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칼의 소년은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에 마음을 빼앗겼으며, 돌에 새겨진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에 넋을 잃었다.
"이거 읽을 수 있어요?" 푸리에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제가 읽을 거예요! 몇 년 후 제가 크면요!" 어린 샹폴리옹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훗날 샹폴리옹은 이 이야기를 자주 했다. - P137

샹폴리옹은 아랍의 정신에 푹 빠졌다. 그의 목소리는 변했다. 모임에서 만난 아랍인은 샹폴리옹이 자신과 같은 아랍인인 줄 알고 몸을 굽혀인사했다. 샹폴리옹의 이집트에 관한 지식은 온전히 학습을 통해 얻은 것이었음에도 당시 가장 유명한 아프리카 여행가 소미니 드 마넹쿠르가 놀랄 만큼 충분한 수준이었다. 샹폴리옹과 대화를 나누던 마넹쿠르는 "내가 아는 나라를 나만큼이나 잘 알잖아!"라고 외쳤다. - P144

게다가 이 젊은 역사학 교수가 표방하는 이상이라니! 샹폴리옹은 역사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진실을 향한 갈망이라고 천명했다. 그가 말하는진실이란 나폴레옹식 진실이나 부르봉 왕조식 진실이 아닌 절대적 진실이었다. 그는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학문의 자유를 요구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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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만은 일에 착수했다. 일개 상업 견습생에서 백만장자로 성공하기까지 쏟았던 열정을 이제 꿈을 실현시키는 것에 쏟아부을 차례였다. 그는신들린 듯 일에 몰입했고, 물자 또한 아낌없이 투입했다. - P70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가 말했듯이 빙켈만이 그리스의 비밀을 멀리서보여주었다면, 슐리만은 그 태고의 세계를 직접 열어서 보여주었다. 슐리만은 고고학을 연구실의 석유등 불빛 아래에서 과감히 그리스 하늘의태양 아래로 끌어냈다. 전통 문헌학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선사시대로 한 발을 내디뎠고, 전통 학문에 선사시대를 추가해 학문의 영역을 넓혔다. - P88

슐리만의 초기 해석과 연대 확인이 거의 다 틀렸다는 사실은 비극적인실수였다. 그러나 아메리카를 발견했던 콜럼버스도 처음에는 인도를 발견한 줄 알았다. 그렇다고 그의 업적이 작아지는가? - P92

나폴레옹 1세와 비방 드농은 이집트를 최초로 고고학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사람들이다. 이 두 사람은 황제와 남작, 총사령관과 예술가로서 인생의 일정 구간을 동행했다. - P117

조각상은 대부분 일부가 잘려나간 단편(斷片)들이었다. 그 수집품 가운데는 매우 특이한 물건이 하나 있었다. 검은 빛이 반들반들한 현무암 석판이었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언어로 쓴 세 편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 돌이 이집트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된 유명한 ‘로제타의 3개 언어로 된 돌(로제타석)‘이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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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8월 중순, 베수비오 화산은 폭발의 조짐을 보였다. 그전에도 이미 여러 번 있었던 일이었지만 8월 24일 오전에 시작된 파국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 P31

주위가 온통 파멸되어 가는 동안 노예의 족쇄를 찬 채 사슬에 묶여 있는 두 다리의 유골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역시 사슬에 묶인 채 어느 집 천장 아래에서 발견된 개의 죽음 뒤에는 어떤 고통이 있었을까? - P34

이 두 가지 관점이 통합되기까지는 한 학자의 출현을 기다려야 했다.
고대의 예술에 대한 애정에 학문적 연구와 비평을 도입한 사람은 폼페이발굴이 시작되던 시기에 갓 서른이 된 청년이었는데, 드레스덴 근교 어느백작의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이렇다 할 업적이 없었던 그 사람에게 예술과 학문의 결합은 평생의 과업이 되었다. 21년이지난 후 그의 죽음을 접했을 때 독일의 위대한 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레싱은 다음과 같은 글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내 수명에서 기꺼이 몇 년은 떼어주었을 텐데!" - P36

그리스의 조각과 조소는 원래 채색되어 있었다. 아테네 신전에 있는대리석 여인상은 빨강, 녹색, 파랑,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붉게 칠한 입술은 물론이고, 눈에 번쩍이는 보석을 박기도 했으며, 인조 속눈썹을 붙인 조각상들도 적지 않았다. - P43

고고학자는 역사의흔적을 찾는 사람이다. 논리적으로 완벽한 결론을 얻을 때까지 수사관과도 같이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해 퍼즐을 짜 맞추듯 돌멩이 한 조각 한 조각을 짜 맞추어 간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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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탱 씨는 주방의 식탁에 모여 앉은 식구들을 둘러보았다. 천장에길게 매달린 전등의 환한 불빛을 받으며 식구들은 음식 위로 몸을 구부린 채 그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가장의 기분이 상할까봐 저어하는 눈치였다. - P75

자코탱 씨는 문득 자기 재산을 도둑맞고 있다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가 흘린 땀의결실은 남이 가져가고 자기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봉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 P76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코탱 씨는 이 숙제가 아주 쉬운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쉬워서 코웃음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숙제에 대한 책임을 떠맡고 보니, 이게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 P90

제르멘 뷔주는 독신녀 라리송의 아파트를 떠났다. 그녀의 따가운 눈길을 받으며 두 시간에 걸친 ‘대청소를 막 끝내고 나오는 길이었다.
시각은 오후 네시, 이틀 전부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12월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 P103

여섯 아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진열창 안의 한 물건에만 쏠려 있었다. 그것은 한 켤레의 장화였다. 다른물건들과 마찬가지로 표찰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냥 ‘칠십리 장화‘ 라고만 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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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장화를 신기만 하면 한 걸음에 칠십 리를 갈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곧이곧대로 믿었던 건 아니었다. - P112

프랑스의 한 자그마한 도시에 말리코른이라는 집달리가 살고 있었다.
집달리의 일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슬픔을 주기 십상이었지만, 그는 자기 직무를 너무나 꼼꼼하고 성실하게 수행했다. 설령 자기 자신의 동산을 압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그 일을 주저없이 해낼 사람이었다. - P157

"너는 못된 놈이다. 하지만 성 베드로의 실수가 너를 살렸다. 지옥에 가는 것을 모면한 너를 다시 지옥에 떨어뜨리지는 않겠다. 그렇다고 네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너를 다시 땅으로 내려보내겠다. 계속 집달리로 살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선행을 쌓도록노력하거라. 자아, 가서 네게 허락된 이 유예를 유익하게 활용하도록해라." - P162

말리코른은 자기 생각을 다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후의 심판에관한 생각이 줄곧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자기의 선행을 증언하는소문이 온 도시에 자자하게 되면 나중에 하느님의 법정에 섰을 때 참으로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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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하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 책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충동적인 호주 여행, 치명적인 결과를 낳다

닉 호손은 기자다. 대단한 기자는 아니다. 그럴듯한 신문사나 잡지사에 근무하고 있지도 않다. 그저 몇 년에 한 번씩 이 신문사, 저 잡지사 옮겨 다니면서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닉은 여느때처럼 잘 다니던 신문사에 사표를 던지고 오하이오 주에 있는 잡지사로 자리를 옮기려고 했다. 그런데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 며칠 전 보스턴에서 며칠 머물다가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호주 지도에 마음이 뺏겼다. '2천 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21세기 문명의 징후를 발견할 수 없는 세계'. 닉 호손은 순간적인 충동에 빠져 얼마되지 않는 전재산을 처분하여 여행자 수표로 바꾼 후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막상 닉이 호주에 도착하니 호주는 생각보다 멋지지 않았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닉은 그래도 온 김에 중고로 산 차, 폭스바겐 밴을 끌고 다윈시에서 퍼스시까지 가기로 한다. 직선거리로만 2,600km가 넘는 거리이다. 거리도 먼데 호주에서 주의해야 할 금기를 잊고 밤중에 다윈시를 출발하다 캥거루를 쳐서 차도 망가지고 몸도 상처를 입는다. 불운이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운좋게도 도중에 주유소에서 20대 초반, 풍만한 몸매를 가진 앤지라는 아름다우면서 왠지 '60~'70년대에 머문 것같은 아가씨를 만나 함께 차에 타고 여행을 하게 된다. 앤지는 데드하트(호주 중앙 사막지역)에 있는 울라누프라는 고립된 마을 출신 아가씨다. 처음 만났을 때의 예상대로 두 사람은 여행을 하는 중에 뜨거운 육체관계를 갖게 된다. 야성적인 매력을 지닌 앤지에게 몸은 끌리지만 마음은 완전히 주지 않는 닉. 그렇게 여행을 하던 중, 잠에 든 닉은 이상한 꿈을 꾸게 되고 잠에서 깨어 보니 쓰레기 더미로 둘러싸인 낯선 헛간같은 곳에서 정신을 차린다. 앤지가 몰래 주사한 마취약에 취해 끌려온 곳은 앤지가 살고 있는 마을인 울라누프. 여전히 약에 취해 몽롱한 닉은 자신이 앤지와 결혼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모든 인구 53명, 네 가족만이 존재하는 지도상에 존재하는 않는 울라누프. 닉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더글라스 케네디 Douglas Kennedy 1955 ~ . 미국의 소설가.


두 번째 읽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빅 픽쳐》로 유명한 더글라스 케네디의 초기 소설이다. 워낙 많은 소설을 썼고 상당히 유명한 작가이기 때문에 그의 책들은 눈에 자주 띈다. 처음 읽은 《빅 픽쳐》가 굉장히 재미있었고 서스펜스가 넘쳤는데 이상하게 케네디의 책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소설가들이 쓴 책이 읽기 쉽고 재미도 있는데 이상하게 손이 잘 가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 느낌. 아니면 어릴 때부터 갖고 있는 다작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쓸데없는 거부감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책이 작고 얇아서 들고 다니기 좋은게 바쁜 아침에 갑자기 들고 나가기 좋아 책장에서 급하게 빼들고 읽기 시작했다. 일단 책 만듦새도 좋고 표지도 예쁘다. 입에 테이프를 붙여 놓고 상처난 채 꽁꽁 묶인 금발남자가 무슨 의미인지 알았을 때는 어처구니없는 충격이..


호주 지도. 북부 중앙에 닉이 출발한 다윈, 서부에 도착예정지였던 퍼스가 보인다.


지도에도 없는 마을

겨우 네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 그 가족들도 원래 친척들이기 때문에 울라누프에서 자라 어른이 된 아이들은 마을에서 배우자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대디'라고 불리는 마을 지도자는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면 8주간 여행을 하면서 배우자를 구해오도록 하고 앤지가 스물한 살이 되어 여행을 하다 마침 만난 닉을 끌고 와 강제로 결혼을 한 것이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닉을 감시한다. 낌새가 이상하면 말보다 매타작이 시작된다. 게다가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는 800km. 닉에게 희망은 없어 보인다.


흥미진진한 설정이다. 현대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기는 한다. 우리나라처럼 조그만 나라에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마을이지만 광활한 호주의 자연환경, 특히 바닷가에만 주요 도시가 존재하는 호주를 생각하면 이런 마을이 있을 법하기는 하다. 게다가 '데드 하트'. 죽어버린 심장. 대륙의 중심부가 황량한 사막이라는 의미도 있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심장도 죽어 있고, 무엇보다 주인공 닉의 마음도 죽어 있으니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굉장히 탁월한 책 제목이면서 장소의 명칭이다.


폭스바겐 밴. 닉이 다윈시에서 구매한 차가 이런 모양일 듯.


해결과정보다는 잡혀 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고 미국사람이나 생각할 수 있는 광활한 사막의 마을, 그 곳에 끌려가는 닉이 결국 탈출하지만 그 곳에 끌려가고 마을에서 당하는 과정이 훨씬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그곳에 갇혀 어떻게 탈출할까, 그리고 조력자, 끌려가서 당황하고 분노에 찼을 닉의 심정을 공감이 가도록 잘 표현했다. 하지만 탈출하는 장면은 그다지 두근거리지는 않는다.


특히 조력자가 너무 딱 맞게 설정되어 있고 닉의 프로에 가까운 차량 정비 능력은 좀 작위적이어서 탈출 장면에서 긴장감을 떨어뜨리는데 한 몫 한다. 책의 앞 부분 2/3은 소재의 신선함 덕분에 재미있는데 닉과 조력자가 의존할 수 있는 상황이 너무 쉽게 주어지는 것도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 특히 마지막에 그 두 사람을 꼭 죽였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데드하트》는 황량한 사막에서 황량한 마을에 붙잡힌 남자의 이야기이다.


★★★★

두번째 읽은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손에 땀을 쥐게하는 서스펜스가 장기인 것 같은데, 책도 술술 넘어가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책 한 권 읽는데 크게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다. 요즘같이 어지러운 시기에 머리 식힐 겸 읽으면 좋을 듯. 인물 활용면에서, 중간까지 굉장히 매력적이고 육감적으로 표현한 앤지를 인간쓰레기로 절하시켜 버린 건 좀 아쉽다. 조력자 크리스탈의 헌신적인 도움도 왠지 좀 어색하다.


순식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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