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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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은행을 어떻게 말하든, 그곳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은행에 인생을 걸고 있다. 피라미드형 구조의 당연한 결과로써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패인이 무능한 상사의 지시에 있고 그것을 모르는 척하는 조직의 무책임함에 있다면, 이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333).

가장 일본스러우면서도 이처럼 일본인의 생리에 어긋나는 소설이 또 있었을까요?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유행어를 낳으며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가 소설책으로 한국 독자를 찾아왔습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 은행 영웅이 '전설'로 통하는 것은 평범한 직장인들의 꿈, 즉 매일 꿈을 꾸지만 한 번도 실현해보지 못한 그것, 바로 교활한 상사와 불합리한 조직에 대항해 강력한 복수의 펀치를 날려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복수는 거침이 없고, 실패도 없다는 점에서 더 유쾌, 상쾌, 통쾌합니다. 특히 상사에게 정면으로 대드는 부하직원은 보기 힘들다는 일본조직문화를 생각하면, <한자와 나오키>는 일본 사회의 변종이자, 사회인들의 진정한 영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자와 나오키'는 일본의 거품 경제 이후, 은행도 적자가 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도쿄중앙은행 오사카 서부 지점의 융자과 과장입니다. 은행도 이제 돈을 벌지 못하면 망하는 평범한 회사가 되어버리자, 최고의 엘리트라 자부했던 은행원들도 살아남으려면 실적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엘리트들만 모인 곳이니 그곳의 경쟁은 더 비열하고, 속임수는 더 교묘하고, 괴롭힘은 더 잔혹합니다.

한자와 나오키는 서부오사카철강의 부도로 뜻밖의 위기에 처합니다. 5억 엔이라는 손실은 너무 컸고,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실적을 위해 억지로 대출을 끌어온 것은 지점장 '아사노'였지만, 그는 나중에 문제가 될 만한 지시들은 서면으로 남겨놓지 않았고, 사고가 터지자 본부 인맥을 총동원해 모든 책임은 부하에게 전가하고 자신은 빠져나갈 수 있도록 미리 손을 써 두었던 것입니다. 엘리트들만 모여 있어도 부하의 공로는 상사가 가로채고, 상사의 실수는 부하에게 전가되는 것이 모든 인간 조직의 보편적인 현상인가 봅니다.

그러나 한자와 나오키는 교활한 아사노의 출세를 위해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더구나) 상사가 죽으라고 하면 찍소리도 않고 죽고, "나를 대신해 책임을 지라고 하면 눈물을 삼키며 체념"(340)하는 것이 부하직원의 도리였지만, 한자와는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전가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한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들에게 강력하게 반발합니다. 그리고 서부오사카철강의 부도가 계획도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한자와 나오키는 부도를 내고 사라진 히가시다를 추적하며, 사건의 진짜 책임자들을 찾아내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시작합니다. 그는 당한 만큼 갚아주는 사람이고, 한 번 한다고 하면 끝까지 하는 녀석이니까요.

"돈은 부유한 자에게 빌려주고 가난한 자에게는 빌려주지 않는 게 철척이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218).

<한자와 나오키>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평범하지만 물러설 줄 모르는 주인공의 통쾌한 복수를 통해 독자들에게 환타지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임신어음", "태풍어음", "비행기어음"(76) 같은 금융 관련 지식(?)을 얻는 것은 덤입니다. 억울하고 분해도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체념하며 살지만, 어딘가에 진짜로 이런 영웅 한 사람쯤은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라 해도, 적어도 나는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는 하는 당찬 포부도 품어봅니다. <한자와 나오키> 덕분입니다. 소시민들에게 소시민들만의 영웅이 필요한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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