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보는 솔직히 말했다.
"누나, 사실 난 고향이 양주고, 엄마는 기루에 있어."
방이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그에게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엄마가 기루에서 일한다고? 거기서 빨래하고 밥하고… 또… 청소하고 차를 끓이는 일을 하나?"
위소보는 그녀의 안색이 크게 변하고 눈에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이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기루‘를 아주 멸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 P261

육 선생은 또 다른 족자를 가리켰다.
"이 족자는 갑골고문인데 난 학식이 미천해 한 자도 알아보지 못하니 위 공자가 가르침을 줬으면 좋겠네."
그가 가리키는 족자를 보니,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올챙이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그의 뇌리에 오대산 보제사 석비에서 보았던 글이 떠올랐다. 그래서 거침없이 말했다.
"이 글은 제가 잘 압니다. 바로 ‘신룡교 홍 교주는 천년만년 복록영락 신통광대 영원불멸‘입니다."
육 선생의 얼굴이 활짝 폈다.
"천지신령께 감사합니다. 진짜 이 글을 알아보는군"
그는 얼마나 기쁜지 음성마저 떨렸다. - P273

"빌어먹을! 난 일자무식이야! 글이라곤 개똥도 몰라! 그 무슨 ‘홍교주는 영원불멸‘ 따위는 다 뻥이야! 그 고약한 두타를 속인 거라고! 나더러 글을 쓰라고? 죽어서 엄마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환생한다면 몰라도 지금은 안 돼! 죽이든 말든 맘대로 해! 눈 하나 깜박하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 - P275

힐끗 곁눈질로 보니 내청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걸어나와 의자에 앉았다. 방울 소리가 다시 요란하게 울리자 모두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남자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흰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뜨리고, 얼굴은 상처 자국과 깊이 파인 주름으로 얼룩져, 아주 추악해 보였다. 위소보는 이 사람이 바로 교주일 거라고 생각했다. - P294

홍 교주는 평상시 교도들 앞에서 말도 별로 하지 않고, 웃지도 않으며, 아주 근엄한 모습만 보여왔다. 그런데 지금 바닥에 나뒹굴면서 비참한 모습을 보였으니, 중독돼 전혀 힘을 쓸 수 없게 된 게 확실했다.
대청에 모인 수백 명이 다 쓰러졌는데 유독 한 사람만이 제자리에서 있었다. 그는 원래 몸집이 왜소했는데, 수백 명이 다 쓰러진 자리에 우뚝 서 있으니 마치 군계일학 같았다. 바로 위소보였다. - P315

앞뒤를 잰 위소보는 혀를 날름거리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나더러 교주가 되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합니다. 내 팔자를 망쳐 놓을 뿐 아니라 또한 대역무도한 짓이에요. 이렇게 합시다! 교주님, 영부인! 옛말에 좋은 게 좋다고, 오늘 일은 서로 퉁치고 없었던 일로 하죠. 육 선생과 청룡사는 교주님께 불경을 저질렀지만 교주님은 하해와 같은 아량을 베풀어 일절 죄를 묻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육 선생은 모든 사람에게 해약을 내주십시오. 그럼 다시 화기애애해질 테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 P327

홍 부인은 그의 말에 까르르 교태가 넘치게 웃었다.
"우리에 대한 충심이 결코 빈말이 아니군요. 난 별로 준 것도 없는데 어떻게 이 귀한 것을 받을 수 있겠어요? 그 마음만 고맙게 받죠. 그리고 위험에 처하는 순간 방어할 수 있는 세 초식을 가르쳐줄게요. 미인삼초라고 하는데, 잘 기억해두세요." - P346

"부인의 미인삼초는 위력이 너무 강해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마련이지. 이번에는 내가 상대방을 항복시킬 수 있는 영웅삼초를 가르쳐 주겠다. 이 초식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강약을 조절할 수 있어."
위소보는 매우 기뻐하며 무릎을 꿇었다.
"교주님께 감사드립니다." - P350

방이가 다시 몸을 숙였다.
"속하 방이와 목검병은 영부인의 명을 받들어 적룡문에서 백룡문으로 전출돼, 앞으로 백룡사의 명에 따를 겁니다!"
그 말에 위소보는 처음에는 멍해졌으나 이내 깨달았다.
‘이제 보니… 넌 벌써 신룡교에 가입해 적룡문의 일원이었구나.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시치미를 떼고 온갖 수작을 부린 것도, 교주의 명을 받고 날 신룡도로 유인하기 위한 연극에 불과했군. 반존자가 억지로 날 데려가려다가 실패하자, 제기랄 다른 유인책을 쓴 거였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왠지 떨떠름했다. - P3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