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아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2
로이스 로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비룡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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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낳는 기계

클레어는 꿈많은 소녀. 나이가 들어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출산모로 직업을 배정받았다. 클레어가 받은 직업은 아직 어린 그로서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그 세계에서는 가장 천한 일이다.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출산을 해야하는 건 당연하지만 동물이나 할 법한(아! 이 세계에는 동물도 없다.) 성관계를 갖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성관계가 뭔지도 모르는 세계다. 결국 클레어가 하는 일은 누군지 모르는 남자의 정자를 자궁에 받아들여 착상시킨 후 280일 후에 애를 낳는.. 애낳는 기계일 뿐이다. 그 어떤 찬사와 위로도 받지 못한다. 클레어와 함께 가족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에게도 수치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해서 클레어는 나이 열네 살 때 클레어는 첫 아이를 낳는다. 그런데 얼굴에 가죽 가면을 쓰고 첫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결국 자연분만을 하지 못하고 제왕절개 수술로 '상품'을 꺼낸다. 클레어의 배에는 커다란 수술 자국이 생겼다. 그리고 원래 출산모들은 두세 차례 '상품'을 출산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클레어는 더 이상 출산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일할 곳을 배속받는다.


이 세계가 이런 사회다. 모든 색은 회색이고 음악도 없다. 가족은 네 명. 아이는 배정받는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정은 없다. 부모는 아이를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워내는 관리자일 뿐이다.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으니 부성애도 모성애도 발현될 리가 없고, 아이를 낳아본 출산모들도 감정을 억제하는 환약을 먹어 아이에 대한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다.


로이스 로리 Lois Lowry 1937 ~ . 미국의 작가. 올해 나이 82세인데 여전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드디어 SF 4부작의 대단원

로이스 로리의 근미래 SF 4부작 중에 마지막, 네 번째 책이다. 처음 《기억전달자》를 읽을 때는 시리즈물인지 몰라서 다 읽고 나서야 다음 권이 세 권이나 있다는 걸 알았다. 《기억전달자》가 워낙 재미있었기 때문에 낚였다는 생각보다는 재미있는 소설이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하지만 두 번째 소설인 《파랑채집가》와 세 번째 소설인 《메신저》는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연작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세계관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내적인 개연성이 상당히 떨어져 보여서 4권인 《태양의 아들》을 읽을지 말지 고민을 했다. 그래도 어차피 3권까지 읽었으니 읽고 끝을 맺자는 심정으로 책을 주문하고 받아 보니 상당히 두껍다. 한숨 한 번 쉬고 읽기 시작. 결론은 읽기 잘했다.



같은 시간을 달리 살아온 두 아이

《태양의 아들》은 《기억전달자》를 읽지 않고 읽으면 안된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 클레어가 나서 자란 곳, 클레어가 겨우 열네 살 나이에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보고 싶어 찾았던 곳이 《기억전달자》에서 조너선이 선대 기억보유자에게서 기억을 전달받았던 그 마을이기 때문이다. 조너선이 자신의 직업을 기억전달자로 배정받고 마을의 미래를 책임지는 중요한 인물로 교육받는 동안 클레어는 가장 동물적인 '아이를 낳는 출산모'의 역할, 그것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최하층에서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두 아이는 비록 마을에서 받는 대접은 하늘과 땅 차이지만 정신적으로 마을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은 똑같다. 조너선은 그걸 드러낼 수 있지만 클레어는 드러낼 수 없었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은 한 아이 가브리엘(=에이브)로 향해 있다. 결국 조너선은 가브리엘을 구하기 위해 마을을 탈출하고, 클레어는 에이브를 찾기 위해 다른 마을로 들어 간다.


평행선같은 삶을 사는 두 아이. 이 두 아이의 삶을 비교해 보는 것(조너선의 삶은 이미 《기억전달자》에서 봤다)이 극적인 재미를 만들어 낸다. 클레어가 이름도 모르는 자신의 아이인 상품 36호에게 모성애를 느끼고, 그 아이가 보고 싶어 억지로 보육원에 가서 아이를 보는 장면은 짠하면서 긴장감 넘친다. 도대체 모성애는 쓰레기 취급받고 아이는 상품인 세계에서 클레어는 어떻게 모성애를 갖게 되었을까? 클레어가 들키지 않을까? 클레어는 아들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반갑고도 슬픈 후일담과 여전히 모자란 개연성

《태양의 아들》은 최종 완결편에 걸맞게 그동안 나왔던 인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든 결말을 자세히 알려 준다. 조너선은 전편에서도 나왔지만 숲속 마을의 지도자가 되어 있고, 《파랑채집가》의 키라는 조너선의 아내가 되어 있다. 《메신저》의 주인공인 맷티는 숲속마을을 지키다 죽었다... 죽은 거였어? 꽤 궁금했던 인물들의 후일담을 알려줘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은 만족스럽다.


하지만 개연성이 부족한 것은 여전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클레어가 바닷가마을로 흘러들어가 기억을 잃고 사는 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 바닷가마을이 숲속마을의 절벽 아래 있었다든지, 그 절벽을 올라갈 수 있도록 교육할 수 있는 교관이 있었다든지.. 이상하다. 클레어는 어떻게 그 절벽을 넘어가면 아들을 만날 것을 알고, 그 사이에 길을 막고 있는 악마느 클레어를 노파로 만들어 버리고.. 3장을 읽으면 2장의 모든 무리한 설정이 결국 마지막 감동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장치인데 개연성이 떨어져서 좀 아쉽다.



★★★★

3장으로 나뉜 소설이다. 클레어의 출산과 영문없이 솟아난 아이를 향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나타난 1장, 기억을 잃어 버리고 산을 넘기 위해 훈련하고 악마를 만나는 2장, 산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노파가 되어버린 클레어와 엄마를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엄마를 찾으러 모험을 하겠다는 가브리엘이 대조되는 3장. 1장은 굉장히 가슴 아프고 재밌다. 2장은 좀 어리둥절하고, 3장은 안타까움이 느껴지지만 좀 답답하고 아쉽다. 전체적으로는 꽤 재미있고 개인적으로는 《기억전달자》 이후 《파랑채집가》와 《메신저》는 건너뛰고 《태양의 아들》을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기억전달자》의 진정한 후속작은 《태양의 아들》인 것 같다. 한가지, 원래 제목인 《SON》을 《태양의 아들》이라고 번역한 건 좀 오버스럽다. 그리고 SF소설이라고 하기보다는 판타지소설이라고 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기억전달자》를 읽었다는 전제하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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