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터 맥그래스의 믿음을 찾아서 - 미지의 섬이 확신의 섬으로
앨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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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섬이 확신의 섬으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이름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지적 만족에 취한 과학적 무신론자였으나 자연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옥스퍼드대학에 들어갔다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이 왜 진리인가를 누구보다 열심히 탐구한 세계적인 지성이자, 신학자로 이름이 높았으니까요. 이 책에도 자신이 어떻게 과학적 무신론의 허위를 깨닫고 "뜻밖에"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가 짧게 고백되어 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으며 참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인간 이성과 인간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우리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진실되게 추구하는 자라면 결국 '복음'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습니다. 의미는 참이나 거짓으로 입증할 수 없지만,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우리 모두는 결국 어떤 믿음과 가치에 동의하고 충성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믿음을 찾아서>는 믿음이라는 미지의 섬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신경'(사도신경, 니케아신경)을 지도삼아 기독교 신앙의 풍경을 탐색해볼 수 있도록 돕는 안내서입니다. "신경은 초기 교회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포착하려고 애쓰던 중에 합의하여 신중하게 선택된 말이다. 그 말들은 간략한 지도가 풍경을 묘사하듯 기독교 신앙을 묘사한다"(71).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는 결국 '나'와 '이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을 날카로운 논리로, 그러나 그 진리가 그려내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탁월하게 깨닫게 해줍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인격을 마음으로나 머리로나 온전히 믿는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압도적인 사랑에 우리가 드러내는 즐거운 반응이다. "교리적 명제들에 대한 우리 지성의 동의일 뿐 아니라, 신실한 창조자이자 자비로운 구원자의 손에 우리의 전 자아를 맡기는 것이다"(월리엄 템플).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과의 이 신뢰 관계 덕분에 가능해지는 존재의 변화를 수용한다"(97).

<믿음을 찾아서>는 "나는 믿습니다"라는 이 단순한 고백 안에 담긴 기독교 진리가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신앙인은 그 "믿는 바"에 동의하고, 신뢰할 뿐 아니라, 헌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일깨웁니다. 믿는다는 것은, 우리 뜻(지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빛 아래서 우리 자신과 우리 세계를 본다는 뜻이며, 하나님께 닻을 내리듯 자신을 맡기고 온전히 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책을 읽으며 "믿음은 곧 인격적인 헌신"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곱씹어 보았습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소리내어 자신이 믿는 바(사도신경)를 고백합니다. 그런데 어느 새 이 고백은 아무 감동없이, 아무 결단없이, 습관처럼 행해지는 종교행위가 되고 있음을 봅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삶과 믿음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라는 비판이 높습니다. 어쩌면 복음을 흔하게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우리에게 가장 큰 위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을 찾아서>는 그 어떤 기독교 변증서보다 기독교 진리를 생생하고 아름답게 설명해주고 있으며, 논쟁적이지 않으면서도 매우 날카로워 진리를 깨닫는 희열이 무엇인지 충만하게 맛볼 수 있게 해줍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가진 복음이 얼마나 매력적이며, 놀라운 삶의 길인지를 감동적으로 깨닫게 해줍니다. 지금까지 배웠던 어떤 '교리', 어떤 '신경'(사도신경, 니케아신경) 강의보다 탁월하며 광대하고 풍요롭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에밀 브루너의 말을 재인용하여) "복음은 늘 동일하지만,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항상 새로워져야 한다"(100)고 강조합니다. 복음에 대한 이 새로운 이해는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게 만들어주며, 진리 안에 있다는 확신을 더해주며, 무엇보다 믿음이 이론이 아니라, 연애사건에 가까움을 감동적으로 일깨워줍니다. 믿기는 하지만 감동이 없는 성도들, 기독교 신앙이 얼마나 탁월하고 매력적인 진리인지 맛보지 못한 사람들, 교리 공부가 지겨웠던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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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셀프 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29
송윤경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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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웅장한 고대 유적지와 푸른 지중해의 근사한 휴양지뿐 아니라 바다 위에 떠 있는 신비한 도시 베네치아까지 품고 있는 이탈리아로 떠나기로 했다."(프롤로그 中에서)

나는 오늘도 여행을 꿈꿉니다. 누군가 "삶은 여행"이라고 노래했듯이, 어차피 삶은 여행이니까요. 그런데 오늘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이탈리아 셀프트래블>이 이탈리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속삭이는 듯 합니다. 유럽 여행 중에서도 이탈리아 여행은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여행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탈리아는 "팔방미인처럼 온갖 매력을 다 갖추고" 있는 여행지이니까요.

여행자들이 믿고 보는 해외여행 가이드북으로 유명한 상상출판의 <이탈리아 셀프트래블>은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불멸의 도시 로마, 바다 위의 낭만도시 베네치아, 연인들의 종착역 피렌체, 아름다운 디자인 도시 밀라노, 정말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나폴리, 최후의 날부터 멈춰버린 폼페이,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그 소렌토, 지상 낙원 포지타노, 해안 절벽 마을 아말피, 이드리아 해안의 작은 항구 도시 바리, 사랑스러운 동화 속 마을 알베로벨로까지, 모두 품고 있습니다.

 

 


 

"여긴 원래 그래요."

"볼 것 많고 할 것 많은 이탈리아에서의 1분 1초가 아쉬웠던 나에게 이때의 경험은 여행을 다시 생각하고 계획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이탈리아 여행이지만, 이탈리아 여행을 가장 망설이게 하는 요소는 아마도 소매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조심을 했는데도 로마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지인들이 즐비하니까요. 낯선 해외에서 소매치기를 당하는 것보다 더 당황스러운 일도 없을 텐데요, <이탈리아 셀프트래블>은 소매치를 예방하는 법부터, 소매치를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포함하여 이탈리아 여행 전에 알아두어야 할 정보들을 꼼꼼하게 일러줍니다.

특별히 <이탈리아 여행 전 많이 묻는 질문 10가지>에 대답해주고 있는데,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이라 친절한 답변이 반가웠습니다. 이탈리아는 "여름에는 북부, 겨울에는 남주를 여행하기 좋아 사계절 모두 적기"라고 할 수 있는데,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에는 온도가 급격히 차이가 나니 겉옷 혹은 카디건을 꼭 챙기자"는 친절한 팁도 일러줍니다. 기차 티켓은 여행 3-4개월 전에 예약하면 더 저렴하다는 것, 자유여행을 한다면 취향에 따라 현지 패기지를 이용하는 것도 추천한다든지,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미리 동전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든지, 4월 21일은 로마 건국 기념일로 박물관 및 유적지가 일반인에게 모두 무료로 개방되지만, 크리스마스에는 대부분의 상점과 레스토랑, 카페가 문을 닫는다든지 하는 현지에서 당황하지 않고 실패가 없는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돕습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가 티볼리의 폭포와 경치를 보고 말했다.

"이곳을 알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음 깊숙한 곳까지 풍요로워졌다."

로마 귀족의 휴양지였던 티볼리를 여행해보자(34).

<이탈리아 셀프트래블>의 저자는 "북부에 비해 가난한 남부는 위험다는 소문이 자자해 많은 사람들이 천덕꾸러기로 여기는 곳이지만 사시사철 따뜻하고 온화한 지중해서 기후 덕분에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24)고 알립니다. 이탈리아에 간다면 당연한듯 로마를 가봐야 할 것 같지만, 로마의 콜로세오, 바티칸 시국, 베네치아의 운하와 곤돌라, 베로나의 줄리엣의 집, 피렌체와 밀라노의 두오모, 아시시의 토스카나 평원, 알레로벨로의 전통가옥, 포지타노에서의 휴식, 고대 도시 폼페이, 친퀘테레의 하이킹 등 이탈리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많지만, 만약 이탈리아를 여행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여행 기회만 주어진다면 저는 낭만적인 소도시 여행을 택할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셀프트래블>은 은근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이탈리아 남부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셀프트래블>은 곳곳에서 이탈리아 여행 경험이 많은 베테랑 가이드 포스가 느껴집니다. 이 작가 분이야 말로 이탈리아를 즐기는 가장 완벽한 방법을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고나 할까요. <이탈리아 셀프트래블>은 이탈리아 여행에 관한 모든 것, 특별히 이탈리아 여행을 망설이게 만드는 모든 염려와 고민을 날려버리는 상세하고도 친절한 정보를 가득 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꿈꾸는 분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 분들, 계획 없이 떠나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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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여행 가이드북 - 아이가 좋아하는 사계절 여행지
권다현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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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엄마가 정리한 아이 여행 백과사전!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일 텐데요.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 중에 가장 좋은 것을 무엇일까요? 언젠가 우연히 스치듯 본 방송 중에서 아이에게 "경험을 선물하라"는 누군가의 조언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 삶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지혜는 다양한 경험에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 중에 여행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시간과 경험을 선물하는 일이며,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 소통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 즐겁고 아름다운 아이의 기억 속에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상상출판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아이여행 가이드북>은 바로 그러한 뜻을 가진 부모님을 돕는 책입니다.





<아이여행 가이드북>은 아이와 함께 다녀오면 좋을 여행지를 계절별, 지역별로 정리한 국내여행 가이드북입니다. 여행작가 엄마가 정리한 가이드북이라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부모님들이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고충이 무엇인지를 잘 헤아리고 가이드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차별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이가 카시트에 앉기를 싫어해서 장거리 여행은 엄두도 못 낸다든지, 아이가 걷기를 싫어한다든지, 자녀들의 성향이 너무 달라서 여행지를 고를 때마다 고민이라든지, 아이가 아직 어려서 기억하지도 못할 것 같은 여행도 의미가 있는 것인지, 짐 꾸리기만으로도 지치는 아이와의 여행에서 짐을 줄일 수 있는 꿀팁은 무엇인지 궁금한 부모님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을 해주기도 합니다. 여행작가 엄마가 아이와 여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덤입니다!

물론 아이와의 소통이지요. 일상에서는 나누기 어려웠던 속마음도 여행에서는 의외로 툭툭 털어놓게 되니까요. 또 하나는 아이에게 여행문화를 가르치는 일이에요. 편의점이나 대형마트보다는 현지 구멍가게나 전통시장을 이용하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테마파크보다는 때 묻지 않은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며 여행하는 방법을 먼저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이런 여행을 경험한 아이들 세대에는 우리나라의 여행문화도 한층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질 거라 믿어요(26).

<아이여행 가이드북> 中에서





<아이여행 가이드북>은 계절별, 지역별로 여행지가 정리되어 있어, '지금' 어디로 떠나면 좋을까? 고민이 될 때 아주 유용합니다. 백과사전식으로 정리되어 있어 찾아보기 쉽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여행작가 엄마는 "아이 방에 커다란 지도를 붙여두고 매번의 여행을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기며 기록해"둔다고 합니다(25). 아이와 함께 "우리만의 여행지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아이와 우리만의 여행지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이 책은 아주 유용합니다. 아이의 나이대에 맞게 어느 계절에 어느 여행지를 택하면 좋은지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인 느낌은 '초록초록'한 여행지가 많습니다. 각종 박물관과 다양한 체험관도 소개되고 있지만, "솔방울 하나만 있어도 잘 노는" 아이들에게 자연만큼 좋은 여행지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를 위해 부모가 지루함을 견뎌야 할 필요도 없고, 아이를 위해 놀아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니까요. "'지금' 어디로 떠나면 좋을까?"가 고민인 부모님들에게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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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 내 삶에 힘이 되는 Practical Classics 1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깨깨 그림, 이길태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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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가 우리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우리가 저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

우연한 기회에 <빨간 머리 앤>의 명대사 하나가 마음에 씨앗처럼 뿌려졌습니다. 빨간 머리의 앤이 에이번리의 초록 지붕 집을 처음 찾아왔을 때, 남자 아이를 입양하기 원했었던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슈 아저씨의 대화입니다(65). 어쩌면 이 명대사를 만난 날이 제 인생에서 '사고의 전환'이라는 걸, 처음 경험했던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충격적이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어릴 적 애니메이션으로 보았을 때는 <빨간 머리 앤>이 이처럼 묵직한 감동을 담고 있다는 걸 몰랐기에,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를 꼭 책으로 읽어볼 수 있기를 소원하고 있었습니다. 문학으로 다시 만나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어릴 때 보았던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책으로 옮겨오면서, 동시에 <빨간 머리 앤>을 읽는 또 하나의 틀을 제공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단발의 빨간 머리 앤'과 북극곰 '꼬미'가 등장하여 <빨간 머리 앤>을 읽는 '나'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앤처럼 씩씩하게 순간순간을 기쁨으로 채워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동안 온갖 지식들을 우걱우걱 밀어넣기 바쁘게 살아왔는데, 우리에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했던 것은 이러한 지혜와 위로였다는 것을요.

주근깨 투성이에 빼빼마른 빨간 머리의 앤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전형적인 '씩씩한 캔디'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빨간 머리 앤'은 자신을 그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줄 키다리 아저씨나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며 쓴 눈물을 삼키고 있지 않습니다. "희망을 묻어 버린 묘지"(79) 같은 고아 인생이지만, 기쁠 때는 온 마음으로 기뻐할 줄 알고, 경쟁을 할 때는 죽을 힘을 다 하고, 슬플 때도 온 마음으로 슬퍼하되,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과 아름다운 것을 열정을 다해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력과 사랑의 에너지가 삶의 얼마나 큰 활력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앤보다 더 큰 어른이 되고 나서야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너는 앤처럼 매순간 사랑과 열정을 다해 살왔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 어떤 것도 타고날 때부터 주어진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권리 혹은 이상적인 꿈의 세계를 앤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다. 그리고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기 마련이다!"(590)

어쩌면 모든 것이 그때보다 풍요로운 시대여서 앤과 같은 이야기를 우리가 더이상 상상할 수 없게 되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때 만났던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보다 더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아직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앤을 만나고 앤과 같은 친구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함을 느낍니다. 창의력을 훈련하기 위해 이런 저런 학원에 끌려다니는 요즘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입니다. 아이들 모두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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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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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은행을 어떻게 말하든, 그곳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은행에 인생을 걸고 있다. 피라미드형 구조의 당연한 결과로써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패인이 무능한 상사의 지시에 있고 그것을 모르는 척하는 조직의 무책임함에 있다면, 이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333).

가장 일본스러우면서도 이처럼 일본인의 생리에 어긋나는 소설이 또 있었을까요?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유행어를 낳으며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가 소설책으로 한국 독자를 찾아왔습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 은행 영웅이 '전설'로 통하는 것은 평범한 직장인들의 꿈, 즉 매일 꿈을 꾸지만 한 번도 실현해보지 못한 그것, 바로 교활한 상사와 불합리한 조직에 대항해 강력한 복수의 펀치를 날려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복수는 거침이 없고, 실패도 없다는 점에서 더 유쾌, 상쾌, 통쾌합니다. 특히 상사에게 정면으로 대드는 부하직원은 보기 힘들다는 일본조직문화를 생각하면, <한자와 나오키>는 일본 사회의 변종이자, 사회인들의 진정한 영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자와 나오키'는 일본의 거품 경제 이후, 은행도 적자가 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도쿄중앙은행 오사카 서부 지점의 융자과 과장입니다. 은행도 이제 돈을 벌지 못하면 망하는 평범한 회사가 되어버리자, 최고의 엘리트라 자부했던 은행원들도 살아남으려면 실적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엘리트들만 모인 곳이니 그곳의 경쟁은 더 비열하고, 속임수는 더 교묘하고, 괴롭힘은 더 잔혹합니다.

한자와 나오키는 서부오사카철강의 부도로 뜻밖의 위기에 처합니다. 5억 엔이라는 손실은 너무 컸고,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실적을 위해 억지로 대출을 끌어온 것은 지점장 '아사노'였지만, 그는 나중에 문제가 될 만한 지시들은 서면으로 남겨놓지 않았고, 사고가 터지자 본부 인맥을 총동원해 모든 책임은 부하에게 전가하고 자신은 빠져나갈 수 있도록 미리 손을 써 두었던 것입니다. 엘리트들만 모여 있어도 부하의 공로는 상사가 가로채고, 상사의 실수는 부하에게 전가되는 것이 모든 인간 조직의 보편적인 현상인가 봅니다.

그러나 한자와 나오키는 교활한 아사노의 출세를 위해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더구나) 상사가 죽으라고 하면 찍소리도 않고 죽고, "나를 대신해 책임을 지라고 하면 눈물을 삼키며 체념"(340)하는 것이 부하직원의 도리였지만, 한자와는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전가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한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들에게 강력하게 반발합니다. 그리고 서부오사카철강의 부도가 계획도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한자와 나오키는 부도를 내고 사라진 히가시다를 추적하며, 사건의 진짜 책임자들을 찾아내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시작합니다. 그는 당한 만큼 갚아주는 사람이고, 한 번 한다고 하면 끝까지 하는 녀석이니까요.

"돈은 부유한 자에게 빌려주고 가난한 자에게는 빌려주지 않는 게 철척이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218).

<한자와 나오키>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평범하지만 물러설 줄 모르는 주인공의 통쾌한 복수를 통해 독자들에게 환타지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임신어음", "태풍어음", "비행기어음"(76) 같은 금융 관련 지식(?)을 얻는 것은 덤입니다. 억울하고 분해도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체념하며 살지만, 어딘가에 진짜로 이런 영웅 한 사람쯤은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라 해도, 적어도 나는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는 하는 당찬 포부도 품어봅니다. <한자와 나오키> 덕분입니다. 소시민들에게 소시민들만의 영웅이 필요한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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