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안토니오 G. 이투르베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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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에디타 아들러예요.

우리 도서관에는 종이 책이 여덟 권 있고

살아 있는 책도 여섯 명이 있어요"(394).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8권의 낡고 헤어진 여덟 권의 책을 목숨 걸고 지켜낸 열네 살 소녀 디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31블록에 독일 출신 유대인 수감자가 운영하는 작은 비밀 학교가 있었고, 그곳에는 다리달린 도서관, 살아 있는 도서관도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이라고 해봤자 너덜너덜해진 8권의 책과 어떤 책을 특별히 잘 아는 교사들이 자기가 기억하는 대로 아이들에게 책 내용을 들려주는 여섯 명의 '인간 책'이 전부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 도서관의 사서를 맡은 열네 살 소녀 디타는 나치로부터 그 8권의 책을 들키지 않고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했으며, 매일 검열의 공포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어차피 이 수용소를 살아서 나갈 가능성도 희박한데

굳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킬 이유가 있을까?

시체를 태운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굴뚝의 그림자 밑에서

과연 아이들에게 북극곰 이야기를 하고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 게 의미가 있나"(29).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역사상 가장 커다란 죽음의 공장이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끌려온 수용자들의 목표는 단 하나, '생존'입니다. 철조망과 화장장 사이에 갇혀 총 알 하나가 사람 한 명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그 야만적인 현장에서 생존이 단 하나의 목표라면 당연히 "책을 버리고 목숨을 지키는 쪽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것"입니다. 학교라고 해봤자 누군가 멈춰서서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은 듣는 것이 고작이었는데도, 그들은 왜 그토록 위험한 작은 도서관, 비밀 학교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집요한 독일 나치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책이다.

그것도 낡고 제대로 철도 안 된, 중간에 몇 페이지씩 찢어지고 없어진 그런 책.

나치는 책을 금지하고 샅샅이 색출해낸다"(18).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의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을 알았을 때, 디타라는 그 어린 사서가 목숨을 걸고 지킨 그 여덟 권의 책은 무엇이었을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그 여덟 권의 도서 목록을 알고자 이 책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그 여덟 권의 책이 무엇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책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이 갇혀 있는 전쟁의 악몽 말고 진짜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학교는 순수한 교육이라는 목적 이상의 미션이 있죠. 아이들에게 어떤 정상성을 보여주고, 감정을 잃지 않도록 하고, 또 삶이 지속된다는 걸 보여주는 것 말이에요"(147).

"역사상 모든 독재자며 폭군이며 압제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

그들은 모두 책을 가혹하게 핍박했다.

책은 아주 위험하다. 책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든다"(18).

집이며, 재산이며, 옷이며,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가족이며, 어린시절이며, 미래까지, 그리고 결국 목숨까지 빼앗기고 있는 그들이 가진 것은 상상력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책은 신발보다 더 먼 곳으로 그들을 데려다 주었습니다. 책이라는 타임머신은 그들을 이집트 피라미드의 지하 통로로, 아시리아의 전장으로 안전하게 안내했으며, 그들은 지도책 한 권으로 지겹도록 세계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책은 비밀의 다락방으로 통하는 작은 문 같아서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고, 때로는 구급상자가 되어 웃음을 영원히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웃음을 되찾아주기도 했습니다. 왜 역사상 모든 독재자며 폭군이며 압제자들이 책을 그토록 두려워하고, 위험하게 생각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 31블럭의 비밀 학교가 운영되는 동안 521명 중 단 한 명의 어린이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존엄성을 강탈당하고 있었지만, 전쟁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니 평화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그들은 비록 총알 하나보다 못한 목숨 취급을 받았지만, 그 여덟 권의 책을 통해 품위를 유지하며 그 고난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책을 전부 한데 모으자 아주 작은 부대가 된다.

보잘것없는 백전노장들이다.

그러나 지난 몇 달간 이 책들은 아이들 수백 명과 함께 세계 곳곳을 거닐었고

아이들에게 역사와 수학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소설이란 섬세한 세계로 이끌며 아이들의 삶을 몇 배는 더욱 크게 만들어주었다"(420).

이 비밀 학교, 그리고 그곳에서 운영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비밀 도서관이 수용소에 끌려온 아이들에게 해준 것은 하나였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린아이 다울 수 있다는 것! 언젠가 성경 <다니엘서>를 공부할 때, 짐승 같은 세상(권세)가 우리를 위협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저항은 일상으로 맞서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위협과 불안과 혼란 속에서도 자기 일상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힘이라고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그럴 때 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서 잔혹함은 더 잔혹하게, 처절함은 더 처절하게 와닿습니다. 역사가 스포라 큰 결말은 미리 예상할 수 있다 해도, 이 비밀 도서관의 사서와 함께하는 순간 어떤 페이지도 공포의 긴장을 놓을 수 있는 페이지가 없습니다. 번역도 잘 되어 있고, 문장도 통찰력이 있어 밑줄도 많이 긋게 되는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입니다. "진실은 전쟁의 최초 희생자이다"(324), "작은 것에 짜증이 날 때 일상은 되돌아온다"(482).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가장 도서관의 사서를 맡은 디타가 삶을 하찮게 그리는 책보다, 삶을 더 위대하게 생각하게 끔 해주는 책이 좋다고 독백처럼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디타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이 책이 바로 디타가 좋아하는 책, 삶을 더 위데하게 생각하게 끔 해주는 책이라고 한줄 평을 하고 싶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야만의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은 경이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를 간직한 이 책 또한 인류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읽을 거리가 너무 많아서, 책이 하도 흔해서, 오히려 짜증이 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오히려 얼마나 나약하고 배부르고 게으른 투정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토록 경멸하고 지루해 했던 나의 오늘이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나를 아리도록 깊이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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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좋아 2020-11-0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아우슈비츠의 문신가> 를 읽었을 때도 한동안 빠져나오기 힘들었었는데, 더 처절하게 그려진것 같고, 그래도 읽고는 싶고 ~~어허~~
 
설교 듣는 법 - 분별과 은혜
김형익 지음 / 두란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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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인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귀가 열려 있다는 의미입니다(167).

설교학이나 설교를 잘 하는 법에 대한 책들은 많이 봤는데, <설교 듣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은 저에게 이것이 첫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설교에 있어서는 '전하는 자의 책임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설교 듣는 법>은 '듣는 자의 책임'도 그것만큼이나 엄중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인 재앙과 언택트 사회라는 새로운 환경은 교회의 예배에도 너무나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교회는 모든 예배를 온라인 예배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고, 예배자들은 설교를 듣기 위해 온라인 세계에 접속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의 홍수라고 말하여지는 시대였는데, 온라인에는 각종 예배 콘텐츠가 더욱 넘치기 시작하고, 알고리즘은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종말과 관련된 영상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전 지구적인 재앙이라는 불안과 겹쳐 많은 성도들이 혼란을 느끼는 것을 보았습니다.

<설교 듣는 법>에서 김형익 목사님은 "이단보다 무서운 것은 멀쩡한 교단에 속해 그 교단의 간판을 걸었지만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는 교회들"(10)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데, 온라인상에 검증되지 않은 각종 메시지가 넘치는 것을 보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분별력 있게 말씀을 듣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설교를 듣는 일 자체가 엄청난 영적 전쟁이 되고 있습니다. 말씀을 분별력 있게 듣기 위해서는 각자가 깨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바르게 듣는 것이 내 영혼이 죽고 사는 것과 직결되는 중대사라는 것을 기억하며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눅 8:18). 그런 의미에서 <설교 듣는 법>은 시대가 요청하는 책이며, 이 책 자체가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귀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영광스러운 소명을 말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로서의 부르심입니다(61).

설교자로서 설교에 대한 부담을 느낄 때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뿐이며, 열매는 '밭'의 상태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합니다. <설교 듣는 법>도 이 사실을 일깨웁니다. 말씀을 듣고 열매 맺기 위해서는 '좋은 밭'이 되어야 하는데, 말씀을 듣는 태도가 그 '밭'의 정체,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정체를 드러낸다고 강조합니다.

<설교 듣는 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그 놀랍고 은혜로운 부르심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분별과 은혜입니다. "설교를 잘 듣는다는 것은 설교를 분별해 들으면서 그 말씀을 통해 깊은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11).

여기서 '분별'은 비판적으로 듣는 것과 구별됩니다. 분별하라는 것은 설교나 설교자를 평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이 사도들이 전한 그 복음의 메시지인지, 성경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원리를 견지하는 메시지인지 설교를 들으며 부지런히 살피라는 요청입니다.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도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며, 이제 더 이상 설교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채, 예배자의 자리에 게으르게 앉아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한 말씀을 듣고 깊은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들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는 일이 필요합니다(84).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들려지는 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작업이 아닌 것입니다. 들은 말씀이 나의 믿음과 섞여야 역사가 일어나는데, 들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는 씨름은 듣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특별히 가슴을 쳤던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순종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128). "가장 근원적인 원인인 물론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지만, 이 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권위 인정의 결핍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의 결핍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권위 인정의 결핍은 "하나님이 말씀하시지만 나는 내 인생을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자아 우상의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의 결핍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설교 듣기, 혹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는 듣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되고 그것이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삶 속에서 그 말씀을 계속 묵상하면서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 들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들은 말씀에 믿음을 결부하시는 일, 또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은 곧 들은 하나님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157).

<설교 듣는 법>은 "들음과 순종함 사이에는 기도가 자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온전히 말씀을 듣는 자의 책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찾고, 그렇게 찾은 약속을 붙잡고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 예배자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책에서 강조되고 있는 또 한 가지 교훈은 바로 '지금'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획을 긋는 사건이 될 만한 일이 오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 일어날 수 있음을 기대하십시오. 오늘! 오늘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것!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이보다 더 중요한 순간은 없습니다"(88-89).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음성을 듣는 자는 살리라고 약속하십니다(요 5:25). <설교 듣는 법>은 하나님의 말씀이 듣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일깨우며, 그 은혜가 여전히 주어지고 있는 '오늘', '지금'을 절대 놓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오늘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설교 듣는 법>이 무섭게 일깨우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서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나의 신앙을 위해 좋은 설교자를 찾아 헤매며, 나의 신앙 상태에 대한 책임을 설교자에게 모두 전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이제 그런 핑계를 대지 못하게 합니다. (감사하게도,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만큼은) 말씀은 이미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더 분별력 있게 들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뜨겁게 반응하는 깨어 있는 성도가 되기를 기도하며, 특별히 종말론적인 메시지에 혼란을 느끼며 바른 교회, 바른 설교를 분별하기 원하는 예배자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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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컷 프로 X으로 시작하는 유튜브 동영상 편집 - 따라 하기만 하면 나도 유튜버!
남시언 지음 / 비제이퍼블릭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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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가 되고 싶은, 또는 되어야만 하는 초보를 위한 책!

유튜브를 시청할 때마다 어릴 때 불렀던 노래가 떠오릅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 정말 좋겠네 /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 정말 좋겠네." 선생님께서 우리가 크면 그런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고 하셨지만 믿기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유튜브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인 재난은 우리를 비대면 사회라는 새로운 환경 속으로 몰아넣으면서 새로운 유튜브 시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선택적으로 즐기던 유튜브의 세계가 이제는 누구도 외면할 수 없고, 무시할 수 없는, 필수적이면서도 강력한 소통의 도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파로 유튜브를 구독하는 취미도 없었고, 채널을 개설할 계획도 전혀 없었던 저도 올해 강제적으로 유튜브를 배워야만 하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원칙에 따라 온라인 콘텐츠를 개발하고 제공해야 할 '의무'가 생긴 것입니다. 온라인 세상에 아직 적응도 덜 된 상태인데다, 장비는 물론이고, 아무런 기술적 자원도, 인적 자원도 없는 형편이라 그동안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도망다니기에 바빴는데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파이널 컷 프로 X>(보통은 "파이널 컷 프로 텐"이라고 읽음)은 유튜브를 시작하는 이들을 위해 유튜브 환경에 적합한 '동영상 편집' 기술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책을 구매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책에서 활용하는 <파이널 컷 프로 X> 프로그램은 MAC 운영체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MAC 전용 영상 편집 도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윈도우즈 운영체제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며, <파이널 컷 프로 X>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맥북이나 아이맥 같은 MAC 운영체제를 가진 노트북 또는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꼭 숙지하셔야 합니다.

<파이널 컷 프로 X>은 "방송국이나 영상 제작 프로덕션에서 사용하는 전문가용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MAC 운영체제를 경험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초보들도 비교적 배우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보고 마스터하기 힘들겠다고 지레 겁을 먹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는데, 그만큼 쉽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념부터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따라가기 어렵지 않습니다. 게다가, QR 코드를 활용하여 저자의 유튜브(동영상) 강좌와 바로 연결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직접 따라해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파이널 컷 프로 X>이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책이 아니라, 유튜브 환경에 맞는 동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꿀팁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면, "요즘 동영상 편집 분위기에선 자간을 평소보다 좁게 사용하는 게 트렌드입니다. 글자 자체가 예쁘게 보이면서도 좁은 공간에 더 많은 글자를 넣을 수 있어서 유용합니다. 폰트에 따라 자간 설정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195)와 같이 초보들은 알기 어려운 유튜브 동영상 편집 트렌드를 함께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유튜브 동영상 편집 기술은 이제 이 시대가 요청하는 기술입니다. MAC 운영체제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쉽게 배우면서도 안정적이고 활용도가 높은 기술을 익히기에는 최적의 교재이자 강좌라고 생각됩니다. 초보지만 조금 더 세련되고 보기 좋은 영상 편집을 원한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초보자들에게, 그리고 독학자들에게 이보다 친절한 교재는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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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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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면에서 이 흉터들이 우리를 만나게 해 준 셈이에요."

그가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내 흉터도 마찬가지예요. 이보다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요?"

"없어요."(350)

출판물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이처럼 흡입력이 강한 소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숲과 별이 만날 때>는 각기 다른 '흉터'를 가진 세 사람이 다섯 개의 기적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어느 날, 길을 잃은 한 아이가 '조'가 연구를 위해 머물고 있는 숲속 집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고작 아홉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꾀죄죄한 모습에 맨발인 채로 자신이 바람개비 은하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알 수 없는 말을 합니다. 경찰에 신고하면 도망가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이 꼬마는 '다섯 개의 기적을 보기 전까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조'는 '요정이 버리고 간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아이 때문에 난처해집니다. 아이를 무작정 데리고 있을 수도 없고, 내쫓을 수도 없는 '조'는 이웃집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둥지 연구에 충실했던 예비 조류학자 '조'와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며 어머니와 둘이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알을 낳는 닭 때문에 길가에서 달걀을 팔며 지냈던 '게이브'는 길 잃은 아이를 돕기 위해 연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집을 찾아주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 역시 길을 잃은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몇년 전 암 수술로 커다란 흉터를 갖게 된 조는 자신이 남자에게 환영받을 수 없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숨기고 있습니다. 출생의 비밀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게이브는 자신이 세상에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감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몸이 불완전한 여자와 마음이 병든 남자는, 다섯 개의 기적을 보기 전까지는 집으로 갈 수 없다고 우기는 세상에서 가장 고집 센 꼬마가 그들과 함께 지내며 강렬하고 진실한 생의 흥분을 표출할 때마다 꽁꽁 닫아두었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갑니다.

판타지처럼 별에서 떨어지듯 어느 날 숲에 나타났던 꼬마의 이야기는, '멍' 자국으로 인해 불길하면서도 미스터리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흙 밑에 묻힌 사람의 그림이 자신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숨겨진 사연은 범죄 스릴러에서 마주할 수 있는 공포 속으로 독자를 몰아넣습니다. 죽은 애 몸 안에 자신이 들어갔다고 말할 때, 그것이 두 개의 자아가 한 몸에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면, 어쩌면 이 꼬마 얼사는 가슴이 없는 조의 상처와 마음이 아픈 게이브의 상처를 한 몸에 지닌 상징적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둥지에 있는 아기새들이 첫 번째 기적이고,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가 두 번째 기적이고, 어른이 되는 걸 까먹어서 아기 같이 재미있는 태비 언니가 세 번째 기적이라고 말하는 '얼사'의 달콤한 탄성은 환영받지 못한 존재로 태어난 얼사의 슬픔과 돌봄을 받지 못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얼사의 비극과 겹쳐집니다. 아이가 기적을 마주하며 밝게 빛을 발할 때마다, 얼사 안에 숨겨진 슬픔이 고스란히 제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아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한동안 얼얼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을 두려워한다면 결국 누나처럼 모질게 변할 거고, 그게 바로 당신 누나가 원하는 일이에요"(274).

우리는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서로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 원하지만, 그 마음들이 서로 소통되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죄의 문제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소통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헤매이고 있습니다. "알아요.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도의 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린 여전히 소통하고 싶은 생각들은 뇌 속에 가둬 두고, 꿀꿀대는 거로만 표현하는 유인원에 불과하죠"(196).

상처 입고, 상처를 입히면서도, 그럼에도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우리는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환영해주고 받아들여줄 누군가를 '서로'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을 찾지 못할 때,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으로 스스로를 지키려는 전략을 택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숲과 별이 만날 때>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흉터를 가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분명 기적이지만, 기적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말자고! 그러니 상처 입었다고 모질게 서로를 대하거나, 과거나 미래를 단절시킨 채 영원히 현재를 살지 말고, 순간순간을 아이처럼 달콤하게 즐겨보자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사랑이 싹트는 기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숲과 별이 만날 때>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게이브와 얼사가 대화를 나눌 때, 조가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순간들입니다. 그 장면들이 사랑스럽다고 느껴지는 건, 설령 엉뚱하고 바보 같은 말일지라도 마음으로 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숲과 별이 만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알고 보면 그리 대단한 능력이나 어렵고도 대단한 무엇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이 야생의 세계가 가진 크고 놀라운 비밀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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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트
아네 카트리네 보만 지음, 이세진 옮김 / 그러나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환자들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의 판에 박힌 일상에 코웃음 치고

남몰래 그들의 어리석은 근심 걱정을 비웃은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50)

<아가트>의 화자는 은퇴까지 5개월을 남겨둔 일흔 두 살의 정신과 의사입니다. 상담 회기로는 정확히 800회를 남겨 두고 있는 이 주인공은 해치우듯 남은 상담을 진행하며, 진료소의 벽 안에 갇혀 보내는 지루하고 보람없고 무의미한 시간들을 견디는 중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편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내담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도 않고, 상담 중에 딴 짓을 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지도 않는 정신과 의사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사교성도 없고, 기력도 없이, 진료소에 앉아 지독한 좌절감과 비참함을 느끼고 있는 이 정신과 의사에게 무엇보다 더 정신과 상담이 시급해 보입니다. 몸뚱이가 말을 잘 듣지 않는 노인의 건조하고 반복적인 일상의 너무나 생생한 피로감과 우울감을 마주하고 나니, 나이든다는 것, 특히 몸이 늙는다는 것이 처음으로 무서워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요. 하지만 삶이 자꾸 저한테서 도망가요

… 하지만 어떻게 그 안으로 들어가는지 전 모르겠어요"(62-63).

은퇴 이후의 보상을 기다리며, 이 지리멸렬한 시간을 어서 끝내고 싶은 의사에게 가장 필요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환자'일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아가트 지레므만'이라는 새로운 환자가 찾아옵니다. 말할 상대가 필요하다는 '아가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우울하고 비참하기 짝이 없는 의사에게 막무가내로 상담을 부탁하며 진료 약속을 잡습니다.

병이 씻은 듯이 나을 것이라는 기대도 없이, 다만, 자신에게서 자꾸만 도망 가는 삶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싶다는 '아가트'와의 만남은, 이 정신과 의사에게 '낯선 자기 자신을 퍼뜩 발견'하는 시간이 됩니다. 의사는 이렇게 고백하지요. "경이롭지만 금지된 선물이 내게 뚝 떨어진 것만 같았다"(72). 다리가 부러진 채로 다른 사람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구경하는 구경꾼인 것처럼,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말하는 아가트를 보며, 자신의 삶에 내려앉은 자욱한 안개 같은 절망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아가트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랬기 때문일까요? 의사는 아가트와의 대화를 즐기며, 아가트와의 상담이 진행될수록,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써주는 일에 스스로 용기를 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써줄 수 있는 용기! <아가트>는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능력인지를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이 바로 이것이었음을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건강하다는 증거라는 것도요!

"하지만 선생님, 어떻게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보지 않은 사람이

남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평생 할 수 있나요?"(122)

<아가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통해 치유하는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일단 진료실을 벗어나면 다른 인간과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아예 모른다"는 정신과 의사, "누군가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눈 지가 너무 오래되어 진지하게 그 생각을 하면 상처가 될 지경"(79)이라고 고백하는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환자의 고통보다 자신의 비참함에 더 몰두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의사 선생님은 정작 자신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참함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문제에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을지도요. 자신의 고통을 외면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며,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 스스로의 고통도, 서로의 고통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아가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자신이 완전히 독특하다고 느끼는 동시에 완전히 하찮은 존재라고 느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89). 우리는 어떻게 해야 완전히 비참해지지 않으면서도 교만하지 않게 자신의 삶을 당당히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자신의 '독특함'과 동시에 '하찮음'을 둘 다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기에는 너무 짧고, 하루하루 조금씩 무너져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에는 너무 긴 것이 인생이라지만, <아가트>에는 생을 긍정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인생의 비참함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긍정하고 있지요. 자기 자신의 독특함과 하찮음을 모두 볼 줄 아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참아줄 수 있고,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써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끝으로, 이 책에서는 "계피가루를 뿌린 사과가 오븐에서 익어가는 냄새"(47)가 난다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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