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보는 두 여인을 살펴보았다. 한 사람은 스무 살가량에 남색 옷을 입었는데 용모가 수려했다. 그리고 또 한 여인은 나이가 열예닐곱에 불과한 듯싶은데 엷은 녹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이 소녀를 보는 순간, 마치 보이지 않는 철퇴에 가슴을 가격당한 듯 심장이 쿵쾅거렸다. 입술이 바싹 타고 눈이 휘둥그레진 채 입이 딱 벌어졌다. - P138

"사제, 그 정도면 충분하네."
주위의 승려들은 그제야 녹의 소녀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위소보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기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었다.
한편 위소보는 칼자국이 증명하듯이 그 당시에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손을 뒤로 뻗어 마구 휘젓다가 상대의 몸 어느 부위를 건드렸을 수도 있다. 그건 결코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 P154

위소보는 놀랍고도 의아했다.
"아니... 방금 말한 그 많은 문파의 무공을 하나하나 다 내력까지 알고 있다는 건가요?"
그는 징관에 대해 잘 모르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징관은 여덟 살때 소림에 출가해 70년 넘게 산문 밖으로 나간 적이 없고, 오로지 무학 연구에만 몰두해왔다. 모든 무학에 관한 서적을 거의 다 섭렵해 아는 것이 광박했다. - P156

징관 선사는 오로지 무학에만 전념해 세속의 일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인지 좀 융통성이 없어 보이지만, 각 문파의 무공에 대한 분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리만치 정통했다. 문인들이 공부에만 열중하다 보면 융통성이 없고 약간 어벙해 보이는 ‘책벌레‘가 되는 것처럼, 이 정관 선사는 평생 오직 무학만 파고들어 ‘무학벌레‘가 되고 말았다. - P157

그런데 여시주의 공격은 더욱 어지러워져 걷잡을 수 없었다.
‘옛날 고수들의 말에 의하면, 무공이 절정에 이르면 아무 흔적도 없다고 했어. 명나라 때에 독고구패 대협도 그랬고, 또 영호충 대협도 역시 무 초식으로 모든 초식을 꺾어 천하무적이 됐지. - P231

표창 아홉 개가 동시에 발출되었기 때문에 회총과 징관이 위소보를 도와주기엔 이미 때가 늦었다. 그들이 대경실색하는 가운데 암기 세개가 금속성을 내며 다 바닥에 떨어졌다. 위소보는 보의를 입고 있어 그 암기에 별로 손상을 입지 않은 것이다.
사수용대전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연실색했다. 어린 화상이 소림 무공 중에서도 최고의 내공으로 알려진 금강호체신공金剛護體神功을 터득했을 줄이야,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쩐지... 이 어린 화상이 소림의 회자 항렬로, 방장이신 회총 선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유가 다 있었군.’ - P249

"이런 고약한 것! 그날 그날 기루에서 그 나쁜 여자들하고 놀아나더니.… 나의 사매가 예쁘게 생겨 엉뚱한 마음을 품고 강제로.… 결국 사매를 죽이고 말았군! 기루에 가서 그런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이니 무슨 짓인들 못하겠어?"
회총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빙긋이 웃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P255

위소보는 잠시 멍해 있다가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 보니, 소황제는 아주 주도면밀했다. 애당초 자기를 소림으로 보낸 것도 오늘의 일을 예상한 안배였던 것이다. 일단 소림에 가 반년쯤 지내면서 승려들과 친숙해지도록 한 후, 마음에 맞는 승려들을 선발해 함께 청량사로 가라는 의도였다. - P264

사미승이 통보를 하자 옥림 등은 주지가 온 것을 알고 직접 문밖으로 나와 맞이했다. 위소보를 보자 옥림과 행치, 행전은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세 사람은 신임 방장이 소림사 회총선사의 사제인 회명 선사이며 나이가 젊은 고승이라는 것은 전해들었지만, 그게 바로 위소보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옥림과 행치는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는 황제가 부황을 보호하기 위해 안배한 일임이 분명했다. - P285

삐걱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행치가 강희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나왔다. 부자는 서로 잠시 마주 보았다. 강희는 부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행치가 말했다.
"넌 아주 훌륭해. 나보다 훨씬 낫다. 아무 걱정 안 할 테니, 너도 걱정하지 마라." - P311

이때 난데없이 꽝 하는 폭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흙먼지가 흩날리며 대웅보전 지붕에 큰 구멍이 하나 뻥 뚫렸다. 그와 동시에 흰 그림자가 번뜩이며 커다란 물체 하나가 떨어져내렸는데, 바로 흰 옷을 입은 승려였다. 그는 장검을 쥐고 전광석화처럼 강희에게 덮쳐가며 소리쳤다.
대명 천자를 위해 복수하겠다!"
강희는 황급히 뒤로 피했다. - P335

‘네가 검으로 찌른 데가 아직도 아파. 그 복수로 엄마라고 몇 번 불렀으니 이젠 서로 밑진 것 없이 퉁친 거야!‘
그가 남을 ‘엄마‘라고 부르는 건, ‘기녀‘라고 욕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속으로 우쭐대며 여승을 힐끗 쳐다보는 순간, 그녀의 고귀한 모습에 그만 자신도 모르게 존경심이 우러났다. ‘엄마‘라고 부른 게 약간 후회됐다. - P351

"난 가짜 태후예요! 난… 태후가 아니란 말예요!"
그 말에 백의 여승은 물론 의아해했지만, 침상 뒤에 숨어 있는 위소보는 더욱 깜짝 놀랐다. 여승이 천천히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 P382

"네, 그건・・・ 만주 오랑캐의 흥망성쇠를 결정할 수 있는 아주 중대한 비밀입니다. 그들이 요동에서 흥성해 우리 대명 천하를 차지한 것은 조상들의 풍수가 아주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 요동 장백산에 황족의 선조인 애신각라씨의 용맥이 있습니다. 그 용맥만 파괴하면 우리 한인들의 강산을 수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랑캐들을 모조리 섬멸시킬 수 있습니다." - P390

"왜 그게 아니라는 것이냐? 네가 남의 속마음을 어떻게 알아? 물론 강호는 워낙 험악한 곳이라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된다고 전에 내가 말한 적이 있지만, 이 아이는 나랑 여러 날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잘 안다. 아주 솔직하고 가식이 없으니 믿어도 된다. 아직 나이가 어려 순진한데 어떻게 일반 강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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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강희가 말했다.
"이렇게 하자. 넌 오대산으로 가서 출가해 중이 되거라. 청량사에서 부황을 모시고…."
위소보는 몹시 다급해져서 똥줄이 탔다. 가서 노화상을 모실 뿐 아니라 중이 되라니,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단 말인가! - P27

이때 갑자기 서재 밖에서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해맑은 여자의 음성이 뒤따랐다.
"오라버니! 무공을 겨룰 시간이 지났는데도 왜 안 오는 거예요?"
그러고는 문을 쾅쾅 두드리며 힘껏 밀었다. 강희가 미소를 지으며 위소보에게 말했다.
"가서 문을 열어줘."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누구지? 혹시 건녕공주가 아닐까?‘ - P31

그녀가 끌어당기는 바람에 위소보는 태후의 어깨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때 팍 하는 소리가 들리며 위소보의 몸에서 오색창연한 물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바로 신룡교의 오룡령이었다.
그것을 본 태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그건・・・ 어디서 난 것이냐?"던 터라 감히...
위소보는 태후와 신룡교의 가짜 궁녀 등병춘, 그리고 유연의 묘한 관계가 순간적으로 뇌리에 떠올랐다. 어쩌면 이 오룡령으로 태후를 겁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본교의 오룡령인데 모른단 말이오? 정말 무엄하군!"
태후는 너무 놀라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 P74

그는 어린 장군이 틀림없이 살려달라고 애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위소보는 무공을 겨루거나 싸울 경우엔 지면 바로 항복하지만, 노름판에선 때려죽여도 쉽게 패배를 인정하고 손을 떼지 않았다. 더구나 아름다운 낭자가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남자대장부가 어찌 미녀 앞에서 ‘체면이 깎이는‘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P99

위소보는 신룡도에서 배운 절묘한 여섯 초식을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그래서 어릿광대인 양 히죽거리며 어수룩하게 굴어 상대방의 웃음을 짜냈다. 그리고 무릎을 꿇는 동시에 비수를 뽑아들고 잽싸게 귀비회모의 초식을 전개해 한순간에 상황을 뒤집은 것이다. 이 초식은 워낙 절묘해 그가 비록 정확하게 전개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위력이 있었다. 그리고 청년은 어릿광대 같은 이 소년이 이런 절묘한 초식을 구사하리라곤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해 당하고 만 것이다. - P104

‘이 사람들은 무공도 고강하고 조정에 맞서는 것으로 미루어 어쩌면 천지회와도 연관이 있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보내야 하는데 어떡하지?‘
그는 곧 웃으며 말했다.
"노형, 아까 날 죽일 수도 있었지만 결국 손을 쓰지 않았는데 내가 만약 지금 당신한테 본전을 찾을 기회도 주지 않고 그냥 죽여버린다면 그건 영웅호한이 할 짓이 아니지. 따고서 바로 튀는 개똥쇠나 다를 바가 없어. 이렇게 하죠. 우리 다시 머리통을 걸고 한판 벌입시다!" - P107

"효기영 정황기 부도통 겸 어전 시위 부총관, 황마를 하사받은 위소보는 짐을 대신하여 소림사에서 출가해 승려가 될 것을 어명으로 명하는 바이다. 아울러 그에게 법기를 하사하니 즉시 삭발토록 하여라."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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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소보는 솔직히 말했다.
"누나, 사실 난 고향이 양주고, 엄마는 기루에 있어."
방이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그에게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엄마가 기루에서 일한다고? 거기서 빨래하고 밥하고… 또… 청소하고 차를 끓이는 일을 하나?"
위소보는 그녀의 안색이 크게 변하고 눈에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이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기루‘를 아주 멸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 P261

육 선생은 또 다른 족자를 가리켰다.
"이 족자는 갑골고문인데 난 학식이 미천해 한 자도 알아보지 못하니 위 공자가 가르침을 줬으면 좋겠네."
그가 가리키는 족자를 보니,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올챙이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그의 뇌리에 오대산 보제사 석비에서 보았던 글이 떠올랐다. 그래서 거침없이 말했다.
"이 글은 제가 잘 압니다. 바로 ‘신룡교 홍 교주는 천년만년 복록영락 신통광대 영원불멸‘입니다."
육 선생의 얼굴이 활짝 폈다.
"천지신령께 감사합니다. 진짜 이 글을 알아보는군"
그는 얼마나 기쁜지 음성마저 떨렸다. - P273

"빌어먹을! 난 일자무식이야! 글이라곤 개똥도 몰라! 그 무슨 ‘홍교주는 영원불멸‘ 따위는 다 뻥이야! 그 고약한 두타를 속인 거라고! 나더러 글을 쓰라고? 죽어서 엄마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환생한다면 몰라도 지금은 안 돼! 죽이든 말든 맘대로 해! 눈 하나 깜박하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 - P275

힐끗 곁눈질로 보니 내청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걸어나와 의자에 앉았다. 방울 소리가 다시 요란하게 울리자 모두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남자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흰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뜨리고, 얼굴은 상처 자국과 깊이 파인 주름으로 얼룩져, 아주 추악해 보였다. 위소보는 이 사람이 바로 교주일 거라고 생각했다. - P294

홍 교주는 평상시 교도들 앞에서 말도 별로 하지 않고, 웃지도 않으며, 아주 근엄한 모습만 보여왔다. 그런데 지금 바닥에 나뒹굴면서 비참한 모습을 보였으니, 중독돼 전혀 힘을 쓸 수 없게 된 게 확실했다.
대청에 모인 수백 명이 다 쓰러졌는데 유독 한 사람만이 제자리에서 있었다. 그는 원래 몸집이 왜소했는데, 수백 명이 다 쓰러진 자리에 우뚝 서 있으니 마치 군계일학 같았다. 바로 위소보였다. - P315

앞뒤를 잰 위소보는 혀를 날름거리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나더러 교주가 되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합니다. 내 팔자를 망쳐 놓을 뿐 아니라 또한 대역무도한 짓이에요. 이렇게 합시다! 교주님, 영부인! 옛말에 좋은 게 좋다고, 오늘 일은 서로 퉁치고 없었던 일로 하죠. 육 선생과 청룡사는 교주님께 불경을 저질렀지만 교주님은 하해와 같은 아량을 베풀어 일절 죄를 묻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육 선생은 모든 사람에게 해약을 내주십시오. 그럼 다시 화기애애해질 테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 P327

홍 부인은 그의 말에 까르르 교태가 넘치게 웃었다.
"우리에 대한 충심이 결코 빈말이 아니군요. 난 별로 준 것도 없는데 어떻게 이 귀한 것을 받을 수 있겠어요? 그 마음만 고맙게 받죠. 그리고 위험에 처하는 순간 방어할 수 있는 세 초식을 가르쳐줄게요. 미인삼초라고 하는데, 잘 기억해두세요." - P346

"부인의 미인삼초는 위력이 너무 강해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마련이지. 이번에는 내가 상대방을 항복시킬 수 있는 영웅삼초를 가르쳐 주겠다. 이 초식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강약을 조절할 수 있어."
위소보는 매우 기뻐하며 무릎을 꿇었다.
"교주님께 감사드립니다." - P350

방이가 다시 몸을 숙였다.
"속하 방이와 목검병은 영부인의 명을 받들어 적룡문에서 백룡문으로 전출돼, 앞으로 백룡사의 명에 따를 겁니다!"
그 말에 위소보는 처음에는 멍해졌으나 이내 깨달았다.
‘이제 보니… 넌 벌써 신룡교에 가입해 적룡문의 일원이었구나.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시치미를 떼고 온갖 수작을 부린 것도, 교주의 명을 받고 날 신룡도로 유인하기 위한 연극에 불과했군. 반존자가 억지로 날 데려가려다가 실패하자, 제기랄 다른 유인책을 쓴 거였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왠지 떨떠름했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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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소보는 손목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목에도 써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자신의 목을 겨냥하고 있는 비수는 워낙 예리해서, 살짝 닿기만 해도 두부 썰 듯이 목이 절단되고 말 것이었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헤벌쭉 웃었다.
"유 대형, 말로 합시다. 한 식구나 다름없는데 왜 이렇게 거칠게 구는 거죠?"
유일주는 그의 얼굴에 퉤하고 침을 뱉었다. - P21

"지금 잡아떼는 거냐? 방사매가 너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했다는데···사실이냐?"
그 말에 위소보는 깔깔 웃었다.
유일주가 다그쳤다.
"왜 웃는 거야?"
엘레위소보가 웃으며 말했다.
"유 대형, 내가 묻겠는데... 내시도 마누라를 얻을 수 있나요?"
유일주는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급히 달려왔는데, 위소보가 내시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 P23

"아… 형제… 위 형제, 아니 위 향주! 목왕부와의 유대를 봐서라도 제발... 제발 좀 살려줘…."
위소보가 말했다.
"내가 목숨을 걸고 궁에서 널 살려냈는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오히려 날 죽이려 해? 흥! 흥! 너 같은 조무래기 따위가 감히 이 어르신을 건드려? 나더러 목왕부와의 유대를 봐서라도 살려달라고 했지? 그럼 날 잡을 때는 왜 천지회와의 유대를 생각하지 않았느냐?" - P37

위소보는 전세를 정확히 파악했다.
‘저 노인만 건드리지 않으면 나머지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야.‘
그가 비수를 뽑아쥐고 앞으로 뛰쳐나가려 하자, 방이가 얼른 그를 말리며 말했다.
"우리가 이길 거야. 나서지 않아도 돼."
위소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길 걸 아니까 나서려는 거지, 질 것 같으면 벌써 달아났을 거야.‘ - P67

노인이 오른손으로 판관필을 들어올리더니 소리 높여 외쳤다.
"홍 교주는 장생불로, 홍복영락, 영원불멸하리라! 영원불멸하리라!"
그러자 부하들도 일제히 무기를 높이 들고 외쳤다.
"홍 교주는 영원불멸하리라! 영원불멸하리라!" - P68

위소보는 강시를 제일 무서워하고, 그다음으로는 귀신을 겁낸다. 불여우는 그다지 무서워하는 편이 아니다. 더구나 이 소녀는 귀엽고 예쁜 게, 어딜 봐도 불여우 같지 않았다. 게다가 강남 말씨가 배어 있어 자기 고향 말투와 비슷했다. 운남 말씨를 쓰는 목검병이나 방이보다 더 친근감이 있었다. 그래서 웃으며 물었다.
"낭자, 이름이 뭐야?",
소녀가 대답했다.
"난 쌍아라고 해요. ‘한 쌍’ 할 때 그 ‘쌍’이에요." - P97

"그 간신 오배를 죽인 경위를 저한테 말해줄 수 있나요?"
위소보는 그녀가 오배를 ‘간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더욱 마음이 놓였다. 이제 끗발이 가장 높은 ‘지존패’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상대가 어떤 패를 갖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리 높아도 기껏해야 비길 뿐이었다. - P106

얼마 후장 부인이 안채에서 걸어나왔다.
"계 상공, 너무 놀라지 마세요. 이곳에 사는 여인들은 다 오배에게 죽음을 당한 충랑들의 유가족이에요. 모두들 계 상공이 오배를 죽여서 자기들의 피맺힌 원한을 갚아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감사하고 있어요." - P110

"쌍아 이 아이는 저를 따른 지 오래됐어요. 아주 영리하고 일도 깔끔하게 잘합니다. 은공께 드릴게요. 앞으로 은공을 따라다니며 정성껏 잘 모실 겁니다."
위소보는 놀라면서도 내심 좋아했다. 그녀가 주겠다는 선물이 사람일 줄이야, 정말 뜻밖이었다. - P112

그러자 황보각이 얼른 외쳤다.
"그와 함께 있는 승려가 다치지 않게 다들 조심해라!"
황보각의 말에 모두들 그 승려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나이는 서른 안팎으로 키가 헌칠하고 아주 준수하게 생겼다. 그는 현재 상황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눈을 내리깔고 표정이 없었다.
위소보는 가슴이 철렁했다.
‘저 사람이 분명 소황제의 아버지일 거야. 한데 생김새는 닮지 않았어. 소황제보다 훨씬 잘생겼는데… 생각보다 젊네.‘ - P156

위소보가 그의 귀에 가까이 대고 나직이 말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황제 화상 때문에 온 겁니다."
징광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소시주께선 다 알고 있었군요."
위소보가 여전히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가 이곳에 와서 불사를 치르겠다고 한 것은 거짓말입니다. 사실은.… 명을 받고… 황제 화상을 지켜드리러 온 겁니다."
징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P162

위소보는 눈치 하나는 빠르다.
"분명 기분 나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봐."
쌍아는 잡아뗐다.
"없다니까요!"
위소보는 문득 짚이는 게 있었다.
"아, 알았다. 내가 조정에서 큰 벼슬을 하면서도 얘기를 안 했다고... 화난 거지?" 설명했다.
쌍아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랑캐 황제는 나쁜 사람이에요. 한데 상공은… 왜 그들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죠? 그것도 아주 큰 벼슬이잖아요!" - P179

‘노황야는 이 경전을 소현자한테 전해주라고 했는데・・・ 전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 이미 다섯 부를 수중에 넣었어. 이것까지 합치면 여섯 부가 되지. 나머지는 단 두 부야. 만약 소현자한테 주면 내가 갖고 있는 다섯 부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어. 다행히 노황야는 소현자가 오대산에 온다고 해도 만나주지 않는다고 했어. 그럼 대질심문도 할 수 없지.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리면 내 무슨 면목으로 위씨 조상을 대하겠나?" - P202

반두타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위 시주, 한가지 간곡한 청이 있는데, 들어주면 고맙겠네."
위소보는 영문을 몰라 멍해졌다.
"무슨 일인데요?"
반 두타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신룡도로 며칠만 손님으로 모셔가고 싶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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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가 지금껏 손을 쓰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선 그날 해 노공과 싸우면서 심한 내상을 입었다. 그리고 해 노공이 분명 발로 걷어찼는데도 위소보가 멀쩡한 것을 보고 어린것이 심후한 내공을 쌓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상처가 완치되고 공력을 회복하기 전에는 섣불리 행동을 하지 않기로, 신중을 기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 P33

방이가 말했다.
"이젠 한편이 됐으니 솔직히 다 말해줄게 우린 오삼계의 아들 오옹웅의 부하로 위장해서 황제를 노리러 온 거야. 황제를 죽일 수 있다면 더 좋고, 그러지 못하더라도 황제가 대로해 오삼계를 죽이게끔 계획을 짠거지." - P74

그러자 조 시위가 뭐라고 묻기도 전에 위소보가 나섰다.
"너희들은 오늘 겁 없이 대역무도한 짓을 저질렀는데, 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은 것이냐? 솔직하게 말해라!"
그 내관이 대답했다.
"억울해요! 우린 태후마마의 분부로……."
위소보는 펄쩍 뛰어 왼손으로 그의 입을 막고 호통을 쳤다.
"헛소리 말아라!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지껄이느냐? 또 입을 열면 당장 죽여버리겠다!" - P90

강희가 다시 말했다.
"다시 잘 생각해보시오. 만약 오삼계가 보낸 자객이 아니라면, 평서왕부의 병기를 휴대하고 역모를 획책한 목적이 무엇이겠소? 당연히 오삼계를 모함하기 위해서겠죠. 오삼계는 대청제국이 천하를 차지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어요. 그를 시기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죠. 진짜 자객들을 사주한 자가 누군지, 다시 단단히 신문해서 확인해야 할 것이오." - P118

강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소계자는 충성심이 강하고 돈에도 욕심이 없으니 정말 기특해. 자기는 한 푼도 갖지 않고 은자 5만냥을 다 시위들에게 나눠주는군.‘ - P140

목검성은 천지회 북경의 수장인 위 향주가 어린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백한풍을 통해 이 어린아이가 무공은 형편없고 입만 살아 있는 천덕꾸러기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래서 사부인 진근남이 전적으로 밀어주는 바람에 향주가 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주 침착한 게 의젓해 보이기까지 했다. 생각이 약간 달라졌다. - P156

위소보는 서천천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고 나서 말했다.
"서 삼형, 속상해할 필요 없어요. 노일봉 그놈은 제가 오응웅을 시켜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라고 했어요."
서천천은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아, 네, 네・・・ 감사합니다. 향주님"
그러면서도 속으론 별로 믿지 않았다.
‘또 얼토당토않은 뻥을 치는군. 오응웅은 평서왕부의 세자로서 얼마나 도도하고 건방진데, 설마 네가 시키는 대로 하겠어?"
위소보가 자신을 위해 백한송과의 풀기 어려운 응어리를 해결해 주겠다고 장담하니, 말만으로도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그러나 과연 자객 한 명을 구해낼 능력이 있을지는 믿어지지 않았다. - P175

강희는 무공을 연마한 후 아슬아슬하고 긴박감이 넘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황제의 몸이라 위험에 노출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치 자신이 직접 겪는 것처럼 위소보를 보낼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설령 시위들을 보내면 일을 더 잘해낼 수 있다는 보장이 있다 하더라도, 기꺼이 위소보를 보낼 것이었다. - P179

방이는 처음엔 일개 내시인 위소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어전 시위 부총관 서동을 죽이는 것을 직접 목격했고, 또한 이상한 약으로 시신을 없애는 것도 지켜보았다. 게다가 궁중 시위들과 내관들이 그를 깍듯이 대하는 것을 보고 예사롭지 않은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193

"위 향주께서 저와 제자, 그리고 유 사질의 목숨을 구해줬습니다.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었으니, 저는 귀회의 전 사부한테 약속한 바가 있습니다. 반청복명을 위한 일에 천지회에서 저와 제자를 불러주신다면, 언제든지 달려와 명에 따르겠습니다!" - P238

진근남은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궁에 있는 위 향주의 친구가 바로 위소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매우 흐뭇해했다.
"소공야, 유 어른, 오 대형! 세 분은 너무 겸손하십니다. 폐회와 목왕부는 같은 뜻을 품고 있는 동지로서 서로 돕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은혜니 보은이니 하는 말은 당치 않습니다. 그 위소보는 저의 어린 제자입니다. 나이가 어려 철이 없지만 ‘의리‘만은 좀 남다른 것 같습니다." - P239

오입신은 정중하게 말했다.
"험지에 몸담고 있으니 그야 당연하죠. 좀 전에도 제자 오표에게 언급했습니다. 그 소영웅은 일을 아주 깔끔하게 처리하고 간담과 기백, 용기가 있는 아주 훌륭한 인물이라고요. 오랑캐 궁중에 어떻게 그런 걸출한 인물이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천지회의 향주였군요. 아… 허허 ・・・ 어쩐지 어쩐지 이제야 납득이 갑니다!",
그러면서 연신 엄지를 세우며 계속 고개를 흔들어댔다. 얼굴엔 감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P240

진근남이 다시 말했다.
"과연 융무와 영력, 어느 쪽이 정통을 이을지 구체적으로 논하기엔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목소공야, 유어른! 천하영웅중에 누구든 오삼계를 죽이면, 모두 그의 호령에 따르도록 합시다!" - P244

다시 살금살금 두 걸음을 내디뎠는데, 갑자기 낯선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유연이 어떻게 된 거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야?"
위소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너무 해괴한 일이었다.
‘태후의 방 안에 어떻게 남자가 있지? 목소리를 들어보니 내관은 아닌데・・・ 그렇다면 늙은 화냥년의 기둥서방이 아닐까? 하하. 이 어르신이 간통 현장을 잡아야겠군!‘ - P293

위소보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도궁아는 내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면 황제가 입을 봉하기 위해 날 죽일지도 모른다고 했어. 하지만・・・ 영웅호한은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대신 의리를 저버리는 일만은 절대 해서는 안 돼! 좋아! 대장부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나?"
그는 다과를 탁자에 내려놓고 강희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현자! 한 번만 더 소현자라고 불러봐도 되겠어요?" - P320

"겨루는 건 급하지 않고・・・ 한 가지 중대한 기밀이 있어요. 이건 분명히 내 친구 소현자한테 털어놓는 거지, 절대 황제에게 말하는 게 아네요. 황제가 들으면 분명 내 목을 칠 거예요. 하지만 소현자는 날 친구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쩌면 괜찮을지도 몰라요" - P321

강희는 생각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음..… 이렇게 하자. 내가 정식으로 선포하겠다. 오배를 제압하기 위해 넌 내 명에 따라 가짜 내관 노릇을 해왔다고 말이야. 이제 원흉을 제거했으니, 당연히 가짜 내관 노릇을 계속할 필요가 없지. 소계자, 앞으로 글공부를 좀 해라. 내가 큰 벼슬을 내려줄 테니까."
위소보가 대답했다.
"좋아요! 하지만 저는 책만 보면 지근지근 골치가 아파요. 공부를 조금만 할 테니까 벼슬도 그냥 조금 작은 걸로 주세요."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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