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9일 온라인 잡지 <유네스코 쿠리에(Unesco-courier)〉는 "문화재 불법거래 건수는 국제 범죄행위에서 마약 및 무기 밀매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라고 밝혔다. - P36

조작과 수정이 난무하는 디지털 영상시대를 살아가는 신세대들에게 이제 ‘사진‘은 너무 협소한 용어가 되어버렸다. 본질적으로 기록사진은 사람들에게 많은 환상을 불어넣기 힘들다. 그로 인해 "오늘날 중국에는 연출사진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주로 예술시장의 입맛에 맞춘 피상적이고 화려한 영상이 대부분"이라고 페이 다웨이는 지적했다. - P55

1926년 헤밍웨이가 자신의 첫 장편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의 머릿글로 인용해 유명해진 ‘잃어버린 세대‘란 표현은 자신들의 역사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불편한 삶을 선택한 모든 자발적 망명자들을 지칭한다. 영국으로 귀화한 미국 미주리주 출신 시인 T.S.엘리엇에서부터, 스타인의 단골 방문객들의 조국인 미국을 혐오한 서정시의 혁신가 에즈라 파운드, 막 첫 장편소설을 발표한 존 더스패서스, 피츠제럴드와 젤다 모두 이에 해당했다. - P60

문명인은 뿌리를 잃고 메말라가고, 자본의 노예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나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에, 자유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틀렸다. 그것은 착각이다.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언론이고, 언론은 돈을 위해 일한다. 결국, 문명인의 특성, 나아가 문명인의 합리성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는 시기가 온다. 끝없는 의심에 빠지고, 마지막 확신마저 사라진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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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스가 켈 사관학교 생도였을 당시, 한 교관이 ‘경계면 탈곡기‘라는 병기에 대해 설명해준 적이 있었다. 교관에 따르면 탈곡기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해야 하며, 그 이유가 단순히 무기에 얽힌 끔찍한 악명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교관은 탈곡기가 사용되는 걸 실제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날 목격담을 들으며 그녀의 뇌리에 각인된 것은 포위된 도시 주민들이 온몸의 구멍으로 빛을 쏟아내며 타죽는 광경도, 이처럼 끔찍한 이능력을 이끌어내는 수식도, 하물며 당시 탈곡기에 의해 손상당했다는 시쳇빛이 일렁이던 교관의 왼쪽 눈도 아니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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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전시에서의 스크린 사용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20년 만에 ‘저항‘에서 ‘끊임없는 갈망‘으로 급변했다. 디지털 기술은 예술의 개념에 새로운 주체(컴퓨터, 네트워크, 디자인, 인간공학, 정보보안 등)들을 도입했고 서술의 주체도 바꿨다. 그리하여 미술관에 대한 담론을 미술관 밖으로 끌어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기술이 매개에 대한 필요성에 맞춰 적용돼야 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 P11

이제 인간은 여러 사물들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주체적 존재가 아니다. 기술세계와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 기술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이제 인간과 기술 장치는 불가분의 관계다. 이제 인간은 ‘기술의 세계 속에 놓인 존재‘다." - P13

"나는 도무지 NFT 아트를 이해할 수 없다. (NFT 아트 투자에 앞장선 사람들은) 국제적인 사기꾼이다."
최근 미술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NFT 아트에 대해, 세계적인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이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 P19

기성세대에게 자주 충격과 경탄을 안겨다주면서 심각한 세대 격차를 유발시키는 이 모바일 세대의 등장은 이제 겨우 십여 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세대 격차를 개탄스러워 한다면 그것은 너무 때 이른 것일지도 모른다. - P27

여기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보다 더 강화된 첨단 테크놀로지의 소유 방식이 초래하게 될 기술 계급 사회의 문제다. 즉 첨단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데 익숙한 사람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겪게 될 불평등한 상황은 새로운 형태의 계급사회를 초래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삶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업데이트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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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예는 수많은 위혹이 풀렸지만 무거운 짐을 벗어던졌다는 기분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커다란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왕어언의 모친과 자기 부친이 과거에 정을 통했던 사이라고 생각하자 매우 못마땅한 생각이 든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갑자기 극심한 공포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 두려운 일을 감히 있는 그대로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아 말할 수 없이 초조하고 불안할 뿐이었다. - P136

"사촌 누이가 어디로 갔는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누이는 줄곧 대리 단 공자와 함께 다녔으니 어쩌면 두 사람이 이미 혼례를 올리고 부부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왕 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냐?" - P138

"단… 단… 벼… 별고 없었나요?"
단정순이 그 목소리를 듣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가 고개를 돌려 그게 왕 부인임을 알아차리고는 더더욱 안색이 변했다. 그는 도처에 적지 않은 정을 흘리고 다녔지만 수많은 상대 중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 바로 왕 부인이었다. - P168

"뭐? 저.… 저 녀석이 어언.…."
단정순은 안색이 창백해져 왕 부인을 향해 나지막이 물었다.
"당신 딸 이름이 어언이오?"
왕 부인은 원래 거칠고 조급한 성격이었던 터라 이 정도까지 참은 것만 해도 평생 처음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컥 눈물을 쏟아내며 소리쳤다.
"이게 다 양심 없고 박정한 당신 때문이에요. 날 해친 것도 모자라 당신 친딸까지 해친단 말이에요? 어언・・・ 어언이・・・ ・・・ 그 아이는 당신 친골육이라고요!" - P174

단예는 남해악신의 상처 부위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피가 자신의 얼굴과 목에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그의 사부로서 그에게 제대로 베푼 것이라고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수차에 걸쳐 자신을 구한데다 오늘 이렇게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 P178

단연경이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
"나에게 순종하는 자는 창성할 것이며 거역하는 자는 망할 것이다!"
그는 철장을 들어올려 단예의 가슴팍을 향해 찔러갔다.
별안간 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룡사 밖, 보리수 아래, 더러운 비렁뱅이, 긴 머리의 관음."
단연경이 ‘천룡사 밖‘이란 말을 듣는 순간 그의 철장은 허공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멈추었다. 그러고는 말이 끝나자 철장이 끊임없이 부들부들 떨리다 천천히 내려갔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도백봉의 시선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무궁무진하다는 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 P178

단연경은 ‘임자‘이란 세 글자를 보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임자년? 바로 그해 2월에 적의 공격을 받고 중상을 입은 채 천룡사 밖에 갔지 않았던가? 이런 저… 저 아이가 11월이 생일이라면 딱 열 달인데 그럼 그때 회임을 했다는 것인가? 그… 그럼… 저… 저 녀석이 내 아들? - P188

모용복이 말했다.
"재하의 심원은 전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다만 대연 재건의 꿈은 하루아침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전 우선 전하가 대리국 황위에 오르는 것을 보좌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자식이 없으니 저를 양자로 거두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우리 두 사람이 한마음 한뜻으로 대업을 이룬다면 서로 득이 될 것 아니겠습니까?" - P194

모용복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벗을 팔아 영화를 구하는 것이 불의겠지."
그의 일장은 부드럽고 섬세한 내경으로 포부동의 영대, 지양 두 곳의 요혈을 후려친 것이라 매우 치명적인 장력이었다. 포부동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보살피며 자라난 공자가 갑자기 자신에게 독수를 쓸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터였다. 그는 무방비 상태에서 요혈을 강타당하자 욱 하고 선혈 한 모금을 뿜어내며 그 자리에 고꾸라져 죽어버렸다. - P200

왕 부인은 고약한 냄새를 한번 맡고 코를 찌르는 듯 구토가 나오려 하자 한바탕 욕을 퍼부으려 했다. 순간 사지의 경력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단정순과 단 부인 그리고 진홍면, 완성죽, 감보보 세 여자를 이리저리 훑어보다 갑자기 질투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아야! 어서 저 천한 년들 네 명을 싹 다 죽여버려라!" - P209

단예는 부친과 모친이 동시에 검으로 자결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순간 두 다리가 마치 식초에 담가놓은 듯 시리고 마비돼 걸음을 옮길 힘이 없었다. 그는 두 손을 바닥에 짚고 기어가며 소리쳤다.
예기치 못한
"어머니, 아버지! 두 분께서 어… 어찌…."
"아들아, 아버지와 이 어미 모두 먼저 떠난다. 부..… 부디 자신을 잘 돌보도록 해라……." - P225

단예가 소리쳤다.
"죽일 테면 죽여라! 어찌 손을 쓰지 않는 것이냐?"
단연경은 그의 몸에 찍었던 혈도를 풀어주며 여전히 전음입밀 수법으로 말했다.
"난 내 아들을 죽이지 않는다! 네가 날 인정 못하겠다고 하니 육맥신검으로 날 죽여 단정순과 네 모친의 복수를 해도 좋다!
이 말을 하면서 가슴을 들이밀고 단예가 손을 쓰기만 기다렸다. - P231

‘황상께서 남쪽으로 내려온 건 무슨 의도일까? 아자의 공주 봉호를 어찌 ‘평남‘이라 한거지? 평남..… 혹시 대송에 전쟁을 일으키려는 건가?‘
야율홍기가 소봉의 오른손을 부여잡았다.
"현제, 우리 둘이 오랜만에 만났으니 가서 얘기나 좀 나누세." - P281

야율홍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남원대왕 소봉은 작위를 받으라."
소봉은 말 위에서 훌쩍 내려와 바닥에 엎드렸다.
"남원대왕 소봉은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고 짐을 훌륭하게 보좌했기에 이제 소봉을 왕으로 봉해 평남대원수로서 삼군을 통솔토록 한다. 이상!" - P286

소봉은 요나라인들의 피와 살점이 난무하고 시체가 바닥에 널려 있는 모습을 보고 흰색 보자기를 든 채 두손을 부르르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속으로 크게 부르짖었다.
‘난 거란인이지 한인이 아니다! 난 거란인이지 한인이 아니야!‘ - P340

소봉은 타구봉을 가져와 봉법 요결을 그에게 들려줬다. 허죽은 기억력이 무척 좋고 이해력마저 갖추고 있었다. 더구나 소무상공이란 기반을 갖추고 있어 타구봉법이 어렵긴 해도 천산절매수나 천산육양장 등 다른 심오한 무공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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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봉은 이어서 항룡십팔장도 전수했다. 이는 극히 강한 것도 극히 부드러운 것도 아닌 유가와 도가의 철학 이론을 겸비한 매우 심오한 무학이었다. - P358

몇 년이 흘러 개방에 한 소년 영웅이 배출되었다. 그는 사람됨이 매우 신중하고 실력이 있으며 인간관계 역시 좋았던 터라 개방 제자들이 공개적인 논의를 거쳐 그를 방주로 추대하기로 했다. 모두들 소봉의 의도를 존중해 그를 영취궁에 보내 우선 허죽의 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다시 타구봉법과 항룡십팔장을 전수받도록 했다. 그 소년 방주는 이를 저버리지 않고 신공을 배워 개방을 나날이 발전시켜 놀라운 중흥을 이루어냈다. 개방은 이때부터 영취궁을 은인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 P360

"노화상, 당신들 모두 중원 백성이라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대부분 중원 사람 같지 않다. 좋아! 내가 최대한 봐주겠다. 대송 백성은 들어올 수 있지만 대송 백성이 아니라면 들어올 수 없다."
군호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예의 수하들은 대리국 사람이고 허죽의 수하들은 서역 사람은 물론 서하, 토번, 고려인들까지 각 부족 사람이 섞여 있었다. 만일 대송 백성들만 관문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면 대리국과 영취궁 두 무리의 인마들은 대부분 들어갈 수가 없지 않은가? - P380

소봉이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제자리에서 잠시 꼼짝 말고 대기하시오. 재하가 요 황제와 얘기를 좀 나눠보겠소."
그는 단기필마로 내달려갔다. 그는 양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손에 아무런 무기가 없다는 뜻을 표한 뒤 큰 소리로 외쳤다.
"대요국 황제 폐하, 신 남원대왕 소봉이 폐하께 드릴 말씀이 있으니 나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력을 돋우어 내뱉은 이 말은 먼 곳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10여만에 이르는 요군 장졸들이 이 말을 또렷이 듣고 하나같이 안색이 변했다. - P382

돌연 두 개의 인영이 마치 번개처럼 그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 야율홍기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다름 아닌 허죽과 단예였다. 그 두사람은 정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오늘의 이 상황이 요 황제를 납치해 협박해야만 모두가 온전할 수 있으리라 여기고 서로 손짓을 하며 각각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 P384

소봉이 말했다.
"신이 감히 두 형제를 대신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디 폐하께서 약속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야율홍기가 껄껄대고 웃었다.
"천하에는 내가 내놓지 못할 물건이 많지 않네. 터무니없는 요구라 해도 들어줄 것이야."
소봉이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즉각 철수를 하시고 평생 단 한 명의 요군 병사도 송나라 변경을 넘어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 P388

야율홍기가 고개를 돌려보니 소봉이 여전히 꼼짝도 안 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차갑게 웃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소 대왕, 송나라에 그런 큰 공을 세웠으니 고관에 봉해져 후한 봉록을 받을 날이 멀지 않았겠구나."
소봉이 큰 소리로 답했다.
"폐하, 소봉은 거란인으로 폐하와 결의형제를 맺었지만 오늘 폐하를 협박해 거란의 대죄인이 되었습니다. 이미 불충에 불의한 이 몸이 앞으로 무슨 면목으로 세상을 살아가겠습니까?"
이 말을 마치자 오른손에 쥐고 있던 두 토막으로 부러진 화살을 높이 들더니 내공을 돋우어 오른팔을 거꾸로 들어 찔렀다. 화살은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심장에 박혀 버렸다. -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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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검은 두 사람 심사를 알아차린 듯 말했다.
"사실 단 공자에게는 소 대협 같은 의형이 있어 굳이 서하를 끌어들일 필요까지도 없지만 진남왕의 명이 있어 부득이하게 따를 뿐이잖아요. 만에 하나 무슨 변고가 생기더라도 소 대협은 수십만 정병을 틀어쥐고 있는 대요의 남원대왕이시니 중간에서 좋은 말로 화해를 시킨다면 서하가 대리를 침략하는 불상사도 막을 수 있을 거예요."
소봉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천석은 대리국의 사공으로 정무를 집장하고 있었기에 소봉이 대리국을 위해 강력한 지원을 해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계산속에 넣어놓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직접 말을 꺼내기 불편했을 뿐이었다. 매검이 그 말을 꺼내자 소봉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이 문제는 이미 태산처럼 굳건해 최악의 경우 구혼에 실패한다 해도 나라에 큰 우환이 생길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 P23

구마지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가 내식이 나갈 길을 찾자 곧바로정신이 들면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어이쿠! 내 내력이 이 녀석한테 끊임없이 흡수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난 폐인이 될 텐데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는 당장 운공을 통해 최대한 저항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그의 내력은 단예에 미치지 못해 거의 반 이상이 상대 체내로 들어간 후라 이미 자신의 내력은 줄어들고 상대는 증강된 상태였다. 결국 쌍방의 내력 차이는 더욱 현저해져서 아무리 발버둥을 치며 힘을 써도 시종 밖으로 쏟아져 나가는 내력을 붙잡아둘 수 없었다. - P38

"단 공자, 내가 소림 72 절기를 잘못 배워 주화입마에 든 탓에 위험천만한 상태에 이르렀소, 공자가 내 내력을 흡입하지 않았다면 노납은 이미 발광을 하다 죽고 말았을 것이오. 이제 노납의 무공이 소실되긴 했지만 목숨을 부지했으니 내 목숨을 구한 공자의 은혜에 감사를 드려야 옳소."
단예는 겸손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었다. 느닷없이 그가 자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려 하자 이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
"대사, 지나친 겸손이시오. 재하가 무슨 덕과 재능이 있어 대사의 목숨을 구했다 말씀하시오?" - P44

여래불께서 불자를 인도하시면서 가장 먼저 탐욕과 애욕을 버리고 소유욕과 속박에서 벗어나야만 해탈에 이를 희망이 있다고 했다. 난 단 하나도 능히 버리지 못했음에도 명리에 사로잡혀 나 스스로를 묶어두고 있었던 것이야. - P45

궁녀가 말했다.
"왕자께서도 기왕에 오셨으니 세 가지 질문에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왕자께서는 평생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게 느꼈던 장소가 어디입니까?"
단예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한 마른 우물 안의 진흙탕 속이었소." - P80

궁녀가 다시 물었다.
"영존과 영당께서는 어찌 생겼습니까? 왕자와 많이 닮았나요?"
단예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께선 각진 얼굴과 진한 눈썹, 큰 눈에 매우 위엄 있고 용맹스러운 외모를 지니고 계시오. 사실 그분 성격은 오히려 매우 온화하고 선하신.…."
여기까지 말하다 갑자기 흠칫 놀랐다.
‘내 외모는 아버지를 닮지 않고 어머니만 닮지 않았나? 그 부분은 여태껏 생각해본 적이 없었구나.‘ - P82

소봉은 서하 공주가 궁녀를 시켜 사람들에게 한 명씩 똑같은 질문 세 가지를 하라고 명한 것을 보고 그 안에 깊은 뜻이 있으리라 짐작했지만 사람들을 해치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그는 그 세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했을 때 어찌 대답할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주를 떠올리자 가슴이 아파 슬픔을 금할 길 없었다. 그는 남들 앞에서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당장 몸을 돌려 석실을 빠져나왔다. - P88

궁녀가 물었다.
"선생께서 평생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게 느꼈던 장소가 어디입니까?"
허죽은 가볍게 탄식을 했다.
"어둠 속의 한 빙고 안이었습니다."
별안간 아 하고 나직하게 토해내는 여자의 탄식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도자기 잔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 P86

"허죽자 선생, 그럼 그 낭자는 미모가 아주 뛰어나시겠군요."
허죽이 말했다.
"그녀의 용모가 어떠한지 전 본 적이 없습니다."
순간 석실 안은 웃음바다가 돼버렸다. 모두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중 몇몇은 허죽이 일부러 농을 던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 속에서 돌연 한 소녀가 물었다.
"다..… 당신이 그 ‘몽랑‘인가요?"
허죽은 깜짝 놀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 다..… 당신은 몽고…?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소."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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