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책의 제목은 알레고리가 아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책을 소설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냥 제목만 봤을 때는 소설책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 중에 마르셀 에메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벽을 통과하는 사나이'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한테 들어 보니 소설이 아니었다. 일단 제목이 독특해서 어던 책인지 궁금하던 차에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책 제목만 보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말이 어떤 상징이나 은유가 아닌 생각을 하기 쉽지만 이 책은 신경정신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 )가 자신의 임상경험을 쓴 책으로 실제로 자신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했던 환자에 관한 이야기가 책 제목이다.

 

저자 올리버 색스 Oliver Sacks.. 영국의 신경학 전문의..​

다양한 임상경험을 흥미롭게 서술한다.

책은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라는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고 각각의 주제에 맞는 20여개의 환자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각 장의 시작은 간단한 신경학적인 용어 설명으로 독자가 각각의 사례에 접근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간단하게 제시하고 그 후 특이한 증상의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임상경험이라고 하니까 좀 딱딱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글쓴이는 마치 소설을 쓰듯이 글을 써 내려가기 때문에 어렵지 않고 각각의 환자들의 이야기는 일반 사람들이 잘 만나기 힘든 사람들의 경험을 보여 주고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환자에 대한 따뜻한 시각..

​신경정신학이라든지 정신과 의사들이 실험(혹은 관찰)을 한 기록을 보면 많은 경우 관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사람으로 본다기 보다는 일종의 기계처럼 봐서 어떠한 자극을 입력하고 그 후에 나타나는 대상의 반응을 출력하듯이 관찰하는 것처럼 굉장히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스탠리 밀그램의 '명령에 대한 복종'에 관한 실험이라든지 자신의 딸을 상자에 가두고 반응에 대한 실험을 했던 스키너같은 사람을 보면 굉장히 비인간적이라서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은 따뜻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올리버 색스가 ​환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종일관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어서 보는 동안 그런 불편함은 없었다. (비록 책을 쓰느라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에피소드에 나오는 환자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면서 환자를 증상이 있는 샘플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려는 노력을 한다.

 

영국에서는 동명의 연극으로 올려지기도 했다고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보는 흥미..

사실 나처럼 일상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신경정신과 환자를 만나볼 일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례들이 흥미진진하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걸 보면서 재미있어 하면 되나..하는 약간의 미안한 감도 들긴 했지만 워낙 사례들이 재미있어서 쉽고 빠르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1945년에 기억이 고정되어 있는 퇴역군인을 다루고 있는 '길잃은 뱃사람'이라는 에피소드는 정말 슬프다. ​이전에 20대에 정신이 고정되어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거울을 보면서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SF단편을 읽은 적이 있는데 상상만 해도 끔찍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역시 끔찍하다.

​서번트 증후군으로 소수를 빨리 찾아낼 수 있는 두 쌍둥이의 형제의 이야기는 굉장히 코믹하다. 일단은 쌍둥이 형제가 둘다 자폐를 겪교 있는 것도 신기하고(그렇다면 자폐는 선천적인 것일까?) 6자리 소수를 찾으면서 놀고 있는 두 형제에게 8자리 소수를 제시해서 교란하는 의사와 깜짝 놀라 당황하는 두 쌍둥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비춰진다. 어쩌면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인간이 풀어내지 못한 소수를 발견해 내는 알고리즘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외에도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후일담까지 곁들여서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윤리적 문제.. 그리고 약간 읽기 어려운 점..

​인간의 뇌를 탐구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숙제이지만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정상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뇌 연구는 결국은 선천적인 이유나 사고로 인해서 뇌의 한 부분의 기능이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 연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나의 예를 찾더라도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똑같은 손상을 입은 뇌를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아무래도 뇌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들이 많이 듣는 용어들과 달라서 읽기 힘들었는데 예를 들어 '이마엽'이라는 말이 자주 나와서 이게 뭔지 잘 몰랐었는데 나중에 찾아 보니 '전두엽'의 다른 말이었다. 아마도 한자로 되어 있는 용어를 한글로 바꾼 것 같은데 별다른 설명이 없으니 멈칫하면서 읽게 되었다. 하긴 전두엽이라는 말이 익숙하긴 해도 머릿속에서나 익숙하지 정말 어떤 부분인지 형태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무슨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고 흥미롭고 어렵지 않다. 그리고 책이 살짝 두꺼운 감은 있지만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긴 호흡으로 읽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부담감도 덜하다. 꼭 신경정신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교양삼아 즐겁게 읽을만한 책이므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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