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선언
윈턴 마설리스.제프리 C. 워드 지음, 황덕호 옮김 / 포노(PHONO)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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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 누구도 재즈가 무엇인지 모른다. 정말이다. 우리는 재즈에 관해 뭔가를 아는 것에서 이미 멀어졌다. 여러 해 동안 재즈를 연주하고 그 음악에 대해 토론하면서 재즈란 실재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재즈를 가르칠 수 없다.
p. 191


원제 : Moving to Higher Ground. 2008년.


만만치 않은 재즈

어릴 때부터 음악이라면 거의 닥치는대로 들은 편이지만 재즈는 항상 내 관심 밖에 있었던 음악이었다. 재즈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지가 굉장히 좋지 않았다. 재즈라고 하면 담배 자욱한 카페에서 약에 취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연주자가 위스키스트레이트 잔을 앞에 둔 관객 앞에서 트럼펫이나 색소폰 음악을 끈적끈적한 눈이 풀린채 연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연주가 끝날 즈음 카페의 어느 곳에서 주먹질을 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있으면 금상첨화.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없었던 음악이다.


좀 뜬금없는 이유로 재즈를 듣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일이다. 처음 재즈를 듣기 시작할 때, 뭘 들어야 할지 몰라서 헤맸는데, 그때 읽고서 재즈 입문에 큰 도움을 받았던 책이 이 책을 번역한 황덕호 평론가가 쓴 《당신의 첫 번째 재즈음반 12장》과 《당신의 두 번째 재즈음반 12장》이다. 이후 좀 무리해서 재즈음반을 많이 사모으면서 듣기 시작했고, 지금은 꽤 많은 음반을 모아서 자주 듣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재즈를 잘 모른다.


내가 재즈를 들을 때 가장 어려운 점은...
1. 연주자도 너무 많고, 곡도 너무 많다. 꼭 들어 봐야 한다고 하는 명반이라고 하는 음반만 해도 수천 장은 될 것 같아서 목록을 만들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이건 어느 음악장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지만 재즈가 그렇게 범위가 넓을 줄은 몰랐다.
2. 도대체 몇 번을 들어도 곡을 구별할 수가 없다. 너무 많이, 마구잡이로 들어서 그런지 재즈를 들으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주제 부분이 명확한 몇 곡은 기억을 하지만 거의 들을 때 뿐이다.
3. 재즈는 현장에서 듣는 것이 가장 좋은데, 막상 재즈 클럽에 가서 들을만한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다. 음반으로 듣는 재즈는 반쪽만 듣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4. 가장 결정적으로 도대체 어디까지가 재즈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스윙이 있어야 하는지, 도대체 정확한 스윙의 정체는 뭔지, 재즈에는 반드시 즉흥연주가 있어야 하는지, 난해한 곡들은 도대체 듣고 뭘 느끼라는 건지.. 정리가 안된다.


재즈는 여전히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진다.

 


윈턴 마설리스. 1961 ~ . 뉴올리언즈 출생. 트럼펫 연주자.

 


최전선의 연주자가 쓴 재즈에 관한 책

《재즈 선언》의 저자는 윈턴 마설리스이다. 재즈 연주자로서 마설리스의 경력은 정말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1961년생인 마설리스는 재즈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재즈 연주에 심취했고, 19세 때부터는 아트 블래키 Art Blakey가 이끈 전설적인 재즈밴드인 재즈 메신저스에서 트럼펫을 연주했다. 일생동안 무려 8회의 그래미 상을 수상했고, 1984년에는 재즈 뿐만 아니라 클래식까지, 한 해에 서로 다른 두 장르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이후 링컨센터의 재즈 총괄 프로그래머직을 수행할 정도로 영향력 또한 막강했다. 실력·운·지위·영향력 할 것 없이 20세기 재즈의 마지막 20년과 21세기 초반의 재즈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그동안 많지는 않아도 몇 권의 재즈관련 책을 읽어 봤는데, 대부분 평론가가 쓴 책이었다. 평론가의 글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딱딱한 역사와 이론 중심의 책이 되게 마련이다. 《재즈 선언》은 그런 면에서 좀 다르다. 책 속에 자신의 연주 경험이 녹아 들어 있어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음반으로만 듣던 재즈 거장들의 일화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현장의 연주자가 쓴 책의 장점이다.

 


재즈는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어려운 음악이다.


재즈 이해의 어려움

재즈에 대한 책 또는 이론서를 여러 번 읽어 봐도 여전히 재즈는 어렵다. 나에게 재즈가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도대체 재즈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초기 재즈부터 현대의 프리재즈까지 들어 봤지만 사실 공통점이 뭔지 잘 모르겠다. 초기 뉴올리언즈에서 연주하는 스타일의 곡들을 재즈라고 하고 이후에 나온 밥 스타일의 곡들은 재즈가 아닌 다른 장르라고 하는 극단적인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미국스타일과는 달리 유럽의 재즈 스타일은 또 달라서 곡들의 공통점을 알 수가 없다. 재즈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를 즉흥성과 스윙이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즉흥성이 없는 재즈도 있고, 스윙도 또 모르겠다. 여기서 두번째 어려운 점이 생긴다.


대충 스윙이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정확하게 스윙이 느껴지는 이유 또한 모르겠다. '스윙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니 '네가 스윙이 뭐냐고 물어 보는 것 자체가 스윙이 뭔지 모르는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굉장히 선문답같은 얘기도 들어 본 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초기에 재즈를 했던 사람들이 학력이 낮아서 자신들이 연주하는 음악의 본질에 대해서 느낄 수만 있을 뿐이지 정확한 설명을 할 능력이 없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재즈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대체로 재즈의 역사와 유명한 연주자들을 안내하는 것으로 내용을 채우는 경우가 많다.

 


루이 암스트롱 Rouis Armstrong. 1901 ~ 1971. 재즈의 아버지. 그의 별명 중 하나가 Pops. 즉 대중문화 그 자체였다.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저자가 쓴 재즈 안내서

이런 면에서 현직 재즈 연주자이면서 클래식에도 조예가 깊은 윈턴 마설리스가 쓴 《재즈 선언》은 다른 재즈이론서와는 분명히 다른 위치를 차지하는 것 같다. 책의 2장에서는 솔로 solo, 콜 앤드 리스폰스 call and response, 스캣 싱잉 scat singing 등 재즈를 들을 때 알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되는 세부적인 형식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처음 재즈를 듣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일부러 찾아 보지 않으면(사실, 2장에 나오는 용어들 대부분이 내가 처음 재즈를 들을 때는 있는지도 모르는 용어들이다) 알 수 없는 것들이다. 특히, 모든 용어를 설명할 때 음악을 예로 들었기 때문에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함께 책을 읽으니 재즈의 형식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전에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들을 정리하는 의미도 있고...


2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설명한 '스윙'과 3장에서 설명한 '블루스' 형식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은 재즈를 듣다 보면 굉장히 많이 접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잘 읽어 두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스윙에 대해서 박자표까지 그려가며 설명한 것도 흥미롭다. 스윙하면 그냥 느끼는대로 표현하는 것 정도로 퉁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블루스에 대해서는... 윈턴 마설리스는 블루스 숭배자이다. 물론 스윙은 마설리스가 설명했듯이 딱 선을 그어서 설명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난 평론가가 아니니까 그냥 책 속에서 설명하는 정도만 이해를 하고 있어도 충분하다.

 


존 콜트레인. John Coltrane 1926 ~ 1967 재즈 색소폰 연주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재즈 연주자이다.


★★★★☆

마지막에는 <대가들이 주는 교훈>이라는 소제목으로 유명 연주자와 추천음반을 소개해 놓았다. 굉장히 매니악한 연주자는 별로 없고 정말로 대표적인 연주자들과 그들의 대표음반을 소개해 놓았으니 입문용으로 골라서 듣기에 적당해 보인다. 하지만 매니악한 앨범을 소개한 것도 아닌데 나에게 없는 앨범이 꽤 된다. 시간내서 천천히 또 모아서 들어 봐야겠다. 역시 존 콜트레인과 마일즈 데이비스에 대한 설명이 가장 길다. 책을 끝까지 읽으면, 대략 재즈의 역사와 형식, 대표적인 음반에다 윈턴 마설리스가 직접 경험했던 유명 연주자들과의 에피소드까지 덤으로 읽을 수 있다.


번역을 한 황덕호는 우리나라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활동이 활발한 재즈평론가이기 때문에 재즈에 대한 이해도가 깊고, 그동안 재즈관련 번역작업도 많이 해 왔다. 그래서 번역서이면서도 무리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재즈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관심갖고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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