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탄생 - 사라진 암호에서 21세기의 도형문까지 처음 만나는 문자 이야기
탕누어 지음, 김태성 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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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자의 역사를 다룬다..

한자에 대해서는 원래 크게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저 대학교에 다닐 때 갑자기 꽂혀서 몇개월 동안 쓰는 글자 중에 모든 글자를 한자로 썼던 적이 있었는데 결국은 나중에 가독성도 떨어지고 글씨를 잘 쓰지 못하기 때문에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9개월전부터 시작한 취미 덕분에 한자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고 한자 공부를 좀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몇권 책을 보다가 어디서 알았는지 이 책을 알게 되어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으로 인해서 한자 공부를 하려고 했던 원래의 목표는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 ​이 책은 한자공부를 위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자를 한자 한자 흥미롭게 보는 방법을 나름 알게 되었고 글자에 대한 관심은 무척이나 높아졌다.

 

탕누어 ​唐諾 (1958~ ), 대만의 문화평론가.

문학평론가의 눈으로 본 한자의 탄생..

지은이는 탕누어 唐諾, 탕누어는 필명이고 본명은 셰차이쥔 謝材俊으로 대만의 문화비평가라고 한다. 주로 갑골문에 있는 한자들을 살펴 보면서 한자가 발생한 연원을 추리해서 밝히면서 한자가 탄생할 당시의 사회상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풀어내면서 우리가 평소에 그냥 쉽게 지나쳐갔을 한자들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도와 준다. 그런 한자들 중에는 지금 우리가 많이 사용하고 있는 한자들도 있지만 생활상의 변경으로 인해서 잊혀지고 만 한자들도 있다. 그런 한자들은 상상력을 보태서 어떤 의미였을가 자세히 생각해 보기도 하고 읽는 사람들이 추리해 볼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두기도 한다. 이런 과정들은 마치 하나의 암호를 풀어나가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하나의 글자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한자의 갯수는 너무나 많다. 무려 수십만자나 된다고 하는데 하나하나 외워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글자 수천개만을 익혀서 사용하게 되고 그나마도 한글전용이 된 이후로는 거의 한자를 알지 못해도 살아가는데 거의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한자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하지만 '한자의 탄생'을 읽으면서 한 개의 글자가 탄생한 배경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되고 그 의미를 반추하다 보니 글자 하나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나 소리글자(책에는 병음문자라고 되어 있다.)에 비해서 뜻을 온전히 지키고 있는 한자를 보면 그 당시의 생활상이 그대로 화석화되어 남겨져 있다는 사실에 그동안 사실 익히기 쉬운 한글의 우수성에 비해서 무지막지하게 암기를 강요하는 한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거부감을 많이 없앨 수 있었다. (나는 한자를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글전용론자이다.)

 

이런 식으로 글자를 하나씩 적으면서 책을 읽었다.

갑골문에 대한 관심이 부쩍~!

갑골문은 굉장히 직관적인 글자이다. 모든 상형자가 그렇듯이 사물의 형태를 노골적으로 문자로 옮겨 놓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정말 쉽다. 그리고 그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재미도 있다. 안그래도 요새 갑골문을 많이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는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새로이 알게 된 것은 갑골문은 한자의 가장 초기 형태이긴 하지만 이미 갑골문에 한자를 만드는 원리 중에 후기에 속하는 형성문자가 많기 때문에 한자 발생 초기의 문자는 아니라는 것이다.(한자는 상형~지사~회의~형성~전주, 가차의 순서로 문자가 만들어 졌다고 할 때..) 언뜻 생각할 때 갑골문의 글자는 거의 상형문자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과는 다른 점이다.

 

갑골문.. 갑골문은 흔히 거북의 등에 새겼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거북의 등은 너무 딱딱해서 글을 새기기 어렵고 실제는 부드러운 배딱지에 새겼다고 한다.​

 

인문학 책이라고 보기엔 좀..

한자에 대해서 재미있게 읽다 보면 여러가지 인문적 지식을 중간중간 인용하고 있다. 인용자체는 문제가 아닌데 사실 좀 뜬금없이 삽입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내용과 잘 어우러지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나는 이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라는 느낌을 독자에게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 같은 현학적인 자세가 보인다. 전체적인 맥락하고 왠지 따로 논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 어색하다.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한자에 대한 자부심은 이해를 하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의 글자에 대해서 문화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것 같은 태도는 조금 불편하기도 하다. 좋은 면이 있든 어쨌든 한자는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문자인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실용성에 있어서는 최악의 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세계에서 한자 외에 상형문자를 실제로 실생활에 사용하는 문자가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한자에 대한 관심이 없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대체적으로 인문학이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좋아할 만해 보인다. 읽을 때 중간중간 나오는 작가가 인문학적으로 아는 척한 부분은 읽지 않고 넘겨도 좋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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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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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책의 제목은 알레고리가 아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책을 소설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냥 제목만 봤을 때는 소설책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 중에 마르셀 에메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벽을 통과하는 사나이'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한테 들어 보니 소설이 아니었다. 일단 제목이 독특해서 어던 책인지 궁금하던 차에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책 제목만 보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말이 어떤 상징이나 은유가 아닌 생각을 하기 쉽지만 이 책은 신경정신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 )가 자신의 임상경험을 쓴 책으로 실제로 자신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했던 환자에 관한 이야기가 책 제목이다.

 

저자 올리버 색스 Oliver Sacks.. 영국의 신경학 전문의..​

다양한 임상경험을 흥미롭게 서술한다.

책은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라는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고 각각의 주제에 맞는 20여개의 환자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각 장의 시작은 간단한 신경학적인 용어 설명으로 독자가 각각의 사례에 접근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간단하게 제시하고 그 후 특이한 증상의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임상경험이라고 하니까 좀 딱딱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글쓴이는 마치 소설을 쓰듯이 글을 써 내려가기 때문에 어렵지 않고 각각의 환자들의 이야기는 일반 사람들이 잘 만나기 힘든 사람들의 경험을 보여 주고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환자에 대한 따뜻한 시각..

​신경정신학이라든지 정신과 의사들이 실험(혹은 관찰)을 한 기록을 보면 많은 경우 관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사람으로 본다기 보다는 일종의 기계처럼 봐서 어떠한 자극을 입력하고 그 후에 나타나는 대상의 반응을 출력하듯이 관찰하는 것처럼 굉장히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스탠리 밀그램의 '명령에 대한 복종'에 관한 실험이라든지 자신의 딸을 상자에 가두고 반응에 대한 실험을 했던 스키너같은 사람을 보면 굉장히 비인간적이라서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은 따뜻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올리버 색스가 ​환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종일관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어서 보는 동안 그런 불편함은 없었다. (비록 책을 쓰느라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에피소드에 나오는 환자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면서 환자를 증상이 있는 샘플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려는 노력을 한다.

 

영국에서는 동명의 연극으로 올려지기도 했다고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보는 흥미..

사실 나처럼 일상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신경정신과 환자를 만나볼 일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례들이 흥미진진하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걸 보면서 재미있어 하면 되나..하는 약간의 미안한 감도 들긴 했지만 워낙 사례들이 재미있어서 쉽고 빠르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1945년에 기억이 고정되어 있는 퇴역군인을 다루고 있는 '길잃은 뱃사람'이라는 에피소드는 정말 슬프다. ​이전에 20대에 정신이 고정되어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거울을 보면서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SF단편을 읽은 적이 있는데 상상만 해도 끔찍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역시 끔찍하다.

​서번트 증후군으로 소수를 빨리 찾아낼 수 있는 두 쌍둥이의 형제의 이야기는 굉장히 코믹하다. 일단은 쌍둥이 형제가 둘다 자폐를 겪교 있는 것도 신기하고(그렇다면 자폐는 선천적인 것일까?) 6자리 소수를 찾으면서 놀고 있는 두 형제에게 8자리 소수를 제시해서 교란하는 의사와 깜짝 놀라 당황하는 두 쌍둥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비춰진다. 어쩌면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인간이 풀어내지 못한 소수를 발견해 내는 알고리즘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외에도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후일담까지 곁들여서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윤리적 문제.. 그리고 약간 읽기 어려운 점..

​인간의 뇌를 탐구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숙제이지만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정상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뇌 연구는 결국은 선천적인 이유나 사고로 인해서 뇌의 한 부분의 기능이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 연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나의 예를 찾더라도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똑같은 손상을 입은 뇌를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아무래도 뇌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들이 많이 듣는 용어들과 달라서 읽기 힘들었는데 예를 들어 '이마엽'이라는 말이 자주 나와서 이게 뭔지 잘 몰랐었는데 나중에 찾아 보니 '전두엽'의 다른 말이었다. 아마도 한자로 되어 있는 용어를 한글로 바꾼 것 같은데 별다른 설명이 없으니 멈칫하면서 읽게 되었다. 하긴 전두엽이라는 말이 익숙하긴 해도 머릿속에서나 익숙하지 정말 어떤 부분인지 형태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무슨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고 흥미롭고 어렵지 않다. 그리고 책이 살짝 두꺼운 감은 있지만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긴 호흡으로 읽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부담감도 덜하다. 꼭 신경정신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교양삼아 즐겁게 읽을만한 책이므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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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쇼의 새 십이국기 5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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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기린의 얘기가 아니다..

​엘릭시르에서 나온 십이국기 5권이다. 그런데 5권이긴 하지만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일단 책으로는 일곱 번째 책이다. 마성의 아이가 0권으로 나왔고 바람의 만리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이 상하권 두권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여섯 번째 책, 일곱 번째 권이 된다.

십이국기는 일본의 평범한 여고생이 다른 세계인 십이국으로 넘어가면서 시작하는 판타지 소설로서 기본적인 세계관을 짜 놓고서 주로 국가 차원의 이야기로 왕과 기린, 정치, 전쟁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로 풀어 놓았다. 그런데 '히쇼의 새'는 그런 전작들과는 조금 다르다. 일단 장편으로 이루어졌던 전작들에 비해서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졌고 왕과 기린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기존 십이국기 시리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지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십이국기 세계관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읽어도 한없이 재미없는 소설이 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의 민중의 삶..

​'히쇼의 새'는 단편 모음집으로 동명의 단편을 책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히쇼의 새', '낙조의 옥', '청조란', '풍신'의 4가지 에피소드로 이루어졌고 대세와는 상관이 없는 민중의 삶을 그리고 있다. 전작들에서는 역사책에 기록될 만한 큼지막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 반면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낙조의 옥'을 제외하고는 역사책에 기록될 것 같지 않고 혹시 기록되더라도 한두줄 정도로 끝날 민초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밝은 장면은 그다지 나오지 않고 전체적으로 왕이 실도를 하든지 왕의 부재로 인해 기울어가는 나라의 어두운 면이 많이 부각되어 있다.

히쇼의 새

경국의 말단관리이면서 ​일종의 국가적인 행사에서 사용하는 도작(도자기로 만든 새, 설계에 의해서 날리고 활로 쏘아 깨뜨린다.)을 만드는 히쇼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위왕을 거쳐 세키시(요코)가 왕위에 오르는 장면까지를 얘기한다. 이전의 여왕들에게 실망하여 의욕부진이던 히쇼가 새로이 왕위에 오른 세키시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고 하는 내용이다. 세키시의 현명함을 드러내는 에피소드.

낙조의 옥

유국에서 어린 아이를 이유없이 살해한 슈다쓰를 어떻게 처리할 지 고민하는 재판관에 대한 내용. 흉악하면서도 교화될 가능성도 전혀 없어 보이는 살인마에 대해 판결을 내려야 하는 에이쿄의 교민을 담고 있다. 에이쿄는 형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지만 사형을 금지하면서도 전권을 맡긴 왕의 의지와 흉악한 범죄자에 대해 극형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 사이에서 고민한다.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에피소드.

청조란

​안국에서 발생한 너도밤나무의 유행병을 고치려는 하급관리들의 이야기이다. 너도밤나무가 화석화하는 병에 걸려 자연재해가 발생할 것을 염려한 호코와 그 사실을 왕에게 알려 위기를 벗어나려 수도로 가는 효추가 주인공. 처음에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이야기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마지막에 현영궁이 나오는 것으로 안국의 이야기인 것을 알 수 있었고 새로이 왕이 즉위했다는 것을 보니 연왕 즉위 직후에 일어난 일임을 알 수 있다. 나라를 위해 애쓰는 하급관리들과 그 의지를 전달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에피소드.

풍신

경국의 작은 한 마을의 이야기. 여왕이 여자들을 국가밖으로 추방할 때 일가족이 죽고 책력을 만드는 게카이에게 몸을 의탁하고 세상의 일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관리들에 실망하지만 조금씩 그들의 역할을 이해하고 돕는 렌카의 이야기. 세키시가 즉위하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청조란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소극적으로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하급관리들을 그린다.

​일종의 외전.. 아무래도 흥미는 좀 떨어진다..

4개의 에피소드가 전부 십이국기의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과는 크게 연관이 없는 얘기들이기 때문에 왕과 기린들의 뒷 이야기를 알고 싶어했던 팬이라면 실망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아무래도 십이국기는 왕과 기린의 활약상을 보면서 나라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전작들에 비해서는 재미가 없다. ​물론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짧은 단편들이라서 크게 부담감도 없다. 하지만 마치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원래 만화책으로 나왔던 내용이 다 떨어져서 그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오리지날 스토리를 만들어 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재미는 있지만 흥미는 떨어진다.

중간의 에피소드는 어쩌려고..?

처음 엘릭시르에서 십이국기를 펴낸다고 할 때 참 반가웠고 책의 만듦새며 번역이 무척 좋아서 소장가치가 충분한 책들을 계속해서 내놓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그리고 사실 기대를 했던 것은 그동안 읽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던 '도남의 날개', '황혼의 물가, 새벽의 하늘' 편이었다. 그런데 두 편의 장편을 뛰어넘어서 갑작스럽게 나온 '히쇼의 새'는 좀 당황스러웠다. 이게 5권이라면 두 편은 어떻게 되는 거지? 어차피 나올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왜?'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히쇼의 새'는 십이국기 세계관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별로 재미없을 것이다. 세계관을 알고 전작들의 등장인물들을 알아야 책을 읽으면서 경국과 안국의 흔적을 찾으면서 봐야 더 재미있을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라도 십이국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기 어렵다. 하지만 십이국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재미가 있든 없든 읽기 위해서든 소장을 위해서든 분명히 살만한 책이다.

무엇보다 엘릭시르는 책을 소장하고 싶어할만큼 십이국기를 잘 만들었다. 나중에 절판된 후 후회하지 말고 하나하나 사모으는게 좋을 듯하다. 그리고 흥미가 떨어진다고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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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 상 십이국기 4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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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나오는 십이국기.. 다시 경동국으로..

십이국기 4권이 나왔다. ​1권부터 0권까지 빠르게 출판된 후에 시간이 좀 흘러서 이제 아주 천천히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기다리기 지치기 전에 나와서 바로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십이국기 4권의 배경이 되는 나라는 첫번째 책에서 게이키에 의해서 납치되다시피 경국으로 끌려와 요코가 왕이 되었던 경동국이다. 요코는 게이키의 선택에 의해서 왕이 되기는 했지만 십이국의 정치는 물론이려니와 문화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판단력이 없다. 중신들은 두 파로 나뉘어져 권력다툼을 하고 이전에 가짜 왕에게 끝까지 저항을 했던 맥주의 후인 고칸은 오히려 역적으로 몰려 감옥에 갇혀 있다. 이에 요코는 게이키의 소개를 받고 가호라는 현자에게로 가서 교육을 받는다.

방국의 ​공주 쇼케이, 해객 스즈와 함께 반란군에 가담..

방극국의 공주였던 쇼케이의 아버지인 주타쓰는 너무나도 엄격한 형법의 적용으로 인해 나라를 황폐하게 하고 이에 분개한 혜주의 후인 겟케이에 의해 참수당한다. 쇼케이는 선적에서 지우진 후, 우여곡절 끝에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왕이 된 요코에게 분한 마음을 갖게 되고 요코를 찾아 가던 중 라쿠슌을 만나 오히려 요코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일본에서 넘어온 해객인 스즈는 해객 출신인 요코를 만나고 싶다는 일념에 경국으로 향하다가 함께 동행하던 세이슈가 경국에 들어온 후 관리의 마차에 치여 죽게 되자 경국의 왕인 요코를 원망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요코, 쇼케이, 스즈는 각각 반란군에 가담하게 되어 친해지게 되고 쇼코가 다스리던 척봉을 함락하는데 ​힘을 보태게 된다.

십이국기의 세계관, 그리고 로드무비같은 성장스토리..

판타지 소설을 읽을 때면 항상 세계관을 자세히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각국의 왕과 기린, 그리고 짤막한 역사를 찾아 보는 재미가 여전하다. 그리고 이번 편에서는 주와 향, 리 등 십이국의 행정기관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어서 흥미로왔다.

또한 세 명의 10대 후반(물론 외모만..)의 여자아이들이 온갖 고생을 해 나가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이번 소설의 주요 테마이다. 가진 것을 잃고 원망에 싸여 있던 쇼케이, 억눌린 마음에 항상 주눅 들어 있던 스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요코.. 세 소녀는 소설이 끝날 때에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성장하게 된다.​

십이국기 에피소드 중 가장 통쾌한 결말..

십이국기 4권의 명장면은 역시 금군을 이끌고 척봉으로 반란군을 치러 오는 진라이에게 호통을 치는 요코의 모습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꽉 막혀 있었던 것 같은 감정은 진라이를 질책하는 요코의 모습을 보며 통쾌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후 경국을 현명하게 이끌어 나갈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요코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왕위에 오른 후 처음으로 내리는 칙명(그런데 조금 의문스러운 것은 보통 칙명은 황제가 내리는 것인데 어째서 왕명이 아닌 칙명으로 나오는지 모르겠다.)인 초칙에서 윗사람에게 하는 고두(머리를 땅에 박고 예를 갖추는 것)를 게이키와 다른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포한다. 예라는 것은 실제로 존경의 마음이 없을 때는 쓸데없는 겉치레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음권을 또 기다린다..​

이제 대충 그동안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던 내용들이 거의 끝이 난 것 같다. ​지금까지 복습을 하면서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면서 책을 읽었다면 다음부터는 궁금해 했지만 구하기 힘들기도 하고 워낙 번역본이 형편없다고 해서 읽지 않고 있었던 부분이다. 기대하면서 기다려 볼 생각이다.

뭐.. 당연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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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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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헤세..

책을 좀 읽는다는 사람치고 헤르만 헤세 Herman Hesse(1877. 7. 2. ~1962. 8. 9.)의 책 한두권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보다 왠지 헤세의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하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라고 치부될 수도 있을 정도로 헤세는 일종의 책을 읽는 사람의 성지와도 같은 사람이고 알을 깨야 한다는 말로 유명한 '데미안'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도 책 좀 읽는 사람 축에 끼기 힘들 것 같다. 그렇지만 데미안을 제외하고 헤세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 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제목만 들어 봤지 실제로 읽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헤세의 책이기도 하다.

​나같은 경우만 해도 헤세의 책을 거의 읽어 보기는 했지만 너무나 오래전인 고등학생 시절에 세계문학에 미쳐서 읽었던 전집 중에 몇 권이었기 때문에 대략적인 내용도 다시 들춰봐야 기억을 할 수 있다. 그나마 데미안 정도는 5~6년에 한번씩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또 꽤 오래 되어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새로웠다. 이건 마치 모든 사람이 '어린 왕자'를 읽었지만 '어린 왕자'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정여울, 작가,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독문과를 나왔다는 것 외에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헤세에 대한 깊은 애정을 과시하는 연애편지..

처음 이 책을 잡았을 때는 이 책의 정체가 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사진이 많고 짤막한 글로 이루어져 있는 첫 장과 마지막 장을 펼치면 이 책은 기행에세이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헤세의 대표적인 4개의 작품인 '수레바퀴 밑에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데미안', '싯다르타'를 읽어 주는 두번째 장을 보면 헤세작품 해설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 나는 이 책을 헤세에게 보내는 작가의 연애편지라고 생각을 했다.

책 전체를 통틀어서 작가는 ​자신이 얼마나 헤세를 사랑하는지.. 자신의 인생에 헤세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헤세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전혀 숨길 생각없이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나는 정여울이라는 작가에 대해 책에 나와 있는 내용 이외에는 전혀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기 때문에 만약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남편이 이 책을 읽으면 질투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헤르만 헤세, 독일의 대문호.. 소설가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문호(文豪)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감성적인 사진과 글로 헤세의 태어난 곳과 죽은 곳을 보여 준다..

작가는 사진가인 이승원과 함께(였는지 아니면 따로 갔는지..) 헤르만 헤세의 자취를 따라 간다. 헤세는 독일의 칼프에서 태어나 스위스의 몬타뇰라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색깔 고운 사진과 함께 사진에 대한 단상을 서정적으로 쓰고 있다. 거기다가 각 페이지마다 헤세의 작품 속에 나오는 구절들을 삽입했다. 이승원의 사진과 정여울의 글과 헤세가 만나니 이전에 읽었던 헤세를 마음속으로부터 끌어 올린다. 헤세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헤세를 잊은 사람이라면 분명히 헤세를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은 충동이 들 것이다. 그리고 헤세를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헤세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의 전개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칼 융, 심리학자, 한때 신화에 미쳤을 때 칼 융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집단무의식을 주창했다.>​

​칼 융의 눈으로 헤세를 보다..

하지만 두번째 장에서 뜻밖에 칼 융 Karl Jung (1875 7. 26.~1961. 6. 6.)을 만나게 된다. 4개의 작품의 내용을 일러 주고 인물들의 심리를 해석할 때 칼 융의 심리학을 계속해서 인용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헤세와 융의 접점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나이도 2살 차이밖에 나지 않고 같은 나라인 스위스에서 살았고, 사망한 해도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궁금해서 찾아 보니 헤세가 융의 제자와 함께 정신분석을 연구했으며 융과도 알고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스위스로 이주한 이후에 쓴 작품들이 융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누군가 나에게 융에 대해서 설명을 해 달라고 한다면 '신화'와 '원형'이라는 난 딱 두 단어로 대답을 할 것이다. '개인의 무의식이 집단화되어서 집단무의식이 되고 그 집단무의식이 고대에 서술되어 표현된 것이 신화이고 그 신화의 구조를 단순화시켜서 파헤쳐 보면 하나의 원형에 도달하게 된다' 정도로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헤세와 융, 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뜬금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접점을 알게 되어 기뻤다.

작가는 두번째 장에서 칼 융과 그 제자들의 심리학을 인용해서 소설 속 인물들의 내면을 설명한다. 그 설명을 듣고 있자니 헤세가 정말 융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소설을 썼나 싶다가도 융의 심리학 자체가 원형을 얘기하는 것이고 헤세의 소설 역시 큰 틀에서 원형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딱히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분석의 틀로써 활용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조금은 살짝 과하다..

​내 생각에는 작가는 의도적으로 칼 융을 헤세에게 대입해서 둘 사이의 관계를 부각시킨 것 같다. 그런데 융이 너무나도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작가의 시각이 위축되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사랑하는 감정은 틀림이 없지만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서 연애를 잘하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충분히 사랑한다면 그냥 그렇게 사랑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됐을텐데..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왠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소극적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아닐 수도 있다. 딱히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데미안을 그리워 하고.. 골드문트를 동경하다..

어릴 때부터 숱한 책을 읽어 왔지만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책들중에 어지간한 책은 한 번 읽고 또 읽게 되지 않는다. ​하지만 데미안만큼은 특별하다. 10대에 처음 읽고 거의 5년에 한번씩은 데미안을 읽은 것 같다. 그리고 데미안이라고 제목에 붙어 있는 책도 4권이나 된다. 나에게 데미안이 특별한 이유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겠지만 나는 언제나 싱클레어였고 나를 괴롭히는 크로머가 사람이든 상황이든 항상 있었다. 어렸을 때는 항상 데미안은 없었고 아브락사스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 나이가 더 들었을 때는 내가 데미안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혹시 크로머가 되어 주위에 있는 싱클레어를 괴롭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데미안은 어느 인물에게 나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그리고.. 어차피 나르치스가 될 수 없는 바에야 골드문트는 연민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제목은 지와 사랑이었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지와 사랑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인 걸 처음 알았다.

​분명히 데미안을 찾고 있을 것이다..

책의 페이지수가 400페이지가 넘는다. 하지만 책의 1/3 가량이 사진이고 1,3장은 짤막한 에세이이기 때문에 ​크게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헤세에 한번쯤 빠져 봤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을 데미안을 찾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을 것이다. 헤세를 읽어 보지 않은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헤세의 팬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2장을 잘 읽어 보면 어째서 헤세가 위대한 작가이며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작가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다른 것은 몰라도.. 헤세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듬뿍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내 안에 있었던 헤세에 대한 애정도 다시금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헤세의 책들을 책장 한구석에 모아 놓게 되었다.

한때 헤세에 대해서 깊이 빠진 적이 있었다면.. 무조건 추천..

헤세를 읽어 보지 않았는데 헤세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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