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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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싱글맨>으로 살아가는 남자의 어느 한 날.


잠에서 깨어나는 남자. 마치 기억 상실증이라도 걸린듯 그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여기’를 겨우 깨닫는다.  그가 느끼는 것은 ’살아서 죽어가는 이 생명체’, 바로 자신의 늙은 육신이다. 육신을 움직인다. 육신과 정신이 한 몸에서 분리되어 있는 듯, 자신의 육신을 타자처럼 바라본다. 거울에 비친 얼굴, 화석처럼 죽어 있는, ’이 얼굴을 가진 너는 누구냐’고 묻지도 않는다. 그저 육신의 이름을 기억할 뿐이다. "육신은 조지로 불린다."(9)

익숙한 듯, 낯 선 듯, 좁은 공간 안을 움직이던 그를 불현듯 덮쳐오는 것이 있다. 그에 대한 기억 그리고 상실의 확인, 그를 잃어버린 통증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매일, 해마다, 이 좁은 장소에서, 작은 스토브 앞에 팔꿈치를 맞대고 서서 요리하고, 좁은 계단에서 간신히 서로 스쳐 지나가고, 작은 욕실 거울 앞에서 함께 면도하고, 계속 떠들고, 웃고, 실수든 고의든, 육감적으로, 공격적으로, 어색하게, 조급하게, 화나서든 사랑해서든 서로 몸을 부딪은 두 사람을 생각하라. 두 사람이 곳곳에 남긴, 깊지만 보이지 않는 길들을 생각하라! 주방으로 가는 문은 너무 좁다. 손에 그릇을 든 두 사람이 서둘러 가면 이 문에서 부딪치기 십상이다. 거의 매일 아침 계단 아래를 내려온 조지가 자기도 모르는 새 갑자기 참혹하게 꺾인 듯, 날카롭게 갈린 듯, 길이 산사태로 사라진 듯 느끼게 되는 곳도 여기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늘 처임인 양 또다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곳도 여기다. 짐은 죽었다. 죽었다."(10-11)

흐릿한 자신, 오직 그가 죽었다는 사실만이 선명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가장 괴로운 순간은 언제일까? 그가 있던 자리, 그곳에서의 추억, 그가 남기고 간 것들, ’그’만 빼고 모두 제자리에 있는 물건,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숨이 막힐 듯 차오르는 통증, 조지는 그것이 "참혹하게 꺽인 듯, 날카롭게 갈린 듯, 길이 산사태로 사라진 듯"한 통증이라고 묘사한다.

얼마 전, 매일 함께 자고, 함께 놀던 강아지를 잃었다. 그후로 함께했던 습관이 하나씩 떠오를 때마다 바늘을 하나씩 삼키는 심정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 길에 "맛있는 거"를 외치며 하나씩 주었던 간식, 주인을 잃은 간식 봉지를 들고 이걸 어째야 하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아침이 있었다. 그 아침이 조지의 아침과 겹쳐진다. 그렇게 조지의 하루가 시작된다.

58세의 조지. 대학교 교수이고, 미국에 사는 영국인이다. 얼마 전 사랑하는 사람을 교통사고로 잃은 그는 ’동성연애자’이다. 1962년의 미국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홀로 동성연애자로 살아가는 남자의 하루는 텅 비어 있다. 

이웃 주민을 만나고, 고속도로를 운전해서 학교에 도착하고, 학교 테니스 코트를 지나, 강의실에 들어가고, 동료 교수를 만나고, 식사를 하고, 한때 연적이었던 여인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들르고, 스포츠 센타에서 운동을 하고,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오랜 여자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술집에 가고, 그곳에서 제자를 만나고, 잠이 들 때까지, 그는 자신이 ’조지’인 척 연기를 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심지어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동떨어진 삶. 어느 순간 잠시 진짜 조지가 되었다가도 곧 끔찍하게 자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감각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그저 움직이는 그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짐을 잃어버린 통증을 느낄 때 뿐인 듯 하다. 짐과 함께 갔던 슈퍼, 짐을 처음 만났던 술집, 그렇게 불쑥불쑥 찾아드는 "그 기억들은 조지를 칼로 찌른다."(126)


"그러나 조지가 계속 살아가고자 한다면, 조지는 잊어야 한다. 짐은 죽었다."(209)

조지도 짐을 잊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는 살고자 한다. 살려면 그의 과거가 된 짐을 잊어야 한다. 늙어가는 그에게 미래는 없다. 그는 두렵다. 그래서 "조지는 현재만 끌어안는다. 현재에 조지는 새로운 짐을 찾아야 한다. 현재에 조지는 사랑을 해야 한다. 현재에 조지는 살아야 한다......"(210) 그런데 조지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조지의 육신에서 분리된 정신인가? 갑자기 등장한 작가인가? 지금까지 조지를 따라다니며 그를 지켜본 바로 ’우리’인가?

<싱글맨>을 우리말로 옮긴 이는 이 책의 배경이 되는 1962년 겨울이라는 배경이 꽤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실재하지 않은 위기가 거대한 공포감을 만들어낸 시기. 그 거대한 공포 속에 조지의 하루가 놓여 있다. 지독한 상실감, 늙어가는 몸에 대한 두려움, 소수자로 살아가는 고독 안에 잠긴 독자라면 자신의 삶과 겹쳐지는 조지의 하루에 깊은 공감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이해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조지, 그의 곁에 다가가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떻게 시작해야 조지의 마음에 가닿는 대화가 가능할까?

"자네들 젊은이들은 캠퍼스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한테 다가와서 나더러 비밀스럽다고 말하지. 세상에나, 비밀스럽다니! 생각이 거기까지밖에 못 미치나? 내가 얼마나 대화를 그리워 하는지 희미하게라도 알아챌 수 없나?"(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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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직장인 잔혹사
임기양 지음 / 마젤란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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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잔혹한 직장생활, ’여자’ 답게 돌파!

’여자 직장인’이라 이름 붙이는 것부터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여자 직장인’이라는 ’흑’ 아니면 ’백’이라는 극단적인 범주에 모든 여자 직장인을 몰아넣어도 될 만큼, ’여자’이기에 겪는 직장생활의 잔혹한 문화가 분명히 존재하는 걸 어떡하랴. 그것이 현실이다! 말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하는 그런 시시껄렁한 것에서부터 법에 호소하고 싶은 수준까지 ’여자’라서 억울한 원시적인 차별이 21세기 직장생활 가운데 여전히, 그리고 버젓이 존재한다. 

"싫으면 그만 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여자 직장인 잔혹사’는 사표로 해결되지 않는다. 세상의 반은 여자이고 반은 남자이다. 남자와 함께 생활하는 직장이라면 어느 직장이든 형편은 거기서 거기이고, 여자들만 모인 직장이라 하더라도 상대해야 하는 거래처가 있다. ’직장’ 생활을 하는 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만 두자니 형편이 여의치 않고, 계속 다니자니 하루에도 열 두번씩 부글부끌 끓어오르는 직장생활! 그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한 여자 직장인들의 고민에 마침표를 찍어보자는 야심한 의도를 가진 책이 나왔다. ’사회생활 10년차의 여우 같은 곰’이라 소개되는 임기양 라이프 칼럼니스트가 쓴 <여자 직장생활 잔혹사>이다.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고, 필요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그녀와 함께 직장 여성들의 ’한풀이 수다’가 시작된다. 여기 등장하는 사례들은 여성학에서 연구자료로 사용해도 좋은 만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 목소리 하나하나를 모아 마치 다정한 언니가 고민을 상담하듯 저자의 세심하고 차분하게(절대 격하지 않다!)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준다. 조언자가 필요하다면 그녀의 ’칭찬’과 ’일침’에 귀기울여 보시기를. 잘하고 있는 것은 서슴없이 "잘~ 했습니다, 당신!"이라고 격려하고, 아닌 것은 서슴없이 "그래도 이건좀!"이라고 일침을 가하는 그녀를 통해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마치 여성 직장인을 진두진휘하는 작전 사령관 같다. 그녀 나름 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치밀하게 구성한 직장생활 승리 전략을 전수해준다. 세상을 향해 제자들을 내보내는 예수님은 마치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당부하셨다. 그녀도 우리에게 이와 같이 당부하며, 우리를 강하게 무장시키기 위해 ’착각뒤집기’ 전법을 구사한다. 징정거리는 어리광은 금물이다. 합리화는 정답이 아니다. 나는 "창찬보다 비판에 익숙해지라"는 조언을 통해 값진 깨달음을 얻었고, "도원결의의 낭만적인 의리만을 새기지 말고 생존법부터 익혀두고 여유롭게 의리를 논하라"는 따끔한 충고를 통해 직장생활의 환상에서 깨어났다.

<여자 직장인 잔혹사>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직업 환경에 괴로워하고 탄식하기보다, 좀 더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를 바꿀 수는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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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2
조윤범 지음 / 살림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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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클래식! 가까이, 더 가까이!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1권을 읽은 독자라면 2권의 발간이 매우 반가웠을 것이다. 1권에 비해 많이 얇아진 것(!)이 다소 아쉽다. ’클래식’이라는 주제와 책의 무게감이 주는 부담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재밌기" 때문이다.

영어처럼 음악도 아는 만큼 들린다. 클래식 음악은 해독의 필요성을 느끼는 난해한 문자처럼, 내게는 공부가 필요한 분야였다. 클래식 음악이 흐를 때, 작곡가의 이름을 알아맞춘다든지 곡의 이름이나 연주되는 악기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을 우리가 ’교양인’으로 분류하는 이유도, 그 ’공부’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따로 공부"하는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문제는 그 공부가 지루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들썩이게 해주는 유행가처럼 가사가 있는 것도 아니여서 직접적인 메시지를 알 수 없고, 그러니 감정이입도 어렵다. 게다가, (대부분) 제목도 없고,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 용어들에, 사용되는 악기도 많고, 게다가 한 곡을 다 듣기도 전에 졸음이 쏟아질 정도로 길기까지 하다! 

그런데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은 이렇게 재밌게 읽히는데 왜 그동안 나에게 클래식은 그리 지루한 분야였나 생각을 해보니, ’감상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그랬던 것 같다. 세상에, 고등학교 때까지 음악마저 나에게는 ’암기과목’이었던 것이다.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에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대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까지 들추어내는 조윤범은 ’클래식계의 연예부 기자’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소소한 이야기들을 캐내어 들려준다. 그리하여 이름을 외우기에 바빴던 음악의 대가들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음악의 대가들에게 개인적인 친밀감을 느끼는 순간 그들의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그 음악을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영어를 듣는 귀가 열리는 것처럼, 아는 만큼 클래식이 들려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을 읽으면 마치 조윤범이 ’지휘’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를 통해 음악이 재해석되고, 독자의 귀에 연주된다. 하나의 필터처럼, 조윤범을 통과해 우리에게 들려지는 음악은 그가 입혀주는 색깔을 입고 있고, 그가 보여주는 모양을 띠고 있다. 유쾌하고 명쾌하다. 그리고 별나다!

영화를 보면, 클래식이 연주될 때 사회적인 신분에 따라 앉아서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구별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사회 안에서도 ’고상한 음악’ 클래식은 그런 구별짓기의 도구라는 인식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지금은 잘 모르겠다) 비싼 악기와 비싼 레슨비 때문에 클래식은 부잣집 아이들이나 배울 수 있는 취미였다. 그 구별짓기의 벽을 깨고, 그렇게 내게는 너무 먼 음악이었던 클래식을 즐길 수 있도록 귀를 열어주고, 길을 내어주는 조윤범이 고맙다. 나는 언제라도 기꺼이 그의 관객이 되고 싶다.

빨간 머리 신부님, 비발디(1678-1741)에서 할리우드의 스타 음악가, 존 월리엄스(1932-)까지 생각보다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천재 음악가들과 친해질 기회를 가져보라고 권한다. 이 책을 먼저 읽은 내가 약속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재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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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병원 알고 갑시다 - 전문의가 밝히는 척추질환의 허와 실!
리 헌터 라일리 III 외 지음, 권영준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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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홉킨스대학 척추전문의에게 듣는다!


병원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나는 웬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병원을 잘 찾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동생을 데리고 어머니는 급하게 병원을 찾았다. 그곳은 지역 내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규모 있는 병원이었다. 병원에서는 "잘못하면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다"는 청천병력 같은 진단을 내렸다. 어머니는 무릎에 주사기를 꽂고 물을 빼내는 등 동생이 하루 종일 이런 저런 검사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검사비를 지불해가며 극도의 불안과 긴장 속에 떨어야 했다. 견디다 못해 의사를 붙들고 자세히 설명을 해달라고 요청했더니 의사가 귀찮다는 듯 그러더란다. "제가 설명해도 못 알아들으실 겁니다."

결국 그 자리에서 병원을 나왔고, 아는 분을 통해 소개받은 전문병원에서 동생은 일주일을 입원치료한 뒤, 지금까지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옮겨간 병원에서는 몇 가지 검사 뒤, 심각한 경우에는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도 갈 수 있는 문제지만, 지금 그 정도의 단계는 아니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아직도 그때 그 병원에서의 일을 악몽처럼 기억하고 있다. 좋은 의사와 병원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해준 경험이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지내는 나는 책상에 조금만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에 통증을 느끼는 일이 자주 있다. 주변에서 병원에 가보라고 권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친구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는 병원에 갈 생각을 아예 접어버렸다. 몇 년 전, 교통사고 이후 가끔 허리가 아팠다는 친구 어머니는 통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교통사고로 뼈가 어긋나 있다면서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아예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고 한다. 너무 놀라 마음이 급해진 어머니는 당장 수술을 결정하고, 뼈 안에 철심을 박아넣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곧 완쾌될 것이라고 했던 의사의 장담과는 달리 수술 전보다 더 몸을 움직이기 힘들고, 최근에 장애 판정도 받았다고 한다.

병원에 가는 일이 오히려 무서울 만큼 병원에 대한 불신이 큰 나에게 <허리 병원 알고 갑시다>라는 책이 눈에 번쩍 뜨였다.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의 척추 신경외과와 척구 정형외과 전문의 2명이 함께 집필한 책이다. 요통 환자들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정말 허리 병원은 꼭 "알고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요통은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며, 그 진단이 쉽지 않고 치료법도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그러니 개개인의 허리 질환은 개별화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자에 따라 그 치료법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환자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사를 만나느냐에 따라(그 의사의 전문 분야에 따라) 치료법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강북삼성병원 신경외과 교수님은 이렇게 충고한다. "요통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에는 약물치료, 운동치료를 포함하는 보존적 치료, 수핵 제거술과 요추 고정술 등의 운동 치료가 있으며 최근에는 조직공학과 재생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생물학적 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아무래도 척추 전문의들은 각각의 전문 분야에 따라 보존적 치료나 수술 치료의 양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요추 질환의 원인, 진단, 치료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준다."(6) 그리고 이 책의 저자도 동일한 당부를 한다. "요추를 치료하는 데 여러 가지 많은 접근이 있으므로 환자들은 그들의 치료법을 결정하는 데 충분히 설명을 들어야 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만 한다."

<허리 병원 알고 갑시다>는 허리 통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원인, 그리고 다양한 치료법까지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전문적인 의료 지식이 없이도 쭉쭉 읽어나갈 수 있을 만큼 설명도 쉽다! (친절한 의사이다.) 특별히 허리 수술이 가능한 한 안전하면서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주의해야 할 점과 더불어 허리 수술의 (위험과 한계를 포함한) 효과를 상세히 알려 준다. 더불어 비수술적인 치료 방법도 알 수 있다.

책에 기록된 의료 정보가 우리 것이 아니라, 미국의 것인 점이 다소 아쉽다. 그러나 이 책은 척추 질환 치료와 관련된 전문가들에게도 치료 과정에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상세한 조언을 담고 있다.

어느 병이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요통은 특히나 병원과 의사를 잘 만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요통의 원인을 찾기는 매우 어렵지만 치료법이 다양하다는 점이 선택을 더 어렵게 한다. 게다가, "요추 질환은 대부분 안 좋은 자세나 생활 습관 등으로 인해 악화되는 퇴행성 질환이므로, 치료와 회복의 과정에서 환자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따라서 ’치료법’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환자 스스로 요통과 다양한 치료법을 이해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전문의들이 다양한 치료법을 꿰뚫고 있어서 내게 맞는 치료법을 찾아주면 가장 좋겠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이니 아무래도 자신의 방법을 먼저 추천할 수밖에 없겠지만) 우선적으로 자신의 전공 분야에 따라 치료를 시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결국, 누가 효과를 봤다는 방법을 무조건 따라하기보다 다양한 치료법 가운데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는다. 그러니 꼭 "허리 병원은 알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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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 -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선택의 비밀
롬 브래프먼 외 지음, 강유리 옮김 / 리더스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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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비이성적인 행동의 저항할 수 없는 이끌림에 노출돼 있다."(29)


핸드폰 요금제를 선택할 때, 가장 유리한 할인 요금제를 사용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핸드폰 사용 패턴을 고려하여 여러 가지 요금제의 장단점을 비교분석하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고 믿는 선택이 사실은 비이성적인 힘에 동요된 것이라면? <스웨이>는 무제한으로 사용하는 월정액보다 쓴 만큼 내는 요금제가 더 유리할 가능성이 큰데도 우리가 덜컥 무제한 요금제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논리적인 관점을 방해하는 비이성적인 힘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기(Sway)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성을 자랑하지만 사실은 비이성적인 힘에 휘둘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성’을 자랑하는 인간이 비이성적인 심리적 힘에 아직도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치명적인 결과를 양산하고 있다. <스웨이>는 비이성적인 힘에 동요되는 우리의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베테랑 조종사가 어이없는 실수로 사상 최악의 사고를 내기도 하고, 유능하고 경험 많은 의사들이 아이를 죽게 만드는 충격적인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전혀 끌릴만한 상대가 아닌데도 사랑에 빠지거나 결혼도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논리나 이성과 전혀 상관없는 비이성적인 힘에 자주 흔들리는 것일까? <스웨이>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하여 좀 더 깊숙한 곳까지 탐구하여 들어간다. "우리의 비이성적인 행동 밑에는 어떤 심리적 힘이 잠재해 있을까? 이런 힘은 어떻게 우리에게 소리 없이 다가오는가? 우리가 거기에 가장 취약한 때는 언제인가? 그 힘은 우리의 직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우리의 업무관계나 대인관계를 어떻게 바꿔놓는가? 우리의 금전관계 혹은 생명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는 언제인가? 그리고 왜 자신이 그 힘에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가?"

<스웨이>는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가 비이성적인 힘에 동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비이성적인 심리적 힘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스웨이>가 밝혀낸 그 힘의 정체는 ’손실기피, 집착, 가치귀착, 진단편향, 카멜레온 효과, 공정성, 기대감, 집단역학’이다. 이 8가지 역동적인 힘들이 논리적인 관점을 방해하고, 우리의 개인생활과 조직생활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손실’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놀랄 만큼 강력한 반응이 도출된다(32). 실제로는 월정액보다 사용한 만큼 내는 요금제가 더 유리한 데도 ’손실기피’라는 힘이 발동하면, 전화통을 붙들고 친구와 수다를 떠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무제한 요금제를 신청하고 만다는 것이다. 잠재적 손실을 피하고자 약간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게다가, 손실기피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데, 이것이 집착과 결합되면 그 힘은 우리의 사고와 의사결정에 더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위험 부담이 클수록 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웨이>는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심리적인 힘의 정체를 폭로하면서 여러 가지 대안도 함께 제시하고 있는데, 비이성적인 힘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 묘수를 기대한 것에 비해 <스웨이>의 저자가 내리는 최종적인 결론은 다소 김이 빠진다. "우리의 사고와 생활을 지배하는 이러한 심리적 힘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그 힘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감춰진 힘의 세계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뿐이다."(218) 그러나 <스웨이>의 결론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르쳐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겸손’이다. 인간만이 ’이성’을 가진 존재라고 자랑하지만, 사실은 비이성적인 힘에 휘둘리고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스웨이>를 읽으며, 인간이 이처럼 비이성적인 힘에 흔드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끝을 모르는 ’욕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욕심이 오히려 더 큰 함정을 스스로 파고 있는 형국이랄까, 절대 손해보지 않으려는 욕심에 이성이 마비되고 마음이 흔들려 결국은 그런 엉뚱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 핸드폰 요금제와 같이 우리의 심리를 파고드는 교묘한 전략에 당하지 않으려면, 오히려 조금씩 손해보며 살아야겠다는 삶의 태도를 가지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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