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홍승찬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시기가 바로 1750년대 이후의 150년입니다. 이 150년 사이에 고전주의 시대와 낭만주의 시대가 이어지면서 지금 우리가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의 명곡 대부분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 1750년은 바흐가 세상을 떠난 해입니다. 한 시대의 종말과 한 시대의 시작을 한 작곡가가 자신의 생애 동안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음악의 역사는 늘 위대한 작곡가의 전기로 채워진 모양입니다"(247).

 

 

클래식이라고 하면 '배부른' 이미지가 먼저 그려집니다. 귀족적인 배경도 그렇고, 고개와 허리를 곧추세우고 등장하는 음악가들의 모습도 그렇고, 정장을 입고 고상하게 앉아 박수를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어떤 수준도 그렇고, 어릴 적 부잣집에만 있었던 턴테이블과 LP 판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알고 보면 클래식 음악은 굉장히 가까이에 있는데도,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음악입니다.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선택받은 사람들의 것이라는 이질감같은 것입니다. 클래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그림은 '고급한' 이미지입니다. 'B급 문화'와 정반대에 자리한 그런 '고급한' 그림입니다. 클래식은 태생부터 고급한 냄새가 납니다. "클래식의 어원은 고대 로마 시대의 계급을 말하는 라틴어로 '잘 정돈된, 품위 있는, 영구적이며 모범적인'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247).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을 읽으며 '고급한'이라는 형용사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 이야기가 있습니다(89-93). 돌아가신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신 바이올린 소리가 영정에 올려지고, 잔잔한 선율로 채워지는 영안실 풍경. 할머니를 보내드릴 때, 처음으로 장례식장에서 3일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비쌌고, 상주이셨던 아버지는 또 무엇이든 비싼 것을 고르셨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싶으셨던 아버지의 마음이 그렇게 표현된 것입니다. 장례식장의 열린 작은 음악회, 그것은 극한의 슬픔을 서로 위로하며 어떤 생에 대한 경의를 이보다 더 숭고하게 표현할 수없는 '고급한' 감동이었습니다.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은 우리가 선입견으로 쌓아올린 클래식을 향한 '담'을 허무는 책입니다. 드마라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음악 이야기, 그것이 드라마가 아니어서 더 안타까운 위대한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 사실적인 이야기들이 어찌나 드라마 같은지 소설보다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집단생활을 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꿀벌 중에도 제멋대로인 날라리 벌"처럼 평생 떠돌아다니며 날마다 상상하고 꿈을 꾸었던 엉뚱하고 무모한 천재, 베를리오즈(76-83)를 만났습니다. "일부러 감상하는 사람을 잠들게 하려는 의도에서 만든"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건반악기 음악사에서 가장 뛰어난 명곡으로 손꼽히는, 수면제 대용으로 작곡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탄생 비화를 들었습니다(98-102). "저격병의 수많은 총구가 일제히 그를 향"하는 전쟁터 한가운데서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22명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22일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사건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연주한 첼리스트도 만났습니다(111-116).

 

이밖에도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은 천 명이 등장한다고 해서 '천인 교향곡'이라는 이름이 붙은 말러의 고향곡을 소개하고, CD 한 장에 수록되는 음악의 전체 분량이 왜 70분으로 결정되게 되었는지를 알려줍니다. CD가 발명되면서 "완벽한 소리의 재현과 영구 보존, 그리고 저장 시간의 무한정 확장이라는 세 가지 숙제"까 한꺼번에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CD 한 장에 어느 정도의 분량을 담아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대지휘자 카라얀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카라얀은 대뜸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분량이면 좋겠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것을 두고 "늘 다른 교향곡보다 길이가 긴 마지막 9번을 한 장의 음반에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던 모양"이라고 해석합니다. CD 한 장에 수록되는 음악의 전체 분량은 "바로 카라얀이 말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의 연주 시간과 일치"한다고 하네요(233-236).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을 읽으며 제일 먼처 찾아들은 음악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었습니다. 저자가 슈베르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밝히 말하지는 않지만 저는 그것을 읽은 듯합니다.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은 수필처럼 편안하게 읽으면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고급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씨의 대학생활 일화도 엿들 수 있습니다. 고급하고 품격있는 책이지만 친숙하고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읽는 동안 정말이지 끌려들어가듯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고, 클래식의 감성에 마음이 젖어들었습니다. 소설이나 수필 등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색다른 맛의 이런 책은 어떠냐고 권해보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클래식에 대해서, 그리고 음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고, 값싸게 소비하는 음악이 아니라 고급한 음악으로 내 삶을 채우고 싶은 열정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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