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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사람들 - 신과 인간의 서사를 만든 첫째성경 인물 열전 ㅣ EBS CLASS ⓔ
주원준 지음 / EBS BOOKS / 2023년 3월
평점 :
"이스라엘인들은 독특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체험했고, 그 체험을 고대근동의 언어와 문화로 해석했고 전승했다. 첫째성경은 고대근동 세계의 문학이었다"(7).
성경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인류의 기원이나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지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올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고대근동학자가 들려주는 구약성경 속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동시에 가장 거세게 공격도 받는 인류의 고전으로서, '구약성경'은 인류가 간직해온 신화와 역사가 만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고대근동학자는 고대근동의 저작물들과 구약성경을 비교하여, 구약성경만이 담고 있는 톡특한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인류가 간직한 보편적인 이야기의 얼개 속에 구약성경을 구별짓게 하는 매우 독특한 서사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성찰하게 하고, 새로운 길로 이끄는 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먼저, 저자는 구약성경을 '첫째성경'이라고 부르자는 제안을 합니다. '구약', 즉 "옛 약속"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것이 "낡고 해진 약속의 책으로 다가온다면, 이 이름을 재고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5-6). 이 첫째성경의 사람들은 고대근동인들이었고, 고대근동인들은 신과 함께 살았습니다. 고대근동 세계는 신의 뜻과 지혜에 따라 살려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는데, 그런 세계에서 유독 독특함과 유일함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부류가 바로 고대 이스라엘입니다.
고대 이스라엘만의 독특함과 유일함을 한마디로 하면, 첫째성경이 전하는 '전복의 서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첫째성경 속에는 다른 신화들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영웅이나 초인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괴수나 반신적인 존재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첫째성경은 철저히 신과 인간에게만 초점을 맞춥니다. 무엇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바로 인간은 누구도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며, 인간은 어느 누구도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과 인간의 격차는 절대적입니다. 첫째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피조물일 뿐이며, 황제라 하더라도 신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이야기에는 예외를 인정할 만한 사람이 없다. 최초의 남녀는 죄인이었고 모든 인간은 그들의 후손일 뿐이다. 남자든 여자든 왕족이든 영웅이든 사제든 평신도든 모두 이 점에서 다르지 않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 바로 그 점 때문에 인간은 신의 은총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창세기의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 아닐까 한다"(28).
그런데 문제는 인간과 신의 관계가 허물어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인류가 가진 문제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을 잃어버렸고, 이제 우리 앞에는 (신이 처음 목적한 것이 아닌)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에덴동산의 바깥입니다. 이제 (우리의 힘으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첫째성경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의 끝에는 인간과 동행하는 신이 남습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사는 일은 당연히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러나 그 길을 신이 동행해줍니다. 고통이 시작되었고 땀 흘리는 삶이 시작되었지만, "용서하는 신이 우리와 동반한다는 점이 큰 위로이고 희망이다. 이것이 이 이야기가 들려주는 가장 중요한 삶의 조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과 함께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할까. 그 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35).
고대근동신화와 '첫째성경'을 구별짓는 또다른 독특함은 '시선의 전복'입니다. 첫째성경에 등장하는 신은 그의 백성들에게 세상의 보편적인 시선들과 맞설 것을 요구합니다. 이 신은 백성들에게 위와 중앙이 아니라, 밖과 아래로 시선을 향하라고 말합니다. 야훼를 따르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조금씩 바꿔가는 개선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질서로 나아가는 것이었고, 그 일은 나를 넘어 밖을 향하고, 강함이 아니라 약자를 향하고,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자리를 향하는 발걸음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의 저자는 그 독특함과 유일함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대근동 큰 나라들의 건국신화를 보면 임금의 조상이 신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서 도시와 지역의 질서를 확립한 영웅적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런 조상을 두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대제국의 조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는 성읍을 건설하지도, 어느 도시를 쟁취하지도 못했습니다. 대규모 전쟁을 이끌어 승리한 일도 없고, 세계의 패권을 다투지도 않았고, 큰 신전을 짓지도 않았습니다. 큰 영토는커녕 어떤 성읍도 가지지 못했고, 스스로 임금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첫째성경의 신, 아브라함이 경험한 야훼 하나님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은 우르 사람이었지만, 그의 신은 우르의 성벽 밖에 있었습니다. 그의 신은 성 밖으로 나올 것을 요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인류가 간직한 '금의환향'의 서사와 정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그는 인생의 말년에 고향을 떠나, 온 가족을 데리고 평생을 떠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성 밖의 가정 공동체를 이끌었을 뿐입니다. "창세기를 전승한 백성들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고 아이를 낳아서 손수 먹이고 입히며 살아야 했던 성 밖의 가난하고 고단한 사람들이었다"(31).
이스라엘의 조상은 성 밖에 살던 작은 가정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성 밖의 가난한 백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나라 없이 성 밖을 떠돌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을 믿는 사람들은 늘 어딘가로 나가야 했습니다. 성읍이 없던 무리는 왕궁도 신전도 없었고 당연히 그런 문물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신도 성 밖의 신이었다"(99). 야훼는 성읍도 없고 신전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야훼를 '나의 신'으로 고백하는 도시국가의 임금은 없었습니다. 야훼는 성 밖의 작은 무리가 섬기는 신, 변방의 작은 신이었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은 가난한 가정과 함께 변방을 떠돌았습니다. 야훼는 스스로 성읍이나 신전에 거했던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모든 사연과 일화에 개입하시는 분이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맨 처음 지상에 오신 자리는 거대한 궁궐도 높은 신전도 아니었고 작은 가정이었다(121).
"고대근동의 수많은 신들 가운데 성 밖의 작은 신이었던 야훼만이 현대로 전승되었고 다른 신들은 모두 잊혔다"(102-103).
저자는 이것이 고대근동 종교사의 역설이라고 강조합니다. 거대한 신전에 정주하여 큰 백성을 거느리던 신들은 전부 잊혔지만, 작고 가난한 이들을 선택하여 그들과 함께 변방을 떠돌던 신만이 후대에 크게 확산되었다는 것입니다. 대제국을 세운 신들은 결국에는 모두 잊혔지만, 작은 가정에 오셨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온 인류의 이야기로 퍼졌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엄연히 존재하는 이 역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사회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써내려가는 역사가 있다. 지금은 보잘것없고 초라해 보이지만 신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실 것이다. 그건 인간이 아니라 신이 허락하는 것이다"(142).
분명 첫째성경은 고대근동의 신화와 문학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고대근동학자는 역설과 전복의 시선으로 '첫째성경'을 읽을 것을 권합니다. 첫째성경에는 많은 것이 뒤집혀 있기 때문입니다. 역자를 소중하게 여기고 소외된 변방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전복의 시선을 갖지 않으면, 낮은 자리에 임하시는 첫째성경의 신을 만날 수가 없끼 때문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성경의 빈구석을 채워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주의 깊은 학자로서의 상상력과 신앙인으로서 성찰을 통해 (감추어진) 의미를 찾아줍니다.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설교보다, 더 강렬하게 마음에 새겨질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을 진리로 믿는 자들에게, 그들이 믿는 바의 독특함과 유일함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우리 인생을 해석할 때,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잘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계속 해서 밑줄을 그어가며 페이지마다 별표를 남발할 만큼 배울 것이 많았던 강의이며, 마치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줄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던 것과 같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설교가들이 먼저 이 책을 읽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