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부드러운 노랫소리가 안개 자욱한 호반 위를 감싸고 있다. 노랫소리는 호반 위의 작은 배에서 흘러나왔고, 그 배에는 다섯 명의 소녀가 깔깔거리며 노래를 부르면서 연꽃을 따고 있었다. - P16

형님은 돌아가시기전에 자신을 증오하는 원수가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어. 이름은이막수(李莫愁), 별호는 적련선자(赤練仙子)로 무공이 높고 악랄하기 그지없는 자라고 했어. 형님이 혼례를 올린 지 10년이 되는 해에 형님은 그 자가 자신의 부부를 찾아와 복수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지. - P34

어린 계집아이 둘은 사촌 간으로 한 아이는 성이 정(程)이고 이름은 외자로 영(英)이며, 또 한 아이는 성이 육(陸)이고 이름은 무쌍(無雙)이었다. 정영과 무쌍은 아홉 살이었고 정영이 여섯 달 먼저 태어났다. - P18

무 부인이 돌연 아이들에게 말했다.
"육 장주와 육 부인께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의 절을 올려라."
부인의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다소곳이 절을 했다. 육 부인은 황급히 아이들을 부축해 일으키고는 이름을 물었다. 이마가 깨진 아이는 열두 살 무돈유(武敦儒)로 형이고, 동생은 열한 살 무수문(武修文)이었다. 무학(武學) 명문의 자제인데도 이름에 문인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 P47

수문은 소녀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몸을 돌려보았다. 쇠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저는 노인이 보였다. 두 눈썹이 서리가 내린 것처럼 허옇고, 하얀 눈동자만 보이는 것이 장님이 분명했다. - P53

세상 사람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생과 사를 같이하게 한단 말인가? - P59

‘저 절름발이 노인은 누군데 저런 무공을 지니고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노인의 두 눈동자가 흰자만 있는 장님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경악하며 소리쳤다.
"가진악이로군!"
장님에 절름발이 노인은 바로 강남칠괴(江南七怪)의 수장인 비천편복(飛天婦蝠) 가진악(柯鎭惡)이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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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양강 때문에 돌아가신 사부님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리지만 어차피 양강이 죽었으니 증오의 마음도 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곽정은 의형제를 맺었던 옛 정을 생각해 양강의 시체를 수습하여 절 후원에 장사 지내 주었다.
"양강, 오늘 내가 너의 시체를 장사 지내 준 은혜를 생각해서 용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다오. 그럼, 살아 생전에 네가 저지른 모든 잘못을 용서하마 - P65

구양봉은 다시 손을 뻗어 곽정의 장력을 받았다. 그 역시 항룡십팔장에 대해서는 훤히 꿰뚫고 있었다. 또한 곽정이 홍칠공에게 직접 전수를 받아 장력이 대단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정면으로 힘이 전해지니 뜻밖에 몸이 흔들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고수의 힘이 서로 부딪칠 때는 그 진기(眞氣)가 조금만 역류해도 중상을 입게 된다. 조금만 방심했더라면 곽정에게 당할 뻔했다는 생각에 구양봉은 크게 놀랐다.
‘내가 늙어 기운이 떨어지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그 전에 이 녀석에게 따라잡히겠구나.‘ - P109

곽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면 넌 무엇을 해주겠느냐?"
"앞으로 세 번, 선배님이 제 수중에 걸려도 목숨을 살려 드리겠습니다."
구양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웃음을 터뜨렸다. - P112

곽정은 황용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정작 이렇게 만나고 보니 놀라움 반, 기쁨 반으로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서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봉우리 꼭대기는 온통 얼음이라 굉장히 미끄러웠지만 두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동시에 미끄러져 바닥에 쓰러졌다. - P137

"노독물이 견디다 못해 죽기로 작정했구나!"
황용은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다 조금씩 표정이 바뀌었다.
"응? 이상하네? 어떻게 저럴 수가……."
지켜보고 있자니 구양봉의 몸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천천히 흔들리며 연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곽정과 황용은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 높은 봉우리에서 떨어진다면 곧장 떨어져 가루가 되어야 하는데, 어찌 저 자는 저렇게 천천히 내려온단 말인가? - P147

"대칸께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테무친의 목소리는 깊이 잠겨 있었다. 곽정은 혼사를 취소하라던 황용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대칸의 환심을 잃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황용과의 인연도 물거품이 될 터였다. 그러나 눈앞에서 수십만 백성들이 비명에 죽어 가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다시 마음을 수습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테무친도 곽정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 P163

구양봉은 심오한 무공을 가진 자라 곽정의 연공을 살펴보면서 경전 중 많은 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얻은 경전과 대조를 하니 전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아 더욱 곽정의 연공을 독촉해댔다. 그러니 곽정의 무공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오히려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 P184

"나의 이 두 손을 두 명의 적이라고 생각해라. 구양봉, 구천인 저 두 놈은 당연히 네 적이니까 너 혼자서 네 명의 적을 상대해 보는 거야. 한 번 해보자. 이런 재미있는 놀이는 너도 처음 해보지?"
곽정은 주백통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하다가 갑자기 세 사람이 동시에 자신에게 맹공을 퍼붓자 죽을힘을 다해 피할 수밖에 없었다. 주백통은 계속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걱정 마, 걱정 말라고, 위험하면 내가 도와줄게." - P196

대칸은 품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어 각각 하나씩 건네주었다. 주머니 입구는 옻을 불로 지져 밀봉되어 있었는데, 옻 위에는 대칸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대량에 도착하기 전에 함부로 풀어 보아서는 안 된다. 또한 주머니를 열기 전에 서로 주머니 입구에 손상된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아라." - P205

이평은 말을 하면서 곽정의 품에서 그 비수를 꺼내 손잡이에 새겨진 곽정‘ 이라는 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구 도장은 네 이름을 곽정이라고 짓고, 양 숙부 아이의 이름을 양강이라고 지어 주셨단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구 도장께서는 저희들에게 ‘정강의 치욕‘을 잊지 말라는뜻에서 그렇게 지어 주셨습니다." - P215

이평은 곽정을 한참 동안 묵묵히 바라보았다. 아들을 바라보는 표정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얘야. 너 자신을 잘 보살펴야 한다!"
이평은 말을 마치고 비수로 곽정의 손에 묶인 밧줄을 끊은 다음, 순식간에 칼날을 돌려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곽정은 손이 풀리자마자 급히 막으려 했지만 비수는 예리하기 그지없어 이미 손잡이만 남기고 가슴에 깊이 꽂혀 있었다. - P216

"저는 앞으로 다시는 무공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무공을 다 잊어버리게 되면 좋겠는데, 이미 익힌 무공을 잊어버릴수도 없고……. 방금도 저 때문에 장정 하나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까?" - P229

차분히 내뱉는 서생의 말에 구천인은 고개를 쳐들고 크게 웃어 젖혔다.
"무공으로 하겠다면 당신들은 여럿이고 나는 혼자이니, 상대가 되지 않을 거요. 하지만 시비, 선악을 따진다면, 헤헤…… 나 혼자 이 자리에 있을 테니 평생 사람 죽여 본 일 없고, 죄를 저질러 본 적도 없는 자가 있다면 나서 보시오. 그런 사람의 손에 죽는다면 곱게 죽어 드리리다. 눈썹 하나라도 찡그린다면 내 사내대장부가 아니올시다." - P264

사부님은 평생 231명을 죽였다고 하셨지. 하지만 그들은 모두 악인이었어. 선량한 사람을 실수로 죽이지만 않는다면 마음에 거리낄 것도 없겠지. 구천인을 꾸짖을 때 사부님은 정말 당당한 모습이셨어. 구천인의 무공도 사부님보다 크게 떨어질 것 없지만, 악이 선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지. 사부님의 당당한 기세에 눌릴 수밖에 없는 거야. 나의 무공을 의롭고 선한 일에 쓸 수 있다면 굳이 잊으려 할 필요는 없겠지? - P271

곽정은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아이의 반듯한 용모를 보니 양강과 의형제를 맺은 일이 생각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라버니께서 이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세요."
목염자의 눈물어린 부탁에 곽정은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 아이의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었소. 끝이 좋지 않았으니, 나도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 평생 한으로 남을 거요. 이 아이는 커서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 인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오. 용아, 나는 글을 잘 모르니 네가 이름을 지어 줘."
황용은 그래도 될지 목염자를 쳐다보았다.
"그래, 오라버니의 기대를 넣어서 네가 아이의 이름을 지어 줘."
"그러면 이름은 양과(楊過)라 하고, 자는 개지(改之)라고 하는 것이 어떨까요?"
"좋아요! 아이가 오라버니와 용이가 바라는 것처럼 자랐으면 좋겠어요."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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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조카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은 곽정이란 놈이 독수를 썼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네가 구처기에게 전하는 말을 듣고 난 뒤에야 전진교의 사악한 도사들이 한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백타산에는 이제 계승자가 없으니, 내 너를 제자로 거두겠다."
양강은 큰 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제자의 절을 받으십시오." - P19

가진악은 너무 놀라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황용은 강남오괴를 죽인 사람이 구양봉과 양강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의 목숨을 버려 가며 아버지의 결백을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 틀림없이 위험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진악에게 자기를 죽인 사람이 누군지 황약사에게 알리라고 했던 것이다. 가진악은 괴로움과 후회로 몸을 떨었다. - P34

구양봉은 사랑하는 조카를 양강이 죽였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바보 소녀가 거짓말을 할 리 없었다. 너무 놀란 구양봉은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
"소왕야, 네놈이 내 조카를 죽였다고? 하하하! 잘 죽였군, 잘 죽였어."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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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황야는 이미 죽은 지 오래다. 지금의 나는 일등이라 부른단다. 네 사부께서는 내가 불가에 귀의한 것을 알고 계시는데, 네 부친은 아직 모르고 계시지?" - P34

‘사사로이 정을 통해 아기를 낳았는데도 한 번도 나를 탓하지 않았고 계속 궁궐에서 살게 해주었지. 나를 죽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예전보다 더 후하게 대접했어. 그는 나에게 항상 잘해 주었어.’
영고는 늘 단 황야가 자신의 아기를 구해주지 않은 것만 기억하며 독심을 품어 왔다. 그러나 단 황야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난 뒤에야 그가 베풀어준 은혜가 불현듯 생각난 것이다. - P134

곽정은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제자, 만 번을 죽는다 해도 사부님을 범할 수 없는 법입니다. 제가 어리석은 탓에 잠시 실수를 저질렀으니, 저를 벌해 주십시오."
"자꾸 사부, 사부 하는데, 누가 네 사부란 말이냐? 너야 도화도주께서 장인이신데, 무슨 사부가 또 필요하겠느냐? 강남칠괴의 얕은 재주로 어찌 우리 곽 나리의 사부가 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가진악의 말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 P216

곽정은 외마디 비명을 내뱉었다. 하늘과 땅이 빙글빙글 도는 듯하더니 그예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부싯돌의 불이 여전히 그의 손에서 빛을 내며 타고 있었다. 그 불빛에 의지해 황용이 바닥을 보니 전금발이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었다. 저울대의 남은 반 토막이 그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이제 진상은 대충 밝혀진 셈이었다. - P240

"오빠, 첫째 사부님의 표정을 보고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줄 짐작했어요. 나를 죽이겠다면 지금 죽여 주세요. 우리 엄마도 여기 계시니 엄마 곁에 눕혀 주세요. 저를 묻어 주시고 아버지와 맞딱뜨리지 않도록 곧바로 이 섬을 떠나세요." - P242

그때 구처기는 눈물을 비처럼 뚝뚝 흘리고 있는 곽정을 보았다.
"아니, 왜 그러느냐?"
곽정은 한 걸음 다가가 땅에 엎드려 통곡했다.
"사, 사, 사부님들이 돌아가셨습니다."
구처기는 깜짝 놀라 소리질렀다.
"뭐라고?"
"첫째 사부님을 제외하고 나머지 분들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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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러 보물과 무기를 보고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을 기다리는 황용이 마음에 걸려 그만 몸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 동굴 동쪽 벽 부분의 한 해골의 몸에 목합(木盒)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목합에는 글자가 씌어 있는 듯했다. 다가가 불을 가까이 대고 읽어 보니 ‘파금요결(破金要訣) 네 글자였다. 곽정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악무목의 유서가 아닐까. - P259

"저들이 길을 찾을 수 있을 턱이 없으니 안심하시오. 여기까지 찾아온다 해도 두 분은 나 신…… 신…… 영고(瑛姑)의 손님이신데,
내가 저들을 가만 둘 리 있겠소?""
그녀는 말을 마치고 은근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 별호가 신산자(神算子)인데, 저 아이가 나보다 훨씬 셈에 능하니 어찌 감히 그녀 앞에서 신산자라 할 수 있겠는가?‘ - P280

산술은 저 어린 여자 아이를 당해내지 못하고 이제 무공조차 이런 젊은이를 당해내지 못하니………. 게다가 저 젊은이는 등에 사람을 업고 있는데도 무공이 이렇게 강하니, 만약 정식으로 겨루었다면 내가 벌써 졌겠지. 10여 년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니……. 그렇다면 이제 복수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 P285

오직 단 황야(段皇爺)만이 치료할 수 있으나, 그는 불의를 많이 저질러 도원에 피해 있는 중이오. 외부인은 전혀 그를 만나 볼 수없으며, 만약 치료해 줄 것을 청한다면 이는 크게 금기를 어기는 일이 될 것이오. - P300

"구지신개가 단 황야를 뵙고 오라고 했다고?"
"그래요."
어부는 다시 캐물었다.
"분명 단 황야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황용은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다시 말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어부는 앞으로 두 걸음다가오며 호통쳤다.
"단 황야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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