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어떤 면에서 이 흉터들이 우리를 만나게 해 준 셈이에요."

그가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내 흉터도 마찬가지예요. 이보다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요?"

"없어요."(350)

출판물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이처럼 흡입력이 강한 소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숲과 별이 만날 때>는 각기 다른 '흉터'를 가진 세 사람이 다섯 개의 기적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어느 날, 길을 잃은 한 아이가 '조'가 연구를 위해 머물고 있는 숲속 집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고작 아홉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꾀죄죄한 모습에 맨발인 채로 자신이 바람개비 은하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알 수 없는 말을 합니다. 경찰에 신고하면 도망가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이 꼬마는 '다섯 개의 기적을 보기 전까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조'는 '요정이 버리고 간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아이 때문에 난처해집니다. 아이를 무작정 데리고 있을 수도 없고, 내쫓을 수도 없는 '조'는 이웃집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둥지 연구에 충실했던 예비 조류학자 '조'와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며 어머니와 둘이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알을 낳는 닭 때문에 길가에서 달걀을 팔며 지냈던 '게이브'는 길 잃은 아이를 돕기 위해 연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집을 찾아주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 역시 길을 잃은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몇년 전 암 수술로 커다란 흉터를 갖게 된 조는 자신이 남자에게 환영받을 수 없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숨기고 있습니다. 출생의 비밀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게이브는 자신이 세상에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감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몸이 불완전한 여자와 마음이 병든 남자는, 다섯 개의 기적을 보기 전까지는 집으로 갈 수 없다고 우기는 세상에서 가장 고집 센 꼬마가 그들과 함께 지내며 강렬하고 진실한 생의 흥분을 표출할 때마다 꽁꽁 닫아두었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갑니다.

판타지처럼 별에서 떨어지듯 어느 날 숲에 나타났던 꼬마의 이야기는, '멍' 자국으로 인해 불길하면서도 미스터리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흙 밑에 묻힌 사람의 그림이 자신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숨겨진 사연은 범죄 스릴러에서 마주할 수 있는 공포 속으로 독자를 몰아넣습니다. 죽은 애 몸 안에 자신이 들어갔다고 말할 때, 그것이 두 개의 자아가 한 몸에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면, 어쩌면 이 꼬마 얼사는 가슴이 없는 조의 상처와 마음이 아픈 게이브의 상처를 한 몸에 지닌 상징적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둥지에 있는 아기새들이 첫 번째 기적이고,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가 두 번째 기적이고, 어른이 되는 걸 까먹어서 아기 같이 재미있는 태비 언니가 세 번째 기적이라고 말하는 '얼사'의 달콤한 탄성은 환영받지 못한 존재로 태어난 얼사의 슬픔과 돌봄을 받지 못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얼사의 비극과 겹쳐집니다. 아이가 기적을 마주하며 밝게 빛을 발할 때마다, 얼사 안에 숨겨진 슬픔이 고스란히 제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아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한동안 얼얼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을 두려워한다면 결국 누나처럼 모질게 변할 거고, 그게 바로 당신 누나가 원하는 일이에요"(274).

우리는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서로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 원하지만, 그 마음들이 서로 소통되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죄의 문제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소통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헤매이고 있습니다. "알아요.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도의 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린 여전히 소통하고 싶은 생각들은 뇌 속에 가둬 두고, 꿀꿀대는 거로만 표현하는 유인원에 불과하죠"(196).

상처 입고, 상처를 입히면서도, 그럼에도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우리는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환영해주고 받아들여줄 누군가를 '서로'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을 찾지 못할 때,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으로 스스로를 지키려는 전략을 택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숲과 별이 만날 때>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흉터를 가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분명 기적이지만, 기적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말자고! 그러니 상처 입었다고 모질게 서로를 대하거나, 과거나 미래를 단절시킨 채 영원히 현재를 살지 말고, 순간순간을 아이처럼 달콤하게 즐겨보자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사랑이 싹트는 기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숲과 별이 만날 때>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게이브와 얼사가 대화를 나눌 때, 조가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순간들입니다. 그 장면들이 사랑스럽다고 느껴지는 건, 설령 엉뚱하고 바보 같은 말일지라도 마음으로 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숲과 별이 만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알고 보면 그리 대단한 능력이나 어렵고도 대단한 무엇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이 야생의 세계가 가진 크고 놀라운 비밀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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