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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보는 방법 - 박테리아의 행동부터 경제현상까지 복잡계를 지배하는 핵심 원리 10가지
존 밀러 지음, 정형채.최화정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쪼개고 또 쪼개고
과학이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극소수였고 '안다는 것'은 세부적인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것을 의미했다. 그 당시의 지식인을 우리는 고대 철학자라고 부르고, 모든 학문은 철학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는 점점 복잡해졌고, '종합적'이었던 학문은 분화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연과학이 제일 먼저 분화되었을 것이고, 예술과 사회과학이 분화되었다. 인문학은 철학을 가장 가깝게 계승한 학문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다. 학문이 분화되었다고 해서 학문 사이의 연계성이 완전히 끊어졌던 것은 아니다. 100여년전까지만 해도 지금은 함께 연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수학과 철학을 함께 연구하는 학자가 많았고, 법을 공부하는 의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학문 분야는 쪼개지고 또 쪼개져서 갈갈이 찢어져 있다. 하나의 학문도 수많은 분야로 쪼개져 있어서, 학자들은 세분화된 부분은 자세하게 알고 있지만 다른 학문은 알 수가 없고 심지어는 같은 분야라고 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너무나도 많은 지식이 축적이 되고 그것들을 모두 연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 어쩔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학자들이, 더 나가서는 모든 사람들이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너무 작은 부분만을 이해하고 있다. 전체를 보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는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 서로 다른 분야를 통합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융합과학이라든지 통섭이라는 개념이 관심을 끌고 있다.
여기까지는 보통은 자연과학에서 설명하는 환원주의 reductionism의 문제점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내 나름대로 이해한 것이다.

환원주의는 모든 것을 쪼개서 가장 작은 단위로 만들어 놓고 사회와 사물을 이해하려고 한다. 최소 단위를 완벽하게 이핸다면 그 총합도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자의 성질을 이해하면 모든 사물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부분을 알아도 전체를 알 수 없다
기계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세계관의 극단에는 '라플라스의 악마 Laplace's Demon'가 있다. 세상 모든 입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상태를 알고 있는 가상의 존재인 악마가 있다고 가정하면, 이 악마는 미래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에 잔뜩 고무되었던 결정론자들은 모든 것은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서 깨져 버렸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어떤 입자도 정확한 위치와 운동상태를 동시에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라플라스가 생각했던 대전제인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상태를 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라플라스의 악마'는 존재할 수 있을까?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전체를 보는 방법>은 복잡계 이론 complex system theory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이고, 여전히 라플라스가 틀렸다고 대답한다. 복잡계 이론은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면 '부분을 안다고 해서 전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좀더 풀어서 설명을 해 보면 어떤 물질, 물체, 사회현상 등을 가장 작은 단위로 쪼개서 그 성질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해도 그 단위가 모여서 양이 많아지면(스케일이 커지면), 임계치를 넘어서는 어느 순간 새로운 성질이 창발 emergence되고, 각 단위 요소의 물리적인 합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전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대전제가 틀려서 알 수 없다고 한다. 반면에 복잡계 이론은 1+1=2일 수 있지만 1+1+1+1+1+1+1+1+1+1=10이 아닐 수 있다고 한다.

복잡계는 양이 커짐에 따라서 원래 가지고 있던 요소의 성질과 다른 특성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성질을 창발이라고 한다. 창발이 생기는 순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단지 규모가 커짐에 따라 어느 순간 발생한다는 것만 추측할 수 있다.
복잡계를 설명하는 10개의 키워드
<전체를 보는 방법>은 복잡계 이론에 대한 입문서이다. 복잡계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열 개의 키워드를 골라서 각각의 키워드에 대해서 설명하고 풍부한 예시로 복잡계 이론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책 속에서 제시하는 열 개의 키워드는 상호작용, 피드백, 이질성, 소음, 분자 지능, 집단 지성, 네트워크, 스케일링, 협력, 자기조직화 임계성이다. 저자는 각 키워드를 설명하면서 단순한 논리연산부터 시작해서 주식시장, 박테리아와 꿀벌, 사회 현상까지 실례를 들어가면서 설명한다. 복잡계 이론이 물리학에서 출발했지만 물리학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현상, 더 나아가서는 모든 모든 학문 영역에서 적용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을 입문서로 생각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그다지 친절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복잡계 이론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몇가지 개념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복잡계 이론이 무엇인지 설명을 하지 않은 채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버려서,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복잡계 이론을 접하는 사람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알아 두면 좋을 개념은 복잡계, 환원주의, 창발이 어떤 뜻인지 미리 알고 이 책을 읽으면 이 책을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복잡계 이론에 대해서는 나도 처음 읽는 책이라 처음에 몇 가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다른 책을 참고해서 이해한 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나비효과는 카오스 이론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 중에 하나이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날까?'라는 질문으로 유명한데 양의 피드백을 가장 극적으로 설명하는 예시이다.
발전하는 중인 학문. 책도 그렇다
복잡계 이론은 비교적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기본적인 틀이 완성된 학문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이론 자체가 '미리 예상할 수 없는 것'을 대강 crude (이 책의 원제는 <A Crude Look at the Whole>로 번역하면 '전체를 대충 훑어보기'가 된다.) 살펴보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론 체계를 완벽하게 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창발이 발생하는 시점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은데 창발이 시작되는 임계점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복잡계 이론을 연구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면서 한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학문이 아직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지 책도 일관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전체적으로 가장 간단한 현상으로부터 가장 복잡한 현상으로 복잡계를 설명하고는 있는데 과연 열 개의 키워드가 제대로 된 키워드인지는 잘 모르겠다. 직관적으로 봤을 때, 피드백, 네트워크, 스케일링, 자기조직화 임계성 등은 복잡계를 설명하는 직접적인 키워드가 맞는 것 같지만 다른 키워드들은 복잡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연계 키워드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

만델브로트 Mandelbrot 집합. 가장 유명한 프랙탈 도형이다. 프랙탈은 자기유사성을 가진 도형으로 부분을 확대해서 보면 전체의 모습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복잡계 이론은 복잡하다. 왜냐하면 복잡계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개념만 미리 이해하고 들어가면 실례와 함께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사례가 바로 이해되지 않아 수학문제 풀듯이 깊이 생각해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도 종종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전혀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렵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복잡계 이론이 많은 학문들, 어떻게 보면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조금씩 안다면 이해를 하는데 굉장히 수월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2장 <복잡계의 3인조> 단원은 너무 어려웠다. 그 부분을 이해하려면 그 안에 제시된 각종 용어와 배경지식을 이해해야 하는데 친절하지 않은 저자가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 몇 번 읽어서도 이해하는 걸 포기했다. 나중에 복잡계, 혹은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좀더 쌓인 후에 다시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관심가져왔던 분야하고 많이 겹친다. 가장 많이 떠오르는 책은 로버트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인데, 협력이 어떻게 발생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 이론적으로 밝혀 놓은 책이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진화를 설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많은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10장 <협력> 부분은 죄수의 딜레마와 팃포탯 Tit For Tat 전략을 다루는 <협력의 진화>를 읽으면 이해하기 편하다. 팃포탯을 설명한 단원인데, 책 한 권에 해당하는 내용을 한 단원에서 설명을 하려고 하니 처음 보는 사람은 아마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전략을 다루는 '게임이론'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생각해 보니 <협력의 진화>를 읽던 중에 이 책을 알게 되어서 주문해 놓고 이제야 읽은 것 같다.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설명하는 '가이아 이론'과 초기 입력조건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진다는 '카오스 이론'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결국 복잡계 이론은 최근 수십년 동안 수행된 수많은 연구성과를 총집결하려는 욕심을 가진 학문인 것 같다.

뇌세포 하나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신경망으로 이어진 뇌세포 집단, 즉 뇌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
쉽지 않다. 특히 복잡계 이론과 연관이 있는 여러가지 이론에 대해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후반부에 가면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실례를 풍부하게 들어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이론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복잡계 이론이 연구하는 분야와 방법이 어떤지를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된다. 체계를 딱딱 맞춰서 설명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열 개의 키워드를 나열하고 각각의 키워드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통합적인 이론서라기보다는 복잡계 연구자들이 지금까지 해 온 연구를 나열해 놓은 책이다. 하지만 연구자가 아닌 교양 수준에서 복잡계를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복잡계 이론은 모든 학문에 연결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과연 '대충' 이해할 수밖에 없는 학문의 한계를 앞으로 어떻게 넘어설 지가 관건인 것 같다. 특히 창발이 일어나는 순간, 즉 임계점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복잡계 이론의 근본적인 한계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생각을 따라 다녔다. <전체를 보는 방법>은 전체를 보는 방법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전체를 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보여 줄 뿐이다. 어쩌면 '불확정성의 원리' 덕분에 연구하면 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의 길을 따라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 한 권을 읽는다고 복잡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책을 시작으로 해서 좀더 깊이있게 읽어야 복잡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복잡계에 대해서 '대충'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