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과 서쪽으로
베릴 마크햄 지음, 한유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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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절대로 돌아보지 말고 기억에 남은 시간들이 더 행복했다고 생각하지 말 것. 그 시간은 이미 죽었으니까. 지나간 세월은 이미 정복돼 안전하게 보인다. 반면 미래는 만만찮게 보이는 구름 속에 살아있다. 미래로 걸어 들어가면 구름은 걷힌다. 나는 이 사실을 배웠다"(206).

현대 사회는 더없이 복잡하고 다양해진 것 같지만, 인간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무늬의 패턴이 보입니다. 보통은 나고, 자라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늙어가지요. 나고 자라는 그의 아이는 다시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늙어갈 겁니다. 디테일의 차이가 있을 뿐, 큰 그림으로 보면 사는 모습이 모두 비슷비슷해 보입니다. 전에는 사는 지역에 따라 삶의 패턴에 나타나는 디테일이 차이 나게 달랐던 것도 같은데, 요즘은 그 경계마저도 지워놓고 있는 듯합니다. 예를 들면, 동양의 삶과 서양의 삶의 구분이 확고했으나, 지금은 과거만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일정한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일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길에서 벗어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홀로 간다는 것은, 무엇도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모험'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매력적이고, 많은 이들에게 회한을 남기는 것은, 시대가 아무리 변했어도 꿈꾸는 자에게 필요한 '커다란 용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뜻일 겁니다. 어째서 신은 우리에게 모험에 대한 욕구와 안전에 대한 욕구를 동시에 주신 것일까요. 


"내가 아는 한 당시 아프리카에서 조종사가 직업인 여성은 내가 유일했다"(28).

<이 밤과 서쪽으로>는 30여 년간 아프리카에서 보낸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미지의 땅, 신비의 땅으로 남아 있는 '아프리카'에서 한 여성이 그저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테지만, 베릴 마크햄이라는 여성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최초', '성공'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인생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여성 최초로 경주마 조련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수많은 경마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1931년경) 아프리카에서 프리랜서 조종사로 일하는 유일한 여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서양을 사쪽으로 단독 횡단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는 경이적인 기록도 그녀의 것입니다. 

아프리카를 날아다녔던 그녀는 홀로 비행하는 자유와 아름다움과 고독을 이렇게 당당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내 행성은 비행기다. 그리고 나는 이 행성의 유일무이한 거주자다"(29). 그녀의 삶은, "딱 하나, 지루하다는 형용사만 빼고 어떤 말이라도 붙일 수 있다"는 아프리카를 쏙 빼닮았습니다. "런던으로 가서 1년간 지내고 나서야 나는 산다는 것의 지루함을 입에 올리는 지식인들을 이해하게 됐다"(27)고 고백할 만큼, 아프리카를 뛰어다니고, 날아다닌 그녀의 삶은, 독자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내게는 안장 가방 두 개와 페가수스가 있었다. 안장 가방에는 말 덮개와 솔, 대장장이용 칼, 잘게 부순 귀리 3킬로그램, 아프리카말병에 대비한 온도계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보다 적게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이상 필요한 것 같지도 않았다"(213). 

<이 밤과 서쪽으로>는 내 인생에 남겨진 시간이 얼마나 될까를 자꾸 돌아보게 만듭니다. 나의 인생에 그녀의 인생이 대입될 때마다 초조한 시간의 그림자가 함께 덮쳐 왔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생애를 남겨두고 떠날 때, '불러'(사냥개)처럼 소리 없는 침묵으로 뜨거운 작별을 고할 수 있기를 꿈꾸어봅니다. "싸울 때마다 하나씩 새겨졌던 흉터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혼자서나 나와 함께 누렸던 즐거운 기억들, 맡았던 냄새들, 사소한 놀이, 사냥해서 잡은 혹멧돼지, 소리 없이 살금살금 다가왔던 표범의 발바닥에 대한 기억들을 한때 위대했으나 이제는 차갑게 식은 심장에 봉인한 채 끝을 맞이했다"(213-214).

<이 밤과 서쪽으로>는 참으로 아름다운 책입니다. '지혜로운 거인처럼 누워 있는' 아프리카 땅이, '살아있다'는 생생한 느낌이, 시간도 고통이 되는 죽음의 그림자조차 아름다운 언어로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어째서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 책을 읽고 작가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도 같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문장은 단순히 글쓰기 능력만으로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고독했던 시간들이 그녀에게 사색하는 힘도 길러주었던 것일까요. 질투나게도 그녀는 작가 못지않게 글까지 잘 씁니다. 번역자가 다시 보일 정도로 번역의 힘이 엄청나게 느껴지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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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소망 - 인생의 밤이 길고, 상처가 깊을 때
케이티 데이비스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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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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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상은 내 아이들과 그들이 살던 환경을 '절망'이라 불렀다. 양육의 양 자도 모르는 철부지 미국 처녀가 생판 모르는 우간다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나섰을 때도 세상은 '절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불러 아이들의 상처 난 부위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대언하는 특권을 허락하셨다(162).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를 생각합니다. "양육의 양 자도 모르는 철부지 미국 처녀가 생판 모르는 우간다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냥 시간을 쪼개어 아이를 돌보는 '사역'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식으로 입양해서 같이 사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녀의 삶 속으로 아이들이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둔 것이다. 아이들로 가득찬 집은 조용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 피곤한 삶이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삶이 특권인 이유는,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과 더 없이 친밀하고도 깊게 교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피곤하고 소란한 일상 가운데서 그녀를 은밀히 만나 주신 곳은 뜻밖의 장소였습니다. 그곳은 삶의 어두운 골짜기, 고통과 슬픔과 상실의 한복판이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딸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친엄마에게 내주어야 했던 자리, 딸의 빈 자리를 고통스럽게 바라보아야 했던 자리,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찾으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던 친구가 하나님이 꼭 살려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배신하고 죽음을 맞이한 자리, 속이 울렁거리고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줘야 했던 자리입니다. <그래도 소망>은 소망이 꺾이는 고통 속에 하나님과 씨름하며 몸부림을 쳤으나,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소망'이 아니라 '내 뜻'이 꺾이는 과정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는 그 고통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기쁨과 평안"을 맛볼 수 있는지도 말입니다. 

"한때 서구의 기독교는 사생활과 사역, 집과 일을 구분했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힘들지만 우리만큼이나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다 보니 이런 구분이 점점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 느껴진다. 우리의 경우 삶과 사역을 구분할 수 없다. 삶 자체가 사역의 연속이었다. 하나님이 우리 집으로, 그리고 우리 삶에 보내 주신 사람들을 그분의 눈으로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할수록 그분은 누구도 사역 대상이나 전도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 보였다. … 하나님은 내 눈을 열어 우리가 어둠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을 때 그분의 아름다움을 가장 깊이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해 주셨다"(98).

<그래도 소망>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방해받는 삶의 아름다움, 절망뿐이라고 생각했던 일상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 성경 말씀이 실제가 되는 현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진 소망의 실체! 이 모든 이야기는 아름답고 감동적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겠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한 저에게는 두려움과 부담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삶이 아름다우나 그럴 용기가 없고, 서로 사랑하는 삶이 마땅하나 막상 부딪치면 그거야 말로 죽을 맛이고, 하나님은 성과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신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성과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소망>을 읽으며 하나님을 묵상할수록 영혼 안에 차오르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래도 소망>은 하나님께 답을 구할 것이 아니라, 답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뜻을 고집하며 하나님께 길을 묻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씨름들이 우리의 참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붙들어야 산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꼭 붙들기 위해 씨름했는데, 사실은 모든 순간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책입니다. 밑줄긋기를 포기한 책이기도 합니다. 감동적인 문구에 모두 밑줄을 긋다가는 책 전체에 밑줄을 그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요셉을 떠올렸습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 도저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인데도, "그때에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셨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시는 것 같은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래도 소망> 되심을 이 책이 강력하게 증언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소망)은 어떻게 세상의 것과 다른지 확인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영원을 바라보는 소망은 절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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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포스트잇에 적었다.


새근새근 잠든 아기,
빨랫줄 위에서 펄럭거리는 분홍 옷가지들,
친구의 격려,
충분히 일용할 양식,
입구에 쌓여 있는 샌들들, 
수박 주스를 서로 먹겠다고 달려드는 입들,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어주는 아픔,
생판 모르던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되는 집.

-케이티 데이비스 메이저스, 그래도 소망, p. 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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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어둠 속에서 주님을 만날 뿐 아니라
심지어 어두운 시간도
선물임을 깨달은
모든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 케이티 데이비스 메이저스, 그래도 소망, p.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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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눈 April Snow K-픽션 21
손원평 지음, 제이미 챙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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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봄옷 위에 두꺼운 외투를 걸친 젊은이들이 눈싸움을 하며 이 이상한 계절을 만끽하고 있었다"(47-48).

어릴 적, 교과서는 이렇게 우리를 가르쳤습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여 살기 좋은 나라라고요. 어떤 나라는 눈을 모르고, 또 어떤 나라는 1년 내내 따뜻하기만 한다는데, 한 곳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경험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당연하게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니, 사계절도 때로 지루해집니다. 여름이 오겠지 하면 여름이 오고, 이제 가을이네 하면 어느 새 가을이 와있고, 유난히 추운 겨울을 지나며 봄이 올까 싶을 때에도 거짓말처럼 당연하게 봄이 오는, 작년도, 올해도, 내년도 똑같을 그런 예측 가능한 날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월에 내리는 눈은 특별하지요. "4월에 눈이 내리는 게 이례적인 현상임엔 분명했지만 최근 몇 년간 봄눈이 여러 번 왔기 때문에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30)라 해도 말입니다.
4월의 눈은, 똑같은 악몽이 영원토록 되풀이 되는 것 같은 당연한 반복에 생기는 작은 균열과 같은 사건입니다. 4월에 내리는 눈은 "익숙한 모든 것들을 전혀 다른 형체로 바꿔놓고", "그래서 모든 게 특별해 보"이게 만드니까요(40).

<4월의 눈>은 4월의 눈처럼, 례적이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닌, 어떤 사건을 겪어내고 있는 부부의 일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의 주장에 따라 양수 검사를 받게 된 아내는 "그 거대한 바늘이 배 속을 뚫고 들어갈 때", "아이가 움찔하는 걸 봤"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 검사 때문에 죽어버린 아이를 낳게 된 그 가정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느 가정이나 겪는 일은 아니지만, 또 전혀 없는 일도 아닌, 그 고통으로 당연하게 반복되었던 일상은 서서히 비틀어져갔습니다. 남편은 "우리에게 닥친 일이 잠깐 내린 비라고 생각했었"고, "다시 꽃이 피어날 거라고, 발리에서처럼 근심 없는 날들이 올 거라고"(50) 믿었지만, 나아지는 것 같은 순간에도 모든 것은 금세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고, 영원토록 되풀이되는 똑같은 악몽에 갇혀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들의 일상에 다시 <4월의 눈> 같은 이례적인 일상이 끼어듭니다. 여행자를 위한 홈스테이 교환 사이트에 올린 글을 보고, "일 년의 절반 이상이 눈으로 뒤덮여"(34) 있는 핀란드에서 온 한 여성이 부부의 집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4월의 눈>은 친절한 소설은 아닙니다. 그 핀란드 여성은 원래 1월에 오기로 했었는데, 어째서 그때 돌연 여행을 취소했었는지, 왜 4월에야 다시 오게 되었는지, 이혼을 결심했다 '4월의 눈'처럼 갑자기 찾아온 손님 때문에 잠시 예전으로 돌아갔던 이 부부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이야기는 돌연 끝이 납니다. 그러나 독자는 느끼고 있습니다. 핀란드 여성에게 카레를 대접하고, 둘은 어떻게 만나 부부가 되었는지를 들려주고, 부부싸움을 들키고, 그녀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흐느껴 울었던, 아주 잠깐이지만 낯선 존재와 함께하며 맞이했던 그 낯선 풍경으로 인해, 전혀 달라진 것 없어 보이는 그들의 일상이 "무언가는 아주 천천히 바뀌고"(76)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느 날 나는 가이드에게, 발리에서는 꽃이 지는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가이드는 이상한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발리엔 언제나 꽃이 피어 있답니다"(48).

우리는 언제나 꽃이 피어 있는 발리 같은 행복을
소망하지만, 인생은 4월에 내리는 눈이 있어 오히려 소망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망할 필요가 없는 인생보다, 소망할 수 없는 것을 소망할 수 있는 인생이 훨씬 살아볼만 하다고 말입니다.

<K-픽션> 시리즈는 "최근 발표된 가장 우수하고 흥로운 작품을 엄선하여 출간"한다는 취지를 담아 한영대역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4월의 눈>은 '창작노트'와 '해설'고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영대역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창작노트와 해설을 참고하여, 책을 한 번 더 읽어보는 것도 이 시리즈를 감상하는 한 방법이 되겠습니다. 창작노트와 해설을 읽고 작품을 다시 보니, 소설(문학)이란 깊은 우물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의 샘에서 물을 길어내듯, 음미할수록 마음에서 계속 솟아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읽어낼 수 있는 소설입니다. 문학과 친해지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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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의 역사 - 인간이 묻고 신이 답하다
리처드 할러웨이 지음, 이용주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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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들은 어디서든 동일했을 것이다. '저 너머에 누가 있는가?' 그리고 '죽은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주 다르다. 그것이 중요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 매력적인 이유다"(25).

'종교학'이나 '비교종교학'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단연 으뜸이며,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종교에 관한 어떤 책들은 마치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사랑을 연구한 결과물을 내어놓는 것처럼 종교의 역동을 전혀 이해하지도, 담아내지도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그런 책들을 만나면 학문적으로 아무리 가치가 있는 결과물이라 해도 대실망이었죠. 그런데 이 책 <세계 종교의 역사>는 다릅니다. '종교'라는 단어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신앙(인간의 믿음)의 역동을 이처럼 균형 잡히게, 생생하게, 치밀하게, 시원하게(정확하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그려내는 책은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우리는 비신앙인일 수도 있고, 독실한 신앙인일 수도 있지만, "비판적 신앙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더욱 감동적으로 배웠습니다. <세계 종교의 역사>는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복잡한 종교"라는 힌두교로부터 시작하여, 불교, 자이나교도, 유대교, 조로아스터, 유교, 도교, 선불교, 밀교, 신토, 가톨릭교회, 이슬람, 프로테스탄트교회, 퀘이커교도들(천우회), 이외 많은 신흥종교들(모르몬교, 예수재림파, 여호와의 증인, 과학교, 통일교 등)까지 발생 연대와 장소에 따라 지그재그로 선회하며, 각 종교들이 태동하게 된 배경, 각각의 입장에 따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를 설명해줍니다. 독자는 종교가 인간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전환점의 역할을 하였는지를 살펴보며, 세상과 세상 안에서의 나의 위치를 해석하는 자신의 방식을 스스로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자신의 인생을 해석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종교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영향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종교들이 서로에게 배타적으로 봉인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왕성한 융합을 이루면서 발전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127).

<세계 종교의 역사>가 보여주는 중요한 관점 중의 하나는 종교는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종교의 역사 안에서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다신교에서 유일한 신을 믿는 일신교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전환은 종교란 결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종교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한다"(72). 종교는 종교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변하기도 하지만, 종교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목소리의 민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책의 민족"으로 변한 것이 그 한 예일 것입니다(96). 이에 따라 개인도 하나의 입장에서 다른 입장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함을 조용히 웅변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가 믿는 바 신조를 배반하는 일들을 믿음의 이름으로 버젓이 자행할 수 있음을 이 책이 보여줍니다. 사랑과 용서와 이해를 강조하는 종교들이 그 믿음을 지킨다는 이유로 더 없이 잔혹한 폭력을 휘둘렀던 역사를 폭노함으로써 말입니다. 

"이 계명(십계명 중 두 번째 계명)은 신을 자그마하고 깔끔한 조각품으로 만들고 예쁘게 포장해서 종교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 경고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조직화된 종교가 하고 있는 일이다. 신을 자기들이 만든 정통 이론의 틀 안에 밀어 넣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려고 한다"(117).

종교란 기본적으로 "이 세상을 초월한 또 다른 하나의 세계를 원천"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초월적인 세계를 "보았고", "들었다"고 주장/확신하는 예언자(제사장, 사제)들이 존재합니다. <세계 종교의 역사>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반응을 촉구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세계 종교의 역사>는 종교인들이 먼저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세계와 그 세계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보다 분명하고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반성을 많이 하며 읽었습니다. 그 어떤 성경공부보다 유익했고, 재밌었고, 시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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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나라 엄마 펭귄
이장훈 지음, 김예진 그림 / 51BOOKS(오일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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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나라 엄마 펭귄>은 소지섭, 손예진 주연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속 동화책이라고 합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보지 못했지만, <구름 나라 엄메 펭귄>을 읽고 나니 영화의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슬픈 사랑 속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일 거라고 말입니다. 

엄마 펭귄은 하늘 나라와 지상 세계 사이에 있는 눈처런 하얀 구름 나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구름 나라는 하늘 나라로 가는 사람들이 지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때까지 머무는 곳입니다. 그런데 구름 나라에 머물며 지상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던 엄마 펭귄의 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 계속 눈물이 흐르는지 엄마 펭귄도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펭귄은 빗방울 열차를 타고 지상 세계로 내려왔습니다. 아무도 엄마 펭귄이 왜 계속 우는지 이유를 몰랐지만,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기 펭귄을 만나자 엄마 펭귄의 가슴이 따뜻해지며 눈에서 흐르던 눈물이 멈춘 것입니다.






<구름 나라 엄마 펭귄>은 아기 펭귄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엄마 펭귄이 다시 구름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 슬픈 이별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빗방울 열차를 타고 지상 세계로 내려온 엄마 펭귄과 즐거운 하루를 보낸 이야기는 아기 펭귄의 간절한 소원이 담긴 행복한 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이 책에서는 꿈으로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엄마 펭귄과 아기 펭귄이 다시 만났고, 또다시 헤어지는 것은 슬프지만 엄마 펭귄이 항상 아기 펭귄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아기 펭귄은 씩씩하게 살아갈 힘을 얻었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 헤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누군가는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갑자기 들이닥친 느닷없는 이별을 통해 고통스럽게 그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아프고 슬프지만 우리는 모두 이별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구름 나라 엄마 펭귄>은 그 이별을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언젠가 헤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지만, 언젠가 헤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이, '함께하는 이 시간'이 더 없이 소중하고 간절한 것이지요.

<구름 나라 엄마 펭귄>은 이별을 준비하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오늘 최선을 다해 서로를 사랑하는 것임을 조용히 알려 줍니다. 헤어지는 고통을 덜 느끼기 위해 아예 마음을 닫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구름 나라 엄마 펭귄>을 보니 우리가 사랑했던 그 순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지상 세계에서는 잠시 이별을 하지만, 열심히 사랑했던 우리는 꼭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생깁니다. 

<구름 나라 엄마 펭귄>은 이별의 고통을 위로해주는 책입니다. 영영 헤어졌다는 사실 앞에 절망하고 고통하는 이들에게 이 아름다운 동화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아이에게 우리는 모두 언젠가 헤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싶은 부모님들도 이 동화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지금 사랑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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