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듣는 법 - 분별과 은혜
김형익 지음 / 두란노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인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귀가 열려 있다는 의미입니다(167).

설교학이나 설교를 잘 하는 법에 대한 책들은 많이 봤는데, <설교 듣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은 저에게 이것이 첫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설교에 있어서는 '전하는 자의 책임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설교 듣는 법>은 '듣는 자의 책임'도 그것만큼이나 엄중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인 재앙과 언택트 사회라는 새로운 환경은 교회의 예배에도 너무나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교회는 모든 예배를 온라인 예배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고, 예배자들은 설교를 듣기 위해 온라인 세계에 접속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의 홍수라고 말하여지는 시대였는데, 온라인에는 각종 예배 콘텐츠가 더욱 넘치기 시작하고, 알고리즘은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종말과 관련된 영상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전 지구적인 재앙이라는 불안과 겹쳐 많은 성도들이 혼란을 느끼는 것을 보았습니다.

<설교 듣는 법>에서 김형익 목사님은 "이단보다 무서운 것은 멀쩡한 교단에 속해 그 교단의 간판을 걸었지만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는 교회들"(10)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데, 온라인상에 검증되지 않은 각종 메시지가 넘치는 것을 보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분별력 있게 말씀을 듣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설교를 듣는 일 자체가 엄청난 영적 전쟁이 되고 있습니다. 말씀을 분별력 있게 듣기 위해서는 각자가 깨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바르게 듣는 것이 내 영혼이 죽고 사는 것과 직결되는 중대사라는 것을 기억하며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눅 8:18). 그런 의미에서 <설교 듣는 법>은 시대가 요청하는 책이며, 이 책 자체가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귀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영광스러운 소명을 말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로서의 부르심입니다(61).

설교자로서 설교에 대한 부담을 느낄 때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뿐이며, 열매는 '밭'의 상태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합니다. <설교 듣는 법>도 이 사실을 일깨웁니다. 말씀을 듣고 열매 맺기 위해서는 '좋은 밭'이 되어야 하는데, 말씀을 듣는 태도가 그 '밭'의 정체,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정체를 드러낸다고 강조합니다.

<설교 듣는 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그 놀랍고 은혜로운 부르심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분별과 은혜입니다. "설교를 잘 듣는다는 것은 설교를 분별해 들으면서 그 말씀을 통해 깊은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11).

여기서 '분별'은 비판적으로 듣는 것과 구별됩니다. 분별하라는 것은 설교나 설교자를 평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이 사도들이 전한 그 복음의 메시지인지, 성경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원리를 견지하는 메시지인지 설교를 들으며 부지런히 살피라는 요청입니다.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도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며, 이제 더 이상 설교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채, 예배자의 자리에 게으르게 앉아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한 말씀을 듣고 깊은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들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는 일이 필요합니다(84).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들려지는 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작업이 아닌 것입니다. 들은 말씀이 나의 믿음과 섞여야 역사가 일어나는데, 들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는 씨름은 듣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특별히 가슴을 쳤던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순종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128). "가장 근원적인 원인인 물론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지만, 이 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권위 인정의 결핍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의 결핍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권위 인정의 결핍은 "하나님이 말씀하시지만 나는 내 인생을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자아 우상의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의 결핍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설교 듣기, 혹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는 듣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되고 그것이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삶 속에서 그 말씀을 계속 묵상하면서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 들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들은 말씀에 믿음을 결부하시는 일, 또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은 곧 들은 하나님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157).

<설교 듣는 법>은 "들음과 순종함 사이에는 기도가 자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온전히 말씀을 듣는 자의 책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찾고, 그렇게 찾은 약속을 붙잡고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 예배자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책에서 강조되고 있는 또 한 가지 교훈은 바로 '지금'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획을 긋는 사건이 될 만한 일이 오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 일어날 수 있음을 기대하십시오. 오늘! 오늘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것!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이보다 더 중요한 순간은 없습니다"(88-89).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음성을 듣는 자는 살리라고 약속하십니다(요 5:25). <설교 듣는 법>은 하나님의 말씀이 듣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일깨우며, 그 은혜가 여전히 주어지고 있는 '오늘', '지금'을 절대 놓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오늘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설교 듣는 법>이 무섭게 일깨우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서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나의 신앙을 위해 좋은 설교자를 찾아 헤매며, 나의 신앙 상태에 대한 책임을 설교자에게 모두 전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이제 그런 핑계를 대지 못하게 합니다. (감사하게도,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만큼은) 말씀은 이미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더 분별력 있게 들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뜨겁게 반응하는 깨어 있는 성도가 되기를 기도하며, 특별히 종말론적인 메시지에 혼란을 느끼며 바른 교회, 바른 설교를 분별하기 원하는 예배자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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