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이 낮으면 낮을수록 산소를 더욱더 조금 공급하게 됩니다."
산소가 부족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게 두뇌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골격이었다. 산소가 정상치의 70퍼센트면 난쟁이가 되고 70퍼센트 이하면 눈이 없는 괴물이 된다. - P34

버나드는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거룩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자기 자신이 고립된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배가 시작되기 전과 다름없이 고립되었다. 충족되지 않은 공허감과 시들어버린 만족감 때문에 더욱 비참하게 고립되었다. 다른 사람들은그 위대한 분에게로 융합이 되었으나 버나드만은 속죄를 받지 못하고 고립된 것이다. 그는 자기 일생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고독했으며 큰 절망을 느꼈다. 그는 아주 비참했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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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해봐. 미어터지는 싸구려 공동주택, 출퇴근 시간의 간선도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토요일 오후의 대형 마트, 공장, 원자력 발전소, 이런 게 지옥이 아니고 뭐겠니?"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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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유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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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의 초상화

여자친구와 함께 대학로에 갔다. 실수로 연극표를 놓고 와서 연극을 보지 못하고 여자친구에게 타박을 받다가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노인에게 여자친구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던 노인은 그림솜씨도 평범하지 않다. 한 장의 예술작품과 같은 초상화를 그리는 노인. 하지만 그림이 완성되어 갈수록 뭔가 이상하다. 분명희 여자친구인 진희를 그리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데 묘하게 어긋난다. 이질감을 느끼는 와중에 그림 완성. 머쓱해 하면서 그림을 받아 들었다.


1년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다시 대학로를 찾으니 그 노인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1년 전 그렸던 그림을 노인에게 보여 주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림이 변했다고 한다. 그렇다. 도화지 속에는 진희가 아닌 다른 여자가 자리잡고 있다. 도대체 왜 그림의 여자가 변하고 있는 걸까?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노인을 끌고 술집으로 가서 얘기를 들려 달라고 했다. 기세좋게 위스키까지 주문하고 썰을 풀기 시작하는 노인.


'그러니까 미루는 말이지..'


최제훈 1973 ~ .


최제훈의 단편소설집

처음 《퀴르발 남작의 성》을 읽은 후 나는 최제훈의 팬이 되었다. 한국소설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최제훈같은 스타일로 글을 직조하는 소설가를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즉시 서점에 있는 그의 책을 몽땅 샀고 그동안 《퀴르발 남작의 성》뿐만 아니라 《일곱 개의 고양이 눈》, 《나비잠》을 아껴 가면서 차례대로 읽었다. 《위험한 비유》는 최제훈의 소설 중에서 네 번째로 읽는 소설이다. 처음 읽은 《퀴르발 남작의 성》과 같이 단편집이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는 어떤 퍼즐같은 소설로 나의 잠든 감각을 깨워줄까?


누군가 SNS에 올려 놓은 책 표지를 보더니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연상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색감이나 분위기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각양각색의 8가지 이야기

최제훈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중구난방'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단편집 한 권으로 엮여있더라도 통일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각 소설들이 제각기 논다. 심지어 장편소설도 서사를 제멋대로 쪼개서 새로 조립하기 때문에 줄거리가 제멋대로 쳐박혀 있다. 이게 굉장히 번잡스러워 보이면서도 굉장히 신선하고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위험한 비유》는 같은 장편인 《퀴르발 남작의 성》과 많은 부분 비슷하다. 단편 사이에 연관성이 없고 각 소설이 조금씩 기괴하기도 하고 환상적이기도 한 얘기들로 가득차 있다. <철수와 영희의 바다>는 평범한 이름을 가진 두 연인의 평범하지 않은 결말, <2054년, 교통사고>는 미래의 교통사고에 대한 뜻밖의 결론, <마네킹>은 피그말리온 신화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기괴한 이야기, 환상인지 실제인지 모를 인물에 사로잡힌 한 화가의 이야기를 담은 <미루의 초상화>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흥미를 자극한다.


작중 단편인 <마네킹>에서 과연 마네킹은 스스로 움직인 것일까? 추정은 하도록 놔두지만 명확한 대답은 해주지 않는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

그런데.. 《위험한 비유》는 재미있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멋진 소설집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아.. 이게 끝인가?', '더 끌어당겨 주지 않나?'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좀더 읽으면 뭔가 나올 거야.', '최제훈이 여기서 끝낼 리가 없어.', '마지막 단편은 충격적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계속했지만 그 기대는 결국 충족되지는 않았다. 최제훈에게 기대하는 '어떤 것'이 모자른 느낌이다. 어쩌면 내가 최제훈이라는 자극에 익숙해져서 그럴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동안 최제훈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신선함이 《위험한 비유》에서는 좀 떨어졌다. 그리고 《위험한 비유》은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소설들보다 일찍 쓴 소설들을 나중에 모아 발표한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했다.


<미루의 초상화>는 광기 넘치는 한 화가의 이야기이다.


상상발랄한 소설들

앞에서 《위험한 비유》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는 했지만 《위험한 비유》가 싫은 건 아니다. 여전히 최제훈의 상상력은 한도가 없고 특유의 이야기를 비틀어 버리는 실력 역시 뛰어나다. 각 편마다 흡입력도 뛰어나고(<위험한 비유>는 좀 이해하기 힘들었다.) 재미도 있다. 하지만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 받았던 충격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위험한 비유》은 순한 맛 《퀴르발 남작의 성》이다. 명확한 결말을 내려주지 않고 작품마다 한가지씩 의문점을 남겨두는 것 역시 최제훈 소설의 특징.


★★★★

최제훈 소설의 팬이라면 당연히 읽어야 할 소설인데, 예전 소설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2%가 부족하다. 그런데 이 아쉬움이 작품에 대한 것보다는 기대감이 큰 탓에 생긴 것이니 《위험한 비유》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 느낌대로 평가하는 것이 맞으니 별 한 개 정도 뺐다. 처음 최제훈을 접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읽기에 무난한 것 같으니 이 책으로 시작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좀 쉬었다가 이제 아껴뒀던 《천사의 사슬》을 읽어야겠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분명히 호불호는 갈릴 것이다. 나는 강추한다.

위험한비유, 최제훈, 소설, 한국소설, 단편소설,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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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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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태풍 속에서 만난 고등학생

고사카 쇼고는 잡지사 기자이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날, 치바현을 운전하며 지나던 중 자전거가 펑크나서 옴짝달싹 못하는 이나무리 신지를 만나 차에 태워준다. 도쿄를 향해 가던 중 덜컹거리는 차. 사람을 친 것이 아닌가 걱정되어 살피니 폭우 때문인지 도로의 맨홀이 열려 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려 하는데, 맨홀 옆에서 아이들이 쓸 법한 노랑 우산을 발견한다. 근처에 사는 다이스케라는 일곱 살 소년의 우산인데 실종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폭우에 휩쓸려 맨홀로 빨려들어간 것 같다.


그저 단순한 사고사라고 생각하는 고사카. 그런데 신지는 직접 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장면들을 설명한다. 아이가 부르던 강아지의 이름을 알고 있다든지, 빨간색 포르쉐를 몰던 두 남자가 맨홀 뚜껑을 열어 놓았다든지. 신지가 설명하는 것을 듣던 고사카는 처음에는 신지가 맨홀을 열어 놓은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지는 자신이 물건을 만지면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을 볼 수 있고, 사람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자라고 설명한다. 반신반의하는 고사카. 하지만 오랫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내밀한 과거사까지 줄줄 읊어대는 신지를 보니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사고가 있은지 6개월 후, 신지의 외사촌 형이라고 하는 오다 나오야가 잡지사로 찾아 온다. 나오야가 말하기를 고사카에 대해서 신지가 했던 말은 모두 추리에 의해서 초능력이 있도록 믿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신지를 믿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신지를 만나니 신지는 나오야 역시 자신과 같은 초능력자이며 자기보다 능력이 더 강력하고 심지어는 텔레포테이션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지와 나오야는 초능력자일까? 아니면 신지는 그저 치기어린 사기꾼일까? 그즈음 고사카가 근무하는 잡지사로 배달된 아무것도 씌여있지 않은 여섯 통의 편지와 한(恨)이라고 씌여있는 일곱 번째 편지는 어떤 의도로 누가 보낸 걸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물과 사건 속에서 고사카는 진실을 쫒기 시작한다.


미야베 미유키 宮部みゆき 1960 ~ . 일본의 소설가


처음 읽은 미야베 미유키 소설

일본 소설은 드문드문 읽는 편이었는데 최근에 꽤 많이 읽고 있다. 좀 읽는다 해도 다양하게 읽지는 않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꽤 많이 읽으면서 다른 작가의 책은 한두 권 정도 읽는 정도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서점의 서가를 훑어 볼 때 이름이 눈에 익어 있었고, 《모방범》이나 《솔로몬의 위증》같은 책을 썼다는 점 정도만 알고 있었다. 눈에 자주 띄었지만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 너무 두꺼웠기 때문이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보통 끝까지 읽어야 하는데 3권짜리 소설은 너무 부담스럽다. 언제 한 번 읽어보기는 할 생각이었는데 책장에 《용은 잠들다》가 꽂혀 있다. 도대체 언제 사놓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왕 눈에 띄었고, 썩 두껍지도 않으면서 한 권짜리 소설로 큰 부담이 없어서 읽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일본 추리 + SF 소설

《용은 잠들다》는 열린 맨홀에 한 아이가 빠져 죽는 사건이 발단이 되어 여러 사건과 인물들이 얽히는 추리소설이다. 처음에는 맨홀을 열어놓아서 아이를 죽게 만든 범인들을 초능력을 이용해 잡는데 초점이 맞춰지는 듯 하더니, 초능력을 가진 또다른 청년이 나타나면서 인물들의 관계와 정체가 오리무중에 빠진다. 거기에 의도를 알 수 없는 편지가 고사카에게 배달되면서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소설 초반에는 신지와 나오야가 정말 초능력자인지 아니면 나오야의 말대로 신지가 고사카를 속이고 있는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 와중에 맨홀 뚜껑을 연 범인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고사카가 받은 아무것도 씌여지지 않은 편지와 한(恨)이 씌인 일곱 번째 편지, 노(怒)가 씌인 여덟 번째 편지로 궁금증이 옮아간다. 그러더니 전혀 뜬금없이 3년 전 헤어져서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던 고사카의 옛 애인 사에코가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야기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전형적인 추리물인 것 같지만 그 사이에 두 명의 초능력자가 끼여 들면서 얘기는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는데, 좀 더 강력한 초능력자인 오다 나오야가 악한 마음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안심하고 책을 읽어나갈 수가 없다.


사이코메트리는 사물의 기억을 읽어내는 초능력을 말한다.


적절한 사건배치와 밀도있는 플롯

사실상 주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편지와 사에코 사건이 추리가 필요한 사건인데 추리과정이 어렵지는 않다. 정황상 범인이 눈에 잘 보이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시시하지는 않다. 다양한 사건이 펼쳐져 있고, 주요 등장인물의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인물들도 개성이 잘 살아 있다. 흔히 초능력자와 기자의 조합을 생각하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운 초능력자와 그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하는 환상의 파트너를 예상하기 쉬울텐데, 신지는 열일곱 살 나이에 걸맞게 혈기는 왕성하지만 미성숙해서 오히려 사건해결을 망치기 일쑤이고 고사카는 멋진 해결사가 되기보다는 그저 도움이 필요하고 영문도 모른채 사건에 끌려다니기만 한다. 결과적으로 멋진 초능력자와 해결사의 면모를 보이는 것은 나오야이다.


여러 사건이 짜임새있게 배치되어 있어서 지루해질 때쯤 새로운 사건을 던져 놓고 그 사건들을 이리저리 엮어 놓았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아무래도 그동안 많이 읽었으면서 미야베 미유키와 마찬가지로 추리소설을 기본으로 소설을 쓰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게이고의 소설이 성근 망으로 큰 물고기만 낚는다고 한다면, 미야베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는 저인망식으로 훑어가는 느낌이다. 게이고가 하나의 사건을 던져 놓고 계속해서 그 사건만 쳐다보고 일직선으로 달린다면, 미야베 미유키는 이곳저곳 함정을 파놓아서 피하면서 삐뚤빼뚤 목표를 향해 나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 쪽이 이야기에 밀도가 좀더 있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

비록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요소를 잘 배치해 놓았다. 초능력자라고 해서 모든 사건을 말끔히 해결하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치명적인 약점을 설정해 놓아서 자칫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될 수 있는 여지를 없앤 것도 좋은 장치다. 무엇보다 흡입력이 뛰어나 끝까지 읽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어 금세 읽을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평작보다는 낫고 명작보다는 좀 떨어진다. 앞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좀더 찾아서 읽어 보려고 한다.


재미있다. 추천.

용은잠들다, 미야베미유키, 宮部みゆき, 알에이치코리아, 권일영옮김, 소설, 일본소설, 추리소설, 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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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방정식 오일러 공식
데이비드 스팁 지음, 김수환 옮김 / 동아엠앤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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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걸 어떻게?

나는 문과대 출신이다. 대학에 진학한 후 머리아픈 수학문제를 더 이상 풀지 않아도 된다는 걸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고등학교 때는 쳐다보지도 않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론같은 물리학에 관심이 가더니 수학에도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초등학교 졸업 후 서예를 하지 않게 되어서 좋아하다 뒤늦게 도장 공부 한답시고 서예공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모순적이다. 수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그나마 읽으면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암호, 소수에 관한 흥미로운 주제가 많은 수론을 가장 좋아한다.


이런 나에게 오일러는 이름은 많이 들어 봤지만 도대체 뭘 한 건지는 제대로 모르는 이름만 위대한 수학자이다. 겨우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나 말년에 거의 눈이 멀었다든지, 논문을 엄청나게 많이 냈다는 정도가 오일러에 대해 아는 전부이다. 그리고 흔히 오일러의 공식이라고 하는 자연상수 'e'와 허수 단위 'i', 원주율인 'π'와 1, 0으로 이루어진 식을 알고 있다. 이해하는게 아니다. 그냥 알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 식은 아무리 봐도 정말 멋지고 신기하다. 가장 유명한 유리수 두 개인 π와 e, 곱셈과 덧셈의 항등원인 1과 0, 가장 유명한 허수인 i, 이렇게 다섯 개를 엮어 만든 식이라니.. 저 식에는 마치 아무 상관없이 만들어진 다섯 대의 차가 합체해서 한 대의 슈퍼로봇이 되는 것같은 짜릿함이 존재한다.《신의 방정식 오일러 공식》은 이렇게 짜릿한 오일러 공식을 이해해 보고 싶어서 집어든 책이다.



다섯 개의 수를 핑계로 살펴보는 수학의 역사

오일러의 공식을 이해하고 싶다고는 하지만 도대체 뭘 이해하고 싶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공식이 어떻게 도출되는지 알고 싶었던 걸까? 오일러 공식의 엄밀한 증명방법을 알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언뜻 보기엔 멋져 보이지만 수학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 등식이 수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알고 싶었던 걸까? 내 궁금증을 뒤로 하고 《신의 방정식 오일러 공식》은 기본적인 방향으로 달려간다. 각 숫자의 역사와 그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초반을 할애한다.


우선 지수의 밑인 자연로그 'e'는 복리를 이용하여 설명한다. 자연로그가 뭔지 몰랐었는데 이번 기회에 확실히 이해했다. 원주율 '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복소평면에 대항 설명없이 허수 단위인 'i'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 와중에 유리수와 무리수에 대해서도 다루고 초월수(e와 π는 초월수인데 초월수에 대해 개념을 잡은 건 이 책을 읽은 중요한 소득 중 하나이다)와 대수적인 수에 대해서도 알려 준다. 무한을 다루니 칸토어가 등장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칸토어를 숭배했던 힐베르트 역시 언급된다. 즉, 오일러 공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사전 지식을 설명하는데 책의 앞 부분을 설명한다.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제논도 등장하신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 수하자인 오일러의 생애에 대해서도 다룬다.


데이비드 스팁 David Stipp. 미국의 의학, 생물학 전문기자


계산은 최대한 피하지만 쉬운 건 아니다

저자는 오일러 공식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지식을 함께 설명한다. 계산을 하는 과정은 따로 없기 때문에 머리가 크게 아플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면 오산. 많은 사람들을 절망하게 하는 삼각함수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 들어서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오일러 공식 어디에 삼각함수가 끼어들 틈이 있었던 건지.. 하나하나 따라가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넘어가면 뒷부분이 뒤죽박죽이 되기 때문에 만만치는 않다. 게다가 읽는 동안은 이해한 것 같더라도 누군가에게 설명을 한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없으니 책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고 오일러 공식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해야겠다.


레온하르트 오일러 Leonhard Paul Euler 1707 ~ 1783. 스위스 출신의 수학자.


★★★★☆

수학은 나에게 있어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미술과 비슷하다. 이해는 못해도 맛이라고 보고 싶은 심정이다. 그나마 미술보다 나은 것은 어떻게든 따라가다 보면 이해가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아서 잠깐씩 지적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수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을 리 만무할 것이다. 수학 관련 전공을 하는 사람이라면 너무 쉬워서 시시할 것 같다. 즉,《신의 방정식 오일러》은 딱 나같은 사람, 수학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교양수준으로 수학을 보는 사람에게 적당한 책이다. 특히,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을 가진 오일러 공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것을 권한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다시 읽어봐야겠다.


추천.

신의방정식오일러공식, 데이비드스팁, DavidStipp, 김수환옮김, 동아엠엔비, 수학, 오일러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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