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탱 씨는 주방의 식탁에 모여 앉은 식구들을 둘러보았다. 천장에길게 매달린 전등의 환한 불빛을 받으며 식구들은 음식 위로 몸을 구부린 채 그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가장의 기분이 상할까봐 저어하는 눈치였다. - P75

자코탱 씨는 문득 자기 재산을 도둑맞고 있다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가 흘린 땀의결실은 남이 가져가고 자기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봉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 P76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코탱 씨는 이 숙제가 아주 쉬운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쉬워서 코웃음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숙제에 대한 책임을 떠맡고 보니, 이게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 P90

제르멘 뷔주는 독신녀 라리송의 아파트를 떠났다. 그녀의 따가운 눈길을 받으며 두 시간에 걸친 ‘대청소를 막 끝내고 나오는 길이었다.
시각은 오후 네시, 이틀 전부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12월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 P103

여섯 아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진열창 안의 한 물건에만 쏠려 있었다. 그것은 한 켤레의 장화였다. 다른물건들과 마찬가지로 표찰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냥 ‘칠십리 장화‘ 라고만 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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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장화를 신기만 하면 한 걸음에 칠십 리를 갈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곧이곧대로 믿었던 건 아니었다. - P112

프랑스의 한 자그마한 도시에 말리코른이라는 집달리가 살고 있었다.
집달리의 일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슬픔을 주기 십상이었지만, 그는 자기 직무를 너무나 꼼꼼하고 성실하게 수행했다. 설령 자기 자신의 동산을 압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그 일을 주저없이 해낼 사람이었다. - P157

"너는 못된 놈이다. 하지만 성 베드로의 실수가 너를 살렸다. 지옥에 가는 것을 모면한 너를 다시 지옥에 떨어뜨리지는 않겠다. 그렇다고 네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너를 다시 땅으로 내려보내겠다. 계속 집달리로 살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선행을 쌓도록노력하거라. 자아, 가서 네게 허락된 이 유예를 유익하게 활용하도록해라." - P162

말리코른은 자기 생각을 다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후의 심판에관한 생각이 줄곧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자기의 선행을 증언하는소문이 온 도시에 자자하게 되면 나중에 하느님의 법정에 섰을 때 참으로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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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하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 책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충동적인 호주 여행, 치명적인 결과를 낳다

닉 호손은 기자다. 대단한 기자는 아니다. 그럴듯한 신문사나 잡지사에 근무하고 있지도 않다. 그저 몇 년에 한 번씩 이 신문사, 저 잡지사 옮겨 다니면서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닉은 여느때처럼 잘 다니던 신문사에 사표를 던지고 오하이오 주에 있는 잡지사로 자리를 옮기려고 했다. 그런데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 며칠 전 보스턴에서 며칠 머물다가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호주 지도에 마음이 뺏겼다. '2천 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21세기 문명의 징후를 발견할 수 없는 세계'. 닉 호손은 순간적인 충동에 빠져 얼마되지 않는 전재산을 처분하여 여행자 수표로 바꾼 후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막상 닉이 호주에 도착하니 호주는 생각보다 멋지지 않았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닉은 그래도 온 김에 중고로 산 차, 폭스바겐 밴을 끌고 다윈시에서 퍼스시까지 가기로 한다. 직선거리로만 2,600km가 넘는 거리이다. 거리도 먼데 호주에서 주의해야 할 금기를 잊고 밤중에 다윈시를 출발하다 캥거루를 쳐서 차도 망가지고 몸도 상처를 입는다. 불운이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운좋게도 도중에 주유소에서 20대 초반, 풍만한 몸매를 가진 앤지라는 아름다우면서 왠지 '60~'70년대에 머문 것같은 아가씨를 만나 함께 차에 타고 여행을 하게 된다. 앤지는 데드하트(호주 중앙 사막지역)에 있는 울라누프라는 고립된 마을 출신 아가씨다. 처음 만났을 때의 예상대로 두 사람은 여행을 하는 중에 뜨거운 육체관계를 갖게 된다. 야성적인 매력을 지닌 앤지에게 몸은 끌리지만 마음은 완전히 주지 않는 닉. 그렇게 여행을 하던 중, 잠에 든 닉은 이상한 꿈을 꾸게 되고 잠에서 깨어 보니 쓰레기 더미로 둘러싸인 낯선 헛간같은 곳에서 정신을 차린다. 앤지가 몰래 주사한 마취약에 취해 끌려온 곳은 앤지가 살고 있는 마을인 울라누프. 여전히 약에 취해 몽롱한 닉은 자신이 앤지와 결혼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모든 인구 53명, 네 가족만이 존재하는 지도상에 존재하는 않는 울라누프. 닉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더글라스 케네디 Douglas Kennedy 1955 ~ . 미국의 소설가.


두 번째 읽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빅 픽쳐》로 유명한 더글라스 케네디의 초기 소설이다. 워낙 많은 소설을 썼고 상당히 유명한 작가이기 때문에 그의 책들은 눈에 자주 띈다. 처음 읽은 《빅 픽쳐》가 굉장히 재미있었고 서스펜스가 넘쳤는데 이상하게 케네디의 책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소설가들이 쓴 책이 읽기 쉽고 재미도 있는데 이상하게 손이 잘 가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 느낌. 아니면 어릴 때부터 갖고 있는 다작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쓸데없는 거부감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책이 작고 얇아서 들고 다니기 좋은게 바쁜 아침에 갑자기 들고 나가기 좋아 책장에서 급하게 빼들고 읽기 시작했다. 일단 책 만듦새도 좋고 표지도 예쁘다. 입에 테이프를 붙여 놓고 상처난 채 꽁꽁 묶인 금발남자가 무슨 의미인지 알았을 때는 어처구니없는 충격이..


호주 지도. 북부 중앙에 닉이 출발한 다윈, 서부에 도착예정지였던 퍼스가 보인다.


지도에도 없는 마을

겨우 네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 그 가족들도 원래 친척들이기 때문에 울라누프에서 자라 어른이 된 아이들은 마을에서 배우자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대디'라고 불리는 마을 지도자는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면 8주간 여행을 하면서 배우자를 구해오도록 하고 앤지가 스물한 살이 되어 여행을 하다 마침 만난 닉을 끌고 와 강제로 결혼을 한 것이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닉을 감시한다. 낌새가 이상하면 말보다 매타작이 시작된다. 게다가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는 800km. 닉에게 희망은 없어 보인다.


흥미진진한 설정이다. 현대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기는 한다. 우리나라처럼 조그만 나라에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마을이지만 광활한 호주의 자연환경, 특히 바닷가에만 주요 도시가 존재하는 호주를 생각하면 이런 마을이 있을 법하기는 하다. 게다가 '데드 하트'. 죽어버린 심장. 대륙의 중심부가 황량한 사막이라는 의미도 있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심장도 죽어 있고, 무엇보다 주인공 닉의 마음도 죽어 있으니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굉장히 탁월한 책 제목이면서 장소의 명칭이다.


폭스바겐 밴. 닉이 다윈시에서 구매한 차가 이런 모양일 듯.


해결과정보다는 잡혀 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고 미국사람이나 생각할 수 있는 광활한 사막의 마을, 그 곳에 끌려가는 닉이 결국 탈출하지만 그 곳에 끌려가고 마을에서 당하는 과정이 훨씬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그곳에 갇혀 어떻게 탈출할까, 그리고 조력자, 끌려가서 당황하고 분노에 찼을 닉의 심정을 공감이 가도록 잘 표현했다. 하지만 탈출하는 장면은 그다지 두근거리지는 않는다.


특히 조력자가 너무 딱 맞게 설정되어 있고 닉의 프로에 가까운 차량 정비 능력은 좀 작위적이어서 탈출 장면에서 긴장감을 떨어뜨리는데 한 몫 한다. 책의 앞 부분 2/3은 소재의 신선함 덕분에 재미있는데 닉과 조력자가 의존할 수 있는 상황이 너무 쉽게 주어지는 것도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 특히 마지막에 그 두 사람을 꼭 죽였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데드하트》는 황량한 사막에서 황량한 마을에 붙잡힌 남자의 이야기이다.


★★★★

두번째 읽은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손에 땀을 쥐게하는 서스펜스가 장기인 것 같은데, 책도 술술 넘어가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책 한 권 읽는데 크게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다. 요즘같이 어지러운 시기에 머리 식힐 겸 읽으면 좋을 듯. 인물 활용면에서, 중간까지 굉장히 매력적이고 육감적으로 표현한 앤지를 인간쓰레기로 절하시켜 버린 건 좀 아쉽다. 조력자 크리스탈의 헌신적인 도움도 왠지 좀 어색하다.


순식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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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티유일이 자기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깨달은 것은 마흔세 살에 막 접어들었을 때였다. - P16

그의 안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벽들을 뚫고 지나가고 싶은 걷잡을 수 없는 욕구였다. - P22

그녀 곁을 떠날 때 뒤티유일은 그 집의 칸막이와 벽들을 통과하면서 여느 때와는 다르게 허리와 어깨에 무엇이 스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P34

2월 10일
항간에 터무니없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새로운 배급제에 관한 소문이다. 식량과 생필품 부족에 대처하고 노동계급의 수익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비생산적인 소비자들, 이를테면 노인, 퇴직자, 금리생활자,
실업자, 기타 다른 군입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리라는 것이다. - P39

말레프루아가 설명하기를, 쓸모없는 사람들은 한달을 다 사는 게 아니라 그 무용성의 정도에 따라 일수(日數)를 정해놓고 다달이 그 일수만큼만 살게 될 거라고 했다. - P40

4월 1일내가 정말로 살아 있다. 부활의 약속은 만우절의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흘렀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일시적인 죽음에 빠져들 때의 모습 그대로 침대에 있었고 그때의 그 공포도아직 가시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 P52

6월 32 일
시간에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평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없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제 아침 어떤 가게에 들어가 신문을 사려고 하는데, 신문의 날짜가 6월31일로 되어 있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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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스도 지도권을 다른 사람들한테 넘기고 가족과 함께 홀가분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책과 지식의 수호자이다. 말하자면 학자이자 사서이다. 얼마 전 가브리엘이 배 만드는 법을 배우려고 설명과 그림이 있는 책을 빌려간 것도 조너스한테서였다. - P307

그의 무덤 바로 옆에 수양아들 맷티의 무덤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맷티를 칠 년 전 역경의 시대에 마을을 괴롭힌 미지의 악과 싸우다 죽은 개구쟁이 소년으로 기억했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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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움찔했다. 얼굴 윗면에 눈 없는 가죽 가면을 씌웠기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하려는 거라지만 우스꽝스러운 데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물론 저항은 하지 않았다. 절차라는 정도는 소녀도 알고 있었다. - P11

‘모두 꺼내야 해요. 아니면 정상란들이 감염되거든요. 그래서날마다 점검하죠."
클레어는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수정이 잘못되었다고? 나도 그랬던 걸까? 내 상품도 저 탈색된 알처럼 어딘가 버려지고만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어. 36호는 관찮다고 하지 않았던가. - P33

감정의 정체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너무도 이상했다.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건만, 아이와 함께 있고 싶고 아이의 얼굴만 계속 떠올랐다. - P64

"공동체가 일제히 그의 이름을 연호했거든. 일종의 의식이라는데…… 그걸 뭐라고 하더라? 각인? 아무튼 우리는 그 이름을계속해서 불렀어. 조너스!" - P93

클레어는 돌아섰다.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도대체 어쩌다가이 지경이 된 거지?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식의 애착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신생아에게도 배우자에게도 동료나 친구에게도 그녀 또한 자신의 부모나 오빠에게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없건만, 침이나 질질 흘리고 간신히 걸음마를 떼는 갓난아이한테…. - P119

클레어는 환약을 복용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단순한 실수겠지? 끔찍한 출산 경험, 그리고 그 후의 임무 중지가 너무도 급작스럽고 놀라운 탓에 출산동에서도 그녀에게 환약을제공하거나 지시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다들 누군가 처리했다고 여겼을 수도 있겠다. - P128

노파는 자주 눈에 띄었다. 우거진 강변 솔밭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게이브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손으로 짠 우중충한 옷, 굽은 허리, 그리고 어디에선가 본 듯한 저 친근하고도깊은 시선, 하지만 어느 순간 노파는 어두운 나무들 사이로 슬며시 사라져 버렸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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