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알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읽지 않고 책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는지..

이 책에 대해서는 정말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고 제목만 보고 책을 구매를 했다. 읽어야 할 책은 너무나 많고 사놓고 읽지 않은 책도 많고 어쩌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읽지 않은 책에 관한 내용이 주제에 오르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지적 열등감을 많이 느끼는 나로서는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정말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읽은것처럼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지적인 허세는 더욱 심해지겠지만, 궁금했다. 어떻게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하고 말을 할 수 있는지..

​게다가 대충 목차를 봐도 딱 기분좋게 구성이 되어 있다. 책을 전혀 읽지 않거나, 대충 훑어 보거나, 그냥 들어서 알거나, 읽었지만 잊은 경우를 구분해 놓고 그런 책들에 대해서 얘기해야만 하는 경우를 제시하고 대처하는 방법까지 늘어 놓았으니 뭔가 가려움을 긁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가 평문을 써야 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 오스카 와일드 -

 

생각은 했지만 말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뻔뻔하게 드러내다..

일단 책 처음에 나오는 약호표도 재미있다. Op.cit.나 Ibid.​​같은 약호는 논문이나 책에서 많이 사용하는 거지만 저자는 읽지 않은 책은 UB로, 대충 뒤적거린 책은 SB로,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책은 HB로, 읽었지만 잊은 책은 FB로 약호를 정해 놓고 책 전반에 대해 책에 대해서 인용을 할 일이 있으면 이 약호들을 사용한다. 이 책 자체에서 자신이 읽지 않았으면서 인용하고 있는 책들에 대해 거리낌없이 밝히고 있다. (게다가 제대로 읽은 책은 거의 없다. 문학평론가인데 말이지..) 책 자체가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책에서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는 것이다.

모두 12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 챕터마다 그 챕터에 적절한 책이나 상황, 영화같은 하나의 텍스트를 예시하면서 ​설명을 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쉽게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좀 이해하기 난감한 경우도 있고 저자 역시 그 책들을 완전히 정독은 한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으니 우습기도 하다.

​책 자체보다는 책의 맥락과 개인의 창조성을 강조한다..

저자의 논지에 따르면 어차피 책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이상, 책이라는 것은 주변의 상황에 의해 규정되게 마련이고 결국은 그 규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주변 상황에 따라 대충 아무렇게나 지껼여도 (이때 필수적인 것이 두루뭉실하게 포장하는 것이다) 대충 들어 맞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책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특히 사회적인 권위가 있는 사람이)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지껄인다면 그 의견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든 반어로 받아들여지든 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론적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결국 책을 읽고 그 책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내어주고 책의 보편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인의 창조성이 희생이 되므로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강변한다.

끝까지 헷갈리다..

​이 책은 정말 그럴듯한 논지를 가지고 책을 읽지 않고도 떠들 수 있는 여러 방법과 상황과 태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 도대체가 이 책이 의도하는 바가 진심인지 아니면 저자의 반어적인 독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끝까지 읽은 후에는 그게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지금도 조금은 의심하는 마음이 가시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읽지 않은 책'이라는 것은 사실상 평론의 대상이 되는 문학에 대해서 얘기한 것이지 지식을 쌓는데 필요한 책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긴, 어차피 문학이라는 것이 되는대로 지껄이면 그게 평론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긍이 가기는 한다. 예전에 문학에 관한 리포트를 쓸 때를 생각하면 대충 세부적인 사항은 얼버무리고 특이한 관점 하나만 ​잘 포장하면 좋은 리포트가 되었던 걸 생각해 보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함정은 있다..

책을 읽지 않고 책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건 이 책을 읽으면 잘 알 수는 있지만 이 책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은 이미 많은 독서량으로 인해서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책 한권한권을 대충 읽고 떠드는 것은 그 전에 수많은 책을 읽지 않았던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 않기 때문이다. 평생 소설이라고는 하나도 읽지 않았던 사람이 어떻게 햄릿에 대해서 읽지 않고 들은 얘기만 가지고 평가를 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사실 이 책은 책 자체에 모순을 가지고 있다. 저자도 딱히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그런 사실을 감추려고 하지는 않는다.

즉, '이미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창조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게 이 책의 대체적인 내용이다.​

책 자체의 모순.. 하지만 재미는 있다..

그리고 책 제목 자체가 일단 모순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말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하다니.. 이건 단식기도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는 어떤 목사의 얘기하고 마찬가지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미있다. 예시하고 있는 많은 상황들도 재미있고, 읽다 보면 지식인의 허세를 어떻게 역이용하는지도 나와 있기 때문에 슬슬 웃음을 지으면서 읽을 수도 있다. 책 내용 자체도 크게 어렵지 않아서 책장도 쉽게 넘어 간다.

독서의 반대 개념을 읽지 않음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규정을 한 것이 아니라 비독서라는 적극적인 읽지 않는 표현으로 바꾼 것도 참 재미있다.

독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읽을만하다.

그리고 난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했다.

뭔가 좀 억울한 느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