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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책들의 상인
마르첼로 시모니 지음, 윤병언 옮김 / 작은씨앗 / 2013년 1월
평점 :
"그것은 단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413).
세상에는 모순의 고리를 가진 수많은 이율배반이 존재합니다. 누군가 이율배반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예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광고를 하면서 사원 모집시 평가에 외모 점수를 넣는 기업', '환경은 미래라 주장하면서 도시의 미래를 위해 철새 도래지 위에 공단을 세우는 시장과 기업' 등. 그런데 유럽의 중세시대가 그런 이율배반으로 뒤덮인 시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주받은 책들의 상인>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중세시대의 이율배반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쟁,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는 수도원(종교 세력), 신념(선) 때문에 광기(악)에 사로잡힌 인간들을 그 배경으로 합니다.
<저주받은 책들의 상인>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견주어집니다. '한 권의 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적 스릴러'라는 점 외에도 이 책이 '방카렐라 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그러한 평가를 거들어줍니다. "노벨상을 타려면 먼저 방카렐라 상을 타야 한다"(545)는 말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방카렐라 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상의 1회 수상작인 어니스트 훼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그 이듬해에 노벨상을 타게 되면서 생겨난 말이라고 하는데, 움베르토 에코, 존 그리샴, 켄 폴리트, 이탈리의 국민작가 안드레아 카밀레리도 이 상을 받았다고 하니 상의 권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갑니다.
<저주받은 책들의 상인>은 <우테르 벤토룸>이라는 한 희귀도서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우테르 벤토룸>은 천사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지혜를 사용할 수 있는 주문이 적혀 있는 책입니다. "비한 힘을 이용하여 절대 권력을 누리려는 자와 이 책을 찾기 위해 유골상인인 이냐시오 다 톨레도를 끌어들인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을 뒤쫒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책이 숨겨진 장소에 대한 수수께끼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이 책의 주문을 사용하면 정말로 천사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긴박하게 펼쳐지는 지적 스릴러의 분위기를 고조시켜며,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책의 재미만큼 이 글을 재미있게 쓰지 못하는 제 실력이 아쉽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미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있기 때문인지 그와 같이 묵직한 문학적인 전율과 신선함은 조금 덜 한 편입니다. 긴박한 순간을 풀어가는 반전이나 장치가 미리 미리 준비되어 있어 맥이 좀 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강렬함은 덜할지 몰라도 뒷맛이 개운한 착한 스릴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주받은 책들의 상인>에 등장하는 수도원과 지역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추적하는 방향이라든지, 수도원(성당)의 구조나 예술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읽었다면 그 재미가 배가 되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