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사건들 - 현재의 소설 : 메모, 일기 그리고 사진
롤랑 바르트 지음, 임희근 옮김, 박상우 해설 / 포토넷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듣기만 해도 징그러운 이름.. 롤랑 바르트..

정말 오랜만에 롤랑 바르트의 책을 손에 쥐었다. 책을 어느 정도 읽기 시작한 때부터 신화와 원형, 기호에 관심이 많았었던 나에게는 롤랑 바르트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롤랑 바르트의 책도 학교 다닐 때는 꽤 읽고 지금도 몇권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구조주의에서 한 획을 그은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다. 사실, 이제는 문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공부를 계속한 것도 아니니 롤랑 바르트를 알 필요도 사실은 거의 없다. 그러다가 우연히 손에 쥐게 된 롤랑 바르트의 책. 그냥 이름만 봐도 일단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 또 뭘 분석하고 있는 걸까?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생각보다는 깐깐하게 생기지 않고 미남이다>

전혀 어렵지 않은 롤랑 바르트의 책이 반갑다..

이름만 듣고 식겁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절대 어려운 책은 아니다.

책의 소제목을 보면..

1. 남서부의 빛

2. 소소한 사건들

3. 팔라스 클럽에서, 오늘 저녁...

4. 파리의 저녁들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저 작가의 일상을 적은 글일 뿐이다. 그것도 상당히 건조하게 글을 적어 나가고 있고 어려운 내용도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읽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크게 긴장하고 책을 집어 들었던 것에 비하면 이건 뭐 그냥 편안한 느낌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책의 정체는 뭘까?

이 책은 분류상 에세이로 분류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읽으면서도 에세이라는 분류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에세이인가? 일단 아무렇게나 펼쳐서 눈에 들어온 페이지 하나를 보면..

"하얀 젤라바를 전신에 둘러 쓴 흑인이 그 옷 때문에

어찌나 까맣게 보이던지 나는 그의 얼굴이 웬 여자가

뒤집어쓴 까만 베일인 줄만 알았다."​ (p.124)

​뭐. 이런 식의 글이다 1장, 3장, 4장은 나름 길게 쓴 글인데 반해 2장은 약 120여 페이지에 걸쳐 이런 식의 아무 의미없어 보이는 짧은 글이 계속 이어진다. 이 책의 제목 자체가 '소소한 사건들'이므로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은 아마도 2장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처음 읽을 때는 도대체 뭔가 싶다.

​그리고 해설을 읽고 나서는 이 책이 정말 에세이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복잡한 얘기는 걷어 치우고 롤랑 바르트는 '현재적 관점에서의 글쓰기를 통한 소설 창작'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결국 내 생각에는 이 책에 써 있는 글들이 일종의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 되살려 쓰는 글은 왜곡이 되기 때문에 현재의 삶을 보이는대로 적은 것을 소설로 생각한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렇다면 소설하고 에세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으니..

스냅사진과 하이쿠..​

그리고 이 책의 2장은 한편한편이 상당히 짧은데 모두들 어떤 풍경을 스냅사진 찍듯이 표현했다. 모든 글들이 결국은 하나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만약에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면 빈 여백에 그 풍경을 하나씩 그려가면서 책을 읽으면 그것도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롤랑 바르트는 일본의 5.7.5조의 전통 정형시인 하이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알파벳을 모아서 하나의 음절이 만들어지는 프랑스어를 가지고선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음절을 이루는 일본의 시의 표현 방식을 따를 수 없을테니 어떻게 썼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난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추천? 비추천?

이거 참 애매한 문제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온갖 상상을 하면서 장면도 상상하고 롤랑 바르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읽었는데, 전체적인 일관적인 스토리는 없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불호가 굉장히 크게 갈릴만한 책인 것 같다.

일단 롤랑 바르트라는 위대한 석학이 이론적인 면을 쏙 빼고 글을  쓰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하다. 그리고 롤랑 바르트의 책 한 권 정도는 읽었다고 허세 떨고 싶은 사람(개인적으로는 책이나 음악을 들은 후에 허세를 떠는 것도 선택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 편하게 읽고 롤랑 바르트라는 사람의 책을 읽었다고 하기 좋다.

하지만 뭔가 스토리가 있는 글이나 재미있는 글을 읽고 싶은 사람은 불만스러울테니 안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래전 읽었던 롤랑 바르트의 책을 부담감없이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롤랑 바르트에 관한 짧은 논문을 다시 읽어 볼 기회도 됐고.. 개인적으로는 중간중간에 글의 내용과 분위기가 비슷한 사진이나 삽화가 들​어가면 참 좋았을 것 같지만 그랬다가는 롤랑 바르트 선생님께서 자신의 글을 왜곡했다고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 같으니..

편하게 손에 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읽기에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