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 성이 주(周)가라면 알겠느냐?"
그제야 곽정은 알았다는 듯 외쳤다.
"아하! 주백통(周伯通)이라는?" - P135

"노완동 주백통, 오늘 곽정과 의형제의 연을 맺습니다. 앞으로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눌 것을 맹세합니다. 이 맹세를 깨뜨린다면 저의 무공을 모두 거두시어 개나 고양이도 상대할 수 없게 하소서."
스스로 노완동(老童, 늙은 악동이라는 뜻)이라 하고 맹세하는 말도 어쩌면 이렇게 괴상망측한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 P139

주백통이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해서, 무공을 연마하는 것 자체가 무궁한 즐거움이지.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무공을 닦지 않는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세상에 할 일이야 많지만 오래 하다 보면 모두 지겹고 재미가 없지. 하지만 무공만은 무궁무진한 재미가 있단 말이야. 아우, 아니 그런가?" - P149

곽정이 갑자기 꼼짝 않고 서서 한참 동안 멍해 있다 입을 열었다.
"대형, 뭔가가 떠올랐어요."
"뭔데?"
"대형의 두 손은 초식이 완전히 다르니, 두 사람이 각자의 초식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진짜 결투를 할 때도 이 무공을 이용한다면 둘이서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니, 얼마나 승산이 크겠어요?
비록 내공을 두 배로 쓸 수는 없지만, 초식으로만 따지자면 상당한 우위를 차지하는 거예요." - P189

‘곽정은 전진교 제자가 아니니 내가 비급의 무공을 그에게 모두 가르쳐 주고, 그가 나에게 시범을 보인다면 사형의 유언을 어기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 P204

구양극과 나란히 서 있는 곽정을 쏘아보며 두 사람을 비교하니, 준수한 용모에 기품 있는 풍모, 재주까지 갖춘 구양극이 어딜 봐도 훨씬 뛰어나 보였다. 결국 구양극에게 시집보내리라 결심을 굳혔다. 하나 홍칠공의 체면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 P236

"왜 내게 절을 하는 게냐?"
"황용이 절을 하라고 해서요."
황약사는 속으로 끌끌 혀를 찼다.
저 녀석, 정말 바보로구나.‘ - P268

하늘의 도는 넘치는 것을 줄이고 부족한 것을 보충한다. 그런 연유로 허(虛)가 실(實)을 이기고, 부족한 것이 넘치는 것을 이기는 것이다.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是故虚勝實不足勝有餘 - P272

<구음진경>의 경문을 이미 수백 번 외운 곽정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거침없이 외워 내려갔다. 그렇게 반 장 정도를 외우자 모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젊은이는 일부러 우둔한 척하고 있었던 거야, 실제로는 총명하기 그지없구나.‘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순식간에 곽정은 네 장을 단숨에 줄줄 외웠다. - P278

"주백통과 곽정이란 아이는 <구음진경>을 모조리 외우고 있소. 내가 이 두 사람을 배에 태워 바다에 빠트리면 <구음진경〉을 불태운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소? 그러면 하늘에 있는 당신의 혼령도 편안히 쉴 수 있을 것이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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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 괴인은 왼손으로 황용을 안고 오른손으로 천천히 얼굴의 가죽을 벗겼다. 얼굴에 인피 가면을 쓰고 있어서 그렇게 기괴하게 보였던 것이다. 원래 얼굴이 드러나니 호리호리한 체형에 학식이 넘쳐보이는 의연함과 늠름한 풍채, 신선과도 같은 청아함이 풍겼다. 청포 괴인이 바로 도화도주 황약사였던 것이다. - P17

곽정은 단천덕이라는 세 글자를 듣자 마치 청천벽력을 맞기라도한 듯 귀가 멍하게 울렸다.
"다, 당신이 단천덕이오?"
"그렇습니다요. 무슨 분부라도……?"
"18년 전, 임안(臨安)에서 무관을 지낸 적이 있지요?"
"그렇습니다만..… 어찌 아셨는지요?"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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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약은 한 나라의 왕인 완안홍열 곁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오면서도 일개 평범한 촌부인 양철심을 사무치도록 그리워했던 것이다. 완안홍열은 문득 서글프고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 P57

한소영이 물었다.
"왕 도장, 홍 선배님이란 분은 어떤 분이시죠?"
왕처일이 미소를 띠며 자리에 앉았다.
구처기가 말을 받았다.
"동사(東邪), 서독(西毒), 남제(南帝), 북개(北)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당대 무림의 최고 고수들을 일컫는 말이라지요?"
"그렇습니다." - P74

진흙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불에 좀더 구은 다음 진흙을 떼어내니 닭털이 진흙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알맞게 구워져 먹음직스러운 닭고기 냄새가 입맛을 당겼다.
황용이 막 닭을 찢으려는데 뒤에서 웬 목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 몫으로 찢게, 닭똥집은 내게 주고….…."
두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 P96

"어르신 존함은 어찌 되십니까?"
"내성이 홍(洪)이고, 일곱째이니까 홍칠공이라고 부르면 되겠구먼." - P99

"아버지께서 그러시는데, 홍칠공에게 어떤 무공이 있는데 고금을 막론하고 천하에 단 하나뿐인 무공이래요. 전진교 왕중양마저도 두려워하던 무공이라던데 그 무공이…… 그게…..… 아, 왜 이렇게 생각이 안 나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각이 났는데 가르쳐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그 권법이 그게……."
어차피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허풍을 떨고 있는 것이었다.
나무 위에서 듣고 있던 홍칠공이 참다못해 뛰어 내려오며 외쳤다.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 권법이다!"
곽정과 황용은 화들짝 놀라 몇 걸음 물러섰다. - P114

"우리는 구걸을 하기 때문에 언제나 멸시를 당하지. 개한테 물리기까지 하고, 그러니 무리를 지어 다니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어. 북쪽의 백성들은 금나라의 지배 아래 있고, 남쪽의 백성들은 송 황제의 지배를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거지들은 ….…."
황용이 말을 가로챘다.
"남쪽이든 북쪽이든 홍칠공께서 다스리시는군요?"
홍칠공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죽장과 호로병은 당대(唐代)부터 전해진 것이다. 벌써 수백 년이 되었지. 대대로 개방(店村)의 방주가 지니는 것이다. 황제의 옥새나 관리의 금인(金印)과도 같은 것이야." - P137

이 항룡십팔장은 외문(外門) 무학 중의 으뜸으로, 어떤 방어로도 막을 수 없는 절륜의 무공이었다. 비록 초식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각각의 초식이 모두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북송 연간 개방 방주 교봉이 이 무공으로 천하의 영웅호걸과 겨루어 대단한 실력을 발휘했으니 그 기세가 천하를 덮고도 남았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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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는 많은 항성이나 행성, 또는 우리와 같은 생명체 등 여러 가지 존재로 가득 차 있다. 말하자면 ‘유‘의 세계이다. 그러면 ‘유’의 반대, 즉 ‘무‘란 무엇일까? 예를 들어 어떤 공간에서 모든 원자나 분자를 제거한 진공을 만들면 그곳은 무의 공간이라 할 수 있을까?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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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마음을 왜곡한다.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무섭다.
없어 보일까봐 무섭고 모두에게 들킬까봐 무섭다. - P35

인간의 뇌는 특이하게도 다른 사람을 도와줄 때 보상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달리기에서 느끼는 희열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뇌의 기제에는 남을 도울 때 생겨나는 ‘헬퍼스 하이 helpers high‘ 가 있다. - P42

"바깥으로 눈을 돌려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은, 나 자신만을 보는 것보다 더 큰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 P43

우리는 생각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생각한다. 만약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는 ‘행동‘이 우리를 만든다면, 어느 시점부터는 더 이상 선택지를 따지기보다 실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P70

에너지와 시간을 어디에 집중할지 스스로 단호하고 신중하게 선택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선택하게 되고 머잖아 우리는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을 전부 놓치게 된다. 자신의 의도대로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 삶이 타인의 의도에 의해 통제되도록 허용하게 만든다." - P72

네덜란드어에는 이렇게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가 있다. ‘닉센niksen‘ 이라는 이 단어는 대략 ‘목적 없이 하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겠다.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려는 의도를 버리고, 무언가를 꼭 끝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압박을 푸는 활동을 가리킨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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