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천일야화>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세계에 빠져들지 않은사람이 어디 있으랴. - P5

중동신화여행은 문자를 포함한 그 모든 기록을 통해 인류 최초의 기억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우리는 물론 안다. 어제의 그 기억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슬픔은 그만큼 더 커진다는 사실을. - P7

세계 도처에서 일제히 무엇을 하느냐 하면, 신을 섬기는 것을 구조화하고 형상화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런 것들을 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불가사의한 인간 문제의 해결 방식을 흔히 초연적인 거대함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 P24

도시의 등장은 인류 문명의 중요한 발전 가운데 하나로, 무엇보다 도시는 규격화되어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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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었다. 밤마다 들려오던 구두소리를 그날 밤엔 끝내 들을 수가 없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아무도 와보지 않는 병원이 있다니. - P203

"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자." - P213

폭풍이 오던 밤, 치명상을 입은 건 승민의 시력만이 아니었다. 말, 풍부한 표정, 분노, 유머, 활기, 뻔뻔함, 웃는 눈. 녀석을 설명하는 특징들이 다 사라졌다. 승민은 자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돌아온 것이었다. - P224

"네 엄마한테 가서 전해. 내가 웃더라고."
승민은 웃음을 그쳤다.
"눈치껏 죽어주지도 않을 것 같더라고. 난 여기서 오래오래 살 생각이거든."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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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혼자 핏대를 올리고 있었다.
"유원지 때문에 가장 피 보는 건 우리야. 정기적으로 청소 나가야지, 야밤까지 시끄럽지. 재작년부터는 글라이딩 하는 애들까지 몰려들어서 겨울에도 조용한 날이 없다니까." - P154

나는 허둥거렸다. 가슴 밑바닥에서 낯선 충동이 일고 있었다. 숲의 그늘을 벗어나 댐 비탈로 나가고 싶은 충동. 금빛으로 익어가는 옥수수들처럼, 막 타오르기 시작한 태양 아래 서고 싶은 충동. - P157

사람들 역시 꼼짝하지 않았다. 백일몽에 빠진 듯한 시선들이 제각기 다른 곳을 더듬고 있었다. 무엇을 더듬는지 궁금했다. 저들도 나와 같은 걸 느꼈는지 궁금했다. 그랬다면 그 통증에 대한 진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혹은 기억이 가져다준 ‘쓸쓸함‘ 이라고. - P159

‘인격적 대우‘의 보편적 의미가 상대를 존중하는 행동방식이라면, 정신병원적 의미는 물리적 수단을 쓰지 않고 환자를 통제하는 방식을 의미했다. - P166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승민은 많은 걸 할 줄 아는 놈이었다. 춤을 출 줄 알고, 노래를 부를 줄 알고, 근사한 목소리를 낼 줄 알았다.
자신이 가진 걸 온전히 누릴 줄 알았다. 무엇보다 놈에게서 터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에 압도당한 기분이었다. - P174

한이는 백합방으로 갔다. 보호사가 꽂은 주사에 정신을 잃고 이동침대에 실려 갔다. 이는 병원의 문제 해결방식이었다. 당사자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식.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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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정녕 나를 버리시나요. - P63

"병원은 무법천지가 아냐. 대리인이 입원시키는 경우는 없어."
"이보세요, 최기훈 선생님. 당신 눈앞에 있잖아요. 댁이 가족이라고 우기면 가족이 아닌데 가족이 됩니까? 난 호적상 가족과 마주 앉아서 얘기를 하고 싶다고요." - P65

"수명아."
승민의 팔이 뒤에서 목을 감아왔다.
"오빠가 그렇게 좋아?"
나는 놀라서 목을 빼려 했으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P83

나는 샌드백이 있는 창가에서 걸음을 멈췄다. 특별한 매력을 가진 자리였다. 이틀 전 우연히 발견한 사실인데 창살 하나가 정상이 아니었다. 무심코 잡았더니 흔들흔들했고, 슬쩍 당겼더니 구멍에서 쑥 빠졌다. - P85

모 정신의학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라이터는 이런 사람이다. 소방서를 물 먹이며 광범위한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불놀이 선수. 병동 주민들은 라이터를 사이코패스의 범주에 넣는다. - P94

승민은 아침부터 수간호사를 달달 볶았다. 보호자가 수요일 오후에 퇴원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원장 사인이 든 퇴원 서류도 봤다. 오늘이 목요일이다. 어떻게 된 일이냐. 수간호사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퇴원 오더를 받은 바 없다. - P106

이상한 배신감을 느꼈다. 최기훈은 적어도 점박이보다 나은 줄 알았다. 공정한 사람인 줄 알았다. 따지고 보면 근거 없는 생각이었다. - P117

"그놈은 미치광이야."
십운산 선생이 모처럼 상대를 적시한 점괘로 말잔치를 정리했다.
"미치광이는 미쳐야 사는데, 못 미치게 하니까 미쳐버린 거야."
왕자, 개망나니, 유학생, 못 미치게 해서 미쳐버린 미치광이. 승민은 누구일까. - P130

지난 토요일에야 렉터 박사가 류재민이 속내를 확인시켜 주더라. 방화광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자고,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도덕의 정신병이며 치료법은 영원한 격리뿐이라고. 난 웃었어. 하도 암담하니까 웃음밖에 안 나오데. 난…."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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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보건심판위원회-2:00 PM
정신보건심판위원회는 오전 9시에 시작됐다. 심사 대상자는 일곱명, 한 사람당 심리시간은 30분이었다. 유례없이 긴 시간이었다. - P6

나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그 때문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수요일 저녁, 낯선 동네의 파출소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던 이유를 밝히자면, 죄목은 성폭행 미수였다. - P11

아버지는 내게 쓸데없는 일을 시키는 걸로 쓸데 있는 놈인지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4

간호사들은 매일같이 ‘주사 한 방‘ 이라는 은혜를 궁둥이에 내려주었다. 약 이름은 모른다.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충동적 본성과 야만성을 억눌러주는 마법의 약이라고 설명해준 기억만 난다. 내게 떨어진 지상과제는 ‘마법에서 살아남기‘ 였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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