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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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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쩡하게 성공한 변호사
벤저민 브래드포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월스트리트의 잘 나가는 변호사이다. 월스트리트라고는 해도 그다지 치열하지 않은 신탁유산 전문 변호사 일을 하면서 아름다운 아내 베스와 큰 아들 애덤, 태어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조시와 함께 살고 있다. 겉으로는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는 것 같지만 베스와 항상 사이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베스는 원래 소설가를 꿈꿨지만 출판사로부터 여러차례 거절을 당한 후 벤저민의 아이를 갖게 된 이후로는 소설가의 삶을 포기하게 됐다. 둘째까지 태어난 이후로는 작가로서 사는 것은 이미 요원한 일이 됐다. 자신이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이 벤저민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원망하는 마음까지 갖고 있다.
벤저민은 어릴 때는 사진가가 되고 싶었고, 실력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갈등을 겪은 끝에 사진가의 꿈은 접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변호사가 되었다. 꿈은 비록 접었지만 집의 지하실에는 암실을 만들어 놓았고, 4만5천 달러에 달하는 카메라 장비도 구매해 놓았다. 지하실은 온전히 벤저민의 공간으로 벤저민이 유일하게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대학시절 애인으로 잠깐 동거를 했던 케이트 브라이머는 종군기자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부럽다. 케이트 브라이머는 별로 큰 역할이 없으니 책을 읽을 때 잊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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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케네디 Douglas Kennedy, 1955년 ~ . 미국.
아내의 외도로 시작된 불행
베스가 심상치 않다. 갑자기 이상한 지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으로 벤저민에게 살갑게 대한다. 아내가 갑자기 변한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벤저민은 촉을 발동시키고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아내의 거짓말이 늘어나면서 의심은 확신으로 발전한다. 언제나 나쁜 예상은 들어맞기 마련. 베스는 주변에 살고 있는 허접하기 짝이 없는 실패한 사진가, 게리 서머스와 불륜에 빠졌다. 아내와 게리가 키스하는 장면까지 목격한 벤저민은 오히려 아내와 사이가 틀어질까봐 걱정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게리의 집으로 찾아간다.
뻔뻔한 게리. 말다툼. 결국 벤(벤저민)은 홧김에 술명으로 게리를 내리치고 게리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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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벤저민은 월스트리트의 전도유망한 변호사로 나온다.
바꿔친 후 사라져 버리기
1부가 끝이 날 때(소설은 3부로 되어 있다) 단순 치정극이던 소설은 벤이 게리를 죽이면서 순식간에 스릴러가 된다. 벤은 살인자가 되고 여러가지 선택지를 놓고 순간적으로 고민을 한다. 자수를 해서 단번에 망가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 속에서 보니 끔찍하다. 도망자가 되어 살 자신도 없다. 범죄자도 싫고 도망자도 싫었던 벤은 엉뚱한 결정을 하게 된다. 게리와 자신의 삶을 바꾸고 사라져 버리기로 한다.
게리는 천애고아나 마찬가지라 찾을 사람이 없다. 게리의 지하실에서 게리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는게 가장 급하다. 게리의 모든 우편물들을 다른 곳으로 배달되도록 돌려 놓는다. 벤 자신의 얼굴로 사회보장카드를 만들고 게리의 신분을 훔친다. 아내가 찾지 않도록 게리 이름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메일도 보내 놓았다. 이후 친구의 요트에 게리의 시신을 싣고 자동항해 후 폭발하도록 장치를 해 놓는다. 물론 게리는 벤의 옷을 입고 있다. 결국 벤은 게리로 신분을 바꿔서 떠나 버리고, 게리는 벤이 되어서 요트폭발과 함께 시신은 산산조각이 되어 바다 속에 수장되어 버린다. 완전범죄가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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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게리 서머스를 살해한 벤저민은 서머스의 시신을 유기한 후 신분을 바꾼 후에 평생 꿈꾸던 사진가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잘 이해되지 않는 주인공의 행보
굉장히 미국적인 스릴러다. 여기서 미국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라면 과연 이런 바꿔치기가 가능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라면 여기저기 수많은 CCTV가 달려 있다. 모든 국민은 지문날인한 신분증을 가지고 있고, 주민등록번호가 있다. 어디선가 월급을 받으려면 반드시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한다. 땅도 좁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런 식으로 신분 바꿔치기가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싸하긴 하다. 게다가 소설의 배경이 1995년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에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신분바꿔치기의 가능성보다도 내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주인공의 행보였다. 벤은 게리를 죽인 후에 용의주도하게 살인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웠다. 게리의 모든 정보를 거머쥘 수 있었고, 게리가 다른 주로 여행하는 것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게리를 완벽하게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꼭 신분을 바꿔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은데.. 요트를 폭파시켜서 시체를 없앨 생각을 했다면 요트를 타고 바다 멀리 나가서 돌에 매달아 시체를 유기할 수도 있었다. 아마도 시체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딱히 사랑하는 가족(아내는 아닐 수 있지만 아이들도 못 만나잖아)과 헤어지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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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은 우연한 기회에 특종사진을 찍게 되고 명성을 얻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위기를 맞게 된다.
애인도 얻고 명성도 얻었지만..
신분을 바꾼 벤은 자동차를 달려 서북부 몬태나 주의 중소도시인 마운틴 풀스에 정착을 한다. 이 곳에서 꿈이었던 사진가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물론 자신의 이름이 아닌 게리의 이름으로 활동을 한다.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루디 워렌은 무례한 술주정뱅이이지만 사진을 볼 줄 아는 명칼럼니스트이다. 벤이 찍어 놓은 몬태나 주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몰래 몬태난 지에 보냈고, 이 덕에 벤은 몬태난 지와 사진 연재 계약을 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몬태난 지의 사진부장인 앤 에임스와 사랑에 빠진다. 벤은 자신의 사진에 반한 주디 윌머스와 계약을 해서 사진전시회까지 준비한다.
여기까지만 하지.. 주디와 함께 무스호수의 오두막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숲에 불이 나고, 벤은 생생한 화재현장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행운을 얻는다. 전국 단위의 모든 잡지에 이 사진들이 실리고 방송에도 나간다. 하지만 이건 행운이기도 하지만 벤에게는 불행이기도 하다. 게리 서머스의 이름이 전국에 널리 퍼지게 되고, 게리의 행방을 찾던 아내 베스가 게리를 찾아 사진전시회까지 들이닥치게 된다. 게다가 벤의 방을 뒤지던 루디 워렌은 벤의 범죄행각을 눈치채고 협박을 하기 시작한다. 벤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나는 벤의 행동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범죄를 치밀하게 감춘 사람답지 않게 마운틴 풀스에 정착한 이후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한다. 사라진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게리를 아는 누군가, 특히 아내가, 게리를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최소한 몇 년은 숨만 쉬고 살아야 완전범죄가 완성이 될텐데, 벤은 그런 경각심이 하나도 없다. 결국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또다시 위험에 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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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은 모든 것을 알아챈 루디 워렌에게 협박을 받고,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하게 된다.
좀 아쉽지만 재미는 있다
발표된지 꽤 오래된 소설이다. 20년이 넘게 지났으니 현재의 시점과 비교해 볼 때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미국 소설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역시 꽤 많다. 시간과 공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주인공인 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좀 많다는 것이다. 주인공에게 완전히 몰입을 해야 더욱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 때문에 완전하게 몰입하지는 못한 것 같다. 이게 또 시간과 공간의 큰 차이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대체적으로 추천할 만하다.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마지막까지 읽은 후에 문득 정유정의 <종의 기원>과 플롯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로 인한 살인, 그것을 숨기려는 주인공, 살인을 알아챈 사람, 그리고 결말까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종의 기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훨씬 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피의 농도가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