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이죠. 이 상자에는 파란 단추들만 담고, 저 상자에는 은 단추들만 담고, 또 다른 상자에는 빨간 단추들만 담는 거죠. 아빠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여기서도 맺고 저기서도 맺는데, 그 관계들이 서로 구분되도록 하고 싶어 한대요." - P540

이런 것들이야말로 최고의 편리함이에요, 안나, 한때 난 그 모든 걸 누렸었죠. 그런데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불편함이었어요." - P555

"그렇습니다, 소피야. 저는 ‘붉은 10월 청년 오케스트라단‘의 단장입니다. 선생의 따님이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지요. 사실 오늘 밤 따님이 연주하는 자리에도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늦은 시간에 찾아뵙게 된 거고요. 저는 따님에게 우리 오케스트라단의 제2 피아니스트 자리를 기쁜 마음으로 제안하고자 찾아왔습니다." - P574

백작이 조용히 문을 닫고 안나 쪽으로 돌아섰을 때 그녀의 표정은 전에 없이 심각했다.
"문화부 장관이 언제부터 소피야에게 개인적 관심을 갖기 시작한거요?" 그가 물었다.
"늦어도" 그녀가 대답했다. "내일 오후부터요." - P577

"미시카 일로 오셨군요…………." 잠시 후 백작이 말했다.
"네."
"언제였나요?"
"딱 일주일 전이에요." - P580

"저는 평생 시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이번에는 카테리나가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는 어떻게 된 거예요?"
"그 시를 쓴 사람은 미시카입니다. 티히차스의 남쪽 거실에서였지요……………. 1913년 여름에・・・………." - P581

자기 자리에 앉은 백작은 지금부터 6개월 뒤인 6월 21일에 소피야가 프랑스의 파리에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백작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복스VOKS 덕분이죠." 복스는 ‘대외문화교류협회‘의 약칭이었다. - P596

"방금 전 바빌로프 단장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소피야가 음악원 오케스트라의 연주 투어 초대를 거절했다고 알려주더군요."
"초대를 거절했다고? 여보게, 난 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네. 실은 난 그 애의 밝은 미래는 이번 연주 투어에 달렸다는 자네 얘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네."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한 채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소피야가 자기 맘대로 행동한 게로군." - P603

"아빠가 지금 제 맘을 편하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하시는 중이라면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겠네요. 솔직히 아빠, 두려운 마음과 제 결정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 P607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 P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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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야가 다섯 살 때 백작은 순진하게도 소피야가 머리카락만 검은색으로 바뀐 니나로 성장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분명한 인식과 확실한 자기 주장을 가졌다는 면에서 소피야는 니나와 공통점이 있었지만, 행동에 있어서는 완전히 달랐다. 니나는 세상의 사소한 불완전함에 대해서도 자신의 조바심을 솔직히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소피야는 지구가 가끔씩 엇나가면서 자전하기는 해도 대체로 큰 문제 없이 돌아가는 행성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 P508

백작이 안내 데스크에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다가 무도회장까지 달려가는 데는 3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그곳에서 그가 악당의 옷깃을 틀어쥔 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 P511

"아빠! 뭐 하시는 거예요?"
"네 방으로 가거라, 소피야. 이 인간이랑 나는 얘기할 게 좀 있다. 내가 이 인간한테 평생 잊지 못할 주먹맛을 보여주기 전에 말이다."
"평생 잊지 못할 주먹맛이라고요? 빅토르 스테파노비치는 제 선생님이세요."
백작은 한쪽 눈으로 악당을 주시하면서 다른 쪽 눈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네 뭐라고?"
"제 선생님요. 저한테 피아노를 가르쳐주신다고요."
이른바 선생은 고개를 네 번 연속해서 끄덕였다. - P512

그는 소피야가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다음으로는, 소피야가 으뜸과 버금딸림 멜로디를 능란하게 연주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소피야의 음악적 표현에 묻어난 감성이었다. - P514

"젊었을 때 나도 내 누이에 대해 똑같은 감정을 느끼곤 했단다. 해가 지날수록 누이에 대한 기억이 점점 빠져나가는 것 같았지. 그리고 언젠가는 누이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게 되었어. 하지만 사실은 말이야,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결코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 - 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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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은, 우리 러시아인은 우리가 창조하고 만들어낸 것들을 파괴하는 성향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느냐는 겁니다." - P466

3층 층계참을 돌아섰을 때, 거기에 소피야가 있었다. 계단 위에 벌렁 쓰러져 누운 모습의 아이의 눈은 감겨 있고, 머리카락에는 피가 얼룩져 있었다. - P480

갑자기 그는 자신이 따뜻한 여름 대기 속에서 메트로폴 호텔의 문밖 계단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 P481

백작은 잠금장치를 풀고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휴대용 축음기였다. 안에는 갈색 종이로 만든 재킷에 든 레코드판이 여러 장 들어 있었다. 리처드가 제안한 대로 백작은 맨 위에 놓인 음반을 집어 들었다. 음반 중앙의 라벨을 보니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연주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실황 녹음 음반이었다. - P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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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침묵도 하나의 의견일 수 있지." 미시카는 혼잣말을 했다.
"침묵도 저항의 한 형태일 수 있지. 생존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수 있어. 또한 시의 한 유파일 수도 있어. 나름의 운율과 비유와 관습을 보유한 시의 유파일 수 있다고. 연필이나 펜으로 쓸 필요 없이, 가슴에 들이댄 총부리를 앞에 두고 영혼에 쓰는 시 말이야." - P426

미시카의 표현을 빌려 말하건대, 그 후유증은 무엇이었을까?
미시카의 발언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당국에 보고되었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그의 발언 전체가 고스란히 기록되었다. 8월에 그는 신문을 위해 레닌그라드에 있는 엔카베데의 사무실로 소환되었다. 11월, 그는 사법 절차를 뛰어넘는 권력을 가진 당대의 트로이카 중 한 사람 앞으로 불려 나왔다. 그리고 1939년 3월, 미시카는 시베리아행 열차에 실려 반성의 영역으로 떠나갔다. - P428

우리는 결코 확실히 알 수 없겠지만, 짐작건대 니나에 대한 백작의 걱정도 틀리지 않은 듯했다. 니나는 그 달에도, 그해에도, 아니 영영 메트로폴 호텔에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 P428

소피야가 호텔에서 지낸다는 사실이 들키게 될 거라는 백작의 걱정 역시 틀리지 않았다. 아이의 존재가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소피야가 도착한 지 2주도 안 되어 크렘린의 행정 사무실로 편지 한 통이 발송되었기 때문이다. - P429

소피야를 아는 사람 누구에게나 그 애에 관해 얘기해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소피야가 공부를 열심히 하며 수줍음이 많고 행동이 얌전한 아이, 한마디로 ‘착실한 아이‘라고 말할 것이다. - P446

"안녕, 아빠." 소피야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했다. - P448

미시카의 모습에는 단순히 세월이 할퀴고 간 흔적만 남은 게 아니었다. 거기에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한 시대가 그 시대의 산물에게 새겨놓은 자국들이 선명했다. - P454

"내가 권총 얘기를 꺼내서 널 불안하게 했구나, 사샤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난 아직 할 일이 있다고. 사실, 그게 바로 내가 이 도시로 들어온 이유야 내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작은 연구 과제를 위해 도서관엘 좀 가려고…………." - P459

"그 옛날 너에게 평생 메트로폴을 떠날 수 없다는 연금형이 선고되었을 때, 네가 러시아 최고의 행운아가 되리라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 P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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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불패 15 - 완결, 애장판
문정후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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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읽었지만 다시 읽어도 여전히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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