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녀는 전진교 도사들이 서로 싸우든 말든, 몽고의 무사들이 침입을 하든 말든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녹청독이 검을 들어 견지병을 찌르려는 것을 보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견지병을 다른 사람의 손에 죽게 할 수는 없었다. 반드시 직접 원수를 갚아야 하니 즉시 앞으로 나서 녹청독의 검을 막았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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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문득 양과의 부친 양강이 생각났다.
"사실 사람도 적로와 마찬가지란다. 좋은 사람과 악한 사람이 어디 따로 있겠느냐? 선을 행하면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악을 행하면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 한순간 마음먹기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야." - P24

‘만약 백성들을 향해 활을 쏘았다면 비록 백성들이 죽긴 했겠지만, 몽고군의 공격을 받지는 않았을 거야. 백부님이 지금 저곳에서 위험에 처한 것은 모두 무고한 이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야. 백부님은 저 백성들과 무슨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저들을 지키려 하고 있다. 그런 백부님이 아버지를 죽인 이유는 무엇일까? 백부님과 아버지는 도원결의를 맺은 사이였는데, 백부님이 아버지를 죽이다니, 정말 내 아버지란 사람이 그토록 나쁜 사람이었단 말인가? - P30

양과는 곽정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확신했다.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양과는 군자검을 들어 곽정의 뒷목을 찌르려 했다. 그런데 그가 군자검을 빼려 할 때 무언가 따뜻함이 느껴졌다.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던 곽정의 등에서 뜨거운 열기가 양과의 아랫배에 전해진 것이다. 양과는 문득 어젯밤 자신의 숨소리가 이상해지자 목숨을 걸고 자기를 구해주던 곽정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금 전에도 홍마를 타고 얼마든지 혼자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도 자신의 비명소리를 듣고 즉시 달려와주었다. - P72

‘내가 잘못 생각한 거야.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고 이런 분을 해치려 하다니…….‘
양과는 백부님처럼 용감하고 의리 있는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즉시 곽정의 등에서 뛰어내려 군자검을 휘두르며 곽정을 보호했다. - P74

황용은 처음에는 그저 양과가 오로지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나쁜 마음을 먹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연을 듣고 나니 목숨을 걸고 곽정을 지켜낸 양과야말로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진정한 인과 협을 가진 영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P95

양과는 처음 양양성에 들어왔을 때는 오직 곽정 부부를 죽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나라 걱정에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이들 부부를 보며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몽고 진영에서 곽정은 목숨을 버리며 자신을 구해주었다. 그제야 양과는 곽정을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완전히 버릴 수 있었다. 오히려 힘껏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 P102

30년 동안 강호를 누비며 숱하게 많은 고수들과 겨루어 이겼다. 나의적수가 없으니 이제 이곳에 은거하며 수리를 벗 삼아 지내노라. 나를 누르는 자를 기다렸건만 결국 만나지 못하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로다. - P161

소리는 숲속 계곡 쪽에서 나고 있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양과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 살금살금 다가갔다. 나무 사이로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보였다. 양과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 사람 키보다 더 큰 수리 한 마리가 우뚝 서 있었다. - P156

‘이 녀석은 내 동생을 해하려 한 비열한 놈이다. 널 죽여 동생의 복수를 했다고 하면 아빠 엄마도 책망하지 않으실 거야.’
양과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 뒤 오른팔을 들어 가슴을 보호했다.
그의 눈에는 동정을 구하는 빛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곽부는 분노가 극에 달해 손에 힘을 주어 검을 내리쳤다. - P223

소용녀는 어려서부터 칠정육욕을 억제하는 무공을 닦아, 여덟 살 무렵부터는 언제나 마음이 수면처럼 잔잔했다. 양과를 사랑하게 되면서 이러한 무공이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큰 상처를 입고 열정이 사그라지자 과거에 수련한 무공이 상당 부분 회복되어 쉽게 좌우호박술을 펼쳐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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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탄성을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륜국사 등 좌중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구천적은 양과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이기지 못할 상황에서도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었다. 즉 공손지의 초수에 있는 허점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허점이 없는 공손지의 초수에서 빈틈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었다. 일동은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 P301

"누구와 원한이 있기에 그러십니까? 누구의 수급을 가지고 오라고 하시는 거죠?"
양과의 목소리가 조금 다급해졌다.
‘아가 공손지 그 인간이 편지를 읽는 소리를 듣지 못했느냐? 나의 큰오빠를 해친 것들, 곽정과 황용 말이다."
양과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것 잘되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제 아버지의 원수입니다.
선배님의 분부가 없더라도 저는 그들을 찾아가 원수를 갚으려고 했습니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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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가 말한 초식은 정말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절륜(絶倫)의 초식이었다. 특히, 정면에서 불진으로 혈을 찍는 것은 이막수가 불진으로 구사하는 가장 위력적인 초식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양과가 말한 방법이라면 그녀는 궁지에 몰려 불진을 잃고 반격할 여지도 없이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 P23

"아버지가 화를 당하지 않으셨다면 어머니도 그렇게 어렵게 살다가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을 거야. 그럼 나도 그렇게 천덕꾸러기로 살지 않았을 테지. 도화도에 있을 때 백부, 백모가 나를 대하는 것이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았어. 언제나 거리를 두고 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 무씨 형제를 대하듯 편하게 이야기하고 야단치는 일도 없었고,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들이 우리 아버지를 죽여 그러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게 무공을 가르쳐주지도 않고, 전진교로 보내 고생을 시킨 것도 모두 그런 연유에서였군." - P32

"백모님이 전에는 내게 냉담하다가 요즘 갑자기 잘해주더니, 그것도 모두 거짓이었구나. 그건 그렇다 치지만, 백부님은…..…."
그는 마음속으로 줄곧 곽정을 존경하고 따랐다. 그는 인품이나 무공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으며 자기와 같은 아이에게도 언제나 진심으로 대해주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동안 속았다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황용보다도 간사하게 느껴졌다. 가슴이 분노로 끓어올라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 P35

"당신은 한족이니 억지로 시킬 수는 없겠지요. 당신의 무공은 참으로 다양하여 오랜 수련에서 비롯된 나의 무공과는 사뭇 다르오. 여러 문파를 아우르는 다양한 무공도 대단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난삽하고 정통이 아닌 데서 오는 단점은 피하기 어렵지요. 당신이 가장 자신 있는 것은 어느 문파의 무공이오? 그리고 어떤 무공을 써서 곽정 부부를 상대할 생각이오?"
금륜국사의 질문에 양과는 말문이 막혔다. - P43

"아가야, 아가야, 자꾸만 넘어져야 그만큼 자라는 법이란다."
이 노래는 아이가 넘어졌을 때, 어른이 달래기 위해 부르는 노래였다. 순간 윤극서의 머리에 갑자기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선배님께서는 혹시 성이 주씨 아니십니까?"
"그래, 하하…… 나를 아는가?"
윤극서는 벌떡 일어나 포권의 예를 취했다.
"노완동(老碩童) 주백통(周伯通) 선배님께서 오셨군요." - P59

꽃나무를 자세히 보니 작은 가시가 수없이 돋아 있었다.
색깔은 무척 화려했고 향기가 유난히 좋았다.
"이건 무슨 꽃이죠?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정화(情花)라는 꽃이에요. 다른 곳에선 거의 볼 수 없는 꽃이라고 들었어요. 먹어보니 맛이 어때요?""
"처음엔 무척 달았는데 나중에는 쓰던데요. 이름이 정화라구요? 독특하네요." - P87

혈도라도 찍힌 양 꼼짝도 하지 않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양과가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선자!"
복도 끝을 향해 걸어가던 여자는 양과의 목소리를 듣고 온몸에 전율이라도 느끼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과야, 과야, 어디 있니?"
여자가 고개를 돌려 대청 쪽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있는 듯하기도 했고, 꿈꾸는 듯 몽롱해 보이기도 했다. 양과는 미친듯이 그녀를 향해 달려가 손을 잡았다.
"선자, 저예요. 제가 얼마나 찾았는지 모르시죠?" - P125

소용녀는 이대로 고묘로 돌아가면 반드시 양과가 자신을 찾아올 것 같아 고묘로 돌아가지 못하고 황량한 산속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홀로 무공을 연마하다 마음속에 온갖 사념이 넘치는 것을 억제하지 못해 결국 경맥이 끊기면서 과거에 입었던 부상이 재발하고 말았다. 만약 공손곡주가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소용녀는 황량한 산속에서 외로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 P133

소용녀는 그윽한 정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양과를 바라보았다. 이말에 양과는 정신이 번뜩 들면서 목소리까지 떨렸다.
"그럼 저와 함께 가고, 저 곡주와 혼인하지 않는 거죠?"
"너와 함께 갈게. 다른 사람과 혼인하지 않을 거야. 과야, 난 이미 너의 아내야."
소용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P167

"이렇게 잘생기고 착한 사람에게 왜 하늘은 이다지도 가혹할까??
왜 오늘 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그 바람에 팔의 내공도 일시에 사라졌다. 소용녀는 내공을 끌어올리기를 그만두고 돌연 양과의 몸에 자신의 몸을 덮었다. 순간 수천수만의 정화 가시가 그녀의 살을 파고들었다.
"과야, 함께 고통을 나누자꾸나." - P211

"어머니, 어떻게 부를지 그냥 가르쳐 주시면 되잖아요. 양 대형이잘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용서해주세요."
노파는 음험하게 웃었다.
"좋다. 강호에서는 나를 철장연화(鐵掌蓮花) 구천척이라고 부른다. 네가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하냐고? 흐흐, 절 한번 꾸벅 하고 장모님이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
"어머니, 양 대형과 전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양 대형은 저에게 그저 호의로 대해주실 뿐 다른 감정은 전혀 없어요." - P248

"공손 선생, 이분은 당신의 본부인이 아닙니까? 어찌 이렇게 대하실 수 있나요? 또 부인이 있는 사람이 어찌 나와 혼인하려 했나요?
나중에는 내게도 이렇게 대하겠군요?"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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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혼인은 인륜지대사인데 부의 혼인 문제를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어. 과의 나이가 아직 어려 사소한 말썽을 부리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고, 전진교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것도 꼭 과의 잘못만은 아닌 듯하니 생각을 좀 해보자고."
"전진교에서 있었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당신이 부친들 사이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양과는 보면 볼수록 제 아비를 너무 닮은 것 같아요. 그러니 내가 어찌 부를 그 아이에게 시집보낼 수 있겠어요?" - P91

양과는 원래 자신의 출생 배경이나 부모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부친이 일찍 돌아가셨고, 그것도 타인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셨고 누가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어머니조차도 양과에게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나쁜 무리의 손에서 자랐다‘느니,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느니 하는 말을 듣자 머리가 멍해지고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 P92

"사실 내가 네게 무공을 전수해주지 않은 것은 널 위해서였는데, 그 때문에 도리어 네가 고생을 많이 했구나. 곽 백부는 항상 날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주셨기 때문에 난 될 수 있는 한 그의 뜻을 받들려고 노력한단다. 곽 백부는 네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고계셔. 곽 백부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난 최선을 다해 널 가르칠 생각이다. 그러니 과야, 너도 백부님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알겠지?"
양과는 황용이 예전과 다르게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따뜻하게 말해주자,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솟구쳤다. - P99

"이분은 몽고 서정우군(西征右軍)의 원수를 맡으신 적이 있는 곽정이시고, 이분은 곽 대협의 부인이시자 개방의 방주이신 황 방주이십니다."
승려는 ‘몽고 서정우군의 원수‘ 라는 말을 듣자 별안간 눈을 크게 뜨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곽정을 위아래로 한차례 훑어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개방의 방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이분은 제 사존이신 몽고의 성승 금륜국사(金輪國王)이십니다. 현재 대몽고국의 호국대사(護國大師)이시지요." - P116

그녀는 안색이 창백한 것이 병색이 완연했다. 촛불이 붉은 빛을 띠고 있는데도 그녀의 얼굴에서는 조금도 붉은 색이 감돌지 않았다. 이런 창백한 모습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선녀같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수려한 외모였다. 선녀를 본 적은 없지만 그녀를 보면 선녀 같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듯했다. 주자류와 곽도를 주시하며 긴장하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딱 벌리고 그 백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양과는 그녀를 보자 깜짝 놀라는 한편미친 듯이 기뻤다. 마치 큰 철퇴에 얻어맞은 양 가슴이 쿵쾅거렸다. 양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그녀에게 뛰어갔다.
"선자! 선자!"
그녀는 바로 소용녀였던 것이다. - P137

"다른 사람이 맹주가 되는 건 상관없다. 그러나 우리 사부님께선 당신의 사부가 맹주가 되는 것만큼은 못 참으시겠다고 한다."
"대관절 너의 사부가 누구냐? 지금 어디 계시냐?"
양과가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네 눈앞에 계신다. 선자, 이놈이 선자께 인사를 올린다는데요."
소용녀가 곽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좌중은 잠시 조용해졌다가 이내 폭소가 터졌다. 저토록 여리고 아름다운데다 나이조차 어린소녀가 어찌 양과의 사부가 될 수 있으며, 무림의 맹주가 되겠다는 말인가. - P173

고묘파의 경공은 무림의 최고라 할 만했다. 다른 어떤 문파의 경공도 고묘파의 경공술을 따를 수는 없었다. 아마도 넓은 광야 같은곳에서라면 고묘파 경공의 장점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지만, 좁은 대청 안에서 상승의 경공술을 펼치니 그 오묘한 변화와 우아한 자태가 더욱 돋보였다. 더구나 그녀는 평생 동안 좁은 묘실 안에서 무공을 연마했기 때문에 한정된 공간을 최대로 이용하는 몸놀림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P216

"제 딸을 낭자의 제자와 맺어주고 싶습니다. 과의 부모님은 모두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 일은 용 낭자가 나서 주셔야겠습니다. 오늘 뭇 영웅들이 모두 모였으니, 이 자리에서 연륜과 덕이 높으신 영웅께서 직접 혼사를 성사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P231

그러자 소용녀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과의 부인이 될 것이니 과가 어르신의 딸과 혼인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너무나 맑고 분명한 어투여서 대청에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도 모두 똑똑히 들었다. 곽정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저히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지만 양과의 손을 잡고 너무나 애틋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용녀를 보니 그 말이 진심인 것 같았다. - P234

"좋아. 너도 솔직하게 나오니 나도 돌려 말하지 않으마. 용 낭자는 네 사부이니 네 웃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남녀 간의 사사로운 정을 품어서는 절대 안 되는 거야."
양과는 이런 규율을 소용녀처럼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인정할 수는 없었다. 소용녀가 단지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줬던 사실 때문에 아내가 될 수 없다니. - P241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여러분들을 방해했나요? 누구를 해쳤나요? 선자는 나에게 무공을 가르쳐주었지만 난 선자를 아내로삼 을래요. 나를 천번 만번 칼로 도막을 낸다고 해도 난 선자를 아내로 삼을 거예요." - P241

지난날 양과와 소용녀는 〈옥녀심경〉의 이 검법을 수없이 연마했지만 그때마다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위험에 닥쳐 자신의 안위는 생각지 않고 상대방을 걱정하는 마음을 앞세우니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상부상조, 상호보위. 이것이야말로 이 검법이 추구하고자 하는 요지(要旨)였던 것이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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