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인생의 판을 뒤집는 아들러의 가르침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살림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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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제도 아래서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협력보다는 경쟁에 더 잘 준비된 채 학교에 들어간다. 그리고 경쟁 훈련은 학창 시절 내내 이어진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재앙이다. 다른 아이들을 물리치고 앞지르려고 인간힘을 쓰는 건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고 싸움을 포기하는 것만큼이나 재앙이다. 두 경우 모두 아이들은 주로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주된 목적은 공헌하고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확실히 획득하는 것이다"(131-132).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던 아들러는 "인간관계 고민의 원천은 타인을 적으로 인식하는 사고"라고 진단합니다(138). 아들러가 예견했던 재앙이 지금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현대인들은 늘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남'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경쟁에 시달립니다. 아들러는 경쟁에서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만큼이나 경쟁을 포기하는 것도 재앙이라고 했습니다. 두 경우 모두 관심과 중심이 '남', 즉 '타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기준이 남이고, 타인은 적으로 인식됩니다. 심지어 나에게 상처를 준 부모라면 부모도 '적'으로 간주하는 세상입니다. 그때문일까요? '우울한 기분'은 일상이 되고, 우울증뿐 아니라 불안장애, 공항장애와 같은 정신적 문제도 더이상 낯선 질병이 아닙니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린다는 아들러. 그런데 오늘날 유독 아들러의 심리학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심리학은 시대의 요청인 것입니다. 경쟁에 지치고, 거절감에 지치고, 끊임없이 비교 당하고, 관계를 풀어갈 열쇠를 잃어버린 채, 뒤쳐짐이라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그의 한마디는 그 자체로 강력한 치료제였고, 마치 출(出) 애굽과 같은 탈경쟁의 해방 선언이었고, 그것은 구원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미움받을 용기", "아들러 심리학"이라는 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은 철학자로서 (아들러)심리학을 연구하는 '기시미 이치로'라는 일본의 철학자입니다. 그 자신이 아들러 심리학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고, 이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열정이 오늘과 같은 큰 바람을 일으킨 것입니다. <미움받을 용기>의 열풍을 이어가는 이 책도 기시미 이치로의 책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기시미 이치로의 저작으로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은, 아들러 자신이 저작물을 남기지 않은 탓도 있지만, 아들러 심리학을 소개하는 데 이 보다 더 탁월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미움받을 용기> '실천편'이라는 이름로 독자를 찾아왔습니다. <미움받을 용기>를 읽은 독자라면 아들러의 심리학을 한 번 더 복습하며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배웠던 의미부여, 목적론, 용기부여, 과제의 분리, 초기 기억, 공동체 감각과 같은 개념들을 중심으로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수정해가도록 돕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을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는 이 책이 심리학 서적이 아니라 자기계발서처럼 읽힐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과거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프로이트 심리학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과거 부모가 자신에게 했던 훈육을 탓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 경험이 우리의 뭔가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라 우리가 과거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에 따라 결정된다고 아들러는 말합니다"(50). 아들러는 이것은 '목적론', '의미 부여'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합니다. "그들이 인생의 의미에 대한 해석을 바꾸지 않는 한 행동 또한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개인심리학이 결정론과 결별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어떤 경험이든 그 자체로는 성공이나 실패의 요인이 아니다"(55).


아들러의 심리학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ㅇ니지 태도를 수정하고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과거를 돌아보고 나는 상처받았다고 아우성치며 과거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러는 태도를 바꾸고, 의미부여를 다시 하면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까지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인간관계의 고민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 피할 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의미부여를 다시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러는 이렇게 인생과 자신에 대한 의미부여를 '생활양식'이라고 불렀는데, "생활양식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하는 것"(72)이라고 역설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77).


제가 들러 심리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공동체 감각'이라는 그의 독특한 이론 때문입니다. "타인을 친구로 인식하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우월성을 추구하라는 아들러의 가르침은 제가 생활신조로 삼고 있는 성서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기 때문입니다(아들러가 기독교인이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공헌한다는 의식과 관점을 가지면 자연히 누군가와 경쟁하려 들지 않게 됩니다"(130). 단순히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삶을 깊이 통찰한 거장의 결론이라는 측면에서 자기계발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열등콤플렉스와 우월콤플렉스의 공통점은 "자기만 생각하고 산다"(131)는 것이랍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위기, 관계의 위기, 정신(마음)의 위기는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산다"는 것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자기에게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공동체 감각을 가지고) 타인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공헌하기로 결심"해야 한다고, 그런 생활양식을 선택하라는 아들러의 가르침은, 이 시대를 향한 선지자적인 외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인 것만은 확실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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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 신은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가 악하는게 만드는가
아라 노렌자얀 지음, 홍지수 옮김, 오강남 해제 / 김영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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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적 감시자라는 종교적 개념이 거대 사회를 만들었고,

거대 사회의 필요는 거대 신을 숭배하는 친사회적 종교를 키웠으며,

종교와 신의 도움 없이도 협력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복지사회는 이제 종교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이 책은 사실상 종교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는가?


(기독교 신앙은 그것이 '종교'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나는 종교인입니다.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종교'를 객관적으로 통찰해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간입니다. '내가 믿는 바'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점검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처럼 종교사회학은 물론 "문화진화론, 인지과학, 사회과학, 종교 심리학 분야"(352)의 이론을 '통섭'한 책을 만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이 던지는 첫 질문은 "인류는 어떻게 익명성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동안 구성원들 간에 결속력이 강하고 고도로 협조적인 거대 사회를 조직하고 유지해올 수 있었을까?"(13) 하는 점입니다. "결속력이 강한 소규모 집단에서 유전적으로 무관한 익명의 낯선 이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규모로 지속적으로 협력을 실천하는, 익명의 거대한 사회로 급격히 변모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알려진 동물 종은 인간밖에 없다"(18-19)는 놀라운 현상에 주목한 것입니다. "거대한 신들을 섬기는 친사회적 종교"가 바로 그 비밀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종교의 감시 기능입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초자연적 감시자'라는 개념을 어떻게 가지게 된 것일까요? 저자는 이것이 인지기능의 진화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종교는 생각하기 쉬운 직관에서 흘러나오지만 과학은 이런 직관들을 밀어내고 새로운 개념으로 대처해야 하는 힘든 지적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따라서 과학은 무신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 어렵다"는 주장이 흥미롭습니다(324). "인간의 뇌는 종교를 쉽게 받아들이지만 과학과 무신론을 받아들이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349).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자연발생적인 종교가 인류의 필요에 의해 '거대 신'으로 성장해왔고, 이제 복지사회가 그 기능을 대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무신론자가 증가하는 것도 그 한 증거로 제시됩니다. 


초자연적 감시자라는 종교적 개념이 거대 사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여덟 가지 믿음을 기반으로 합니다. 

1. 보는 눈이 있으면 언행을 삼간다.

2. 종교의 효과는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3. 지옥은 천국보다 훨씬 설득력이 강하다.

4. 신을 믿는 사람들을 믿는다.

5. 신앙심은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된다.

6. 숭배 받지 못하는 신은 무력한 신이다.

7. 거대한 집단에는 거대한 신이 필요하다.

8. 종교집단들은 다른 집단과 경쟁하기 위해 자기 집단 내에서 서로 협력한다.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는 이 "여덟 가지 믿음"이 어떻게 거대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검증하며, 모든 주장은 "10장 신 없는 협력" 사회를 향합니다. 제1장부터 9장까지는 "10장 신 없는 협력 사회"를 논증하기 위한 과정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보통 이런 책들은 읽기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기 쉬운데, (실험의 조작과 통제의 한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흥미로운 실험을 예로 논증을 펼치기 떄문에 생각보다 재밌고 수월하게 읽힌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합니다. '일요일 효과' 같은 실험같이 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실험들이 많습니다. 또 학문은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저자의 내공이 깊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매 장마다 흥미로운 질문들로 논증을 이끌고 나가는데, 이 책의 주제를 이끌고 나가는 커다른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일부 종교적 믿음과 관행들은 지난 1만여 년 동안 어떻게, 왜 대규모 협력사회를 출현하게 했는가?" 둘째, "이런 과정을 통해 친사회적 종교는 어떻게 문화적으로 전파되었고 세계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는가?"(27)


진화론적 세계관을 가진 저자는 사실상 이 책에서 "거대 신"의 종말, 다시 말해 종교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속 사회는 종교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저자는 세속 사회가 종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이론을 제시하며, 지난 몇 백년 만에 거대 신을 믿지 않는 거대 집단들이 출현하고 번성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종교의 미래를 예측하기에는 아직 정보가 태부족"이라고 말을 아끼며, "하지만 서로 다른 다양한 종교들 간의 갈등, 종교와 세속적 삶의 방식 간의 알력은 다음 세기에도 계속해서 이 세상의 모습을 만들어나가리라는 점만은 분명하다"(351)는 다소 안전한 결론(?)을 내놓습니다. 


종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 진화론적 세계관, 의존은 나약한 것이라는 신화, 견고한 논리(그럴듯한 설명)의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흥미로웠던 책입니다. 사실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미키마우스, 산타클로스, 제우스가 왜 거대 신이 될 수 없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한 독자라면 충분히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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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살다 - 오늘을 위한 성육신
휴 홀터 지음, 박일귀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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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적인 삶을 추구하라! 



"지난 2012년 가을, 두 게이가 결혼식 웨딩 케이크를 주문했는데 빵집 주인이 이를 거절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 '만약 예수께서 마을에 유일한 빵집 주인인데 두 게이가 와서 웨딩 케이크를 주문하면 과연 그분은 케이크를 만들까?'"(219)


동성애를 넘어 동성결혼문제는 교계뿐 아니라, 세계 사회에서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이 책의 저자 휴 홀터 목사는 실제로 이 문제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고 24시간 안에 약 4천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그리스도인들의 의견도 양쪽으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믿음을 살다>가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하는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의 도발적인(?) 주장을 고려하면 굉장한 상징성을 갖는 질문입니다. 쩌면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우리의 신앙스타일, 신앙성향을 말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검사지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케이크를 만들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책은 당신에게 엄청난 도전이 될 것입니다. 다만, 분명 복음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볼 기회가 될 터이니 성급한 불쾌감을 드러내기 전에, 열린 마음으로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살다>는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의미를 재조명하며, 그것이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풀어낸 책입니다. 저자는 성육신을 다양한 각도에서 정의하는데, 가장 마음에 와닿는 표현은 이것입니다. 성육신은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기 위해 이 땅에서 먹고 숨쉬고 살아간 하나님의 이야기"(79)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삶도,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기 위해 세상 속에서 먹고 숨쉬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생한 하나님, 즉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을 보기 원하는데, 예수님의 성육신이 바로 그것, 즉 하나님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육신적인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말할까요? <믿음을 살다>는 총 네 파트(성육신, 평판, 대화, 직면, 변화)로 나누어 그것을 설명합니다. 이 책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성육신의 삶은 우리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따라 사람들을 도우려 할 때이루어진다"(97)는 것입니다. 


<믿음을 살다>는 급진적입니다. 어떤 내용들은 신성모독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인 휴 홀터 목사는 실제 성육신 교리를 상징하는 그림을 팔에 새겨넣기도 하고(문신), '목사'의 신분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처를 입은 새신랑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결혼식날 그와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고, '소비자 그리스도인들'에게 월급을 받는 직업 사역자들의 사역을 비판하기도 하고, 자신의 집 거실을 펍으로 만들어 사람들과 먹고 마시는 일을 즐기기도 합니다. 휴 홀터 목사가 원하는 것은 종교의 허울을 벗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좋은 소식)을 나쁜 소식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종교이며, 복음을 오해케 하는 것이 바로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보다 신성 모독적이었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믿음을 살다>는 굉장히 불편한 책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렇게 사는 '삶'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삶, 그것이 예수님의 성육신이며, 전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을 강하고 분명하게 일깨웁니다. 도전적인 메시지이고, 불편한 메시지이지만, 알고 보면 전혀 새로운 소망을 안겨주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완전히 설득당했습니다. 


"내일이 오면 당신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세상의 수많은 인파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바라건대, 세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소망을 품고 세상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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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단 - 이단 대처를 위한 교회 개혁
탁지일 지음 / 두란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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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적으로 볼 때, 

단 한 번도 이단으로 인해 교회가 무너진 적은 없다.

교회가 답이다!



이단,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탁지일 교수는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는 교회 개혁, 둘째는 이단의 본질 폭노(공신력 있는 정보 제공), 셋째는 이단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노력이다. 


그렇다면 먼저 교회는 무엇을 개혁해야 할까? 사실 교회의 약점을 가장 잘 아는 존재가 이단이다. 탁지일 교수도 지적하는 바와 같이, 교회의 약점을 교모하게 파고들며 자신들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이단의 전략이다. 탁지일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이단에게 보이는 교회의 약점"을 열 가지로 정리했다. 이 책의 목차, 예를 들면 "종말을 파는 이단, 종말을 잊은 교회에게 묻다"라는 제목만 보아도 현재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 개혁의 방향이 보인다. 탁지일 교수가 분석한 현재 이단 트렌드를 보면, '사회봉사가 이단의 특징'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교회에게 묻는다. "한국 사회는 '착한 이단'과 '나쁜 교회' 중 어느 곳을 더 선호할까?"(16) 이미지 싸움도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한국 교회는 탁명환 소장에 이어, 탁지일 교수와 <현대 종교>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책과 같이 이단의 본질에 대한 공신력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국 교회가 더욱 힘써 지원에 앞장 서야 할 것이다.


이 책이 일깨우는 가장 중요한 이단 대처 방안 중 하나는 "현재까지의 교단의 이단 대책이 주로 정죄와 분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앞으로는 피해의 치유와 회복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201)는 것이다. 이단에 미혹되었다 돌아온 사람들은 이단도 교회도 모두 싫어지는 영적 공황상태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을 기억하자(208). 이단의 미혹에 빠지는 이들은 교회에서 상처 받고 실망했던 사람들이기 쉽다. '교회'로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지 못한 잘못을 통렬하게 회개하며, 그들을 미혹에서 돌이키며, 교회 공동체의 따뜻한 품 안에서 다시 말씀의 뿌리를 든든히 내릴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이단들이 주요 타켓으로 삼았던 포교 대상이 '여성'이었다면, 이제는 '십대 청소년', '대학생 새내기'를 집중 공략하는 추세를 보인다고 한다. 교회는 청소년들 전도가 어렵다고 낙담하고 주저앉아 있는데, 이단들은 문화적으로, 필요적으로(무료 영어 교육과 같은), 따뜻한 보살핌으로, 친밀한 관계 형성 등으로 전력을 다해 파고들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통탄할 노릇이다.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우들과 청각장애우들을 미혹하기 위해 맞춤 자료를 배포하고, 다수의 수화 통역사들까지 보유하는 그들의 열심(!)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게으름은 변명이 될 수 없다. 


교회는 세상에 진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진짜를 가르쳐주어야 한다. 빛이 비추이면 어둠은 물러가게 되어 있다. 교회여, 진리로 승부하자! 우리가 답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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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 평범한 사람들의 기이한 심리 상담집
타냐 바이런 지음, 황금진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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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심리 치료, 혼돈에서 질서로 향하는 여정!




"요컨대 온전한 정신의 끝은 어디며, 정신이상의 시작은 어디인가?"(429)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부끄러운 고백을 먼저 해야겠다. 동기 중 한 명이 어릴 때,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된 적이 있다. '그랬구나' 정도로 지나가며 우리는 여전히 친한 친구였고 지금도 친한 친구이지만, 솔직히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마음에 희미한 '쿵' 소리가 들렸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친구에게 미안하다. 쿵 소리는 짧은 순간이지만 내가 당황했다는 걸, 이유도 없이 희미한 두려움을 느꼈다는 걸 상징하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안에 숨은 그러한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이 책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심리 상담집'이다. 저자는 영국의 권위 있는 임상 심리학자로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임상 경험을 쌓은" 전문가이다. 그런데 저자는 완전 '초짜'(임상심리사 실습생)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전문가로서의 능숙함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으로(!) 초짜시절 자기가 가졌던 두려움과 부족함을 털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그녀의 고군분투를 독자들이 지켜봐주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혼돈에서 질서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은 내러티브, 즉 '이야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429).


임상 실습은 1989년부터 1992년 사이에 3년 동안 이어졌는데, 6개월 단위로 병동을 옮기며 실습을 한다.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는 저자가 옮겨다닌 총 여섯 곳의 상담실(외래환자 정신과, 아동을 위한 정신과 입원 병동, 일반의 진료소, 노인 요양소, 식이장애 입원 병동, 약물중독 병원)을 중심으로 그곳에서 이루어진 상담 사례를 소개한다. 


"한 번 잡으면 쉽게 놓을 수 없는 책"이라는 아마존 독자의 평가는 허언이 아니었다. 칼을 들고 위협하는 소시오패스와의 긴박한 순간, 살고 싶어하지 않는 열두 살 꼬마 안에 감추어진 무시무시한 폭력과 비밀, 아이 아버지와 한 침대를 쓰기 싫어 자기 딸과 한 침대를 쓰려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격리되어 시설형 인간이 되어버린 장기 입원 환자, 자신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노년의 여자, 치매 때문에 악몽보다 더 지독한 과거(홀로코스트)로 돌아가는 노인, 완벽해 보이는 가족을 지배하는 각본과 그 안에 갇혀 신음하는 식이장애 소녀의 비극, 에이즈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최악을 순간을 함께해야 하는 고통까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가 풀어집니다. 비밀 보장의 의무는 핵심 원칙이기 때문에 여기 등장인물과 정황 등 모든 내용이 허구라고 하지만, 여기 소개된 사례들은 우리 주변에, 그리고 우리 안에 엄연히 실재하는 이야기이다.


상담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고, 또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임상심리사'로서 저자는 '이상행동'의 이유를 끊임없이 묻는다. 발작을 겪는 환자라면, 발작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의 발작은 뭘 상징할까를 묻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일관된 내러티브를 찾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비정상, 정신이상이라고 말하는 이상행동이 환자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생존 모드)이며, 상처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그러니 나의 의사소통 방식에 그들을 끼워 맞추려 하지 말고, 그런 행동을 통해 환자가 우리에게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리 상담집이지만 이 책이 소설처럼 읽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병증이나 이상행동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삶과 사연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단과 분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그 아래 숨은 진짜 인간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슬픈지 알겠다고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432). 



"그들이 사회가 용납하기 힘든 방식으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 사회가 그들을 버리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433).


노희경 작가는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를 통해 '정신병'은 미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했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동일하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긋기 전에, 부디 왜곡된 시선을 거두고 소리 없는 신음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보자고 말이다.


인류는 '진화'한다고 믿고 있는 우리에게 그토록 잔인한 학대와 폭력이 일상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모두 위기에 처해 있다. "공동체 안에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홀로 떨어져 고립된 삶을 사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혼자가 편하다고 위안해보지만, 사실은 모두가 사랑에 고프다는 걸, 그래서 아사 직전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 마음에 자꾸만 들러붙는 '지독한 외로움'이라는 녀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녀석이라는 걸 알려 준다. 매혹적인 책이다. 그러나 따뜻한 위로 속에 오싹한 경고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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