하며,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식량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해체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푸드쇼크>는 자본주의에 의해서 파괴되는 민주주의 참패가 초래하는 가장 위험한 결과가 바로 '식량 문제'라고 지적한다. 식량 문제는 바로 우리의 생명줄과 연결되고, 그것은 또 에너지 고갈과 환경 파괴로 연결된다. 한마디로 인간이 딛고 서 있는 생존의 터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 바로 삶과 건강의 근간인 식량 방면이다. 그리고 식량체제는 자연환경에 매우 밀접하게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석유화학적 근간은 환경을 위험한 수준으로까지 오염시켰고, 지구 온난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석유는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는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에 미래 세대에 지고 있는 빚은 훨씬 심각하다"(189).
<푸드쇼크>가 밝히는 주요한 쟁점 중 하나는 "현 자본주의 식량체제는 용인할 수 없는 사회 비용을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5). 한마디로 식량 문제는 단순히 굶주림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식량체제에 따른 생산 및 소비의 증가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과도하게 성장한 농업은 세계 식량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을 가져오고, 시장의 변덕 아래 전 세계 농부들은 죽어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공식품에 중독되고, 유전자 조작과 영양 불균형 등으로 인류의 건강은 위협받고 있다. 토지 남용으로 땅은 황폐화되고, 과도한 육식으로 환경이 파괴되며, 미래 세대의 식량 공급처인 바다의 훼손, 그리고 기후 이상까지 이 모든 것이 현 자본주의 식량체제가 만들어내는 사회 비용에 포함된다. "가장 심각한 사회 비용은 지구 온난화지만, 점점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과 사회 부정의, 토양의 사막화, 담수와 석유의 고갈, 공해, 고조되는 지구촌의 식량 위기, 비만과 관련된 만성 질환 문제 등 관련된 기타 비용도 엄청나다"(126).
<푸드쇼크>는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의 존립 자체가 달린 역사 시기에 진입했다"(126)는 경종을 울린다. 바로 지금이,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10년'이 이 모든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현재 진행 중인 그 어떤 위기에 직면하더라도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본주의는 없다는 사실이다"(9). 최근 자본주의와의 전쟁에서 참패한 듯(?) 보였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다시 링으로 올라올 조짐을 보인다. 사회주의는 인간의 욕망과 죄성을 간과한 '이상'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내가 죽은 뒤 지구가 멸망하건 말건" 상관 없다는 식의 극에 달한 자본주의의 이기심이 욕망에 무릎 꿇고 있는 인간의 '이상'을 다시 흔들어 깨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푸드쇼크>에서 밝히고 있듯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자본주의를 지원"하고 있는 국가를 상대로, 가진 자를 상대로, 자본주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그런데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던진 툭하고 던진 한마디가 마음에 희망으로 와닿는다. "(우리에게 희망은) 큰 성과가 요원할 때 먼저 작은 성과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그것을 발판으로 삼는 진보 정신에 있다"(9). 그러니 "사소한 변화들이라도 쟁취할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310)!
이 책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상대적 약자로 살아가게 하는 우리는 절망케 하지만, 그 절망의 힘으로 분노하고, 그 분노의 힘으로 일어나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라는 외침으로 들린다. 다른 사람은 정크 푸드를 먹어도 나만 웰빙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다른 아이들은 굶주려도 내 자녀만 배부르게 먹으면 그만이다, 라는 안일한 생각이 파고들도록 방심할 틈이 없다. 전 지구적 재앙 앞에 '나만'은 의미가 없다. <푸드쇼크>를 읽으며 지식인들의 사회적 책임에 많은 기대를 걸게 되며, 자본에 맞설 연대와 행동(참여)의 중요성을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