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보는 손목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목에도 써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자신의 목을 겨냥하고 있는 비수는 워낙 예리해서, 살짝 닿기만 해도 두부 썰 듯이 목이 절단되고 말 것이었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헤벌쭉 웃었다. "유 대형, 말로 합시다. 한 식구나 다름없는데 왜 이렇게 거칠게 구는 거죠?" 유일주는 그의 얼굴에 퉤하고 침을 뱉었다. - P21
"지금 잡아떼는 거냐? 방사매가 너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했다는데···사실이냐?" 그 말에 위소보는 깔깔 웃었다. 유일주가 다그쳤다. "왜 웃는 거야?" 엘레위소보가 웃으며 말했다. "유 대형, 내가 묻겠는데... 내시도 마누라를 얻을 수 있나요?" 유일주는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급히 달려왔는데, 위소보가 내시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 P23
"아… 형제… 위 형제, 아니 위 향주! 목왕부와의 유대를 봐서라도 제발... 제발 좀 살려줘…." 위소보가 말했다. "내가 목숨을 걸고 궁에서 널 살려냈는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오히려 날 죽이려 해? 흥! 흥! 너 같은 조무래기 따위가 감히 이 어르신을 건드려? 나더러 목왕부와의 유대를 봐서라도 살려달라고 했지? 그럼 날 잡을 때는 왜 천지회와의 유대를 생각하지 않았느냐?" - P37
위소보는 전세를 정확히 파악했다. ‘저 노인만 건드리지 않으면 나머지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야.‘ 그가 비수를 뽑아쥐고 앞으로 뛰쳐나가려 하자, 방이가 얼른 그를 말리며 말했다. "우리가 이길 거야. 나서지 않아도 돼." 위소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길 걸 아니까 나서려는 거지, 질 것 같으면 벌써 달아났을 거야.‘ - P67
노인이 오른손으로 판관필을 들어올리더니 소리 높여 외쳤다. "홍 교주는 장생불로, 홍복영락, 영원불멸하리라! 영원불멸하리라!" 그러자 부하들도 일제히 무기를 높이 들고 외쳤다. "홍 교주는 영원불멸하리라! 영원불멸하리라!" - P68
위소보는 강시를 제일 무서워하고, 그다음으로는 귀신을 겁낸다. 불여우는 그다지 무서워하는 편이 아니다. 더구나 이 소녀는 귀엽고 예쁜 게, 어딜 봐도 불여우 같지 않았다. 게다가 강남 말씨가 배어 있어 자기 고향 말투와 비슷했다. 운남 말씨를 쓰는 목검병이나 방이보다 더 친근감이 있었다. 그래서 웃으며 물었다. "낭자, 이름이 뭐야?", 소녀가 대답했다. "난 쌍아라고 해요. ‘한 쌍’ 할 때 그 ‘쌍’이에요." - P97
"그 간신 오배를 죽인 경위를 저한테 말해줄 수 있나요?" 위소보는 그녀가 오배를 ‘간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더욱 마음이 놓였다. 이제 끗발이 가장 높은 ‘지존패’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상대가 어떤 패를 갖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리 높아도 기껏해야 비길 뿐이었다. - P106
얼마 후장 부인이 안채에서 걸어나왔다. "계 상공, 너무 놀라지 마세요. 이곳에 사는 여인들은 다 오배에게 죽음을 당한 충랑들의 유가족이에요. 모두들 계 상공이 오배를 죽여서 자기들의 피맺힌 원한을 갚아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감사하고 있어요." - P110
"쌍아 이 아이는 저를 따른 지 오래됐어요. 아주 영리하고 일도 깔끔하게 잘합니다. 은공께 드릴게요. 앞으로 은공을 따라다니며 정성껏 잘 모실 겁니다." 위소보는 놀라면서도 내심 좋아했다. 그녀가 주겠다는 선물이 사람일 줄이야, 정말 뜻밖이었다. - P112
그러자 황보각이 얼른 외쳤다. "그와 함께 있는 승려가 다치지 않게 다들 조심해라!" 황보각의 말에 모두들 그 승려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나이는 서른 안팎으로 키가 헌칠하고 아주 준수하게 생겼다. 그는 현재 상황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눈을 내리깔고 표정이 없었다. 위소보는 가슴이 철렁했다. ‘저 사람이 분명 소황제의 아버지일 거야. 한데 생김새는 닮지 않았어. 소황제보다 훨씬 잘생겼는데… 생각보다 젊네.‘ - P156
위소보가 그의 귀에 가까이 대고 나직이 말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황제 화상 때문에 온 겁니다." 징광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소시주께선 다 알고 있었군요." 위소보가 여전히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가 이곳에 와서 불사를 치르겠다고 한 것은 거짓말입니다. 사실은.… 명을 받고… 황제 화상을 지켜드리러 온 겁니다." 징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P162
위소보는 눈치 하나는 빠르다. "분명 기분 나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봐." 쌍아는 잡아뗐다. "없다니까요!" 위소보는 문득 짚이는 게 있었다. "아, 알았다. 내가 조정에서 큰 벼슬을 하면서도 얘기를 안 했다고... 화난 거지?" 설명했다. 쌍아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랑캐 황제는 나쁜 사람이에요. 한데 상공은… 왜 그들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죠? 그것도 아주 큰 벼슬이잖아요!" - P179
‘노황야는 이 경전을 소현자한테 전해주라고 했는데・・・ 전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 이미 다섯 부를 수중에 넣었어. 이것까지 합치면 여섯 부가 되지. 나머지는 단 두 부야. 만약 소현자한테 주면 내가 갖고 있는 다섯 부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어. 다행히 노황야는 소현자가 오대산에 온다고 해도 만나주지 않는다고 했어. 그럼 대질심문도 할 수 없지.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리면 내 무슨 면목으로 위씨 조상을 대하겠나?" - P202
반두타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위 시주, 한가지 간곡한 청이 있는데, 들어주면 고맙겠네." 위소보는 영문을 몰라 멍해졌다. "무슨 일인데요?" 반 두타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신룡도로 며칠만 손님으로 모셔가고 싶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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