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필요한 순간 - 인간은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가
김민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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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있다. 알수는 없다. 나에겐 그게 수학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연필을 들고 수학문제를 풀 기회는 전혀 없다. 간혹 간단한 계산을 할 때는 있지만, 그건 '산수'다. 한때는 공책 바닥을 채우며 수학문제 푸는 것을 꽤 좋아했지만 대학교에 다니면서는 인문계열 전공이기 때문에 그럴 기회가 전혀 없었다. 사회에 나와서는 더더군다나 그렇다. 근의 공식 정도는 여전히 외우고 있고, 피타고라스 정리는 증명할 수 있지만 그게 끝이다.


가끔 서점에서 수학에 관한 책을 들춰 보고 사기도 한다. 앤드류 와일즈가 증명했다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나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은 '골드바흐의 추측'같이 이해하기 쉽고 간단해 보이(지만 절대로 풀 수 없)는 문제는 '혹시 내가?'라는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밀레니엄 7대 난제같은 이해하기조차 불가능한 문제는 그냥 멍하니 쳐다볼 수 밖에 없다. (7문제 중 푸앵카레 추측은 페렐만이 증명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놀랍게도 리만 가설이 증명됐다는 뉴스가 떴다.) 수식이 참 예쁘고 멋있어 보이지만 이해할 수는 없다. 수학 속에는 뭔가 있을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문제를 하나 핵결하면 거만하게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볼 만하다. 나에게는 그게 수학이다.

 


저자 김민형 1963 ~ . 옥스포드 대학교 교수. 굉장히 동안이다.


언제 우리에게 수학이 필요하지?

《수학이 필요한 순간》은 수학자가 쓴 책이다. 분명히 이 책은 수학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수학의 이론을 비전공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수학교양서는 아니다. (사실 나는 그런 책을 기대했다.) 머릿말에서부터 '양자 역학'에 대한 얘기가 살짝 나와서 긴장과 함께 또다른 기대감을 갖게 하더니, 처음에는 이 책이 물리학 입문서인가 싶을 정도로 과학의 역사를 다룬다. 여기까지는 아직 이 책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후 책은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간단한 확률에 대해 설명한 후에 윤리의 문제를 다루고, 인공지능의 선택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 고민한다. 또 다음장에서는 투표를 할 때, 어떤 후보가 선출되는 것이 민의를 제대로 담아내는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당연히 정답을 내기 힘든 문제이다. 이때쯤 되서야 《수학이 필요한 순간》은 정체를 드러냈다. 이 책은 수학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수학적인 사고방식으로 틀을 만들어 해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렇게 보면 39페이지에서 저자가 수학의 정의를 '추상적인 개념적 도구를 사용해 세상을 체계적으로 또, 정밀하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바로 수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한 것이 이해된다. 저자는 수학을 통해서 세상을 체계적이고 정밀하게 설명하는 다양한 실례를 이 책에서 보여준다.

 


수학포기자. 줄여서 수포자라고 한다. 학문으로서 수학은 사회생활에서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학적 사고방식은 학업을 마친 후에도 필요하다.


추상성의 끝에서 현실과 관계를 맺는 수학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숫자와 증명, 그래프가 난무하는 수학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 않다. 대신에 이전에 수학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별도의 칸에 '읽을거리'로 올라와 있을 법한 짧은 수학상식을 전문적으로 설명해 놓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일상이나 학문에서 생길 수 있는 의문점에서 출발해서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수학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문제를 풀지는 못하더라도 풀 수 있는 방법은 생각하도록 안내를 한다. 이 과정에서 케네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 트롤리 문제, 게일-섀플리 알고리즘처럼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제법 유명한 문제들이 제시된다.


분야도 다양해서, 수학과 가장 가까운 학문인 물리학으로부터 윤리학, 우주론까지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저자가 생각하는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논리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한 모든 학문을 넘어서서 우리의 삶 전체에 수학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꼭 '수학'이 아니라 '수학적인 사고방식'이라면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천재 수학자의 뇌와 일반인은 뇌는 다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은 접근하지 못한 추상성의 끝을 연구하는 수학자들이 부럽다.


정말 쉽게 읽을 수 있을까?

띠지에 보면 '문과생들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수학책'이라고 씌여 있다. 정말 그럴까?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판형이 작고 글자도 많지 않고, 그림이나 도표도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어서 양은 많지 않다. 나이에 비해서 앳되 보이는 친절한 저자의 모습을 보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수학적인 사고방식에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은 내용을 따라가기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특히 위상기하학을 설명한 6강(위상기하학을 다루는 이 장에서 푸앵카레 추측이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 같다.)과 코딩과 암호를 다룬 특강(RSA 암호체계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은 뇌 속의 논리 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까다로울 것 같다. 하지만 꼭 그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내용을 전개해 가는 과정만 지켜보더라도 충분히 읽어 볼만한 책이다.


이 책은 수학에 관심이 있지만 계산하는 건 익숙하지 않은 문과생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슥 넘기고 읽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계산해서 먹고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정말 어려운 수학문제들은 천재들도 모른다. 천재들이 이해못하는 건 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아는 건 천재들도 알고 있을테니까, 어차피 그게 그거지 뭐.

 


수학사상 최고의 천재로 유명한 가우스. Johann Carl Friedrich Gauß.


 

★★★★☆

너무 어려워지는 걸 경계해서 그랬는지 각 단원이 설명을 하다가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좀 아쉽다. 책의 의도가 그렇지 않았으니 내가 기대한 것을 채우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보충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런 기대를 책 한 권에서 모두 채울 수는 없는 거니까. 내 기대와는 상관없이 이 책은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일반인이 읽어도 좋고 좀 모리좋은 중학생 이상 학생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비슷한 이 책과 비슷한 구상으로 훨씬 더 깊이 들어간 책이 후속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면 책 판매량은 훨씬 떨어지겠지만...


마지막으로.. 항상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대화식으로 쓴 책이라고 해서 쉬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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