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관계의 끝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이미 저만치서 해가 떠서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서히 그 형체를 드러내는데,
때로는 진짜로 너무 어려서, 때로는 인정하기 싫어서 어리광부리는 마음으로, 눈가리고 아웅한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리지도 않고(정말?) 어리광부리기에는 그닥 귀엽지도 않으니. 
저어기 드러나기 시작하는 관계의 바닥을 응시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세네카같은 사람은 그러한 절망도 미리미리 예상해둔다면 막상 그 상황이 닥칠 때를 대비할 수 있겠다고 했다.
(그러니 죽음에 그렇게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처했지만 존경스럽지 않다. 이 사상으로 똘똘 뭉쳐 가르쳤던 네로황제가 제 스승에게 명령한 죽음이었거든. 이 사상이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네로황제가 초기에 다 숙청해버린건 이 사상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를 선생으로 둔 불행한 이여,,) 
관계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끝나기 전까지 미리미리 준비를 해둔다면 이별통보의 상황을 의연히 견딜 수 있을까-
미리미리 울어두고, 미리미리 추억을 정리해두고, 미리미리 나락에 떨어져본다면.
난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과연 멋지고 쿨하게 참아낼 수 있을까. 
아 그런 상황은 오지 않을거야. 라며 평소처럼 무조건적인 낙관을 백치처럼 들먹이고 싶은 욕구. 

진짜로 절망했을 때 난 술을 마실 수가 없다.
술을 마시면 우울과 좌절 속에서도 언뜻 판도라가 상자에 실수로 남겨둔 헛된 희망이 보이는데, 난 그게 견딜 수 없다.
낯선이들의 위로는 독이지만, 미치도록 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펌: 연희노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래간만에 바쁜 시즌이다.
남들은 요즘같을 때 일이라도 하고 있는게 어디냐며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한다. 청춘이 흘러가는게 아깝다는 내게 엄마는 청춘을 일하며 불태우지 뭘로 불태우고 싶냔다, 늙어서 일할 수 없을 때 놀라고 하심. 동생은 그냥 한국에서 안정적인 회사에서 일하고 가끔 여행이나 다니란다, 그곳은 너무 외롭다고. 한밤중에 울고있다며 문자까지 왔다. 백수인 친구들은 일하고 있는 당신이 부러우니 불평은 하지도 말란다. 

나란 앤 남들의 말은 원래 잘 듣지도 않고, 내가 듣고싶은 말만 듣는 편협한 인간이다. 사실 나 자신을 이렇게 비하하는 것도 이젠 좀 부끄럽다. '난 원래 이런 애야.'라면서 합리화를 하고 그에 따른 실수나 잘못을 용납해달라고 은근히 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 원래 편협해, 난 고지식해, 난 원래 이기적이야, 나 현실도피잘하잖아- 따위의 말들을 자주 해왔었는데 요즘 들어 이런 말을 해왔던게 좀 부끄럽기도 하다. 난 원래 그런 인간이니 내가 어떤 나쁜 인간이어도 당신들이 이해를 해야한다는 어투 아닌가. 합리화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무기라는데 그동안 난 이 무기를 너무 가차없이 휘둘러왔나 보다.

그래서 남들이 내게 불평말고 맡은 일이나 열심히 일하라고 했을 때, 더이상 '난 원래 이런 애가 아니야.'라며 모두 떨치고 떠나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고 합리화해버릴 용기가 없어졌다. 용기만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욕망도 사라진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난 3월의 따뜻한 바람이 불어 옛 기억을 들썩여도 차마 나서질 못한다. 물론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어젠 은행에서 외환송금을 하는데, 처음 외국에서 계좌 틀 때의 기억이 휘몰아친다. 그런 쓸데없는 기억까지도 요즘은 다 난다. 지금까지 한번도 꾸지 않았던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의 꿈을 꾸고 바람 한줄기에 난 그곳의 푸른 잔디 위에 서있기도 한다. 요즘 날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는 기억이지만 난 이 모든 것을 떨치러 떠날 수가 없다.  

이글을 토해내는 지금, 난 명치가 아프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기도 한다. 약간 역한 느낌도 들어서 진짜로 토하고 싶기도 한다. 왜일까. 당신이 너무도 그리워서? 아니면 이렇게 토해내도 쓰디쓴 위액뿐이라서? 이 글을 쓰는 지금 너무 아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알사탕 이벤트에 혹해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간다]를 구입했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그닥 재미있게 본 기억이 아니라 이 작가는 일찍이 내 목록에서 제외 된 불운의 작가 중 한명이었는데, 그래도 또 단편이 어떨라나 싶기도 하고, 내 사랑 미스터 핀처가 선택하기도 했던 터라 기꺼운 마음으로 샀는데.... 

  역시나 별로더라. 그나마 '젤리빈'이나 '낙타엉덩이'처럼 가벼운 이야기들은 그나마 읽을만 했는데, 점차적으로 참을 수가 없게 되어서 빨리 팔아버리자고 다짐한 최초의 책이 되었다. 

  역시 영화의 힘을 뒤에 업고 급승상한 책이라서 그런지, 중고시장에서도 무지 빨리 팔렸는데 또 덜 읽은 책 팔려니 마음 한켠이 씁쓸하고 아쉬워지는게 사람 마음이라 괜시리 뒤적거리다가 다이아몬드 이야기나 읽어볼까 해서 '리츠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읽기 시작. 

 
 내가 만약 편집장이었고, 영화가 개봉되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를 제목으로 뽑았겠다. 권력과 부에 대한 놀라운 풍자 <- 이따위 비평은 넣지도 않았을테고 ㅋㅋ 자극적인 제목에, 이 이야기 놓쳤으면 후회했겠다 싶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이런 이야기라면 다 좋아하는 것 보면 나 정말 부잣집 얘기 좋아하는 것 같다. 로망인가요-

 산 하나가 모두 다이아몬드라니. 부럽다. 딱히 세파에 흔들리지도, 그 부에 집착하지도 않고 가족끼리 엄청난 부를 누리며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지만^^ 엔딩이 좋았다.
 누군가 나와 나의 기반을 모두 망쳐버렸을 때, 내가 더 이상 살아나갈 힘이 없을 때 나도 그렇게 사라지고 싶다. 쾅- 
 작가는 물론 살아남은 두 자매와 주인공의 아릿하지만 희망적인 미래를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