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에서 혼자 있을 때, 좀 만화 같기는 하지만 검은색 헝겊으로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어야 한다. 오른쪽 눈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지 모르나 실은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P255

"우리 아들이 최근, 그 영화처럼 괴물에 씌었단 말이지. 그래서 일도 그만두고 칩거 중이란 말일세. 가끔은 밖으로 좀 데리고 나와야겠는데 시중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해. 자네가 그 일을 좀 맡아 줄 수 있겠나?" 은행가는 전혀 웃음기가 없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 P257

이 남자가 ‘그것‘이라고 부르는 것의 존재를 믿는 척해야 할까. 그는 진짜로 완전히 미쳐 버린 사람일까 아니면 단지 나에게 농담을 걸며 유머를즐기는 포커페이스일까. - P266

그것은 면으로 된 속옷을 입은 굉장히 커다란 아기라고 하더군요. 거기다 거의 캥거루만 한 크기랍니다.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하는 거죠. 그리고 그 괴물 아기는 개와 경찰을 무서워한대요. 이름은 아구이라고 하고. - P271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영혼은 사후 세계에서 어떤 상태가 되는 거야? 어떤 추억을 가지고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거냐고? - P282

"당신은 사람보다 나무가 보고 싶은 거죠?" 독일계 미국인 여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파티 참가자들로 가득 찬 응접실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내어 건물을 잇는 넓은 복도에서 현관을 가로질러 광대한 어둠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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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초입이었다. 이슥한 밤거리에 서 있자니 안개 알갱이가 딱딱한 가루처럼 뺨과 귓불을 때렸다. 나는 가정교사로 가르치는 프랑스어의 초급 교재를 외투 주머니에 찔러 넣고 추위에 맞서 몸을 웅크린 채 교외로 나가는 막차 버스가 안개 속에서 배처럼 흔들리며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P150

절대로 이름을 알려 주어서는 안 된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째서 나는 선생을 따라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이대로 피로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선생의 의지대로 끌려가 버린다면 내가 받은 굴욕을 온 천하에 광고하고 선전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 P168

외국 군인을 태운 지프 한 대가 새벽안개를 헤치고 달려오고 있었다. 올가미에 걸린 새의 날개를 철사에 둥글게 꿰어서 어깨에 메고 산골짜기 외딴곳의 자기 사냥터를 돌아보던 소년은 숨을 죽이고 한동안 지프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 P174

"거짓말하지 마. 내가 속을 줄 알고?" 통역이 막말을 했다. "군대의 물건을 훔친 자식은 총살당해도 하는 수 없어. 그래도 좋단 말이지?" - P182

오늘은 내 생일이다.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세븐틴이다. 가족이라는 아버지, 엄마, 형 모두 오늘이 내 생일이란 걸 모르거나 혹은 모른척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잠자코 있었다. - P192

나는 신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심정으로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노려보았다. 얼굴색이 푸르죽죽했다. 이것은 상습적으로 자위를 하는 자의 얼굴색이다. - P196

내가 두려워하는 죽음은 이 짧은 생 다음에 몇억 년도 더 무의식의 제로 상태로 견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세계, 이 우주, 그리고 또 다른 우주가 몇억년이고 존재하는데 나는 그동안 죽제로 상태다. 영원히 나는 사후의 무한한 시간을 생각할 때마다 공포에 질려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 P211

내가 성실하게 죽을힘을 다해서 꼴사나운 800미터 달리기를 마치고 받은 대접은 이렇게 심한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초라하고 꼴사나운 세븐틴이라고는 하지만 타인의 세계가 나를 대하는 방식은 정말 부당했다. 나에게 너무 심한 짓을 한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타인들의 현실 세계에서 선의를 찾아내기 위해 매달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 P229

나는 사심을 살육한 순간, 나 개인을 지하 감옥에 가둔 순간 새롭게 불안을 모르는 천황의 아들로 태어나며 한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나는 더 이상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 천황 폐하가 선택해 주시기 때문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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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대에 나타나는 하나님을 상상하는 것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들이 있었다. 한 가지는 후대의 하나님에 대한 상상으로 우리들에게 매우 친숙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 시대를 지나 유대교와 기독교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개념으로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 P182

초기의 성경 본문들은 하나님은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가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 P182

사람들은 만약 성경의 여기저기에서 하나님을 유한하거나 인간적인 모습, 즉 하나님이 육체를 가진 분으로 걷고 말하고 화를 내고 기뻐하는 것으로 묘사한다면 이것은 실제로 이러한 것들을 의미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 P185

고대 성경해석자들은 아브라함의 생애 자체는 하나의 교훈과 같다는 인상을 피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것은 악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경은 적어도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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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아마도 "부유한 대상"이었을 것이고 서쪽으로 이동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마침내 자신의 고향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올브라이트는 제안했다. - P169

블레셋 족속들은 창세기 20장과 26장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관계를 하는 것으로 기록되어져 있지만 성경의 자료들은 이 지역에 블레셋 족속이 출현한 것을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이주한 예상 연대보다 수백 년 후인 사사기 시대 동안으로 추정한다. - P171

이러한 모든 점들 너머에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7-8세기 예언자들의 작품 속에 아브라함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음을 지적하곤 했다. - P172

현대 학자들 간에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것의 한 가지는 아브라함이 유일신론자라는 사실이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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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는 원래 이렇게 단순한가? 아니면 나를 약 올리려고 일부러 단순한 척하는 건가. 내가 하는 모든 말은 그가 온몸에 두르고 있는 무신경함이란 갑주에 부딪쳐 그대로 퉁겨져 나왔다. 나는 종일 긴장한사람처럼 스스로가 몹시 지쳐 있음을 느꼈다. - P80

"그만해. 그만하라고."
학생과 소년들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깨지며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척추결핵 소년들과 건강한 청년 사이는 심술궂은 냉담함으로 채워졌다. 학생은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고 소년들과 공통의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으나 누워 있는 소년들은 이미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 P88

나와 동생은 골짜기 아래쪽 우거진 덤불을 베어 내고 땅을 살짝 파서 만든 임시 화장터에서, 기름 냄새와 연기 냄새가 나는 보드라운 재를 나뭇가지로 헤쳤다. - P90

나와 동생은, 딱딱한 껍질과 두꺼운 과육으로 단단히 싸인 조그만 씨앗이었다. 너무 연하고 물러서, 조금이라도 바깥바람에 노출되면 금방 벗겨져 나갈 얇은 속껍질에 감싸인 푸른 씨앗이었다. - P95

우리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마을 젊은이들의 부재와 가끔씩 집배원이 가져다주는 전사 통지서에 지나지 않았다. - P95

"어떻게 할 거야? 저놈." 내가 용기를 내서 물어보았다.
"읍내의 지시가 올 때까지 우리가 기른다."
"길러?" 나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동물처럼?"
"저놈은 짐승이나 마찬가지야" 하고 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온몸에서 소 냄새가 진동을 한다." - P104

읍사무소와 주재소에서는 검둥이 군인 포로를 처리할 방법이 없다, 현청에 보고하고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검둥이 군인을 보호할 책임은 마을에 있는 것이라는 게 서기의 주장이었다. 이장은 마을은 검둥이 군인을 수용할 능력이 없다고 펄쩍 뛰었다. - P119

냄비 위로 이마를 기울인 검둥이 군인의 굵은목덜미의 세심한 움직임이며 근육의 갑작스러운 긴장과 이완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가 착하고 온순한 동물같이 느껴졌다. - P121

검둥이 군인이 가축처럼 온순하다는 생각은 공기처럼 아이들 어른들 할 것 없이 온 마을 사람들의 폐 속으로 스며들었다. - P125

우리가 얼마나 이 검둥이 군인을 사랑했는지, 그 아득하게 빛나는 여름의 오후 물에 젖은 무거운 살갗 위에서 빛나던 태양, 돌길 위로 떨어지던 진한 그림자, 아이들과 검둥이 군인의 냄새, 기쁨으로 갈라져 나오던 목소리, 그 모든 것의 충만함과 율동을 내가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으랴? - P133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 계시처럼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언청이와의 피 튀기는 주먹질, 달밤의 새 후리기, 썰매 타기, 새끼 들개, 그 모든 것들은 아이들을 위한 거다. 그런 세계는 더 이상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세계가 되어 버렸다. - P146

나는 갑작스러운 죽음, 죽은 자의 표정, 때론 슬픈표정이고 때론 웃는 표정인 그런 것들에 급속하게 익숙해져 갔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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