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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사회적 초상 -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ㅣ 음악의 글 6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박미애 옮김 / 포노(PHONO) / 201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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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서양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더듬어 볼 때, 다른 천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음악의 천재는 그냥 모차르트와 동의어이다. 굉장히 식상하긴 하지만 천재 모차르트가 가진 이미지를 얘기할 때, 영화 <아마데우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면 또 모차르트의 재능을 알아보면서 질투를 했던 살리에리를 끄집어 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책을 읽을 때는 살리에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살리에리는 빈의 궁정악장으로서 궁정사회에서 음악의 최정점에 있었고, 모차르트는 시민사회와 궁정사회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리에리의 자리는 모차르트가 살아 있는 동안 그렇게나 탐을 내던 자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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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설명 필요없음.
궁정사회의 말단인가? 시민사회의 우두머리인가?
모차르트는 어려서 이미 천재로 유명했다. 음악교사였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손에 이끌려 누나인 난네를과 함께 두 차례의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귀족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왕실로부터도 찬사를 받았을 때, 모차르트는 스스로 귀족의 일원이 된 것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귀족의 생활이 익숙했고, 많은 귀족들이 모차르트를 기억했다. 모차르트는 스스로를 궁정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귀족들로부터 찬사를 받는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어릴적부터의 많이 보아온 귀족들과 자신을 동일시 했을 수도 있다. 자기 정도의 천재성이면 당연히 귀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궁정사회의 일원이 될 수는 없었다. 비록 궁정사회에 한 발을 걸치고 있었지만 그는 당시의 사회에서는 음악을 만들어 귀족들에게 바치는 음악가였을 뿐이다. 모차르트 이전 세대인 하이든은 좀 심하게 말하면 거의 귀족집안의 종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종 취급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평생을 집사의 복장을 하고 에스타르하치 가문에 봉사하는 집사의 모습으로 살았다. 모차르트 이후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베토벤은 궁정사회에서 벗어나 시민사회의 작곡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하이든과 베토벤 사이에 끼여 있는 음악가였고, 궁정사회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자리를 굳건히 하지 못한 어정쩡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모차르트는 궁정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해서 시민사회로 쫒겨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의지로 시민사회의 일원이 된 것일까? 이 책은 후자의 입장에서 글을 전개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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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베르트 엘리아스 Norbert Elias(1897 ~ 1990)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문명화 과정>이라는 저서로 유명하다.
천재가 아닌 모차르트를 조망한다
모차르트는 분명히 천재다. 게다가 괴퍅한 천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 역시 영화 <아마데우스>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 있지만, 그가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평범한 사람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오늘날 우리는 예술가 모차르트를 일종의 초인으로, 인간 모차르트에 대해서는 가벼운 경멸감을 가지고 다루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p. 97) 다시 말하면 모차르트의 영혼인 예술성은천상으로 올려 보내고, 모차르트의 육체는 비루한 것으로 만들어서 그의 삶을 더욱 극적으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생을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로서만 본다면 모차르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의 입장이다.
모차르트의 삶이 처음에는 궁정사회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와 부딪히면서 점점 시민사회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고 파악을 한다.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후반기로 갈수록 귀족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주를 이룬 것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뒤로 갈수록 예약음악회의 형식으로 위촉받지 않은 곡을 연주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저자는 이것이 모차르트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을 한다. (사실,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모차르트의 의지보다는 궁정사회에서 일정한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밀려 나와서 시민사회에서 자구책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내 의견은 근거없는 그냥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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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의 풍경. 빈은 오스트리아의 수도로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활동했던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에는 유럽문화의 중심지였다.
사회가 만들어 낸 모차르트를 그려낸 사회학자
책의 저자인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책을 읽기 전에는 누군지 잘 몰랐다. 음악사가가 아니면 전기작가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검색을 해 보니 굉장히 저명한 사회학자다. 사회학에 관심은 있지만 많은 책을 읽어 보지 못해서 그 이름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책을 읽다 보면 모차르트가 살았던 당시의 유럽사회, 모든 문화의 중심지였던 오스트리아 빈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틈에서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 가려는 모차르트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은 그동안 읽었던 책들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모차르트의 삶을 조명하고 있고, 잘 모르는 용어들이 나와서 이해하기 쉽지 않았는데 저자에 대해서 좀 알고 나니 책이 왜 이런 모습이었는지 이해가 됐다.
처음 몇십페이지는 읽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정도 책의 서술방식에 익숙해 지고 나서는 빠르게 읽을 수 있다. 단순히 하늘에서 떨어져서 유치한 놀음이나 하다 음악 하나 뚝딱 만들어 치우는 모차르트가 아니라 당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모차르트와 그의 음악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