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다오 대장은 요새 확보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병력 전체를 나선 요새 속으로 몰아넣고는 사상 최초로 경계면 탈곡기를 가동시켰다. 등롱꾼 이단과 켈 병력 전부가 시쳇빛에 잠겨 익사했다. 그 병기의 치명적인 위력은 그 사건을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 P74

지옥나선 요새에선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는 수백 명에 불과했다.
켈 사령부는 훗날 제다오 대장을 이용하기 위해 보존해 두기로 결정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제다오 대장은 순순히 투항했으며, 사령선에 진입했을 당시 그는 시체에서 파낸 총알을 모양에 따라 배열하고 있었다고 한다. 켈 사령부는 그를 ‘검은 요람‘에 안치하여 영원한 죄수로 만들어버렸다. - P75

7번 2번 복합 지휘체가 말했다. "더 나은 작전이 있나?"
체리스는 구미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5번 후보자는 병기 한 대로 승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만, 저는 더 나은 작전이 있습니다. 저는 한 사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체리스는 모두를 주목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 사람? 그게 누구지?" 2번 복합 지휘체가 말했다. 이미 눈치채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어차피 달리 물러설 곳도 없었다. 도박을 걸 수밖에.
"슈오스 제다오 대장입니다." 좋아. 해버렸다. - P82

머릿속에 자욱하게 깔려 있던 안개는 말끔히 사라졌다. 목에서부터 응어리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는 말자고 자신을 타일렀다. 그러나 소름끼치는 건, 그 타이르는 목소리조차 자신의 것이 아니란 거였다. 그녀의 내면 목소리는 이제 낯선 남자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틀어막을 수도, 끄집어낼 수도 없는 목소리. 내 목소리가 사라졌다. 내 목소리는 결코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절규조차도, 낯선 남자가 대신 부르짖었다. - P90

순간 머릿속에서 남자 목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타인의 생각이었다. 방 안에는 체리스뿐이었다. 목소리가 말했다. "저쪽에서 미리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로군. 실례하겠네만, 아무도 자네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서 말인데."
정중하기는 해도 권위가 실린 목소리였다. - P91

육두정부에 제다오가 필요한 일이 생긴 모양이야. 켈 사령부에서도 승인한 걸 보면 꽤 시급한 일인 것 같고. 일단 네가 알아둬야 할 점은, 검은 요람의 망령을 되살리기 위해선 살아 있는 자가 필요하다는 거야. 망자와 생자를 서로 연결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를 ‘결박’이라고 부르지.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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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점시장의 불공정 경쟁으로 인해 시장에서 배제되는 사업자(혹은 창작자)가 늘고 있고, 그 결과 소비자(관객)도 피해를 입고 있다. 이는 한국영화산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생긴 영화시장의 실패다. 원래 시장 실패의 보완은 정부의 몫이지만, 시장에서 배제되는 영화사업자와 관객을 연결해주며 정부의 몫을 대신 해내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독립예술영화관이다. 정부가 독립예술영화관을 돕는 게 아니라, 독립예술영화관이 정부를 돕고 있는 셈이다. 문체부와 영진위는 이런 현실을 인지하고, 독립예술영화관과 손을 잡아야 한다.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고 공정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 독립예술영화 유통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거버넌스와 정책 마련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 P118

물론 비평이 변화의 속도를 무작정 따라가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틀에 갇혀 현 상황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가 아직까지 비평 깊은 곳에 내재돼 있다는 점이다. 현상과 해석 사이의 괴리. 이는 현재의 비평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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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는 인류가 생존과 문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자 결과물이다. 그중에서도 현재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 일부 장면들은 지독한 사유의 끝에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콘텐츠와 일부 장면들은 오랜 시간 축적되고 쌓여, 인간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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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배우가 바뀌더라도 변치 않는 제임스 본드의 특징은 그가 영국인으로서의 신념과 영국의 영광을 인격화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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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 체리스는 강한 정신력을 가진 군인이었지만, 머지않아 무너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한 개인이 희생해서 육두정부의 안녕이 유지될 수만 있다면, 지금으로선 그것이 최선이라고 미코데즈는 생각했다. 언젠가 이보다 나은 정부 체제를, 더 이상 추도제에서 세뇌나 고문 의식을 강행하지 않더라도 유지되는 체제를 떠올리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이 도래할 때까지 미코데즈로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 P49

"대위." 화면의 얼굴이 입을 열었다. 심지어 목소리조차 체리스와 똑같았다.
"이쪽은 켈사령부 예하 2번 복합 지휘체다. 관등성명을 대라."
체리스는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복합 지휘체는 임무에 따라 계속 구성이 바뀐다. 따라서 지금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집단 지성이 몇 명의 장성으로 이뤄져 있는지, 해당 장성들이 누구인지 그녀로선 알 방법이 없었다. - P54

"지령을 주십시오, 각하." 체리스는 말했다.
"우리는 산개하는 바늘 요새와 그 권역에 퍼진 이단을 제압할 적임자를 찾고 있는 중이다. 현재 여섯 명의 장교가 후보에 올라온 상태고, 슈오스 측에서 일곱 번째 후보로 자신들이 사용할 ‘거미줄 말‘을 선정했는데, 그게 귀관이다." 체리스의 얼굴을 가진 복합체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 P57

체리스는 켈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만한 완곡어법을 명확히 알아들었다. 그녀의 지휘권을 박탈한 다음 퇴역보다 끔찍한 운명을 선사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에 경계하면서도 내심 일말의 기대를 남겨두고 있었다. 추락한 명예를 되찾을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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