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의 그 어딘가. 쥘리앵 소렐의 신분상승 분투기. 소심하지만 수려한 용모를 가진 그는 연이어 들어오는 행운을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그에게는 사랑도 아름다운 여인도 그저 수단과 도구일 뿐. 그에게 온 것이 순전한 행운이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왕당파의 집에서 일하며 나폴레옹 이야기가 나오면 짐짓 꺼림칙한 표정을 짓다가도 밤에는 눈물지으며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쓰다듬는다. 들킬뻔한 위기에는 온힘을 다해 초상화를 숨기고 나중엔 불태우기까지. 게다가 라틴어도 잘 하고 일도 잘 한다. 시골사람의 순수함 같은 것이 귀족들에게 어필하는 듯. 스탕달은 발자크와는 달리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살아 생전 작품이 인정 받지도 못했고 평생 혼자 살았다고 한다. 그가 이 작품에서 자기 자신을 투영시킨 캐릭터는 의외로 쥘리앵 소렐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라고 어디에서 읽었는데 어디에서 읽었는지,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레날 부인? 아무튼 후작의 딸을 유혹하려는 쥘리앵의 이야기가 이제 하권에 나올텐데. 우린 이게 어떻게 될지 다 알고 있고 ㅠㅠ (책 표지에 나옴) 고전 작품의 스포는 영향력이 덜해서인걸까? 독인지 약인지 모르겠다. 우울한 작가가 썼다지만 꽤나 웃긴 포인트들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는 중.
이게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는 스포가 있었기에 끝까지 읽었다. 토요일 아침 읽기 시작해서 점심 먹기 전에 끝냄. 재미있었다. 그 꽃다발은 독..!!! 이라고 나라면 외칠 수 있을까? 매력적인 캐릭터 둘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사건. 작가의 다감한 말투 등 주말을 즐겁게 해준 독서였다. 요즘 근데 일본은 ’원죄‘라는 테마가 유행인가? 형사변호인, 법정유희에 이어 또 다시 원죄. 이 원죄는 그 성경의 원죄가 아닙니다. (나도 사전 찾아봄)
식집사가 되려면 꼭 필요한 책. 얘는 왜 이럴까 비료를 줘야하나 싶다면 이 책을 꼭 구비해 두세요. 식물은 일단 햇빛, 물, 바람만 있다면, 병해충만 없다면 잘 자란다. 아 1식물 1 화분도 중요. 너무 많은 비료와 물도 안돼. 응애는 노안에 보이지도 않고. 등등 어려운 와중 등대 같은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이다.
그 뭐랄까 일본의 내로라 하는 가문의 일꾼들의 알 수 없는 충성심이랄까 이해할 수 없는 복종과 순응을 매우 흥미로워 하고 좋아하는 편이다. 거기에 태생부터 허무한 귀족들의 자제 이야기도 섞여 있다면 또 그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지. 그런데 이것을 다룬, 특히나 아주 잘 다룬 책들이 많기 때문에 이제는 어쩐지 식상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나 싶었는데.. 이 책의 이야기가 이 소재를 배경 삼아 아주 재미있고 맛깔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조용한 밤, 햇빛이 밝게 드는 오전에 연달아서 책을 읽으며 내적비명을 질렀다. 재밌어!! 제일 재미있었던 단편은.. 꼽을 수가 없고 그나마 <산장비문>이 조금 약했다. 아무튼 재출간 매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