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일본인을 만난다면 수백 번이라도 고개 숙여 인사해야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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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던이 조바심을 내며 우편물을 살펴본 지 일주일째다. 하지만 로키산맥연방에서 올 중요한 물건은 도착하지 않았다. 금요일 아침에 가게 문을 연 그는 우편물 투입구로 들어온 편지들만 바닥에 쌓인 것을 보고 생각했다. 고객이 화를 내겠군. - P11

1947년 미국이 조건부 항복을 하던 날, 프랭크는 미쳐 날뛰다시피 했다. 일본을 증오하던 그는 복수를 맹세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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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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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그냥 어두운 방이었다. 뒤티유욀은 벽에 있는 스위치를 찾다가 밖으로 나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충분히 '이성적인' 판단을 한 후 뒤티유욀은 자신이 벽을 통과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놀란 마음에 의사에게 갔더니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병의 원인은 갑상선 협부 상피의 나선형 경화에 있다고 설명하고 체력을 과도하게 소모하라고 하면서 이상항 약을 복용하라고 하면서 준다. (어쩌면 흔한 병일지도 모르겠다)


뒤티유욀은 평범한 프랑스 시민이다. 당연히 '평범한' 시민이라면 생각할 법한 '평범한' 범죄를 저지른다. 우선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직장상사를 놀라게 해서 쫓아낸다. 이후 '평범하게' 은행을 털고 '평범하게' 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평범하게' 탈옥하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경찰에 화가나기도 하고 벽을 통과하는 삶도 지루해져서 신분을 숨기고 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결심의 순간, 한 금발미녀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 미녀는 이미 난폭한 남편과 결혼한 상태였다. 미녀의 남편은 항상 부인을 가두어 놓고 밖으로 나간다. 보통이라면 아내를 완벽하게 감금한 것이겠지만 벽을 통과할 수 있는 뒤티유욀에게 그런 것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우리의 평범한 시민 뒤티유욀은 벽을 통과하여 미녀와 사랑을 나눈다. 뒤티유욀과 금발 미녀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마르셀 에메 Marcel Ayme' 1902 ~ 1967 프랑스 소설가


제목이 유명한 책

제목이 굉장히 유명한 책이다. 유명한 이유는 아마도 뮤지컬 때문인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을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뮤지컬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 원전이 1950년대 프랑스 작가의 책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 싶다. 프랑스 소설은 좀 읽기 어려울 거라는 편견이 있다. 일단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고(이건 이 책도 마찬가지다), '왠지' 책장 하나 넘기는 것조차 벅찰 것 같은 느낌이 그것이다. 굉장히 철학적일 것 같고 어려울 것 같다. 유명한 프랑스의 고전들이 모두 그러니 그런 편견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이라고 평생을 근엄하게 철학적 사유만 하고 살라는 법은 없다. (같은 이치로 독일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재미없는 얘기만 하지는 않을.. 이건 아닌가?)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내가 가지고 있던 프랑스 소설에 대한 편견을 확실히 깨뜨린 소설이다. 벽을 드나든다든지, 한달이 15일이 되기도 하고 35일이 되는데도 당연하다는 듯이 큰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극. 꼭 뮤지컬이 아니더라도 연극으로 옮겨놓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 단편소설이 지녀야할 장점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소설집이다. 그리고 이런 환상적인 내용이 벌써 70년 전에 쓰였다는게 놀랍다.



환상소설만 있는 건 아니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의 내용은 이미 위에 있고, <생존 시간카드>는 국가정책에 따라 한달에 살 수 있는 날짜가 달라진 세상에서 벌어지는 소동이 그려진다. 개인적으로는 <생존 시간 카드>가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보다 더 좋다. <속담>은 아들의 숙제를 도와줬지만 점수가 더 나빠진 아빠의 얘기이고, <칠십 리 장화>는 모험을 꿈꾸는 가난한 아이와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 <천국에 간 집달리>는 진정한 선행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우화이다. 환상소설이 두 편, 일상소설이 두 편, 우화 한 편. 모두 재미있다. <속담>이나 <천국에 간 집달리>는 마치 안톤 체홉의 단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다섯 편 소설 중에서 역시 관심이 가는 소설은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와 <생존 시간 카드>. 지금이야 흔한 사물통과나 시간의 변동에 관한 에피소드지만 굉장히 70~80년 전 프랑스에서 이런 상상력을 가진 작가는 많지 않았을 것 같아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지금 읽어도 전혀 촌스럽거나 억지같아 보이지 않는다.



다른 단편들은?

사실 내가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를 읽은 건 적어도 20년도 전에 비슷하지만 다른 제목('벽을 통과하는 사나이'였던가?)으로 된 책을 읽었는데 다시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앞의 두 에피소드는 이전에 읽었던 책에 포함되어 있어서 읽었었는데 나머지 세 편은 처음 읽었다. 읽었던 책은 환상소설만 6~7 편 실려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다른 단편들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책장 어딘가에 박혀 있는 책을 찾으려면 또 책장을 한 번 뒤집어야 해서 포기. 어쨌든 흥미로운 단편이 많았던 것 같은데 마르셀 에메의 책을 한 번 주욱 살펴 봐야겠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벽을 뚫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뮤지컬이 제작되었고 지금까지 장기공연중이다. 벽을 통과하는 모습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

고전소설에 속하겠지만 각잡고 읽을 정도로 긴장할 필요는 없다. 상황을 상상하고 이후 전개가 무리없이 진행된다. 엉뚱한 상황에 대해 쿨하게 받아들이는 인물들도 흥미롭다.


재미있다. 추천


P.S. <생존 시간 카드>에서 주인공이 6월 32일에 만난 엘리자가 왜 주인공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예전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새로 읽었는데도 잘 이해가 안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그 이유를 설명하실 수 있는 분은 좀 알려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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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2
로이스 로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비룡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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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낳는 기계

클레어는 꿈많은 소녀. 나이가 들어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출산모로 직업을 배정받았다. 클레어가 받은 직업은 아직 어린 그로서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그 세계에서는 가장 천한 일이다.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출산을 해야하는 건 당연하지만 동물이나 할 법한(아! 이 세계에는 동물도 없다.) 성관계를 갖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성관계가 뭔지도 모르는 세계다. 결국 클레어가 하는 일은 누군지 모르는 남자의 정자를 자궁에 받아들여 착상시킨 후 280일 후에 애를 낳는.. 애낳는 기계일 뿐이다. 그 어떤 찬사와 위로도 받지 못한다. 클레어와 함께 가족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에게도 수치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해서 클레어는 나이 열네 살 때 클레어는 첫 아이를 낳는다. 그런데 얼굴에 가죽 가면을 쓰고 첫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결국 자연분만을 하지 못하고 제왕절개 수술로 '상품'을 꺼낸다. 클레어의 배에는 커다란 수술 자국이 생겼다. 그리고 원래 출산모들은 두세 차례 '상품'을 출산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클레어는 더 이상 출산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일할 곳을 배속받는다.


이 세계가 이런 사회다. 모든 색은 회색이고 음악도 없다. 가족은 네 명. 아이는 배정받는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정은 없다. 부모는 아이를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워내는 관리자일 뿐이다.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으니 부성애도 모성애도 발현될 리가 없고, 아이를 낳아본 출산모들도 감정을 억제하는 환약을 먹어 아이에 대한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다.


로이스 로리 Lois Lowry 1937 ~ . 미국의 작가. 올해 나이 82세인데 여전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드디어 SF 4부작의 대단원

로이스 로리의 근미래 SF 4부작 중에 마지막, 네 번째 책이다. 처음 《기억전달자》를 읽을 때는 시리즈물인지 몰라서 다 읽고 나서야 다음 권이 세 권이나 있다는 걸 알았다. 《기억전달자》가 워낙 재미있었기 때문에 낚였다는 생각보다는 재미있는 소설이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하지만 두 번째 소설인 《파랑채집가》와 세 번째 소설인 《메신저》는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연작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세계관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내적인 개연성이 상당히 떨어져 보여서 4권인 《태양의 아들》을 읽을지 말지 고민을 했다. 그래도 어차피 3권까지 읽었으니 읽고 끝을 맺자는 심정으로 책을 주문하고 받아 보니 상당히 두껍다. 한숨 한 번 쉬고 읽기 시작. 결론은 읽기 잘했다.



같은 시간을 달리 살아온 두 아이

《태양의 아들》은 《기억전달자》를 읽지 않고 읽으면 안된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 클레어가 나서 자란 곳, 클레어가 겨우 열네 살 나이에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보고 싶어 찾았던 곳이 《기억전달자》에서 조너선이 선대 기억보유자에게서 기억을 전달받았던 그 마을이기 때문이다. 조너선이 자신의 직업을 기억전달자로 배정받고 마을의 미래를 책임지는 중요한 인물로 교육받는 동안 클레어는 가장 동물적인 '아이를 낳는 출산모'의 역할, 그것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최하층에서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두 아이는 비록 마을에서 받는 대접은 하늘과 땅 차이지만 정신적으로 마을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은 똑같다. 조너선은 그걸 드러낼 수 있지만 클레어는 드러낼 수 없었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은 한 아이 가브리엘(=에이브)로 향해 있다. 결국 조너선은 가브리엘을 구하기 위해 마을을 탈출하고, 클레어는 에이브를 찾기 위해 다른 마을로 들어 간다.


평행선같은 삶을 사는 두 아이. 이 두 아이의 삶을 비교해 보는 것(조너선의 삶은 이미 《기억전달자》에서 봤다)이 극적인 재미를 만들어 낸다. 클레어가 이름도 모르는 자신의 아이인 상품 36호에게 모성애를 느끼고, 그 아이가 보고 싶어 억지로 보육원에 가서 아이를 보는 장면은 짠하면서 긴장감 넘친다. 도대체 모성애는 쓰레기 취급받고 아이는 상품인 세계에서 클레어는 어떻게 모성애를 갖게 되었을까? 클레어가 들키지 않을까? 클레어는 아들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반갑고도 슬픈 후일담과 여전히 모자란 개연성

《태양의 아들》은 최종 완결편에 걸맞게 그동안 나왔던 인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든 결말을 자세히 알려 준다. 조너선은 전편에서도 나왔지만 숲속 마을의 지도자가 되어 있고, 《파랑채집가》의 키라는 조너선의 아내가 되어 있다. 《메신저》의 주인공인 맷티는 숲속마을을 지키다 죽었다... 죽은 거였어? 꽤 궁금했던 인물들의 후일담을 알려줘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은 만족스럽다.


하지만 개연성이 부족한 것은 여전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클레어가 바닷가마을로 흘러들어가 기억을 잃고 사는 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 바닷가마을이 숲속마을의 절벽 아래 있었다든지, 그 절벽을 올라갈 수 있도록 교육할 수 있는 교관이 있었다든지.. 이상하다. 클레어는 어떻게 그 절벽을 넘어가면 아들을 만날 것을 알고, 그 사이에 길을 막고 있는 악마느 클레어를 노파로 만들어 버리고.. 3장을 읽으면 2장의 모든 무리한 설정이 결국 마지막 감동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장치인데 개연성이 떨어져서 좀 아쉽다.



★★★★

3장으로 나뉜 소설이다. 클레어의 출산과 영문없이 솟아난 아이를 향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나타난 1장, 기억을 잃어 버리고 산을 넘기 위해 훈련하고 악마를 만나는 2장, 산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노파가 되어버린 클레어와 엄마를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엄마를 찾으러 모험을 하겠다는 가브리엘이 대조되는 3장. 1장은 굉장히 가슴 아프고 재밌다. 2장은 좀 어리둥절하고, 3장은 안타까움이 느껴지지만 좀 답답하고 아쉽다. 전체적으로는 꽤 재미있고 개인적으로는 《기억전달자》 이후 《파랑채집가》와 《메신저》는 건너뛰고 《태양의 아들》을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기억전달자》의 진정한 후속작은 《태양의 아들》인 것 같다. 한가지, 원래 제목인 《SON》을 《태양의 아들》이라고 번역한 건 좀 오버스럽다. 그리고 SF소설이라고 하기보다는 판타지소설이라고 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기억전달자》를 읽었다는 전제하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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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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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정복하라

일단 주인공은 자크 클라인이다. 여자친구는 샤를로트. 엄마는 카롤린 클라인. 아빠는 요트사고로 일찍 돌아가셨으니 신경쓸 필요는 없다. 자크는 어릴 때 좀 찌질했다. 공부도 못하고 체력도 약하니 또래의 힘센 녀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살 수밖에.. 자크의 엄마 카롤린은 유명한 신경생리학자로 꿈 연구의 권위자인다. 엄마는 자크에게 꿈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쉽게 말하면 수면의 질이 떨어져서 꿈을 꿀 수 없게, 정확히는 꿈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지식의 갈무리도 못하고 트라우마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자크가 최고 수준의 잠을 잘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잠을 훈련한다는 건 5단계인 역설수면까지 방해없이 자고 꿈을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걸 의미한다. 자크는 엄마에게 잠 훈련을 받은 후 머리도 좋아지고 트라우마를 극복하여 용기도 솟는다. 좀 부럽네. 잠만 잘자는 것만으로 이런 발전을 이루다니..


한편 카롤린은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꽤 유치한 제목의 프로젝트지만 최고 전문가가 수행중이니 그런가 보다 하자. 그 프로젝트는 1, 2, 3, 4, 5 단계 꿈보다 더 깊은 단계인 6 단계 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엄마는 6단계의 꿈을 수도자나 성자가 일종의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신 깊숙히 들어가야 하는 것이니 위험할 법도 해서 아킬레시라는 수도자를 데려다 6 단계로 들어가는 실험을 했다. 그런데, 실험중 아킬레시가 죽었다. 이 소문은 매스컴을 통해 퍼지고 카롤린은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실종된다. 꿈속을 탐험하는 엄마와 아들을 지켜보는 소설이 《잠》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Bernard Werber 1961 ~ .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베스트셀러 작가

우리나라에서 책만 냈다 하면 반드시 베스트셀러에 올려 놓는 작가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굉장히 특별한 경우에 속하는데, 본국인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오히려 인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나도 그의 초기작인 《개미》와 《타나토노트》를 보고 지식에 대한 집요한 집착과 엉뚱한 상상력을 잘 접목시켜 놓은, 손을 놓기 힘든 소설에 매혹을 느꼈다. 그래서 이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꽤 읽었는데 초기 소설과는 달리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특히 《카산드라의 거울》을 읽은 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단 한 편도 읽지 않았다. 소설가가 되기 전에 쌓아둔 밑천이 이제는 다 떨어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잠》은 오랜만에, 그래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이제 소재 다 떨어진 거 아냐?

《잠》의 주요 소재는 '잠'이다. 이게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잘 때 1~5 단계를 거치고 5단계는 '역설 수면'의 단계이다. 이 잠의 단계를 잘 조절하면 머리도 똑똑해지고 정서도 안정이 된다. 어릴 때는 좀 뒤떨어진 학생이었던 주인공 자크는 엄마가 유도해 준 '잠' 덕분에 유망한 의대생이 된다. 그리고 엄마는 5단계보다 더 깊은 단계인 6단계 수면을 발견하기 위해 연구를 계속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떠오르는 소설이 두 개 있다. 가사 상태에서 좀더 내면 깊은 곳으로 다이브한다는 설정은 《타나토노트》에서 가져 왔다. 단지 그것이 '꿈'이고 《타나토노트》는 그것이 죽음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외부의 도움으로 지능이 발전한다는 건 《뇌》와 비슷하다. 《뇌》는 지능이 초인적으로 발전한 반면 《잠》에서는 조금 똑똑해지면서 일종의 시간여행을 하고 영혼과 대화하고.. 초능력이 생긴 것이다. 이 정도면 그냥 자기표절 아닌가? 표절이 아닐 수는 있지. 소설가가 직업이니 얼마나 그럴싸하게 변형했겠어? 하지만 이미 두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자기 표절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거두기는 힘들 것이다.


이제는 《개미》나 《타나토노트》같은 걸작을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허접한 설정

소재는 좀 비슷한 걸 끌어다 그냥 좀 썼다 치자. 하지만 설정은 더 형편없다. 엄마는 수면전문가로 아들의 잠을 컨트롤해서 똑똑한 의대생을 만든다. 말레이시아의 소수 부족은 꿈꾸는 시간을 현실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서로의 꿈을 나누며 공동체를 유지한다. 자각몽은 언제든 이어질 수 있고, 내용도 뚜렸하다. 게다가 부족은 꿈이 모인 집단의식(집단무의식이 아니다)이 존재해서 5단계 꿈에 든 사람이 찾아갈 수 있다. 6단계 잠이 들면 꿈속의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이게 잠이고 꿈이야? 그냥 유체이탈이잖아. 흔한 유체이탈을 써놓고 엄청난 과학이론이 숨어있는 것처럼 분장해서 써 놓았다.


물론 소설이 꼭 현실적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설득력과 개연성을 있어야 읽으면서 수긍하고 지나가는데 《잠》은 최소한의 덕목을 지키지 않았다. 《개미》가 명작인 이유는 개미에 대한 엄청난 과학적 지식을 쏟아 부은 후 그 이상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기 때문이고, 《타나타노트》는 많은 죽음에 대한 신화들을 집대성한 후 거기에서 한 발짝 상상력을 내밀었기 때문에 수긍이 되는 것이다. 그 자체로 말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잠》은? 잠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어 잠만 자면 모든게 다 해결된다. 미래의 '나'는 꿈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주고 현자가 나타나 6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인 약물을 만드는 방법을 친절히 알려 준다. 형태는 비슷하다. 하지만 밑바탕이 탄탄하지 않으니 쌓아놓은 건물이 그냥 무너져 버리고 만다.


★☆

좀 작정하고 까서 미한한데, 좀 쉬세요. 마른 수건 짜내듯 아무 것도 없는데서 자꾸 글을 쓰려고 하니 이런 졸작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개미》에서 103683호가 편지를 인간에게 전했을 때의 그 소름끼치는 충격이나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던 타나토노트들의 목숨 건 프론티어 정신을 기대하면 안되는 걸까?


쓰고남은 소재 조각들을 그러모아 소설책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파쇄된 종이뭉치같은 소설이다.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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