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책들의 상인
마르첼로 시모니 지음, 윤병언 옮김 / 작은씨앗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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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단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413).

 

 

세상에는 모순의 고리를 가진 수많은 이율배반이 존재합니다. 누군가 이율배반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예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광고를 하면서 사원 모집시 평가에 외모 점수를 넣는 기업', '환경은 미래라 주장하면서 도시의 미래를 위해 철새 도래지 위에 공단을 세우는 시장과 기업' 등. 그런데 유럽의 중세시대가 그런 이율배반으로 뒤덮인 시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주받은 책들의 상인>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중세시대의 이율배반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쟁,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는 수도원(종교 세력), 신념(선) 때문에 광기(악)에 사로잡힌 인간들을 그 배경으로 합니다.

 

<저주받은 책들의 상인>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견주어집니다. '한 권의 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적 스릴러'라는 점 외에도 이 책이 '방카렐라 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그러한 평가를 거들어줍니다. "노벨상을 타려면 먼저 방카렐라 상을 타야 한다"(545)는 말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방카렐라 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상의 1회 수상작인 어니스트 훼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그 이듬해에 노벨상을 타게 되면서 생겨난 말이라고 하는데, 움베르토 에코, 존 그리샴, 켄 폴리트, 이탈리의 국민작가 안드레아 카밀레리도 이 상을 받았다고 하니 상의 권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갑니다.

 

<저주받은 책들의 상인>은 <우테르 벤토룸>이라는 한 희귀도서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우테르 벤토룸>은 천사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지혜를 사용할 수 있는 주문이 적혀 있는 책입니다. "비한 힘을 이용하여 절대 권력을 누리려는 자와 이 책을 찾기 위해 유골상인인 이냐시오 다 톨레도를 끌어들인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을 뒤쫒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책이 숨겨진 장소에 대한 수수께끼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이 책의 주문을 사용하면 정말로 천사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긴박하게 펼쳐지는 지적 스릴러의 분위기를 고조시켜며,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책의 재미만큼 이 글을 재미있게 쓰지 못하는 제 실력이 아쉽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미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있기 때문인지 그와 같이 묵직한 문학적인 전율과 신선함은 조금 덜 한 편입니다. 긴박한 순간을 풀어가는 반전이나 장치가 미리 미리 준비되어 있어 맥이 좀 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강렬함은 덜할지 몰라도 뒷맛이 개운한 착한 스릴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주받은 책들의 상인>에 등장하는 수도원과 지역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추적하는 방향이라든지, 수도원(성당)의 구조나 예술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읽었다면 그 재미가 배가 되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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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 아침 청소 습관 - 성공을 부르는
이마무라 사토루 지음, 오나영 옮김 / 청림Life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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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당신의 미래를 보여준다.

당신의 방은 당신의 습관을 보여준다.

습관은 당신의 인생을 결정짓는다(58).

 

습관이 바뀌어야 인생이 바뀐다고 합니다. 인생이란 습관의 합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매일 저녁 TV 보는 습관을 가졌다면 10년 후 그 사람의 저녁 시간은 TV를 봤던 시간들로 채워져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 하는 것도,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 하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시간을 보내는 것도 대부분 습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생각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습관'이 가진 힘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 새삼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내가 가진 좋은 습관은 무엇이고, 나쁜 습관은 무엇인지 점검해봐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10초 아침 청소 습관>은 "최고의 습관 컨설턴트"가 쓴 책입니다. 인생을 바꾸려면 습관을 바꿔야 하는데, "10초 아침 청소 습관"이야말로 인생을 바꾸는 최고의 습관이라고 역설합니다. "10초 아침 청소 습관"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재미없는 인생을, 즐거운 일들이 이어지는, 가슴 설레는 인생으로 바꾸어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청소를 시작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제2의 생일이 생기는 것이다"(16)라고까지 말합니다.

 

 

왜 청소하는 습관인가?

저자의 이야기 중에 가슴에 와서 콕 박힌 한마디는 바로 이것입니다. "마음의 상태는 방으로 표현된다"(103). 방이나 책상의 상태는 우리의 머릿속 상태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때는 방도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고,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할 때 방도 물건으로 넘치고, 머리속이 상쾌할 때 방도 깔끔한 상태가 되고, 머릿속이 정돈되어 있을 때 방도 말끔히 정리, 정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64). 거꾸로, 방을 깨끗하게 하면 자연히 머릿속도 맑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과거의 실패나 후회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고 싶다면 방을 청소하고 클리닝하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등교를 거부하고 성적도 좋지 않았던 학생이 방을 청소하고 난 뒤부터 달라진 이야기, 또 깨끗한 방에서 생활하니 사업 아이디어가 샘솟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단순한 논리입니다. 만일 쓰레기가 100개 있는 너저분한 공간에 있다면 어떨까요? 저자는 "언제나 싫은 소리를 듣고 일도 흔쾌히 풀리지 않는 기분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자신이 정말로 가슴 설레며 즐거워할 물건이 10개 있는" 방에서 생활한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그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고 즐거워질 것"(31)입니다.

 

이 책을 읽고 사무실에 나와 동료들을 책상 위를 살펴보니 과연 그렇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일 잘하기로 소문한 우리 부서 소장님의 책상은 언제나 말끔한 상태입니다. 바쁘게 일하면서 자료철 정리도 미루는 법이 없고, 지극정성으로 화분까지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선은 다하지만 업무에 늘 자신이 없는 동료가 한 명 있는데, 그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책상 정리 좀 하라"는 잔소리인 것이 재밌습니다.

 

 

왜 10초인가?

"10초"는 마음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시간입니다. "10초"는 청소가 "쉽다, 즐겁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줍니다. 저자는 모든 청소가 10초 안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모든 청소는 "창을 연다, 물건을 버린다, 턴다, 쓴다, 닦는다" 등과 같이 10초 안에 마칠 수 있는 행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94).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도 청소입니다. 이 중 어떤 것이라도 마음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하나라도 매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소를 다 끝내지 못해도 상관 없습니다. 10초면 끝나기 때문에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매일 계속 할 수 있습니다. "10초 아침 청소"의 가장 큰 장점은 쉽고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그저 즐겁고 쉽게 청소하면 그만"입니다(14). 저자는 그러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청소 습관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왜 아침인가?

"10초 아침 청소 습관"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비법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청소를 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렇게 하면 "일찍 일어나기와 청소하기를 한 번에 손에 넣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124)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녁 시간에는 "약속이 생기기 쉽고, 귀가 시간도 날마다 다르고, 술 한 잔 하는 날은 집에 와서 바로 잠자리에 들게 되니까 청소를 습관화하기가 어려워진다"(125)는 것도 아침 청소를 권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아침에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외부의 영향을 받는 일도 적기 때문에" 청소하는 습관을 갖고 싶다면 아침 청소를 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우선 방 사진을 찍어둔다(126).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던 공간이나 너저분한 것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면, 청소를 하고 싶어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라 막막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심한" 경우에는 청소 전문업체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청소하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오늘 다 하지 못해도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한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선 방 사진부터 찍어둡니다. 그리고 "10초 아침 청소의 규칙"에 따라 매일 아침 10초만 투자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10초 아침 청소의 규칙"은 "첫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한다. 둘째, 마음 내키는 곳 어느 곳이나 괜찮다. 셋째, 매일 10초간 실천한다"입니다. "방 안을 환기시키고 물건을 하나 버리는 것"도 해당됩니다.

 

 

매일 1g이라도 가벼워지는 이미지를 그리며 청소한다(122).

청소하는 노하우를 전해주는 책은 많습니다. <10초 아침 청소 습관>은 청소하는 습관을 통해 인생을 새롭게 하는 전략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깨끗한 방(책상, 공간)의 상태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청소는 눈에 보이는 공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 머릿속 상태까지 말끔하게 치우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러니 쉽고 즐겁게 청소하는 습관이 몸에 배여 있다면 마음과 우리 머릿속도 "언제나 맑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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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만든 책 25 - 어떻게 하얀 고래, 콩코드 호숫가, 피곤한 블루스는 미국의 정신을 형성했는가
토마스 C. 포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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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는 역사와 관련하여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천 년 전, 2천 년 전,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가 결핍되어 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역사라는 것도 우리가 바라는 소망의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역사를 우리 앞에 들어 올리며 검토해 보기를 바라는 작가,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여 소유해야 할 역사를 제시하는 작가들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453).

 

 

  

태산을 하나 넘은 기분입니다. 계곡은 깊었고 숲은 울창했고 울림은 컸고 그곳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미국을 만든 책 25>, 제목부터 참 도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역사가 짧은 나라라고 하지만 이런 리스트를 만들고 또 평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궁금했습니다. 앞으로 토마스 C. 포스터라는 이름을 기억해두려 합니다.

 

저자의 이야기는 그를 도발시킨 한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의 네 구석에서 누가 미국 책을 읽는가?"(7) 이 문장은 영국의 목사이자 작가인 시드니 스미스의 말입니다. "미국이 독립한 후 30여 년 동안 인간의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것 혹은 영국 문학을 증진시킬 만한 것을 내놓지 못했다"는 경말의 말입니다. 이에 저자는 이렇게 대응합니다. "당시 우리는 그런 것들 말고도 화급한 문제가 많았다. 우선 굶어죽지 않아야 했고, 삼림을 개간하고, 원주민들을 제압하고, 당대의 철학 사상과 착잡한 인간관을 바탕으로 공화국을 수립해야 했고, 황무지에서 도시와 마을을 건설해야 했으며, 한편으로는 자유의 개념을 옹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동료를 노예로 만드느라 너무 바빴다"(8-9). 미국의 숨가쁜 역사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이 독특한 나라, 그 나라를 형성하는 독특한 사람들, 그들이 새로운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영국의 도발에 다시 이렇게 맞대응합니다. "스미스가 미국의 한심한 문화를 지적하기 위해 열거한 저 훌륭한 작가와 사상가들을 모두 데려온다고 해도, 그들은 독립선언서와 미국헌법만큼 이 세상을 바꾸어 놓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미국을 만든 책 25>는 이 "두 문서를 일상의 궤도에 올려놓는 과정에 도움을 준 책"들을 다시 살피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은 미국 혹은 미국 정신의 형성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문장이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고, 누군가를 형성하며 또 문장 이상의 의미를 성취한다고 확신한다"(10).

 

 

 

 

 

<미국을 만든 책 25>는 미국의, 미국인에 의한, 미국인을 위한 책입니다. 선별된 25권의 책은 "미국(인)의 국민적 특성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또 미국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평가되는 책들입니다. 평가는 철저히 저자 개인의 주관적 견해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이러한 기준을 "미국의 신화"라고 표현합니다. "지난 250년의 세월 동안에 구축되어온 이야기들의 묶음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위대한 책" 리스트는 철저히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가적 스토리에 집중"됩니다. "우리 자신, 우리의 역사, 우리의 능력, 우리의 가치, 우리의 관심사, 우리의 가장 소중한 원칙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담겨 있다"(11).

 

여기 수록된 25권의 책은, 미국적인 재료를 가지고, 미국적 문제를 다루며, 미국적 예술을 구축한 대표주자들입니다. <미국을 만든 책 25>는 미국 문학사 여행입니다. 만약 이런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혼자 할만큼 매력적인 여행이었습니다. 문학이라는 것이 어떻게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는지 한 발 한 발 발견해나가는 작업은 그것 자체로 다시 새로운 문학이 되었습니다. 미국 문학에 대한 저자의 깊은 이해와 통찰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미국을 만든 책 25>는 그 25권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읽은 책"에 대해서도 똑같은 호기심을, 아니 더 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아직 읽지 않은 책보다 이미 읽은 책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습니다. <주홍글씨>, <작은 아씨들>, <헤클베리 핀의 모험>, <위대한 개츠비>, <분노의 포도>, <앵무새 죽이기>는 이미 읽은 책들이지만, 다시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읽으면서도 내가 놓쳤던 것,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숨은 의미가 이 책을 달리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첫 충격은 첫 권 <프랭클린 자서전>에서 시작됩니다. 저자는 자서전을 읽을 때 너무 많은 리얼리티를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프랭클린 자서전>에서 만나는 '벤저민 프랭클린'은 어떤 목적을 가진 하나의 캐릭터라는 것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경배한 것은 개인의 발전을 극대화시켜주는 사회였다. 그는 인간들이(어느 정도까지 여성도 포함) 그들의 능력에 따라 성공하거나 실패할 수 있는 사회, 상속이나 특혜의 제약이 없는 사회, 이성을 가진 인간들이 군주제나 귀족제의 간섭 없이 그들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사회, 창조성과 지식의 진보가 교회의 권위나 검증되지 않은 신념의 제약 없이 번성할 수 있는 사회를 존중"(36)했고, "이런 욕망이 <프랭클린 자서전>의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고 또 그의 실제적인 목적이었다"(37)는 것입니다.

 

저자는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지만, <주홍글씨>에 대한 그의 평가는 소설만큼이나 매혹적입니다. "호손을 다른 미국 작가들과 구분시키는 것은 그의 시선이 머무는 방향이다. 미국문학의 전통에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앞을 내다보는 방향으로 진행해왔는데, 그 대표적인 모범이 휘트먼이다. 우리는 어디론가 가는 민족이고 그 장소는 우리 뒤에 있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발명했고, 유럽의 과거와 단절되어 있으며, 밀고 나아가고, 노력하고, 경쟁하고, 소송을 벌이고, 때때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고집을 부린다. 하지만 언제나 앞을 향해 움직인다"(64). "그러나 호손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 그의 관심은 우리가 어디로 가는가에 있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하여 지금 이 저점에 왔는가에 있다. (...) 호손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관심이 있으나 거기에 도달하는 다른 접근로를 취하고 있다. 그는 습관적으로 식민지 시대, 특히 청교도주의의 먹구름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을 뒤돌아본다"(65).

 

이 책은 특별히 미국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문학'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읽어도 좋을 책입니다. 따로 줄거리(내용)를 요약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읽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술술, 더 재미있게 읽힙니다. 그러나 아직 내가 모르고 있는 위대한 책은 무엇인가, 왜 그 책이 그토록 위대한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얻을 수 있습니다.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고민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이드 있는 여행을 떠날 것인가, 자유 여행을 떠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자유로운 여행을 선호합니다. 가이드 여행은 어쩐지 효도관광 같은 느낌이 들고,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이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여행 초보인 것을 티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가이드'가 있어야 여행이 더 풍성하고 안전하고 더 많은 것을 얻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미국을 만든 책 25.> 가이드가 있는 미국 문학사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탁월한 가이드는 자유여행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그리고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숨겨진 명소, 보물이 있는 곳으로 독자를 데리고 갑니다. 이 충만한 느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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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
칼 구스타프 융 지음, 김세영 옮김 / 부글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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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가 대중 조직 안에서 한 덩어리로 묶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며, 개별적인 인간 존재 즉 통계적인 인간이 아닌 진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를 우리 자신에게 물어여 할 때이다"(100).

 

 

200페이지를 넘지 않는 얇고 작은 책이지만, 소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프로이트의 것과 달리 융의 이론은 "뚜렷한 체계나 개념을 잡기가 힘들다"는 평가를 알지 못했다면 오랫 동안 자괴감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듯합니다.

 

융이 무엇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지는 분명해보입니다. 심리학 초기에 사회학과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융은 사회과학자(또는 경험과학자)들이 들으면 발끈할 만한 비판에 집중합니다. 경험과학 연구의 기본이 되는 통계적 가설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경험에 근거한 이론이면 어떤 것이든 반드시 통계적이다. 다시 말하면, '이상적인 평균'을 공식화한 이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이상적인 평균'은 그 척도의 양쪽 끝에 있는 모든 예외들을 배제하고 그것들을 추상적인 평균으로 대체해 버린다. 그런데 이 추상적인 평균이 상당히 유효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문제이다. 현실 속에서는 그 평균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21). 사실 통계학적 방법론과 모형들을 통해 사회현상에 대한 일반 법칙을 발견하고, 가급적 적은 수의 변수로 사회 현상을 설명하고자 노력하는 학자들도 경험과학의 한계와 모순을 모르지 않습니다. 융의 비판은 '개인을 다른 사람과 똑같은 하나의 단위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로 이해해야 한다"(23)는 것을 강조하는 데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융이 집중하는 것은 '개인'이라는 하나의 단위입니다. "미국과 유럽에 공통적으로 있는 것은 물질적이고 집단적인 목표이며, 미국과 유럽에 공통적으로 없는 것은 온전한 인간을 표현하고 이해할 바로 그것, 즉 개별적인 인간 존재가 만물의 척도로서 세상의 중심에 선다는 사상이다"(72). 그는 "과학적 가설들의 영향 아래에서, 심리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인간과 모든 개별적인 사건들이 평균으로 다듬어지고 있으며 또한 현실의 그림이 관념상의 평균으로 왜곡되고" 있음을 직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경고합니다. "우리는 통계적으로 세상을 그리는 관행이 심리에 미치는 효과를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통계적으로 세상을 그리는 관행은 개인을 익명의 단위로 바꿔놓고 있으며, 이 익명의 단위들이 모여 대중이 된다. 과학은 우리들에게 구체적인 개인 대신에 조직의 이름들을 제시하며, 그 정점에서 국가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정치적 현실의 원칙으로 제시한다"(29). 그것은 이러한 결과를 낳습니다. "자신의 본능적 본성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존재 대신에 자기 자신에 대한 개념을 앞세우는 것이다. 본능적인 본질로부터의 분리는 불가피하게 교양 있는 현대인으로 하여금 의식과 무의식, 시대정신과 천성, 지식과 신앙 간의 충돌을 겪도록 만드는데, 그러다 그의 의식이 본능적인 측면을 더 이상 무시하거나 억누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순간 이 분열이 병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135).

 

융이 반대하는 것은 명확하게 보이는데, 융이 본격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이론"은 몇 번을 곱씹어야 겨우 감이 잡히는 듯합니다. 성경 지식이나 종교(교회)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칼 구스타브 융의 본격적인 심리학 이론을 알고 싶다면 다른 책이 더 필요할 듯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그의 주장을 (격하게) 단순화시킨다면, 개인의 자기이해(자기지식)는 물론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심리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상대적인 예외이자 하나의 비규칙적인 현상인 한 사람의 개인이 자기지식의 대상"이라는 것, 그것에의 강조입니다. 심리학의 거센 물결에 삼켜졌다고 할 만큼 심리학이 유행하고 있는 오늘 우리 시회의 모습을 보면 융은 무엇이라 말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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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고전 : 동양문학편 - 서울대 선정 동서고전 200선 세상의 모든 고전
반덕진 엮음 / 가람기획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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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재들의 독서법으로 알려진 고전 읽기에 한참 열을 올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30권만 읽어도 논리가 달라지며, 100권 정도를 읽으면 천재로 거듭난다고 하니 '혹'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00권 정도 읽으면 천재형 두뇌가 된다는 말을 듣고 1권 정도는 안전하게 더 읽어줘야 한다는 계산에 목표를 101권을 목표로 했습니다. 우선 어떤 고전을 읽어야 할지 목록부터 만들어야 했습니다. 일목요연한 목차가 필요했는데, 생각만큼 쉽게 찾아지지가 않았습니다. '추천 고전 목록', '꼭 읽어야 할 서양 고전, 동양 고전' 여러 가지 키워드로 검색을 해봤지만 101권 목록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알았습니다. 기준도 제각각이고, 대부분 5권에서 10권 정도 추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101권이라는 대 목차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10권 정도를 추렸습니다. 그러나 부풀었던 꿈과 야심찼던 계획만큼이나 좌절은 빨리 찾아왔습니다. 의욕만큼 잘 읽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도 계속 읽어라, 소리내어 읽어라 등등의 조언을 들었지만 한 페이지 넘기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조 섞인 한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재가 되는 것이 그리 쉬었다면 천재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내게 고전 읽기는 그렇게 넘을 수 없는 산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제가 <세상의 모든 고전>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눈을 번쩍 뜬 것은 "서울대 선정 동서고전 200선"이라는 부제 때문입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목차가 여기에 있고, 또 '서울대'라고 하는 이름값이 그 목록에 대한 신뢰에 무게를 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1994년에 서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발표한 '동서고전 200선'이 <부록>으로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은 개정판이지만, 세월의 폭풍우 속에서도 여전히 그 가치를 잃지 않는 책을 우리는 '고전'이라고 부르니 이 목록이 '1994년' 발표된 것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책에서 받은 첫 충격은 '문학서 100서'라는 분류 목차입니다. '문학서 100선'과 '사상서 100선'으로 나누어 정리되어 있는데, 스스로 꼭 읽어야 할 고전 목록을 만들면서 사상서만 생각했지 문학서는 염두에 두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구운몽, 홍길동전, 춘향전, 무정, 임꺽정전, 삼대, 상록수, 감자와 같은 우리 소설은 부끄럽게도 서양 고전과 똑같은 무게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천재들의 독서법에서는 인문고전 읽기와 주로 철학에 관한 고전 읽기를 추천하고 있긴 하지만, 이 목록을 미리 알았다면 내 앞에 버티고 있는 고전이라는 태산이 좀 더 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모든 고전> '동양문학편'에서는 '동서고전 200선' 중에 우리 문학을 중심으로 총 45편의 동양문학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받은 두 번째 충격은 "이런 고전들은 너무 유명하다 보니 읽지 않고서도 마치 읽은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8)는 저자의 지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주홍글씨, 파우스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나 카레니나,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서양의 작품들에는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다 읽었다는 표시를 해나갔는데, 정작 우리의 것에는 한 권도 자신있게 그을 수가 없었습니다. 홍길동전도 춘향전도 다 읽은 책이라고 자신있게 표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목이 너무 유명하고, 드라마로도 보았고, 줄거리를 대략 알고 있는 탓에 마치 '읽은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교과서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그것도 어느 한 부분을 발췌한 것이지 '책'으로 한 번도 정독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고전>은 고전으로의 '초대'이며, 그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하는 책입니다. 고전이라는 산을 넘기 위해 필요한 나침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전 안내서는 말 그대로 고전을 대하는 독자들에게 해당 고전에 대한 전체적인 모습과 핵심적인 내용을 미리 보여주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면서, 고전의 숲에 들어선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고전을 완독할 수 있게 도와"(11)주는 역할을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안내서의 부정적인 측면도 잊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독자들이 고전 안내서만 읽고 원본을 읽지 않는 것은 아예 안내서조차 읽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만 원본까지 충실히 읽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본서에 이름이 오른 책들이 선정되는 과정이나 선정된 이유를 보다 큰 문학사적 안목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비슷한 작품이지만 선정에서 탈락한 작품과의 비교라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한 작품, 한 작품에 대한 설명 방식이 마치 학교 국어수업을 연상시킵니다. 물론, 학교 수업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작품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주고, 그 작품에 대한 흥미도 불러일으켜 줍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은 목차가 가장 중요하고, 본격적으로 읽어야 할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불어넣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리가 참 잘된 책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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