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나케아의 어떤 밤 - 밤의 시작과 끝, 우주 속 나와 세상에 대한 사유
트린 주안 투안 지음, 이재형 옮김, 이영웅 감수 / 파우제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밤의 시작과 끝, 우주 속 나와 세상에 대한 사유

 

표지에 낚이다

 

어릴 때부터 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처음 별을 본 것은 그리스 신화 때문이었다. 그리스 신화를 읽다 보면 많은 영웅들과 동물들, 사물까지도 하늘의 별자리가 되었다. 가장 찾기도 쉽고 사연도 절절한 것은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 큰 곰자리 반대편에 있는 카시오페이아, 오리온자리 등, 나에게 밤하늘의 별은 신화에서 읽은 주인공들을 상상할 수 있는 그림책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아무리 별을 바라보고 있어도 동물 모양도 보이지 않고, 사람 모양도 보이지 않아서 실망하기도 했다. 불빛이 없어서 별이 잘 보이는 시골에 갈 때면, 플래쉬에 빨간 셀로판 테이프를 붙여서 별자리 표와 하늘을 비교해 가면서 별을 기억하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별자리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기 때문에 집에 여러가지 별과 천문에 관한 책들이 있다. 꽤 많이 산 편이다. 책이란게 그렇듯이 가지고 있는 책들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그러니까 어지간해서는 이제 천문에 관한 책을 살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런데 《마우나케아의 어떤 밤》을 보고는 바로 낚였다. 지구상에서 천문을 관측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알려져 있는 마우나케아 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데, 표지마저도 예쁘다. 《마우나케아의 어떤 밤》은 저자도, 내용도, 아무 것도 모른채 표지만 보고 구매해서 읽은 책이다.

 

트린 주안 투안. 1948 ~ 베트남 출신의 천문학자


하룻밤 동안 살펴본 하늘

밤하늘을 관찰하는 것은 만만하지 않다. 우선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한밤중이라고 하더라도 불빛이 없을 때가 없기 때문에 별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기껏해야 유명하고 빛이 강한 1,2등성 정도만 볼 수 있다. 시골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도시보다야 낫겠지만 습도가 높은 날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깨끗한 하늘을 보기가 참 힘들다. 하늘을 관찰하는 것이 직업인 천문학자들은 최대한 깨끗한 하늘을 관찰해야 한다. 그래서 관찰하기 좋은 곳에 큰 천문대를 만들어 놓고 별을 관찰한다. 아타카마 사막이 대표적으로 하늘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다. 예전에 여행한 적이 있는 몽골의 초원도 쏟아지는 별이 멋있었다. 물론 별을 관찰하기 제일 좋은 곳은 지구 밖이다. 허블망원경이 수십년간 지구궤도에서 그 역할을 하다가 거의 생명이 다해가고 있다.


마우나케아 Mauna Kea 산은 하와이에 가장 높은 산이다. 아마도 공기 중에 습도도 굉장히 적을 것이다. 그 정상에는 여러 나라에서 천문대를 만들어 놓았다. 저자인 트린 주안 투안은 6개월의 기다림 끝에 나사로부터 사흘동안 '청색 밀집 왜소은하'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을 허락받고 마우나케아 산을 찾았다. '청색 밀집 왜소은하'가 뭔지는 나도 모른다. 저자의 연구과제이지만 이 책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마우나케아의 어떤 밤》은 트린 주안 투안 교수가 하룻밤 동안 하늘을 관찰하며 느낀 감정과 천문학에 대한 이론을 설명한 책이다.

 

은하수. 어릴 때는 간혹 볼 수 있었고, 지금도 시골에 가면 볼 수 있지만 도시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다.


감성 넘치는 천문학 인문서


그동안 천문학 책을 꽤 많이 봤지만 이런 책은 처음이다. 우선 그림이 정말 예쁘다. 애초에 책표지에 낚여서 충동적으로 책을 구매했는데 책 속의 천문 사진들도 정말 멋지다. 천문학 책이 천문사진이 가득한 것이야 당연하니 이건 그렇게 특별할 것은 없다고 해도 표지 이상으로 멋진 사진들이 책 속에 가득한 것은 흐뭇하다. 좋은 사진을 위해서 종이질도 굉장히 두껍고 좋은 종이를 사용했다. 그래서 페이지 수에 비해서 책이 두껍고 무거운 편이긴 하다.


책은 마우나케아 산에 도착해서 하늘을 관찰할 준비를 하고, 밤새 하늘을 보는 시간순으로 적혀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저자의  생각은  가장 가까운 천체로부터 우주로 내달린다. 지구와 달, 태양계를 보던 저자의 눈은 점점 멀리 눈을 돌려서 마지막에는 우주에 숨어 있는 암흑에너지와 우주의 기원까지 생각을 넓혀 나간다. 책 전체를 통틀어 시간의 흐름과 우주의 거리를 교차시키고 있다. 하룻밤의 시간과 우주라는 공간을 큰 줄기로 잡아 놓고는 책의 곳곳에 문학과 예술을 점점이 박아 놓았다. 여기에는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 그림을 실어 놓고 저기에는 릴케의 시를 박아 놓는다. 그렇다고 천문학 지식을 설명하는 것에 소홀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천문학이라는 주제를 잡아 놓고 그 안에 저자가 가지고 있는 온갖 인문학적 지식과 자신이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하룻밤 관찰하면서 느낀 감성을 모조리 잡아서 박아 놓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이 책이 천문학에 관한 책이라는 느낌보다는 에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동안 봐왔던 천문학 책은 그냥 과학책이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알려 주는 책이었다. 굉장히 딱딱했다. 하지만 이 책은 많이 다르다. 보고 익힐 것도 있지만 느낄 것도 가득 차 있다.

 

안드로메다 은하. 많은 지구인들이 개념을 날려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어릴 적 꿈을 되새김

 

내가 처음 별을 관심있게 보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릴 적 하늘을 더듬으며, 북두칠성을 찾고 오리온자리를 찾았던 기억을 되새긴다. 아기곰을 만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어미곰을 생각한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설레였다. 은하수를 보고 하늘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지어내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그림책에서 본 것처럼 실에 매달려 있는 별을 상상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어른이 되면 당연히 우주여행을 하고 있을 거라고, 달에 가면 절대로 우주복을 벗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던 어린 시절의 꿈이 떠오른다. 책을 보면서 참 많은 감정이 떠올랐다.

 

눈쌓인 마우나케아 산 정상과 천문대. 가 볼일은 없겠지.


★★★★☆

 

어려운 책이 아니다. 사실 천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곳곳에 나오는 설명이 좀 어려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이 책을 읽으면 밤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서울의 불빛이 너무 환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한 번쯤은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고 마우나케아 산의 정상에 있는 천문대에서 별을 보고 있는 자신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정신없이 사느라 어릴 때 별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기억을 잊은 사람에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