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십이국기 2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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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 그 두 번째 이야기..

이렇게 금새 다음 권이 나올지는 몰랐다. 첫번째 책인 '그림자의 바다, 달의 그림자'가 나오자마자 사서 읽고 빨리 두번째 책인 '바람의 바다, 기슭'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최소한 몇개월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마도 이미 번역을 다 마쳤나 보다. 다른 책들을 살펴 보다가 우연히 나온 것을 알게 되어서 바로 지르게 되었다. 1편의 요코와 게이키의 이야기도 굉장히 재미있지만 개인적으로 더 흥미진진한 다이키와 교소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망설일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오노 후유미? 젊네.. 십이국기는 작가생전에 절대로 완결되지 않을 소설로 유명하다고 한다.>​

전편의 주인공이 왕이었다면 이번의 주인공은 기린이다.

​십이국기 세계관에서 모든 생물은 나무에 열매의 형태로 태어난다. 이 열매를 난과라고 하는데 갑작스런 기상의 극한 이변이라고 할 수 있는 '식'이라는 자연현상에 의해서 아직 태어나기 전의 난과가 다른 세계인 봉래(일본을 말한다)로 흘러 들어갈 수 있는데 태어나기 이전의 난과는 봉래로 흘러 들어가면 임신한 여자의 태속에 들어가게 되어 봉래의 사람으로 태어나 십이국의 생명체가 아닌 봉래의 생명체로 살게 된다. 이런 생명체를 태과라고 하는데 첫 편과 두번째 편의 주인공이 모두 이런 태과들이다. 아무래도 십이국의 인물들보다는 인생의 극적인 변화를 통해 십이국에 적응하는 생명체(자꾸 사람이 아니라 생명체라고 하는 건 다이키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의 모습이 훨씬 드라마틱할 때문일 테고 십이국 태생이 아닌 사람(그냥 사람이라고 하자)에게 십이국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는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함께 설명을 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미움만 받는 것 같았던 아이.. 십이국기의 세계로 돌아와 봉산궁의 주인이 되다..

​추운 겨울 할머니에게 혼이나서 마당으로 쫒겨났던 다카사토는 모퉁이에서 자기를 향해 손짓하는 손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겨우 그 손에 이끌려 다른 세계로 오게 되고 이 곳에서 다이키라고 불리우며 사실은 자기 자신이 일본의 어린아이가 아니라 십이국중의 대극국의 기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일본에서 자라 야수의 습성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신수로 변하는 전변을 하지 못하는데다가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요마도 절복시키지 못해 스스로 기린이라는 정체성에 의심을 가지고 있던 중 하지가 다가와 왕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봉산궁으로 올라오게 되고 그 중에 리사이라는 주후 휘하의 장군과 금군 장군인 교소를 만나게 된다. 교소를 보게 된 다이키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교소를 피하게 되지만 동시에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십이국기의 두 주인공.. 요코와 다이키..

십이국기는 열두 나라의 설정을 다 만들어 놓고서 그 십이국의 역사를 부분 부분 보여 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옴니버스식 구성의 소설이다. 여전히 열두개 나라 중의 하나의 이야기이고 게이키도 등장하지만 세계관만 같다 뿐이지 전혀 별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두 인물의 이야기가 초반에 나오기도 하고 굉장히 드라마틱한 전개를 보여주기 때문에 십이국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첫번째 편과 두번째 편의 주인공들이 모두 태과 출신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서 처음 십이국으로 왔을 때는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여 좌충우돌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요코가 인간이면서 왕의 자질을 가지지 못한 하나의 인간에서 훌륭한 왕이 되어가는 노력의 측면에서 성장을 다룬다면 다이키는 오히려 본성이 기린으로서 그걸 깨닫지 못하던 것을 발견해 나가는 측면에서 성장을 다룬다는 것이 조금은 다른 것 같다.

가장 마음이 가는 에피소드..

애니메이션 십이국기를 봤을 때도 모든 에피소드가 정말 마음에 들었었다. 하지만 역시 다이키가 교소에게서 어떠한 왕으로서의 천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믿으면서도 교소와 떨어지기 싫어서 왕으로 섬기기를 맹세하는 장면이나 어떠한 요마도 사령으로 삼지 못하다가 역사상 그 어떤 기린도 사령으로 삼을 수 없었던 강력한 요마인 도철을 사령으로 삼는 장면은 십이국기 전체를 통틀어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만한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요코의 에피소드에서는 십이국의 일반적인 설정들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졌다면 다이키의 에피소드에서는 사실상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맨 처음과 끝에만 나와서 사실상 기린이 어떤 생물인지 알 수 없었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 기린이란 어떤건지를 자세히 알려 주기 때문에 두번째 에피소드를 읽고 나서야 거의 십이국기의 대략적인 설정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성의 아이가 있다..

그리고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이 더 흥미진진한 이유는 애니메이션에서 보면 다이키는 뿔이 잘린 상태로 행방불명이 된 상태이고 일본으로 돌아가 살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게다가 왕이 된 교소도 행방불명인데다가 나중에는 경왕인 요코를 속여서 군사를 일으키게 한다는 말까지 인터넷으로 봤기 때문에 가장 미스터리를 많이 지닌 인물인 다이키가 주인공이라 더욱 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이야기의 핵심중에 한 명인 다이키를 처음 만나는 책이다. 그리고 그동안 소문만 들어 보고 도대체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마성의 아이가' 십이국기의 프리퀄인 것처럼 0권으로 함께 출간되었다. 내용은 다이키가 고등학생이 된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 역시 함께 샀으니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기대가 정말 크다.

반드시 봐야 할 일본식 판타지 소설의 끝판왕..

​십이국기는 모든 사람에게 꼭 추천한다. 특히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은 앞편보다 더 재미있다.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가 사실 요코가 처음 식을 타고 흘러들어온 이후 늘어지는 면이 없잖아 있는데 반해 늘어지는 곳 하나 없이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패기 넘치고, 또 때로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이 죽을까 걱정하는 약한 모습을 다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이번에 엘릭시르에서 나온 십이국기 시리즈는 정말 책이 잘 나왔다.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게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소장할만한 가치도 있다. 그래서 항상 도장을 찍어서 책을 보관하는데 이 책만큼은 찍지 말까 하는 고민도 살짝 했다.(물론 결국은 찍었지만..)

십이국기의 팬이나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빌려서도 읽지 말고 반드시 사서 소장해야할 책이다. 그리고 십이국기를 모르더라도 어지간히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사서 읽​어 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난 이제 '마성의 아이' 읽고 있을테니 빨리 3권 내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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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도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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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믿고 간다.. 다나카 요시키..

​아주 어릴적부터 SF소설을 정말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추리소설과 SF소설을 읽기 시작해서 당시 학교 도서관에 있던 거의 모든 추리소설하고 SF소설을 섭렵하고 중학교 때 김용의 무협소설에 빠지기 전까지 엄청나게 읽어 댔으니 아마도 내 독서의 시작은 추리소설과 SF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SF소설 작가 중에 최고로 치는 작가는 아이작 아시모프이다. '로봇공학의 3원칙'을 중심으로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어 인간형 로봇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 '로봇'시리즈와 '심리역사학'을 창시한 해리 셀던을 중심으로 해서 장대한 미래의 인류를 다루다가 마지막에는 '로봇'시리즈와 연결해 버리는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정말 멋진 작품들이다.

또 하나의 걸작으로 꼽는 SF소설은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이다. 아시모프의 소설이 장대한 흐름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살펴 본다면 '은하영웅전설'은 미래 역사를 영웅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정치, 문화, 역사를 엮어내는 것이 마치 삼국지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한 번 손에 잡으면 10권을 단번에 독파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흡입력도 좋아서 매니아층도 굉장히 두꺼운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다른 판타지 작품 '창룡전'은 조금 읽다가 ​손에서 놔 버렸고 그 외의 작품들은 읽지를 않다가 우연히 다나카 요시키의 한권짜리 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읽기 시작했다.

​<이게 일곱도시의 지도다. 잘 보면 북극부터 북미, 남미, 남극까지를 가로로 돌려 놓고 약간 변형한 지도다.>

인류의 환경을 제한하는 특이한 설정​과 개성넘치는 인물들..

​처음은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상상력을 동원한 환경 설정부터 시작한다. 달에 인류가 진출하여 거주하기 시작한 얼마 후 2088년에 지구의 북극점이 태평양 동북부로 이동하는 대전도에 의해서 지구는 온갖 재해에 휩싸이고 거의 모든 인류가 멸망한 후에 달에 살던 사람들이 지구에 남아 있는 인류를 모아 7개의 도시국가를 새로 만든다. 이 때 지구인들이 비행을 하지 못하도록 지상 500미터 이상으로 비행하는 물체는 모두 쏘아 떨어뜨리는 '올림포스 시스템'을 만들고 지구인들은 지상에 묶여 살게 된다. 하지만 얼마 후 운석의 바이러스에 의하여 달의 인류는 사라져 버렸지만 올림포스 시스템만큼은 자체 에너지 공급원으로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 그 후 수십년이 지나 지구의 인구수가 5,000만명정도 되는 2190년부터 이 소설은 시작한다.

은하영웅전설처럼 이 책도 7개 도시의 전쟁과 정치를 다루고 있으며 그 와중에 영웅적인 인물들이 나와서 어떻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어리석은 위정자들과 지휘관들이 ​어떻게 국민들과 군인들을 도탄에 빠뜨리는지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수사는 여전히 화려하고 냉소하는 듯한 말투도 변함이 없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다나카 요시키의 수​사는 정말 화려하다. 각 인물들에 대해서 적절한 별명을 붙여 준다든지 어떤 상황을 설명할 때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여전하다. 이런 점은 다나카 요시키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멋진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불신하는 영웅적인 군사지도자들이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그런 공화주의적인 민주주의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서도 따르는 모습 역시 은하영웅전설의 '얀 웬리'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아마도 다나카 요시키는 공화주의의 시스템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작은 은하영웅전설.. 하지만 매력은 떨어진다..

너무나도 닮아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쩐지 은하영웅전설의 프리퀄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일단 첫 전쟁인 북극해 전쟁에서 두 사람의 영웅이 나와 서로 이기지도 지지도 않으면서 각 도시의 영웅이 되는 모습은 은하영웅전설에서 얀 웬리와 라인하르트가 그랬던 것과 똑같다. 게다가 위에서 적은 것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그러면서​도 따르는 군사지도자들,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본국에서 편하게 있으면서 군인들을 사지로 모는 무능한 정치인들, 스토리는 분명히 별개인데 은하영웅전설과 너무 닮아 있다.

​하지만 은하영웅전설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일단 소설이 너무 짧다. 다섯개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결국 다섯개의 전쟁을 묘사하는 것으로 그치기 때문에 장대함에서 너무 부족하고 인물들의 개성을 너무 꼬아 놔서 매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게다가 소설을 쓰다가 중지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짧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전쟁의 진행상황도 간단하게 처리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전쟁의 모습을 좀더 현실적으로 그리기 위해서 공중전을 제한하고 육지와 바다에서만 전쟁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한정한 설정자체는 참 대담한 발상이었지만 결국은 그것 때문에 발목이 잡혀서 전술적인 재미를 주지 못한다.

아마도 다나카 요시키는 3개의 국가를 벗어나 7개의 도시로 얽혀 있는 훨씬 장대한 대서사시를 그리려다가 포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공만 했으면 훨씬 멋진 작품이 나왔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아이디어가 결국은 딸렸거나 작품을 쓰다 보니 은하영웅전설을 자기모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게 아닌가 싶다.

은하영웅전설 팬이라면 한 번 읽어 볼만은 하다.

은하영웅전설을 좋아했던 팬이라면 그냥 한 번 읽어 볼만은 하다. 워낙 필력이 좋은 작가이기 때문에 책 자체는 지루함은 없이 쉽게 넘어간다. ​한 권 읽는데 4시간 정도 걸렸으니 많은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니다. 그외에도 SF에 관심이 있으면 쉽게 읽어넘길 수 있으니 봐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SF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책 이외에 읽을만한 SF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사실상 SF라기 보다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지구판 버전에 가깝다. (사실 은하영웅전설도 SF보다는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기는 하다.)

SF 광팬에게는 추천.. 그외에는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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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 경제학 고전에 공동체의 행복을 묻다
조형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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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의해 망가져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다른 관점에서의 경제학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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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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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읽지 않고 책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는지..

이 책에 대해서는 정말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고 제목만 보고 책을 구매를 했다. 읽어야 할 책은 너무나 많고 사놓고 읽지 않은 책도 많고 어쩌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읽지 않은 책에 관한 내용이 주제에 오르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지적 열등감을 많이 느끼는 나로서는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정말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읽은것처럼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지적인 허세는 더욱 심해지겠지만, 궁금했다. 어떻게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하고 말을 할 수 있는지..

​게다가 대충 목차를 봐도 딱 기분좋게 구성이 되어 있다. 책을 전혀 읽지 않거나, 대충 훑어 보거나, 그냥 들어서 알거나, 읽었지만 잊은 경우를 구분해 놓고 그런 책들에 대해서 얘기해야만 하는 경우를 제시하고 대처하는 방법까지 늘어 놓았으니 뭔가 가려움을 긁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가 평문을 써야 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 오스카 와일드 -

 

생각은 했지만 말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뻔뻔하게 드러내다..

일단 책 처음에 나오는 약호표도 재미있다. Op.cit.나 Ibid.​​같은 약호는 논문이나 책에서 많이 사용하는 거지만 저자는 읽지 않은 책은 UB로, 대충 뒤적거린 책은 SB로,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책은 HB로, 읽었지만 잊은 책은 FB로 약호를 정해 놓고 책 전반에 대해 책에 대해서 인용을 할 일이 있으면 이 약호들을 사용한다. 이 책 자체에서 자신이 읽지 않았으면서 인용하고 있는 책들에 대해 거리낌없이 밝히고 있다. (게다가 제대로 읽은 책은 거의 없다. 문학평론가인데 말이지..) 책 자체가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책에서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는 것이다.

모두 12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 챕터마다 그 챕터에 적절한 책이나 상황, 영화같은 하나의 텍스트를 예시하면서 ​설명을 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쉽게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좀 이해하기 난감한 경우도 있고 저자 역시 그 책들을 완전히 정독은 한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으니 우습기도 하다.

​책 자체보다는 책의 맥락과 개인의 창조성을 강조한다..

저자의 논지에 따르면 어차피 책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이상, 책이라는 것은 주변의 상황에 의해 규정되게 마련이고 결국은 그 규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주변 상황에 따라 대충 아무렇게나 지껼여도 (이때 필수적인 것이 두루뭉실하게 포장하는 것이다) 대충 들어 맞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책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특히 사회적인 권위가 있는 사람이)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지껄인다면 그 의견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든 반어로 받아들여지든 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론적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결국 책을 읽고 그 책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내어주고 책의 보편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인의 창조성이 희생이 되므로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강변한다.

끝까지 헷갈리다..

​이 책은 정말 그럴듯한 논지를 가지고 책을 읽지 않고도 떠들 수 있는 여러 방법과 상황과 태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 도대체가 이 책이 의도하는 바가 진심인지 아니면 저자의 반어적인 독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끝까지 읽은 후에는 그게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지금도 조금은 의심하는 마음이 가시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읽지 않은 책'이라는 것은 사실상 평론의 대상이 되는 문학에 대해서 얘기한 것이지 지식을 쌓는데 필요한 책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긴, 어차피 문학이라는 것이 되는대로 지껄이면 그게 평론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긍이 가기는 한다. 예전에 문학에 관한 리포트를 쓸 때를 생각하면 대충 세부적인 사항은 얼버무리고 특이한 관점 하나만 ​잘 포장하면 좋은 리포트가 되었던 걸 생각해 보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함정은 있다..

책을 읽지 않고 책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건 이 책을 읽으면 잘 알 수는 있지만 이 책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은 이미 많은 독서량으로 인해서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책 한권한권을 대충 읽고 떠드는 것은 그 전에 수많은 책을 읽지 않았던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 않기 때문이다. 평생 소설이라고는 하나도 읽지 않았던 사람이 어떻게 햄릿에 대해서 읽지 않고 들은 얘기만 가지고 평가를 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사실 이 책은 책 자체에 모순을 가지고 있다. 저자도 딱히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그런 사실을 감추려고 하지는 않는다.

즉, '이미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창조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게 이 책의 대체적인 내용이다.​

책 자체의 모순.. 하지만 재미는 있다..

그리고 책 제목 자체가 일단 모순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말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하다니.. 이건 단식기도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는 어떤 목사의 얘기하고 마찬가지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미있다. 예시하고 있는 많은 상황들도 재미있고, 읽다 보면 지식인의 허세를 어떻게 역이용하는지도 나와 있기 때문에 슬슬 웃음을 지으면서 읽을 수도 있다. 책 내용 자체도 크게 어렵지 않아서 책장도 쉽게 넘어 간다.

독서의 반대 개념을 읽지 않음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규정을 한 것이 아니라 비독서라는 적극적인 읽지 않는 표현으로 바꾼 것도 참 재미있다.

독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읽을만하다.

그리고 난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했다.

뭔가 좀 억울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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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사건들 - 현재의 소설 : 메모, 일기 그리고 사진
롤랑 바르트 지음, 임희근 옮김, 박상우 해설 / 포토넷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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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징그러운 이름.. 롤랑 바르트..

정말 오랜만에 롤랑 바르트의 책을 손에 쥐었다. 책을 어느 정도 읽기 시작한 때부터 신화와 원형, 기호에 관심이 많았었던 나에게는 롤랑 바르트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롤랑 바르트의 책도 학교 다닐 때는 꽤 읽고 지금도 몇권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구조주의에서 한 획을 그은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다. 사실, 이제는 문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공부를 계속한 것도 아니니 롤랑 바르트를 알 필요도 사실은 거의 없다. 그러다가 우연히 손에 쥐게 된 롤랑 바르트의 책. 그냥 이름만 봐도 일단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 또 뭘 분석하고 있는 걸까?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생각보다는 깐깐하게 생기지 않고 미남이다>

전혀 어렵지 않은 롤랑 바르트의 책이 반갑다..

이름만 듣고 식겁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절대 어려운 책은 아니다.

책의 소제목을 보면..

1. 남서부의 빛

2. 소소한 사건들

3. 팔라스 클럽에서, 오늘 저녁...

4. 파리의 저녁들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저 작가의 일상을 적은 글일 뿐이다. 그것도 상당히 건조하게 글을 적어 나가고 있고 어려운 내용도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읽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크게 긴장하고 책을 집어 들었던 것에 비하면 이건 뭐 그냥 편안한 느낌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책의 정체는 뭘까?

이 책은 분류상 에세이로 분류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읽으면서도 에세이라는 분류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에세이인가? 일단 아무렇게나 펼쳐서 눈에 들어온 페이지 하나를 보면..

"하얀 젤라바를 전신에 둘러 쓴 흑인이 그 옷 때문에

어찌나 까맣게 보이던지 나는 그의 얼굴이 웬 여자가

뒤집어쓴 까만 베일인 줄만 알았다."​ (p.124)

​뭐. 이런 식의 글이다 1장, 3장, 4장은 나름 길게 쓴 글인데 반해 2장은 약 120여 페이지에 걸쳐 이런 식의 아무 의미없어 보이는 짧은 글이 계속 이어진다. 이 책의 제목 자체가 '소소한 사건들'이므로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은 아마도 2장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처음 읽을 때는 도대체 뭔가 싶다.

​그리고 해설을 읽고 나서는 이 책이 정말 에세이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복잡한 얘기는 걷어 치우고 롤랑 바르트는 '현재적 관점에서의 글쓰기를 통한 소설 창작'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결국 내 생각에는 이 책에 써 있는 글들이 일종의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 되살려 쓰는 글은 왜곡이 되기 때문에 현재의 삶을 보이는대로 적은 것을 소설로 생각한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렇다면 소설하고 에세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으니..

스냅사진과 하이쿠..​

그리고 이 책의 2장은 한편한편이 상당히 짧은데 모두들 어떤 풍경을 스냅사진 찍듯이 표현했다. 모든 글들이 결국은 하나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만약에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면 빈 여백에 그 풍경을 하나씩 그려가면서 책을 읽으면 그것도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롤랑 바르트는 일본의 5.7.5조의 전통 정형시인 하이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알파벳을 모아서 하나의 음절이 만들어지는 프랑스어를 가지고선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음절을 이루는 일본의 시의 표현 방식을 따를 수 없을테니 어떻게 썼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난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추천? 비추천?

이거 참 애매한 문제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온갖 상상을 하면서 장면도 상상하고 롤랑 바르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읽었는데, 전체적인 일관적인 스토리는 없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불호가 굉장히 크게 갈릴만한 책인 것 같다.

일단 롤랑 바르트라는 위대한 석학이 이론적인 면을 쏙 빼고 글을  쓰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하다. 그리고 롤랑 바르트의 책 한 권 정도는 읽었다고 허세 떨고 싶은 사람(개인적으로는 책이나 음악을 들은 후에 허세를 떠는 것도 선택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 편하게 읽고 롤랑 바르트라는 사람의 책을 읽었다고 하기 좋다.

하지만 뭔가 스토리가 있는 글이나 재미있는 글을 읽고 싶은 사람은 불만스러울테니 안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래전 읽었던 롤랑 바르트의 책을 부담감없이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롤랑 바르트에 관한 짧은 논문을 다시 읽어 볼 기회도 됐고.. 개인적으로는 중간중간에 글의 내용과 분위기가 비슷한 사진이나 삽화가 들​어가면 참 좋았을 것 같지만 그랬다가는 롤랑 바르트 선생님께서 자신의 글을 왜곡했다고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 같으니..

편하게 손에 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읽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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