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흙길이 황무지를 가로지르며 이어졌다. 길가의 말라 죽은 나무들이 머리 위로 성긴 그물을 드리웠다. 무너진 건물 잔해와 엉성한 나무 십자가를 꽂아놓은 무덤이 이따금 눈에 띌 뿐, 아무리 걸어도 생명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머리 위에서 빙빙 원을 그리며 따라오는 독수리가 정겹게 보이기 시작했다. - P185

십자가를 등지고 걸으며 나는 머릿속 백지에 여인의 초상화를 그렸다. 남편을 살해하고 감옥에서 아이를 낳은, 앞길 창창한 총각 목사한테 자식을 떠맡기며 자신은 죽은 것으로 해달라고 당부한 여인. - P1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세아와 요시야의 유일신론은 단지 이스라엘이 오직 야웨만을 예배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했다. 그것은 다른 신들이 실제인지에 관해서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았다. 대조적으로 제2이사야는 심지어 다른 신들이 존재한다는 것 조차 거부하는, 최초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성서 본문이다. - P116

유대인들은 이사야 53장에 있는 고난받는 종을 자신들의 고통과 궁극적인 구속에 관한 상징으로 간주했다. - P1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갈대아-바빌로니아인들은 당시 유다의 왕 여호야김을 계속 왕위에 있게 했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에 의해 권력을 얻었고, 따라서 친-이집트적이었다. - P95

이 사건들은 유다인들의 두 가지 핵심 믿음들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 곧, 예루살렘이 함락될 수 없는 하나님의 도시였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다윗의 후손이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왕이 될 것을 보장한다는 것 말이다. - P98

구약성서의 많은 부분은 이 유다 포로민들과 그 후손들의 저술모음집이다. - P106

트라우마 고유의 자기 비난에 사로잡힌 포로민들은 이전에 그렇게 하찮게 여겼던 심판 예언자들을 진지하게 생각했고, 포로기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된 심판으로 간주했다. - P107

포로기 초기에 활동했던 다른 주요 예언자는 에스겔의 동시대인 예레미야다. 예레미야가 계속해서 예루살렘 안에 머물렀다고 할지라도, 그 또한 백성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상징으로 기능했다. 에스겔이 아내의 상실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면, 예레미야는 가혹한 예언들로 인한 장기간의 거부와 고립으로 고통을 겪었다. - P1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은 왜 뜬금없이 한 번씩 엉뚱한 짓을 하는 걸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을 귀신에 씐 거야, 귀신에. 요섭은 자신의 소행을 은근슬쩍 귀신에게 떠넘겼다. - P95

요섭은 봉사의 시혜자가 누리는 만족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봉사가 유해한 바이러스라는 소신까지 수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돌발적인 일탈이 주는 일회성 쾌감일 뿐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금지된 사랑이나 불량식품 같은. - P105

요섭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배당된 사건을 빼앗기는 건 변호사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아무리 냄새나는 쉰밥일지언정 내 밥통에 있던 건데.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장 선배가, 국으로 입 다물고 사건을 넘기라니. 그깟 사소한 규정 위반 때문에, 그것도 호시탐탐 자신의 영역을 노리는 오소리한테 이것들이,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따라줬더니 날 호구로 보나. - P119

일이 커졌다. 발단은 피해자 유소연이 인터넷에 올린 호소문이었다. 부유층 유학생 자제들의 패스트푸드점 알바생 성폭행 사건. 감정의 양념을 적절히 뿌려 사실관계를 정리한 후 수면 아래 감춰진 의혹들을 신중하게 언급한 글이었다. - P137

매일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소복 여인이 읽어주는 『헨젤과 그레텔』을 들으며 깨어났고, 그녀의 남편이 휘두르는 야구방망이에 맞아 정신을 잃었다. 그 사이의 짧은 일과도 한결같았다. - P171

요섭은 흥분 상태에서 한참을 떠들었다. 절반은 정체를 밝히라는 요구였고 나머지 절반은 정체를 밝혀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으름장이었다. 말없이 듣고 있던 남자는 한마디를 덧붙이고 전화를 끊었다.
음절 사이사이마다 서리가 낀 것 같은 목소리였다.
"최 변・・・・・・님, 너무 흥분하지 마세・・・・・・ 이제 시작인데." - P18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원전 700년대의 어느 시기에 이스라엘 국가는 당시의 초강대국 아시리아의 공격을 받아 그 지배 아래에 놓이게 됐다. - P41

이러한 트라우마 상황 안에서 예언자 호세아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야웨가 자신의 백성의 부모, 즉 하나님의 백성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부모라고 선포했다. - P43

호세아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성실, 즉 이스라엘의 바알 숭배와 신적 형상 헌신이 정확하게이스라엘이 아시리아의 압제 아래서 고통받는 이유다. - P45

호세아는 더욱 깊은 무언가가 진정으로 잘못됐다고 믿었다. 이스라엘은 전략적 결정을 잘못했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신 야훼에게 전적으로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 - P50

깊이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심판하고 있다는 생각보다 그들을 더욱 두렵게 하는 단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이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다. - P51

다른 신들과 우상들에 대한 백성들의 숭배를 간음으로 묘사함으로써, 호세아는 트라우마를 입은 청중들이 가장 취약하다고 느낀 시기에 가장 소중한 종교적 관습 중 일부를 포기하도록 충격을 주려고 했다. - P53

유일신론적 충격의 틀 안에서 이해된다면, 모든 종류의 고통은 옛 신들을 포기하려는 열성의 부족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 P61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대한 아시리아의 황폐가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을 파괴했던 하나님은 끝나지 않았다. - P66

아시리아와 성서 자료의 조합은 예루살렘 포위로부터 아시리아의 기이한 철군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고, 이것이 기적적인 재앙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조공을 제공한 것에 의해 진행됐다고 보는 것이 더욱 가능성 있다. - P73

분명히 요시야의 율법책, 신명기는 서기관들에 의해 모세의 연설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는 아마도 아시리아의 영향을 받은 언약 문서에 고대의 권위를 더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 P86

호세아가 유다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이스라엘인 예언자였다면, 요시야는 북쪽에서 기원한 한 문서를 사용함으로써 호세아와 같은 생각들을 제정했던 유다의 왕이었다. - P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