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야가 다섯 살 때 백작은 순진하게도 소피야가 머리카락만 검은색으로 바뀐 니나로 성장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분명한 인식과 확실한 자기 주장을 가졌다는 면에서 소피야는 니나와 공통점이 있었지만, 행동에 있어서는 완전히 달랐다. 니나는 세상의 사소한 불완전함에 대해서도 자신의 조바심을 솔직히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소피야는 지구가 가끔씩 엇나가면서 자전하기는 해도 대체로 큰 문제 없이 돌아가는 행성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 P508
백작이 안내 데스크에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다가 무도회장까지 달려가는 데는 3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그곳에서 그가 악당의 옷깃을 틀어쥔 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 P511
"아빠! 뭐 하시는 거예요?" "네 방으로 가거라, 소피야. 이 인간이랑 나는 얘기할 게 좀 있다. 내가 이 인간한테 평생 잊지 못할 주먹맛을 보여주기 전에 말이다." "평생 잊지 못할 주먹맛이라고요? 빅토르 스테파노비치는 제 선생님이세요." 백작은 한쪽 눈으로 악당을 주시하면서 다른 쪽 눈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네 뭐라고?" "제 선생님요. 저한테 피아노를 가르쳐주신다고요." 이른바 선생은 고개를 네 번 연속해서 끄덕였다. - P512
그는 소피야가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다음으로는, 소피야가 으뜸과 버금딸림 멜로디를 능란하게 연주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소피야의 음악적 표현에 묻어난 감성이었다. - P514
"젊었을 때 나도 내 누이에 대해 똑같은 감정을 느끼곤 했단다. 해가 지날수록 누이에 대한 기억이 점점 빠져나가는 것 같았지. 그리고 언젠가는 누이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게 되었어. 하지만 사실은 말이야,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결코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 - 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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