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이 한 번은 주님께 불만을 토로했다.

"당신은 불공평합니다. 수많은 죄인이 잘못을 저질렀지만 당신은 그들을 용서하고 되돌려 보냈지요. 사실 어떤 사람은 수없이 왔다갔다 했지만 그때마다 당신은 그들을 반겼지;요. 그런데 저를 보세요.

저는 딱 한 번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영원히 저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까? "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언제 회개하고 내게 용서를 구한 적이 있느냐?"

 

용서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용서는 어떤 느낌이나 마음먹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용서는 일회적인 행동으로 끝나지 않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에 용서하고 용서받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용서는 치유의 과정이며 그것은 구체적인 행위를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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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지네를 본 개미가 문득 의문이 생겼다.

'나는 발을 여섯 개 내딛는데도 어느 발이 어떻게 먼저 나가는지 생각해보면 신기한데 발이 수십개인 저 지네는 어떻게 헷갈리지 않게 차례대로 발을 내밀면서 기어갈 수 있는 걸까?'

그래서 그 개미는 옆에 기어가는 지네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개미의 질문에 지네는 난감했다. 그 자신이 한 번도 자신의 발 중 어떤 발이 먼저 나가고 뒤에 나가는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맘먹은 대로 자연스럽게 발이 움직였기에 돌아다녔을뿐이다.

개미의 질문을 받은 지네는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어떤 발을 먼저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이발? 그 다음발은?'

이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불행히도 그 지네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자연스러운 것은 자연스러울 때 가장 아름답다. 우리의 영성이 자연과 깊이 교류될 수 잇는 이유도, 자연과 만남을 통해 성숙될 수 있는 이유도 영성 그 자체가 자연세계만큼이나 인간의 삶 속에서 자연스러운 변화와 움직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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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난다. 열 받는다. 무언가 모를 분노가 책을 읽으며 치밀어 올랐다.

왜 저자는 태백산맥에 이어 민초들의 밟힘을 적나라하게 그렸는가?

그의 소설 속에는 '정의는 승리한다'라는 명제는 어울리지 않으며 끝간데 없는 인간의 인내 속에 피어나는 풀꽃들의 춤사위만 존재하는 것 같다. 



한강은 인간을 평하는 선악, 가짐과 못가짐, 빈부, 권력의 유무를 도외시한 채

도도히 흘러 '민족' 이라는 대해를 이루었다.

아니 이루려고 작가는 원하고 있지는 않은가?

마치 태백산맥의 '김범우'를 통해 본 세상을

꿈꾸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10권을 마치며 해본다.

작가가 내비친 화두는 인류의 보편성의 옳곧은 회복이다.

 

인류의 보편성 - 그것은 강대국들이 자기 합리화를 위한 유희의 언어가 되게

방치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가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토대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듯이 인류보편성이라는 것을

모든 민족들의 존재가

공평해질 때 비로소 빛나는 보석으로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다.

한강을 마치며  p.321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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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쁘게 주인공들은 인류의 기원을 찾아 달려 한 동굴에 이르러 그것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모습은 돼지 발이 였을 때 순간적인 숨막힘, 허탈, 역겨움 까지 느꼈다. 어떻게 우리의 기원을 돼지로 삼다니 ...
 


그러나 이어진 반전 그것은 자살을 한 아드레앙의 작품이 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안도의 한숨의 쉬게 된다. 인류의 기원을 알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전부를 걸며 달려온 그들에게 결국 그것은 치열한 아귀다툼밖에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결국 주인공들은 인류의 기원을 찾아나선 발걸음을 돌려 일상에서의 즐거움을 누리며 그것에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발견하러 새롭게 탐험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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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에 물음! 다음 장을 펼칠 수 밖에 없게 하는 글의 전개!  베르나르의 글쓰기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놓치 못하게 만들고 있다. 타나토노트, 뇌와 같이 이 작품도 이중적 구조의 글전개로 주인공의 사고와 호기심을 서로 한 꼭지점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고 있다.  한쪽은 인류의 기원을 묻는 물음의 시작으로 글이 전개되며, 또 한쪽은 이들의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몸짓들이 표현되고 있다. 한 꼭지점을 향해.... 뤼크네스 넴로드, 이지도르!  한 고생물학자의 의문의 죽음에서 시작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한 팀이 되었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답들이 그들이 앞으로 밝힐 해답의 단초가 되고 있다. 별똥별, 라마르크의 설, 다윈의 자연도태설, 해양 기원설....

그 해답의 실마리는 점점더 복잡하여지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2권은 무슨 내용을 담을 것인가/ 기대된다.,

전혀 닮은 점이라곤 하나 없는 상반된 두 주인공이 의문사된  학자의 물음을 쫓아 그 답을 찾으려고 한걸음, 한걸음 걸으며 때론 뛰면서 마주 보며 달려가고 있다. 두 개의 다른 듯한 삶의 형태, 물음과 해답이 동시에 펼쳐지는 글쓰기!! 베르나르의 고유한 글쓰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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