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처럼 다신교를 믿었지만 교조적이지 않았고, 도시 국가 안에서의 공동체 생활을 중시하고 ‘팍스 로마나‘의 기치 아래 폭넓은 관용을 베풀면서 그리스 종교의 모든 것을 유연하게 수용했다. - P442

신화에 대한 해석은 16세기까지도 알레고리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1 6세기의 신화 개론서들이 제시하는 신화 해석은 다의적이지 못하고 일의적(一義的)이었다. 그리스 신화는 기독교 정신과 『성서』를 차용하고 변형한 것이라는 생각이 ‘알레고리‘ 관점에 입각한 신화 해석의 주류였고, 이러한 경향은 17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 P491

신화를 역사적 시각으로 환원하려는 바니에(Abbé Banier)의 노력은 특히 독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신화 속의 인물들은 실재했던 왕과 영웅들이 신격화된 것이라고 믿었다. - P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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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좀 더 일반적인 인과적 템플릿으로 추상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엄청난 이점이다. 이런 템플릿은 훨씬 더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환경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유연하고 대체 가능하다. 그 덕분에 인간은 이전에 관찰한 적이 없는 인과관계를 추론할 수 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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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 포세이돈은 이 황소를 성나게만들었고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Pasiphae)로 하여금 이 황소에게 욕정을 품게 했다. 이 관계로부터 사람의 몸에 황소 머리를 가진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나게 되었다. - P357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Akrisios)는 딸이 낳은 손자가 자신을 해할 것이라는 예언이 두려워 딸 다나에(Danae)를 청동 문이 달린 탑에 가두었는데, 다나에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가 황금 빗물로 변신해 지붕 틈으로 흘러 들어가 다나에와 관계를 맺었고 그로부터 페르세우스가 태어났다. 다나에는 얼마 동안 아이를 몰래 키웠지만 사실을 알게 된 왕은 딸과 아이를 상자에 넣어서 바다에 던졌다. - P364

그리스 신화는 그 ‘이야기‘가 형성된 이후 고대 그리스에서 대체로 세번의 큰 변모를 거친다. 먼저 구전되던 설화를 서사시로 표현한 시대가있었고, 그 다음에 비극으로 표현한 시대가 뒤따랐으며, 세 번째로는 설화를 철학적 또는 궤변적으로 표현한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시대에도 신화의 ‘최초의 형태‘를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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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각은 프레임으로 가득하고, 그것이 바로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이다. 프레임은 간단할 수도 있고 복잡할 수도 있다. 정확할 수도 있고 모호할 수도 있다. 훌륭할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다. 어쨌거나 프레임은 현실의 일정 부분을 담아내고 있으며, 따라서 상황을 설명하고 그에 집중해서 결정할 수 있게 해준다. - P43

프레임의 역할은 더 나은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선다.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부여하도록 도움으로써 세계관에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현실세계를 형성하게 해준다. 따라서 특정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프레임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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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의 지략가 오뒤세우스(Odysseus)의 이름은 ‘원한에 희생당한 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트로이를 떠나 항해하던 중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중해 연안을 떠돌다가 포세이돈의 아들이자 외눈박이 거인인 폴뤼페모스를 장님으로 만들어 포세이돈의 ‘원한‘을 사게 된 오뒤세우스는 그 원한 때문에 10년 동안이나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수난을 겪는다. - P314

구사일생으로 거인의 거처에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오뒤세우스는 폴뤼페모스의 아버지인 포세이돈의 ‘원한‘을 사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포세이돈의 온갖 횡포에 시달려야 했다. - P316

제우스가 암피트뤼온의 모습을 하고 알크메네 앞에 나타나 알크메네와 하룻밤을 동침했다. 그러나 이 하룻밤은 보통 때의 하룻밤보다 세 배나 더 긴 밤이었다. 제우스가 밤을 늘렸기 때문이었다. 이때 알크메네가 제우스로부터 잉태한 아들이 헤라클레스였다. - P327

메가라는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끈질기게 자신을 괴롭히는 헤라 때문에 광기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모두 죽이게 되었다. 정신이 돌아온 그는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에 소름끼쳐 하며 속죄하기 위해 델포이로 가 아폴론의 무녀 퓌티아에게 신탁을 물었다. 신탁은 그에게 원래의 이름인 ‘알키데스(Alkides)‘를 버리고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의 ‘헤라클레스‘를 쓰라고 일렀고, 헤라가 그보다 앞서 태어나게 해서 티륀스의 왕이 된 오촌 에우뤼스테우스만을 섬기며 살아야 속죄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 P330

테세우스(Theseus)에 관한 설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헤라클레스 설화의 복사판이나 다름없다.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영웅이자 헤라클레스와 동시대 사람이다. 아테네 사람들은 테세우스를 항상 친근하게 생각했다. 헤라클레스가 도리아인의 영웅으로서 주로 펠로폰네소스에서 중요한 과업을 이룩했다면, 테세우스는 아테네와 아티카의 영웅으로서 이 지역이 그의 활동 무대였다. - P342

아테네가 미노타우로스의 제물이 될 남녀들을 각각 일곱 명씩 크레타의 미노스 왕에게 바쳤다는 에피소드는 아테네와 미노아 문명 간의 관계를 우의적으로 표현하는 대목이다.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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