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 죽음 관련 톨스토이 명단편 3편 모음집 현대지성 클래식 4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우섭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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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죽은 건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야'(11).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대하여, 해제를 맡은 윤우섭은 이렇게 말한다. "죽음을 끔찍할 정도로 명확하게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최초의 작품 중 하나다"(195). 지난 월요일, 나의 지인 중 한 명은 암이 온 몸에 얼마나 전이되었나를 알기 위해 수술대 위에 올랐고, 또 다른 지인은 그날 둘째 아들을 출산했다. 그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사실 삶과 죽음이 한 몸이라는 (끔찍한) 진실을 다시 기억해야만 했다. 생각해보니, 생(生)만큼이나, 죽음은 우리 도처에 있었다. 그러나 나의 죽음이 보이지 않았을 때는, 매일 목격하게 되는 그 누군가의 죽음이 절대로 나의 오늘을 즐겁게 보내는 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몸이 늙고 있다는 것이 실감되어지고, '늙는다'는 것은 곧 '병든다'는 것이며, 하룻밤 잘 자고 나면 개운해지는 그런 날은 더이상 오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니, 그 누구의 죽음도 전처럼 예사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앞에 나의 몸과 마음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의식 속에서 멀리 치워 버리고 은폐해버린 죽음에 관한 진실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눈앞으로 충돌해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평범한 인간의 평범한 죽음을 보여준다. 몸의 불편함을 느끼고,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질병과 건강이 그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고, 그래서 아픈 사람, 죽은 사람, 완쾌된 사람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을 때조차, 죽음은 그에게 온전한 현실이 되지 못했다. "죽음이 꽃 뒤편에서 분명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는데도"(60), 탁자를 옮기는 일로 가족과 말다툼을 벌이며 화가 날 때는 죽음을 떠올리지 않았고, 죽음이 보이지 않았다.

 

 

"그 방을 위해, 그 응접실 장식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생각하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자기 병이 그때 떨어지면서 입은 타박상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60).

 

병에 걸린 지 석 달 만에 고통이 그를 덮쳐오고, 아편과 모르핀이 주사되기 시작했을 때에야 이반 일리치는 자기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비로소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그를 덮쳐온 또다른 고통은 "어쩌면 내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는 자기 삶을 되집어본다. 그리고 그가 맞딱뜨리게 된 삶의 진실은,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향해 성실하게 올라가고 중이라고 믿었건만, 그의 시간은 내리막길을 달려 끝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린시절, 학창시절, 첫 직장, 사랑의 기억, "결혼…. 그것은 아주 우연히 찾아왔고 이어진 실망 그리고 아내의 입냄새, 그리고 관능, 가식. 그리고 이 쓸모없는 직무, 돈에 대한 집착, 그렇게 한 해, 두 해, 십 년, 이십 년, 그리고 똑같은 삶, 그리고 다음은 죽음. 산 위로 올라간다고 상상했지만, 사실은 완벽하게 일정한 속도로 내리막길을 간 거였다. 그랬다. 다들 내가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확히 그만큼 삶은 내 밑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은 끝났고, 죽음의 시간이다!"(80)>

 

 

"그는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놓쳤음을 깨닫는다. 그 순간부터 죽음의 공포가 이반 일리치를 가득 채운다. 올바르게 살지 않았음을 알았지만, 이 모든 것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라서, 그것이 주된 고통이 된다. 자신은 "살아온 것"이 아니었고, 그에게는 남은 시간이 없음을 깨닫는다"(198).

 

거짓과 위선이 우리의 마지막 날들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톨스토이는 자기 삶을 고칠 방법을 기독교 신앙에서 찾았다. 나 역시 기독교 신앙에 눈 뜨고 나서야, 반드시 죽을 운명이라는 한계가 우리의 삶을 무의미하고 역겨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분별할 수 없는 우리의 한계가 삶을 무의미하고 역겨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를 다시 질문해본다. 이 땅에서의 나의 끝 날, 지금 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다. 내 자신에게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조용히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을 위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그 옳음의 절대 기준을 찾고 싶다면, 톨스토이를 인도했던 <성경>을 일독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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