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필요한 순간 - 인간은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가
김민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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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있다. 알수는 없다. 나에겐 그게 수학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연필을 들고 수학문제를 풀 기회는 전혀 없다. 간혹 간단한 계산을 할 때는 있지만, 그건 '산수'다. 한때는 공책 바닥을 채우며 수학문제 푸는 것을 꽤 좋아했지만 대학교에 다니면서는 인문계열 전공이기 때문에 그럴 기회가 전혀 없었다. 사회에 나와서는 더더군다나 그렇다. 근의 공식 정도는 여전히 외우고 있고, 피타고라스 정리는 증명할 수 있지만 그게 끝이다.


가끔 서점에서 수학에 관한 책을 들춰 보고 사기도 한다. 앤드류 와일즈가 증명했다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나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은 '골드바흐의 추측'같이 이해하기 쉽고 간단해 보이(지만 절대로 풀 수 없)는 문제는 '혹시 내가?'라는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밀레니엄 7대 난제같은 이해하기조차 불가능한 문제는 그냥 멍하니 쳐다볼 수 밖에 없다. (7문제 중 푸앵카레 추측은 페렐만이 증명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놀랍게도 리만 가설이 증명됐다는 뉴스가 떴다.) 수식이 참 예쁘고 멋있어 보이지만 이해할 수는 없다. 수학 속에는 뭔가 있을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문제를 하나 핵결하면 거만하게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볼 만하다. 나에게는 그게 수학이다.

 


저자 김민형 1963 ~ . 옥스포드 대학교 교수. 굉장히 동안이다.


언제 우리에게 수학이 필요하지?

《수학이 필요한 순간》은 수학자가 쓴 책이다. 분명히 이 책은 수학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수학의 이론을 비전공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수학교양서는 아니다. (사실 나는 그런 책을 기대했다.) 머릿말에서부터 '양자 역학'에 대한 얘기가 살짝 나와서 긴장과 함께 또다른 기대감을 갖게 하더니, 처음에는 이 책이 물리학 입문서인가 싶을 정도로 과학의 역사를 다룬다. 여기까지는 아직 이 책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후 책은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간단한 확률에 대해 설명한 후에 윤리의 문제를 다루고, 인공지능의 선택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 고민한다. 또 다음장에서는 투표를 할 때, 어떤 후보가 선출되는 것이 민의를 제대로 담아내는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당연히 정답을 내기 힘든 문제이다. 이때쯤 되서야 《수학이 필요한 순간》은 정체를 드러냈다. 이 책은 수학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수학적인 사고방식으로 틀을 만들어 해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렇게 보면 39페이지에서 저자가 수학의 정의를 '추상적인 개념적 도구를 사용해 세상을 체계적으로 또, 정밀하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바로 수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한 것이 이해된다. 저자는 수학을 통해서 세상을 체계적이고 정밀하게 설명하는 다양한 실례를 이 책에서 보여준다.

 


수학포기자. 줄여서 수포자라고 한다. 학문으로서 수학은 사회생활에서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학적 사고방식은 학업을 마친 후에도 필요하다.


추상성의 끝에서 현실과 관계를 맺는 수학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숫자와 증명, 그래프가 난무하는 수학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 않다. 대신에 이전에 수학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별도의 칸에 '읽을거리'로 올라와 있을 법한 짧은 수학상식을 전문적으로 설명해 놓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일상이나 학문에서 생길 수 있는 의문점에서 출발해서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수학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문제를 풀지는 못하더라도 풀 수 있는 방법은 생각하도록 안내를 한다. 이 과정에서 케네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 트롤리 문제, 게일-섀플리 알고리즘처럼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제법 유명한 문제들이 제시된다.


분야도 다양해서, 수학과 가장 가까운 학문인 물리학으로부터 윤리학, 우주론까지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저자가 생각하는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논리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한 모든 학문을 넘어서서 우리의 삶 전체에 수학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꼭 '수학'이 아니라 '수학적인 사고방식'이라면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천재 수학자의 뇌와 일반인은 뇌는 다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은 접근하지 못한 추상성의 끝을 연구하는 수학자들이 부럽다.


정말 쉽게 읽을 수 있을까?

띠지에 보면 '문과생들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수학책'이라고 씌여 있다. 정말 그럴까?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판형이 작고 글자도 많지 않고, 그림이나 도표도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어서 양은 많지 않다. 나이에 비해서 앳되 보이는 친절한 저자의 모습을 보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수학적인 사고방식에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은 내용을 따라가기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특히 위상기하학을 설명한 6강(위상기하학을 다루는 이 장에서 푸앵카레 추측이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 같다.)과 코딩과 암호를 다룬 특강(RSA 암호체계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은 뇌 속의 논리 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까다로울 것 같다. 하지만 꼭 그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내용을 전개해 가는 과정만 지켜보더라도 충분히 읽어 볼만한 책이다.


이 책은 수학에 관심이 있지만 계산하는 건 익숙하지 않은 문과생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슥 넘기고 읽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계산해서 먹고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정말 어려운 수학문제들은 천재들도 모른다. 천재들이 이해못하는 건 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아는 건 천재들도 알고 있을테니까, 어차피 그게 그거지 뭐.

 


수학사상 최고의 천재로 유명한 가우스. Johann Carl Friedrich Gauß.


 

★★★★☆

너무 어려워지는 걸 경계해서 그랬는지 각 단원이 설명을 하다가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좀 아쉽다. 책의 의도가 그렇지 않았으니 내가 기대한 것을 채우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보충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런 기대를 책 한 권에서 모두 채울 수는 없는 거니까. 내 기대와는 상관없이 이 책은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일반인이 읽어도 좋고 좀 모리좋은 중학생 이상 학생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비슷한 이 책과 비슷한 구상으로 훨씬 더 깊이 들어간 책이 후속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면 책 판매량은 훨씬 떨어지겠지만...


마지막으로.. 항상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대화식으로 쓴 책이라고 해서 쉬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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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선언
윈턴 마설리스.제프리 C. 워드 지음, 황덕호 옮김 / 포노(PHONO)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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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 누구도 재즈가 무엇인지 모른다. 정말이다. 우리는 재즈에 관해 뭔가를 아는 것에서 이미 멀어졌다. 여러 해 동안 재즈를 연주하고 그 음악에 대해 토론하면서 재즈란 실재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재즈를 가르칠 수 없다.
p. 191


원제 : Moving to Higher Ground. 2008년.


만만치 않은 재즈

어릴 때부터 음악이라면 거의 닥치는대로 들은 편이지만 재즈는 항상 내 관심 밖에 있었던 음악이었다. 재즈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지가 굉장히 좋지 않았다. 재즈라고 하면 담배 자욱한 카페에서 약에 취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연주자가 위스키스트레이트 잔을 앞에 둔 관객 앞에서 트럼펫이나 색소폰 음악을 끈적끈적한 눈이 풀린채 연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연주가 끝날 즈음 카페의 어느 곳에서 주먹질을 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있으면 금상첨화.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없었던 음악이다.


좀 뜬금없는 이유로 재즈를 듣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일이다. 처음 재즈를 듣기 시작할 때, 뭘 들어야 할지 몰라서 헤맸는데, 그때 읽고서 재즈 입문에 큰 도움을 받았던 책이 이 책을 번역한 황덕호 평론가가 쓴 《당신의 첫 번째 재즈음반 12장》과 《당신의 두 번째 재즈음반 12장》이다. 이후 좀 무리해서 재즈음반을 많이 사모으면서 듣기 시작했고, 지금은 꽤 많은 음반을 모아서 자주 듣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재즈를 잘 모른다.


내가 재즈를 들을 때 가장 어려운 점은...
1. 연주자도 너무 많고, 곡도 너무 많다. 꼭 들어 봐야 한다고 하는 명반이라고 하는 음반만 해도 수천 장은 될 것 같아서 목록을 만들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이건 어느 음악장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지만 재즈가 그렇게 범위가 넓을 줄은 몰랐다.
2. 도대체 몇 번을 들어도 곡을 구별할 수가 없다. 너무 많이, 마구잡이로 들어서 그런지 재즈를 들으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주제 부분이 명확한 몇 곡은 기억을 하지만 거의 들을 때 뿐이다.
3. 재즈는 현장에서 듣는 것이 가장 좋은데, 막상 재즈 클럽에 가서 들을만한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다. 음반으로 듣는 재즈는 반쪽만 듣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4. 가장 결정적으로 도대체 어디까지가 재즈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스윙이 있어야 하는지, 도대체 정확한 스윙의 정체는 뭔지, 재즈에는 반드시 즉흥연주가 있어야 하는지, 난해한 곡들은 도대체 듣고 뭘 느끼라는 건지.. 정리가 안된다.


재즈는 여전히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진다.

 


윈턴 마설리스. 1961 ~ . 뉴올리언즈 출생. 트럼펫 연주자.

 


최전선의 연주자가 쓴 재즈에 관한 책

《재즈 선언》의 저자는 윈턴 마설리스이다. 재즈 연주자로서 마설리스의 경력은 정말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1961년생인 마설리스는 재즈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재즈 연주에 심취했고, 19세 때부터는 아트 블래키 Art Blakey가 이끈 전설적인 재즈밴드인 재즈 메신저스에서 트럼펫을 연주했다. 일생동안 무려 8회의 그래미 상을 수상했고, 1984년에는 재즈 뿐만 아니라 클래식까지, 한 해에 서로 다른 두 장르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이후 링컨센터의 재즈 총괄 프로그래머직을 수행할 정도로 영향력 또한 막강했다. 실력·운·지위·영향력 할 것 없이 20세기 재즈의 마지막 20년과 21세기 초반의 재즈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그동안 많지는 않아도 몇 권의 재즈관련 책을 읽어 봤는데, 대부분 평론가가 쓴 책이었다. 평론가의 글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딱딱한 역사와 이론 중심의 책이 되게 마련이다. 《재즈 선언》은 그런 면에서 좀 다르다. 책 속에 자신의 연주 경험이 녹아 들어 있어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음반으로만 듣던 재즈 거장들의 일화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현장의 연주자가 쓴 책의 장점이다.

 


재즈는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어려운 음악이다.


재즈 이해의 어려움

재즈에 대한 책 또는 이론서를 여러 번 읽어 봐도 여전히 재즈는 어렵다. 나에게 재즈가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도대체 재즈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초기 재즈부터 현대의 프리재즈까지 들어 봤지만 사실 공통점이 뭔지 잘 모르겠다. 초기 뉴올리언즈에서 연주하는 스타일의 곡들을 재즈라고 하고 이후에 나온 밥 스타일의 곡들은 재즈가 아닌 다른 장르라고 하는 극단적인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미국스타일과는 달리 유럽의 재즈 스타일은 또 달라서 곡들의 공통점을 알 수가 없다. 재즈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를 즉흥성과 스윙이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즉흥성이 없는 재즈도 있고, 스윙도 또 모르겠다. 여기서 두번째 어려운 점이 생긴다.


대충 스윙이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정확하게 스윙이 느껴지는 이유 또한 모르겠다. '스윙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니 '네가 스윙이 뭐냐고 물어 보는 것 자체가 스윙이 뭔지 모르는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굉장히 선문답같은 얘기도 들어 본 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초기에 재즈를 했던 사람들이 학력이 낮아서 자신들이 연주하는 음악의 본질에 대해서 느낄 수만 있을 뿐이지 정확한 설명을 할 능력이 없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재즈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대체로 재즈의 역사와 유명한 연주자들을 안내하는 것으로 내용을 채우는 경우가 많다.

 


루이 암스트롱 Rouis Armstrong. 1901 ~ 1971. 재즈의 아버지. 그의 별명 중 하나가 Pops. 즉 대중문화 그 자체였다.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저자가 쓴 재즈 안내서

이런 면에서 현직 재즈 연주자이면서 클래식에도 조예가 깊은 윈턴 마설리스가 쓴 《재즈 선언》은 다른 재즈이론서와는 분명히 다른 위치를 차지하는 것 같다. 책의 2장에서는 솔로 solo, 콜 앤드 리스폰스 call and response, 스캣 싱잉 scat singing 등 재즈를 들을 때 알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되는 세부적인 형식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처음 재즈를 듣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일부러 찾아 보지 않으면(사실, 2장에 나오는 용어들 대부분이 내가 처음 재즈를 들을 때는 있는지도 모르는 용어들이다) 알 수 없는 것들이다. 특히, 모든 용어를 설명할 때 음악을 예로 들었기 때문에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함께 책을 읽으니 재즈의 형식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전에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들을 정리하는 의미도 있고...


2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설명한 '스윙'과 3장에서 설명한 '블루스' 형식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은 재즈를 듣다 보면 굉장히 많이 접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잘 읽어 두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스윙에 대해서 박자표까지 그려가며 설명한 것도 흥미롭다. 스윙하면 그냥 느끼는대로 표현하는 것 정도로 퉁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블루스에 대해서는... 윈턴 마설리스는 블루스 숭배자이다. 물론 스윙은 마설리스가 설명했듯이 딱 선을 그어서 설명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난 평론가가 아니니까 그냥 책 속에서 설명하는 정도만 이해를 하고 있어도 충분하다.

 


존 콜트레인. John Coltrane 1926 ~ 1967 재즈 색소폰 연주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재즈 연주자이다.


★★★★☆

마지막에는 <대가들이 주는 교훈>이라는 소제목으로 유명 연주자와 추천음반을 소개해 놓았다. 굉장히 매니악한 연주자는 별로 없고 정말로 대표적인 연주자들과 그들의 대표음반을 소개해 놓았으니 입문용으로 골라서 듣기에 적당해 보인다. 하지만 매니악한 앨범을 소개한 것도 아닌데 나에게 없는 앨범이 꽤 된다. 시간내서 천천히 또 모아서 들어 봐야겠다. 역시 존 콜트레인과 마일즈 데이비스에 대한 설명이 가장 길다. 책을 끝까지 읽으면, 대략 재즈의 역사와 형식, 대표적인 음반에다 윈턴 마설리스가 직접 경험했던 유명 연주자들과의 에피소드까지 덤으로 읽을 수 있다.


번역을 한 황덕호는 우리나라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활동이 활발한 재즈평론가이기 때문에 재즈에 대한 이해도가 깊고, 그동안 재즈관련 번역작업도 많이 해 왔다. 그래서 번역서이면서도 무리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재즈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관심갖고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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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나케아의 어떤 밤 - 밤의 시작과 끝, 우주 속 나와 세상에 대한 사유
트린 주안 투안 지음, 이재형 옮김, 이영웅 감수 / 파우제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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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밤의 시작과 끝, 우주 속 나와 세상에 대한 사유

 

표지에 낚이다

 

어릴 때부터 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처음 별을 본 것은 그리스 신화 때문이었다. 그리스 신화를 읽다 보면 많은 영웅들과 동물들, 사물까지도 하늘의 별자리가 되었다. 가장 찾기도 쉽고 사연도 절절한 것은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 큰 곰자리 반대편에 있는 카시오페이아, 오리온자리 등, 나에게 밤하늘의 별은 신화에서 읽은 주인공들을 상상할 수 있는 그림책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아무리 별을 바라보고 있어도 동물 모양도 보이지 않고, 사람 모양도 보이지 않아서 실망하기도 했다. 불빛이 없어서 별이 잘 보이는 시골에 갈 때면, 플래쉬에 빨간 셀로판 테이프를 붙여서 별자리 표와 하늘을 비교해 가면서 별을 기억하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별자리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기 때문에 집에 여러가지 별과 천문에 관한 책들이 있다. 꽤 많이 산 편이다. 책이란게 그렇듯이 가지고 있는 책들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그러니까 어지간해서는 이제 천문에 관한 책을 살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런데 《마우나케아의 어떤 밤》을 보고는 바로 낚였다. 지구상에서 천문을 관측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알려져 있는 마우나케아 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데, 표지마저도 예쁘다. 《마우나케아의 어떤 밤》은 저자도, 내용도, 아무 것도 모른채 표지만 보고 구매해서 읽은 책이다.

 

트린 주안 투안. 1948 ~ 베트남 출신의 천문학자


하룻밤 동안 살펴본 하늘

밤하늘을 관찰하는 것은 만만하지 않다. 우선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한밤중이라고 하더라도 불빛이 없을 때가 없기 때문에 별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기껏해야 유명하고 빛이 강한 1,2등성 정도만 볼 수 있다. 시골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도시보다야 낫겠지만 습도가 높은 날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깨끗한 하늘을 보기가 참 힘들다. 하늘을 관찰하는 것이 직업인 천문학자들은 최대한 깨끗한 하늘을 관찰해야 한다. 그래서 관찰하기 좋은 곳에 큰 천문대를 만들어 놓고 별을 관찰한다. 아타카마 사막이 대표적으로 하늘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다. 예전에 여행한 적이 있는 몽골의 초원도 쏟아지는 별이 멋있었다. 물론 별을 관찰하기 제일 좋은 곳은 지구 밖이다. 허블망원경이 수십년간 지구궤도에서 그 역할을 하다가 거의 생명이 다해가고 있다.


마우나케아 Mauna Kea 산은 하와이에 가장 높은 산이다. 아마도 공기 중에 습도도 굉장히 적을 것이다. 그 정상에는 여러 나라에서 천문대를 만들어 놓았다. 저자인 트린 주안 투안은 6개월의 기다림 끝에 나사로부터 사흘동안 '청색 밀집 왜소은하'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을 허락받고 마우나케아 산을 찾았다. '청색 밀집 왜소은하'가 뭔지는 나도 모른다. 저자의 연구과제이지만 이 책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마우나케아의 어떤 밤》은 트린 주안 투안 교수가 하룻밤 동안 하늘을 관찰하며 느낀 감정과 천문학에 대한 이론을 설명한 책이다.

 

은하수. 어릴 때는 간혹 볼 수 있었고, 지금도 시골에 가면 볼 수 있지만 도시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다.


감성 넘치는 천문학 인문서


그동안 천문학 책을 꽤 많이 봤지만 이런 책은 처음이다. 우선 그림이 정말 예쁘다. 애초에 책표지에 낚여서 충동적으로 책을 구매했는데 책 속의 천문 사진들도 정말 멋지다. 천문학 책이 천문사진이 가득한 것이야 당연하니 이건 그렇게 특별할 것은 없다고 해도 표지 이상으로 멋진 사진들이 책 속에 가득한 것은 흐뭇하다. 좋은 사진을 위해서 종이질도 굉장히 두껍고 좋은 종이를 사용했다. 그래서 페이지 수에 비해서 책이 두껍고 무거운 편이긴 하다.


책은 마우나케아 산에 도착해서 하늘을 관찰할 준비를 하고, 밤새 하늘을 보는 시간순으로 적혀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저자의  생각은  가장 가까운 천체로부터 우주로 내달린다. 지구와 달, 태양계를 보던 저자의 눈은 점점 멀리 눈을 돌려서 마지막에는 우주에 숨어 있는 암흑에너지와 우주의 기원까지 생각을 넓혀 나간다. 책 전체를 통틀어 시간의 흐름과 우주의 거리를 교차시키고 있다. 하룻밤의 시간과 우주라는 공간을 큰 줄기로 잡아 놓고는 책의 곳곳에 문학과 예술을 점점이 박아 놓았다. 여기에는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 그림을 실어 놓고 저기에는 릴케의 시를 박아 놓는다. 그렇다고 천문학 지식을 설명하는 것에 소홀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천문학이라는 주제를 잡아 놓고 그 안에 저자가 가지고 있는 온갖 인문학적 지식과 자신이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하룻밤 관찰하면서 느낀 감성을 모조리 잡아서 박아 놓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이 책이 천문학에 관한 책이라는 느낌보다는 에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동안 봐왔던 천문학 책은 그냥 과학책이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알려 주는 책이었다. 굉장히 딱딱했다. 하지만 이 책은 많이 다르다. 보고 익힐 것도 있지만 느낄 것도 가득 차 있다.

 

안드로메다 은하. 많은 지구인들이 개념을 날려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어릴 적 꿈을 되새김

 

내가 처음 별을 관심있게 보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릴 적 하늘을 더듬으며, 북두칠성을 찾고 오리온자리를 찾았던 기억을 되새긴다. 아기곰을 만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어미곰을 생각한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설레였다. 은하수를 보고 하늘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지어내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그림책에서 본 것처럼 실에 매달려 있는 별을 상상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어른이 되면 당연히 우주여행을 하고 있을 거라고, 달에 가면 절대로 우주복을 벗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던 어린 시절의 꿈이 떠오른다. 책을 보면서 참 많은 감정이 떠올랐다.

 

눈쌓인 마우나케아 산 정상과 천문대. 가 볼일은 없겠지.


★★★★☆

 

어려운 책이 아니다. 사실 천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곳곳에 나오는 설명이 좀 어려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이 책을 읽으면 밤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서울의 불빛이 너무 환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한 번쯤은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고 마우나케아 산의 정상에 있는 천문대에서 별을 보고 있는 자신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정신없이 사느라 어릴 때 별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기억을 잊은 사람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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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가 되기
존 가드너 지음, 임선근 옮김, 레이먼드 카버 서문 / 걷는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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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어


누구든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글을 쓴다. 나도 그렇다. 처음에는 학교 수업이나 숙제로 글짓기를 하는 것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데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온라인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활동하던 동호회에 글을 쓰면서 처음엔 난잡했던 글이 그나마 정돈이 되고, 때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쓸 때도 있었다. 글쓰는데 재미가 붙었을 때는 스타일을 여러가지로 바꿔서 써보기도 하고 다른 좋은 글들이 쓰는 방식을 살펴 보기도 하고 따라서 써 보기도 했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씩은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상상도 해 보지만 아무래도 내 영역이 아닌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상상으로만 그쳤다. 취미삼아 블로그나 동호회에 쓰는 정도로 글쓰기는 만족하고 살기로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으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이왕 쓰는 글이라면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이런저런 유명한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이 읽어 보고 옳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 노력도 많이 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글을 쓰는 원칙같은 것도 정해 놓고 쓰고 있다.


나는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이 책은 지금까지 읽어 본 적이 없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존 가드너 John Gardner (1933 ~ 1982) 미국의 작가, 소설가, 여러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강의했다. 대표작은 《그렌델》, 《태양의 대화》

 


유명한 작법 교수의 실질적인 조언


<장편 소설가 되기>는 최대한 대상을 좁혀서 충고를 하고 있는 책이다. '장편 소설가'라는 말에 주의해서 제목을 읽어 보면 넓게는 시나 에세이를 쓰는 좋은 작가가 되는 방법을 알려 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좋은 '단편 소설가'가 되는 방법에 대한 충고를 담지도 않았다. 제목부터 저자인 존 가드너의 '장편 소설'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저자가 강조하는 바에 따르면 좋은 장편 소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화려하고 개성적인 문체로 천재적인 작가가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글이 아니다. 쓰고 고치고, 문장을 깎아내고 또 고치고, 다시 읽어 보고.. 지난한 작업 속에 성실하게 글을 다듬는 작업에 대해서 계속해서 강조한다.


저자는 좋은 작가의 자질 중에 하나로 언어적인 감수성을 예를 들고 중요시한다. 하지만 과한 것은 모자른 것보다 더 좋지 않다고 한다. 표현에 신경을 많이 쓰면 멋진 문장을 만들 수는 있다. 멋진 문장을 썼을 때, 작가로서 큰 만족감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문장 표현에만 너무 경도되어 스스로만 만족할 뿐이지 독자를 방치하는 소설이 많다. 현란하고 멋진 표현은 독자가 소설 속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 작가는 항상 머릿속에 작품을 읽는 독자를 염두에 둬야 한다. 이 부분은 나도 상당히 공감하는 부분인데, 표현이나 설정은 뛰어난데 반해서 글의 내용이 설득력이 없고 개연성이 없는 소설을 꽤 많다. 거꾸로 소재와 주제를 잘 잡아 놓고 글을 쓰는 솜씨가 모자라서 읽기 싫은 책도 많다. 꼭 소설만 그런 것도 아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건 글을 잘 쓰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시작할 때 생각해 보지 않았을 문제들을 짚는다


저자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작가의 자질에 대해서 책의 상당한 분량을 쓰고 있다. 이 책을 집어들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문학적인' 조언보다 '실제적인' 조언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책의 목차를 보면 1장의 '작가의 기질'에서 소설가의 자질, 어떻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나서 다음으로는 '창작 훈련과 교육', '출판과 생존', '자신감'같이 소설 내적인 내용보다는 외적인 내용에 대해서 많이 다루고 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떤 훈련을 해야 하는지, 이후 출판은 어떻게 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가의 삶을 살야햐 하는지.. 1장이 좋은 소설을 쓰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나머지는 좋은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서 쓰고 있다. 그것도 굉장히 구체적으로, '속물적인' 조언까지도 하고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굉장히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책을 쓰는 꿈을 꾸고 있을 테고, 좋은 책을 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특성상, 좋은 글을 쓰기만 하면 사람들이 알아 보고 책이 팔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실질적인 문제는 고민을 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건 마치 훌륭한 엔지니어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 놓고 알아서 팔릴 것이라고 손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나는 직업상 그렇지 못한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봤다. 제품이 좋은 것과 좋은 제품이 시장에 제대로 안착해서 팔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책도 그렇다. 지금도 서점에서 책을 뒤적거리다 보면 구석 서가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멋진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정말 좋은 책이다. 하지만 제대로 알려 지지 않아서 팔리지 않는다. 혹은 인터넷 서점에서 보내온 광고 메일이나 SNS를 통한 광고를 보고 혹해서 책을 사기도 한다. 이 경우 절반 정도는 실패한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책을 사게 했으니 판매 목적으로 보면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글을 쓰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면 그걸로도 좋다. 하지만 책을 판매해서 독자들이 책을 읽게 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일년에 출판되는 책은 수만권이다. 하지만 그 책의 저자 중에서 인세만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 책은 속물적이면서 세속적인 충고를 한다. 심지어는 미디어를 이용하는 방법까지 설명을 한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꺼려질 수도 있지만  꼭 필요한 충고이다.

 

 


소설가는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생활인이기도 하다


책에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저자는 '미국'에서 꽤 유명한 소설가이면서 소설가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을 많은 강좌에서 오랫동안 가르쳐 왔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쓰는 산업, 기술적인 측면에 치중해서 설명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성실하게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설명에 치중을 많이 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가 될 수 있는 소질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장편소설'을 써 본 적이 없으니 잘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단편소설이나 시에 비해서 장편소설은 재능보다는 노력이 더 중요해 보이기도 하지만 꼭 그런가 하는 의문은 좀 든다. 어쩌면 이 책을 읽을 정도면 기본적인 자질은 이미 가지고 있으니 설명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미국 사람이 오래 전(미국 출판일이 1983년이다)에 쓴 것도 좀 아쉽다.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너무 멀이 떨어져 있어서 현재 우리나라의 작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무려 35년 전의 글인데 그 때에 비하면 글쓰는 환경이 너무 변했고, 미국과 우리나라는 출판환경도 많이 다를 것 같다. 그 때는 아마 지금과 같은 인터넷 환경이나 온라인 서점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쓸 때도 기껏해야 타이프라이터 정도이지 개인용 컴퓨터와 글쓰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테지.


상당히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정말 프로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한 책인 것 같다. 주변에 가끔 책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현실적인 면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나 단편소설을 출판하려는 작가에게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인 면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아주 중요한 충고를 담고 있다.

 

좋은 글이라고 해서 작가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수많은 화가의 작품이 그들이 죽은 후에 평가를 받았고, 많은 글들이 유고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어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죽어서 이름을 떨치는 것이 살아 있을 때 실질적인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할까?


★★★★


모든 취미는 즐기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순간 생활과 직결이 되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장편소설가 되기>는 예술가로서 고뇌하는 소설가의 삶뿐만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소설가의 삶까지 고민해야 하는 예비작가들에게 적절한 충고를 하고 있다. 예비작가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실제 출판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깊이 고민해 보는 시간도 꼭 필요할 것 같다. 책의 제목이 '장편소설 쓰기'가 아닌 <장편소설가 되기>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책을 써서 먹고 살고 싶은 꿈을 가진 작가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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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보는 방법 - 박테리아의 행동부터 경제현상까지 복잡계를 지배하는 핵심 원리 10가지
존 밀러 지음, 정형채.최화정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쪼개고 또 쪼개고

 

과학이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극소수였고 '안다는 것'은 세부적인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것을 의미했다. 그 당시의 지식인을 우리는 고대 철학자라고 부르고, 모든 학문은 철학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는 점점 복잡해졌고, '종합적'이었던 학문은 분화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연과학이 제일 먼저 분화되었을 것이고, 예술과 사회과학이 분화되었다. 인문학은 철학을 가장 가깝게 계승한 학문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다. 학문이 분화되었다고 해서 학문 사이의 연계성이 완전히 끊어졌던 것은 아니다. 100여년전까지만 해도 지금은 함께 연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수학과 철학을 함께 연구하는 학자가 많았고, 법을 공부하는 의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학문 분야는 쪼개지고 또 쪼개져서 갈갈이 찢어져 있다. 하나의 학문도 수많은 분야로 쪼개져 있어서, 학자들은 세분화된 부분은 자세하게 알고 있지만 다른 학문은 알 수가 없고 심지어는 같은 분야라고 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너무나도 많은 지식이 축적이 되고 그것들을 모두 연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 어쩔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학자들이, 더 나가서는 모든 사람들이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너무 작은 부분만을 이해하고 있다. 전체를 보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는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 서로 다른 분야를 통합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융합과학이라든지 통섭이라는 개념이 관심을 끌고 있다.


여기까지는 보통은 자연과학에서 설명하는 환원주의 reductionism의 문제점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내 나름대로 이해한 것이다.

 


환원주의는 모든 것을 쪼개서 가장 작은 단위로 만들어 놓고 사회와 사물을 이해하려고 한다. 최소 단위를 완벽하게 이핸다면 그 총합도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자의 성질을 이해하면 모든 사물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부분을 알아도 전체를 알 수 없다

 

기계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세계관의 극단에는 '라플라스의 악마 Laplace's Demon'가 있다. 세상 모든 입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상태를 알고 있는 가상의 존재인 악마가 있다고 가정하면, 이 악마는 미래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에 잔뜩 고무되었던 결정론자들은 모든 것은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서 깨져 버렸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어떤 입자도 정확한 위치와 운동상태를 동시에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라플라스가 생각했던 대전제인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상태를 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라플라스의 악마'는 존재할 수 있을까?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전체를 보는 방법>은 복잡계 이론 complex system theory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이고, 여전히 라플라스가 틀렸다고 대답한다. 복잡계 이론은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면 '부분을 안다고 해서 전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좀더 풀어서 설명을 해 보면 어떤 물질, 물체, 사회현상 등을 가장 작은 단위로 쪼개서 그 성질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해도 그 단위가 모여서 양이 많아지면(스케일이 커지면), 임계치를 넘어서는 어느 순간 새로운 성질이 창발 emergence되고, 각 단위 요소의 물리적인 합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전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대전제가 틀려서 알 수 없다고 한다. 반면에 복잡계 이론은 1+1=2일 수 있지만 1+1+1+1+1+1+1+1+1+1=10이 아닐 수 있다고 한다.

 

복잡계는 양이 커짐에 따라서 원래 가지고 있던 요소의 성질과 다른 특성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성질을 창발이라고 한다. 창발이 생기는 순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단지 규모가 커짐에 따라 어느 순간 발생한다는 것만 추측할 수 있다.


복잡계를 설명하는 10개의 키워드

 

<전체를 보는 방법>은 복잡계 이론에 대한 입문서이다. 복잡계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열 개의 키워드를 골라서 각각의 키워드에 대해서 설명하고 풍부한 예시로 복잡계 이론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책 속에서 제시하는 열 개의 키워드는 상호작용, 피드백, 이질성, 소음, 분자 지능, 집단 지성, 네트워크, 스케일링, 협력, 자기조직화 임계성이다. 저자는 각 키워드를 설명하면서 단순한 논리연산부터 시작해서 주식시장, 박테리아와 꿀벌, 사회 현상까지 실례를 들어가면서 설명한다. 복잡계 이론이 물리학에서 출발했지만 물리학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현상, 더 나아가서는 모든 모든 학문 영역에서 적용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을 입문서로 생각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그다지 친절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복잡계 이론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몇가지 개념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복잡계 이론이 무엇인지 설명을 하지 않은 채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버려서,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복잡계 이론을 접하는 사람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알아 두면 좋을 개념은 복잡계, 환원주의, 창발이 어떤 뜻인지 미리 알고 이 책을 읽으면 이 책을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복잡계 이론에 대해서는 나도 처음 읽는 책이라 처음에 몇 가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다른 책을 참고해서 이해한 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나비효과는 카오스 이론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 중에 하나이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날까?'라는 질문으로 유명한데 양의 피드백을 가장 극적으로 설명하는 예시이다.


발전하는 중인 학문. 책도 그렇다

 

복잡계 이론은 비교적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기본적인 틀이 완성된 학문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이론 자체가 '미리 예상할 수 없는 것'을 대강 crude (이 책의 원제는 <A Crude Look at the Whole>로 번역하면 '전체를 대충 훑어보기'가 된다.) 살펴보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론 체계를 완벽하게 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창발이 발생하는 시점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은데 창발이 시작되는 임계점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복잡계 이론을 연구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면서 한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학문이 아직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지 책도 일관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전체적으로 가장 간단한 현상으로부터 가장 복잡한 현상으로 복잡계를 설명하고는 있는데 과연 열 개의 키워드가 제대로 된 키워드인지는 잘 모르겠다. 직관적으로 봤을 때, 피드백, 네트워크, 스케일링, 자기조직화 임계성 등은 복잡계를 설명하는 직접적인 키워드가 맞는 것 같지만 다른 키워드들은 복잡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연계 키워드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

 


만델브로트 Mandelbrot 집합. 가장 유명한 프랙탈 도형이다. 프랙탈은 자기유사성을 가진 도형으로 부분을 확대해서 보면 전체의 모습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복잡계 이론은 복잡하다. 왜냐하면 복잡계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개념만 미리 이해하고 들어가면 실례와 함께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사례가 바로 이해되지 않아 수학문제 풀듯이 깊이 생각해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도 종종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전혀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렵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복잡계 이론이 많은 학문들, 어떻게 보면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조금씩 안다면 이해를 하는데 굉장히 수월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2장 <복잡계의 3인조> 단원은 너무 어려웠다. 그 부분을 이해하려면 그 안에 제시된 각종 용어와 배경지식을 이해해야 하는데 친절하지 않은 저자가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 몇 번 읽어서도 이해하는 걸 포기했다. 나중에 복잡계, 혹은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좀더 쌓인 후에 다시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관심가져왔던 분야하고 많이 겹친다. 가장 많이 떠오르는 책은 로버트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인데, 협력이 어떻게 발생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 이론적으로 밝혀 놓은 책이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진화를 설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많은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10장 <협력> 부분은 죄수의 딜레마와 팃포탯 Tit For Tat 전략을 다루는 <협력의 진화>를 읽으면 이해하기 편하다. 팃포탯을 설명한 단원인데, 책 한 권에 해당하는 내용을 한 단원에서 설명을 하려고 하니 처음 보는 사람은 아마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전략을 다루는 '게임이론'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생각해 보니 <협력의 진화>를 읽던 중에 이 책을 알게 되어서 주문해 놓고 이제야 읽은 것 같다.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설명하는 '가이아 이론'과 초기 입력조건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진다는 '카오스 이론'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결국 복잡계 이론은 최근 수십년 동안 수행된 수많은 연구성과를 총집결하려는 욕심을 가진 학문인 것 같다.

 


뇌세포 하나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신경망으로 이어진 뇌세포 집단, 즉 뇌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

 


쉽지 않다. 특히 복잡계 이론과 연관이 있는 여러가지 이론에 대해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후반부에 가면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실례를 풍부하게 들어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이론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복잡계 이론이 연구하는 분야와 방법이 어떤지를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된다. 체계를 딱딱 맞춰서 설명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열 개의 키워드를 나열하고 각각의 키워드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통합적인 이론서라기보다는 복잡계 연구자들이 지금까지 해 온 연구를 나열해 놓은 책이다. 하지만 연구자가 아닌 교양 수준에서 복잡계를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복잡계 이론은 모든 학문에 연결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과연 '대충' 이해할 수밖에 없는 학문의 한계를 앞으로 어떻게 넘어설 지가 관건인 것 같다. 특히 창발이 일어나는 순간, 즉 임계점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복잡계 이론의 근본적인 한계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생각을 따라 다녔다. <전체를 보는 방법>은 전체를 보는 방법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전체를 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보여 줄 뿐이다. 어쩌면 '불확정성의 원리' 덕분에 연구하면 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의 길을 따라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 한 권을 읽는다고 복잡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책을 시작으로 해서 좀더 깊이있게 읽어야 복잡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복잡계에 대해서 '대충'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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